고린도전서 3:16-4:5

16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은 오직 성전 밖에 없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고린도교회 공동체) 안에 계시는 것을 알라고 강한 어조로 반문한다.

17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고린도교회 공동체도 거룩하다고 가르친다. // 문맥상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은 고린도교회 내의 분쟁을 지적하는 것이다. 분쟁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 더럽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교회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불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18-20 세상에서 지혜있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차라리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지혜로운 자가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지혜있다고 하는 자들이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세상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헛것에 불과하다. 아니 하나님은 세상지혜를 헛것으로 만드신다.

21-23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하신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만물이 다 우리 것이 된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우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4:1-2 바울은 가르치는 자, 사역자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편지한다. 맡은 자는 신약에서는 주로 청지기로 번역된다. 청지기라고 종보다 높은 자리가 아니다.  소명이 있는 자라는 뜻이다. 해야 할 일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일이 주어진 자들은 충성해야 한다. 신실함을 추구해야 한다.

3-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자신을 평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라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은 작은 일이며, 다른 사람의 판단에 스스로도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책할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자책할 것이 없다고 의로다 함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님의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주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다. 심판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도록, 주게서 어둠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때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 밤새 뱅기타고 한국도착… 계속 눈이 감긴다.

고린도전서 3:1-15

바울은 우리가 (바울 일행이, 혹은 사역자들이) 주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주를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와 말이 아닌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한다고 썼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 성도들을 진단한다.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이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말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고린도 형제들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요, 그리스도 품에 있는 갓난아기 같다고 말한다.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령한 젖은 빨고 있으나 신령한 밥은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증거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시기와 분쟁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시기와 분쟁이 여전히 육신에 속해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증거라고 한다.

십자가의 도는 같은 말/마음/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인데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었으니 고리도교회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바울은 심고 물을 준 자신이나 아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이)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각기 자기의 행한대로 상을 받겠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에 불과하고 자신들이 심고 물을 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에 속한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한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었고, 당연히 아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물을 주었다고 가르친다. 앞으로 사역할 사람도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 위에 어떻게 세울까 조심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들인데 사람들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세워도 결국에는 다 태워질 것이라고 하신다. 태워지고 남는 것이 성도들의 공적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한다. 공적이 불타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공적이 있었다면 불 가운데서라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어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기 같다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한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쟁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증거라고 한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에게  무엇이든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개인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고린도교회(공동체)에도 같은 적용을 한다.

>> 성도는,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자들이다. 금/은/보석/나무/풀/짚 등 무엇으로 세우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자들이다. 그 무엇으로 세워도 심판의 불을 견딜 수 없다. 오직 남는 것은 ‘터’인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남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는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골 2:6,7 현대인의 성경) 라고 가르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야 한다. 사역자라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도록 세워야 한다. 금/은/보석도 자랑할 것이 못되고 나무/풀/짚이라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2:1-16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 구절에서 말과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말과 지혜다. 복음을 하나님의 증거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는 장황한 이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논리적인 말과 설득력 있는  지혜가 아닌, 성령으로 깨달은 것과 능력으로 전도 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떨지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없어질 지혜가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로 전도했다. 이 지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다. 만약 세상이 이 지혜를 알았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르듯,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곧 성령 외에는 아무도 알 지 못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은혜로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육에 속안 사람에게는 성령의 일이 어리석게 보이고, 또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영적인, 곧 성령을 받은 사람만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바울의 마음에 모셨기 때문에 주를 가르친다고 고백한다.

>> 십자가의 메세지를 전하는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모신 그리스도의 마음, 곧 성령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같은 말/마음/뜻으로 온전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교훈하는 것이다. 주님을 알아가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교훈한다.

>> 주안에서만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만하지 말고 보혜사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새번역)

고린도전서 1:18-31

십자가의 ‘도’는, 곧 십자가의 메세지는(교훈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이다. 바울은 어제 분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십자가의 도는 같은 말/마음/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말/마음/뜻으로 온전히 하나됨을 보여 주신 길이다. 같은 말/마음/뜻의 기준이 성도 각자의 말과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에 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은 멸망이요, 말씀을 듣고하나님의 능력으로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구원이다. 기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다.

유대인들은 말씀에 따른 이적을 구한다. 헬라인들은 말씀이 합리적인지 따진다. 그러나 성도들이라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말씀에 따른 이적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스스로를 구원하여야 했다. 헬라인에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전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었다.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높아져야지 죽기까지 낮아진다는 것은 헬라인에게는 이해불가였다.

바울은 형제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너희들이 지혜로와서 너희들이 능력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지혜롭다 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천하고 멸시 받고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셔서 부자들을 폐하신다고 가르친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성도들이 택함을 받은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성도들의 지혜가 되셨다.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 한다. 성도는 주안에서만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다.

>>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의 지혜를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라고 한다. 우리는 유독 구원함만 따지는데,  의로움과  거룩함도 따져야 한다. 셋이 다른게 아니라, 다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저를 택하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는 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고린도전서 1:10-17

10절 상반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는  로마서 12장 1절 상반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권하노니’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서 12장 1절 하반절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권면하는 10절 하반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는 성도들이 마땅히 드릴 합리적인 (영적) 예배의 구체적인 예로써 부족함이 없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소식에, 분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쓴다. 교회 내의 분쟁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한다고 바울은 지적한다. 말과 마음과 뜻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내 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과 내 마음이 아닌 성령께서 부어주신 마음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과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뜻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 결과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복음에 방해된다면 세례 베푸는 권세도 내려 놓았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에 촛점을 맞춘다. 형식 (예식) 보다 내용을 붙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