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1-18 읽기

1-2솔로몬은 주님의 이름을 모실 성전과 자기 궁전을 짓기로 작정하였다. 솔로몬은 짐꾼 칠만명, 석공 팔만명, 감독자 삼천육백명을 뽑았다. (십오만삼천육백 명.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다.)

3-10 솔로몬은 두로의 히람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윗 궁을 지을 때 히람이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준 것처럼 자신에게도 보내달라고 편지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실 성전을 짓고,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시 절기를 따라 번제를 드리는 일이 이스라엘 자자손손 이어져야 할 일이며,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신 분이시므로 성전도 크게 지어야 한다며, 히람에게 백향목 외에 금은과 놋쇠와 쇠를 다를 줄 알며, 천을 짤 줄 알며, 조가도 할 줄 아는 기능을 가르칠 전문가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전문가가 와서 다윗이 미리 훈련시켜 둔 기능공들을 데리고 일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백향목과 아울러 잣나무 백단목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목공 전문가로 보내달라고 했다. 솔로몬은 한 번 더 히람에게 자신이 지으려고 하는 성전은 화려하고 크니 많은 재목을 준비해 달라고 사신을 보냈다. 솔로몬은 벌목꾼들에게도, 히림아 파견하는 일꾼들에게 양곡과 품삯을 후히 주겠다고 약조했다.

11-16두로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회신했다. 히람은 먼저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솔로몬에게 문안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명철하고 총명하고 슬기로운 아들을 주셔서 성전을 짓게하고, 또 궁전을 짓게 했다고 입발린 인사를 더했다. 그리고 총명을 갖춘 전문가 후람을 보내주겠다고 답을 했다. 후람은 단에 사는 여자가 낳은 아들로 아버지는 두로사람이라고 한다. 후람은 솔로몬이 요청한 전문가니 다윗이 훈련시켜 놓은 기능공들과 솔로몬의 기능공들과 함께 일을 하게 하면 된다고 답을 한다. 히람은 솔로몬이 약속한 댓가를 일꾼들을 통해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히람은 목재를 레바논에서 욥바까지 뗏목으로 엮어서 보내주면, 욥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솔로몬이 알아서 운반하라고 답을 한다.

17-18 다윗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땅에 살던 이방인의 인구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솔로몬이 다시 조사해 보니 그 수가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명이라고 사관은 기록한다. 1,2절의 숫자와 일치한다. 다시말해 성전건축에 동원된 일꾼들은 이스라엘 땅에 살던 이방인들이었다. 성전건축과 이방인. 감사제목이다.

>> 모세가 회막을 지을 때(출35장~), 모든 필요한 것을 백성들의 소유 중에서 마음에 원하는 자가 주하나님께 드리게 했다. 일꾼들은 백성들 중 마음이 지헤로운 자로 하여금 주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만들게 했다. 마음에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자들이 회막을 지었다. 사관이 1장에서 언급한 놋제단을 만든 브살렐은, 주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여 부름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영으로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전문가로 일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파의 오홀리압도 감동시키셔서 직조와 조각과 세공에 관한 전문가가 되게하셨다. 솔로몬은 히람왕에게 편지를 하면서 다윗이 훈련시켜 둔 일꾼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은 이스라엘 중에 전문가를 찾지 않았을까? 두로의 궁전이 화려함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히람이 보내온 후람. 단지파 어머니와 두로사람 아버지를 두었다고 사관은 기록함으로써 단지파 오홀리압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아쉽다. 목재와 석재를 사들여 오는 것은 그렇다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원하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물질과 기술을 이용해서 성전을 짓는 것이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짓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뜰도 밟지 못하게 되는데… 아니면 이들은 이방인 출신들이나, 이미 할례받고 이스라엘에 동화된 사람들인가? (후일 느디님 사람들?) 솔로몬 이야기만 읽으면 늘 아쉽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귀결된다.

오늘날 교회도 전문가를 찾는다. 실력자를 찾는다. 솔로몬 때도 있었던 세속화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는,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

역대하 1:1-17 읽기

1 역대기 하편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야기로 시작한다. 솔로몬의 왕위가 튼튼해졌고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계시며 솔로몬을 크게 높여 주셨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솔로몬’이란 왕명은 조선의 왕명처럼 사후에 사관들이 붙였을 수도 있겠다. 솔로몬의 다른 이름은 ‘여디디야’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다.)

2-6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계시며 솔로몬을 크게 높여주셨듯이,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도자들 족장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회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기브온 산당에 모세가 만든 회막(성막)이 있었고 제사를 드리는 놋제단이 있어, 솔로몬은 그곳에서 주님 앞에 번제물을 바쳤다. 번제물 천마리를 바쳤다고 했으니 제사의식은 몇날며칠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7-12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구하라’고 하셨고, 솔로몬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셨으니 다윗의 위가 영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왕에게 필요한 많은 백성을 잘 인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부와 재물과 영화를 구하지 않고 원수들을 처벌해 달라고 구하지도 않고, 장수하게 해달라고 구하지도 않고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을 구했다고 칭찬하시고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영화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지식, 그리고 부와 재물과 영화를 받은 왕은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3-17 기브온 산당에 있는 회막에서 제사를 마친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런데 사관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식, 부와 재물과 영화를 약속 받은 솔로몬, 예루살렘을 (평화의 마을을) 다스리는 평화의 왕이 (솔로몬)이 가장 먼저 병거와 기병을 모았다고, 역대기를 이어간다. (뭔가 꼬였다.) 사관은 예루살렘에 은과 금이 돌처럼 흔했고, 백향목이 뽕나무만큼 많았고, 이집트와 주변 모든 왕들과 대대적인 무역을 했다는 것으로 솔로몬의 부와 재물과 영화를 기록한다.

>> 역대기를 기록하는 사관도 하나님의 약속을 변질시키고 말았다. 솔로몬의 왕위가 튼튼해지고 주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계시며 솔로몬을 크게 높여주셨다는 것을, 솔로몬이 군사력을 키우고, 경제력을 키우고, 무역으로 국제경쟁력과 외교력을 키운것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일까? (솔로몬 이야기를 읽으면 늘 슬퍼진다.)  무엇을 받았느냐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이 늘 필요한 이유요,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시편 39편 읽기

시인은 다짐한다. 시인은 혀로도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악한자를 향해서도 입에 재갈을 물면 물었지 말로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시인은 결심대로 입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말을 참으니 걱정 근심만 깊어 갔다고 노래한다.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결국 주님께는 입을 열어 아뢴다.

주님, 알려주십시오. 시인은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주께 묻는다. 덧없이 지나가는 인생을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시인은 주께서 인생이 짧다고 답해 주셨다고 노래한다. 주님 앞에서는 찰라요, 없는 것이나 같다고 노래한다.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노래한다. 화려했던 시절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살아온 걸음걸음이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노래한다. 재산을 쌓는 것도 허사라고 노래한다. 쌓아두어도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고. 그래서 시인은 주님만 바라본다. 주님만이 시인의 희망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주님만이 희망이라면, 시인은 죄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한다. 주께만 구원이 있다는 시인을 조롱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달라고 기도한다. 시인은 잠자코 있겠다고 주께 아뢴다. 주께서 시인의 희망이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한다. 시인은 주께서 시인을 채찍질하는 것을 거둬 달라고 간구한다. 주께서 시인을 치시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어리석은 자들이 시인을 조롱한다고 주께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인생의 허무함을 인정하고야 만다. 그래서

시인은 주께 기도한다. 주께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시인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응답해 달라고. 시인은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이길 원한다. 죽기전에 다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시인에게 환한 미소로 웃어주시길 기도한다.

>>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라고 편지한다. 시인의 노래와 다를 바 없다.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혀에 재갈을 물고서라도 악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구원의 길이 없다고 시인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한다. 죄인인 자신을 측은히 (자비롭게) 봐 달라고. 그래서 시인이 미소지을 수 있도록. 이땅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다가 영원히 주님과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재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쌓으라고 하신다. 순종이 믿음을 쌓는 길이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순종하며 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미소를 보게 하소서.

시편 38편 읽기

시인은 주께 책망을 받는다. 그것도 뿔이 단단히 나신 주께 징계를 받는다. 화살에 찔린 고통과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압박을 받는다. 시인은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몸에 성한 곳이 없다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뼈마디까지 아프다고 고통의 노래를 부른다. (주의 진노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음을 알고 노래한다.)

시인은 자신의 죄악을 지적받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의 상처는 썩어 악취가 난다. 시인은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시인한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슬픔에 빠진다. 허리도 쑤시고 피부도 성한 곳이 없다. 몸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불안으로 신음한다.

시인은 주를 찾는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습니다. 나의 탄식을 주께서 아십니다. 시인은 자신의 심박도 약해지고 동공도 풀리기 시작한다고 주께 아뢴다. 사랑하는 자와 (가족과) 친구와 친척들도 시인에게 등을 돌린다. 원수들은 이때가 기회라고 시인을 해치기 위해 올무를 놓고 음모를 꾸민다. 시인은 이 모든 상황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이 초래되었으니 핑계댈 말이 없다고 인정한다.

시인이 바랄 것은 오직 주님뿐이다. 시인은 주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시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벌받는 것을 원수들이 기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만약 잘못을 하고도 자신은 징계를 받지 않는다며 교만했을지도 모를 자신을 경계한다. 시인은 자신이 넘어지게 되었다고 근심가운데 있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다시금 주께 죄악을 시인하고 죄를 뉘우친다 (슬퍼한다). 시인의 원수들이 죄악을 인정한 시인을 강하게 몰아부친다. 시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을 따라) 죄악을 시인한 것을 물고 늘어진다.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시인이 죄를 인정했으니 시인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외쳐댄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시인은 주님의 자비를 구한다.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벌을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아니다. 벌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고린도 성도를 변화시킨 모습을 나열한다 (고후 7:11). 열성, 진리에 대한 변호, 죄악에 대한 의로운 분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주를 그리워하는 마음, 열정, 응징 . 우리도 주께서 성도의 구원이심을 알아야 한다. 시인의 노래처럼.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벌을 받아도 뉘우치면 주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버리지 않으신다. 멀리하지 않으신다. 주께서 나의 구원이시다.

시편 37:23-40 읽기

시인은 확신한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주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혹여 비틀거려도 주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젊어서부터 늙은 지금까지, 의인이 버림받는 것과 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간증한다. (결국 의인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은, 곧 의인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시인은 적용한다. 이런 의인은 자자손손 큰 복을 받는다. 그러니 청자들에게도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일에 힘쓰면서 이땅에서 살아가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의를 행하는) 성도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은 자자손손 영원토록 주의 보호를 받는다. 악인은 그렇지 않다. 악인의 자손은 끊어질 것이다. 의인은 땅을 차지하고, 언제나 거기에서 살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의인의 혀는 공의를 말한다. 의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다. 의인의 발걸음은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는다.

악인은 의인을 죽일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주님은 의인을 악인의 손에 넘기시지 않는다. 악인이 거짓으로 고소한들 주께서는 의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으실 것이다. 시인은 주를 기다리며 주의  법도를 지키라고 명령한다. 주께서 주를 기다리며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를 높이시고 (새)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물론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노해한다. 악인의 세력은 무성한 잎을 뽐내는 나무같이 크게 보이지만, 한순간이 지나면 흔적조차 사라지고 아무릴 찾아도 다시 찾아볼 길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흠없는, 정직한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새하늘과 새땅이) 주어지나 범죄자들을 모두 다 멸망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악한 자들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선언한다. 의인이 구원받아 새하늘과 새땅을 누리는 것은 주께로부터 온다. 이땅에서 재난을 받을 때 주께서 의인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주께서 의인들을 도우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의인들이 주님을 피난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시1:6)”

>>   주를 기다리며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삶. 곧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삶. 흠없는, 정직한, 평화를 사랑하는 삶.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되 이자를 받지 않는 삶. (아니 받을 생각없이 꾸어주는 삶.) 이것이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이런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예수께서도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하늘 나라를 소유하며, 위로받으며, 땅을 차지하며, 배부르며, 자비를 누리며,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고 가르치셨다.

시편 1편의 결론은 계속해서 불리운다.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시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