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1-22 읽기

시인은 악한 자들이  형통하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샘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악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러니 주님만 의지한고 선을 행하라고, 이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라고 명령한다. (새땅이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기쁨을 오직 주님에게서 찾으라고 노래한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노래한다. 주님만 의지하면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땅에서 성실하게 사는 우리의 의로움을 빛과 같이, 우리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 애타게 찾으라고 명령한다. 악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의 길이 평탄해 보이고, 악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듯 보여도 마음상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다고 악한 자들 불의한 자들에 대한 노여움도 버리라고 하신다. 격분을 가라앉히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신다. 노여움, 격분, 불평은 우리로 오히려 악으로 기울게 할 뿐이라고 노래한다.

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반드시 (새)땅을 물려 받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한다. 악인은 멸망하고야 한다. 형통한 것 같던 악인의 자취는 사라지고 말것이라고 노래한다. 대신 겸손한 사람들이 (새)땅을 차지할 것며, 겸손한 자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노래한다.

악인들이 (여전히) 의인을 모해하며, 악인들이 여전히 의인들을 보고 이를 갈지라도, 주님은 오히려 악인을 비웃으실 것이다. 주님은 악인의 길을 인정하시지 않으신다. 악인의 길을 망할것임을 아신다. 악인들은 칼로, 활로,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자기 길을 똑바로 걷는 사람을 죽이려 든다. 갑질을 해댄다. 그러나 악인들이야 말로 자기들의 칼에 찔리고 악인들의 활은 꺾이고 말 것이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많은 재산보다 낫다고 노래한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흠 없이, 정직한 사람을 주님께서 보살펴 주신다. 매일매일, 자자손손 보살펴 주신다. 재난을 당할 때도 부끄럼움을 당하지 않게 지켜주신다. 기근이 들어도 굶어죽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들은 망할 것이다. 주님을 대적한 자들은 가뭄에 풀밭이 타들어가듯 없어질 것이요,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악인들은 빌리기만 하고 갚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거저주는 사람들이다. 주님은 은혜를 베풀고 거저주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신다. (새)땅을 주신다.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게 하신다. 그러나 주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다. 악인은 멸망당한다.

>> 복있는 자의 길과 악인의 길은 확연히 갈라진다. 새땅을 소망하며 살라고 하신다. 아니 이땅에서도 새땅에서 사는 것처럼 은혜를 베풀고 거저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아가면 주께서 자자손손 보살펴 주신다.

시편 36편 읽기

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역의 충동만 있다. 악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악인들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 양양하다.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기와 속임수의 말만하지 슬기를 내어 좋은 일을 (선한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을) 하기는 이미 틀린 자들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웃을 속일 궁리나 하고 범죄의 길을 고집하고 한사코 악을 버리지 않는다.

시인은 주님을 찾는다. 주님을 부른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자들과 달리)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차 있다. 주님은 미쁘신 분이다. 우람한 산맥처럼 의로우신 분이다. 깊은 호수처럼 공평하신 분이다.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택하지 않으신다. 주님의 사랑은 한결같다. 시인은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고 노래한다.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곧 최고의 사랑아래를 피난처 삼는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사랑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은 주님의 집에 있는 것으로 배불리 먹고 마신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사랑에 피한 사람들은 생명 샘에서 흐르는 시내의 단물을 마시며 주님의 빛아래 환히 열린 미래를 본다. 시인은 주님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달라고 노래한다. 오만한 자들이 결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짓밟지 못하게 해달라고, 악한 자들이 시인에게 갑질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베풀어주신 (밥)상에 앉아 악을 일삼는 자들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함을 본다.

>>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잘못에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당근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인처럼 주님을 찾는 사람,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무엇이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다. 바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밥상에서 배부르게 먹고 마신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하루를 또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영원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시편 35:19-28 읽기

시인은 거짓말쟁이 원수들이 시인을 이겼다면서 기뻐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시인을 왕따시키면서 즐거워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원수들은 평화를 추구하지도 않고 평화롭게 사는 백성들마져도 거짓말로 분란시킨다. 악인들은 거짓증언을 일삽는다.

시인은 주님께서 악인들의 악한 행위를 보셨으니 가만히 계시지 말라고, 악인들의 위증으로 고통당하는 자신을 버려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 시인은 주님을 재판장으로 초대한다. 재판관으로 시비를 가려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님을 찾는다. 하나님께 공의로 공정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간구한다. 위증하는 원수들이 시인을 이겼다면서 기뻐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악인들이 자신들의 위증이 재판정에서도 통했다며 낄낄대며 고소해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악인들이 재판을 이겼다고 말하지도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시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다 함께 수치를 당하고 창피를 당하고 말것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을 보고 우쭐대는 사람들의 결국은 수치와 창피를 당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자신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인의 무죄판결을 기뻐하는 자들은 노래로 기뻐할 것이다. 이들은 쉬지않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할 것이다. 주님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기꺼이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할 것이다. 시인도 주님의 의를 선포하겠다고 노래한다. 하루종인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노래한다.

>> 수치 중의 수치는 예수께로부터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선언을 듣는 것이다. 단순히 창피를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공의로 공정한 판결을 하시는 주님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을 (갑질하는 사람을) 수치와 창피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대신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한 사람과 억압을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에게서 건지신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신다. 이것이 주님의 의다. 시인의 찬양이다.

시편 35:1-18읽기

시인은 주님께 대신 싸워달라고 노래한다. 주님,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십시오. 시인은 주님이 큰 방패, 작은 방패가 되어달라고 노래한다. 주님이 창과 단창으로 자신을 쫓아오는 자들을 막아달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시인에게는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하고 말씀해 달라고 간구한다. // 시인은 자신이 대항해 싸우지 않는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긴다.

시인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수치를 당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을 해치려는 자들을 바람에 날리는 겨, 곧 악인들이라고 노래한다. 이들은 주님의 천사에게서 쫓겨나 의인의 회중에 들 수 없는 자들이다. 시인은 그들은 어둠가운데 길을 가는 자들이라고 한다.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그물을 치며 함정을 파는 자들에게 멸망이 순식간에 닥치게 해달라고, 자신들이 친 그물에 자기들이 걸려서 멸망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악인들의 멸망을 볼 때, 시인의 영혼이 주님을 기뻐하며 주님의 구원을 크게 즐거워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이것이 시인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거짓 증인들은 시인이 하나님의 뜻대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조롱한다. 시인의 영혼이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시인은 거짓증인들이 병들었들 때 그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시인은 그들을 친구나 친척처럼 대했다. 그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울었다. 그런데 시인이 환난을 당할 때 그들은 모여서 기뻐 떠들고 오히려 시인을 약탈하려고 모여서 시인을 공격했다. 시인을 무능력한 자로 조롱하고 비웃고 심지어 이를 갈며 분노했다고 노래한다. // 시인을 대적하는 자들이 이방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었다.

시인은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언제까지 보고만 계시렵니까? 시인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시인은 어느덧 큰 회중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드린다. 수 많은 백성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한다. // 시인은 의인의 회중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 시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시 34 편 읽기

시인은 늘 찬양한다.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입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인의 찬양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시인은 화자들에게 시인의 찬양을 듣고 기뻐하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화자들에게 시인과 함께 주님을 높이자고 청유한다. 함께 주님의 이름을 기리자고 초청한다.시인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응답하시는 분, 두려움에서 건져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이런 주님을 우러러 보라고 명령한다. 주님을 우러러 보는 자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이런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시인 자신이 주님께 기도했을 때 주께서 응답하시고 온갖 재난에서 시인을 구원해 주셨다고 간증한다.시인은 주님의 천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건져주신다고 노래한다. (사무엘이 시종에게 보여준 환상 왕상16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자신의 경험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한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이 큰 복을 받는다고 노래한다.시인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한다. (시23) 젊은 사자라도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큰 복이 있는 사람, 곧 주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젊은이들에게 주임을 경외하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노래한다. 젊은이들은 주님을 찾는 큰 복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자들이다. 젊은이들은 인생을 즐기면서 장수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시인은 악한 말을 하지말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악한 일을 피하고 선한 일만 하라고 명령한다. 평화를 찾기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한다. 다시말해 자신의 낙을 위해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왜냐하면) 주님은 의로운 사람, 주님을 찾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노려보시며 그들을 지워버리시는 분이시다. 의인이 부르짖으면 주님은 반드시 들어주시고, 그 모는 재난에서 반드시 건져주신다.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신다고 노래한다. 뼈마디 하나하나 모두 지켜주신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악인은 그 악함 때문에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의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종들의 목숨을 건져주신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 시인은 젊은이들처럼 ‘인생을 즐기자, 좋은 일을 보면서 장수하자’는 사람들에게 결코 이웃을 속이면서까지, 사기를 쳐가면서 인생을 즐기며 장수하려는 것은 악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대신 시인은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고 가르친다. 악인과 의인의 길은 확연히 갈라진다. 죽음과 구원이다.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라고 하신다. 시인이 항상 주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