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1-9

1 드디어 일곱 천사에게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큰 음성이 하늘 성전으로부터 들린다. // 왜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재앙이라고 부를까? 일곱 ‘벌’ 이나 일곱 ‘회초리’ 가 더 의미있는 번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재앙이나 재난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닥친 ‘화’라는 뜻이 강한데.

2 첫째 천사가 그 대접을 땅에 쏟았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 곧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다.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았다. 바다가 죽은 자의 피 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었다.

4-7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의 근원에 쏟자 물이 피가 되었다. 천사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심판하시는 것이 의롭다고 외친다. 왜냐하면 심판받는 자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마시게 하는 심판은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때 제단에서 화답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십니다.” // 이 화답은 하늘 성전의 제단, 곧 순교자들과 성도들의 화답소리다.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쏟았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때웠다. 아니, 그런데도 사람들이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며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 천재가 아니라 인재다. 아니 재앙/재난이 아니라 심판의 벌이요 회초리다. 벌을 받으면서도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독종을 핧으며, 핏물을 마시며 끝까지 대꾸하는 사람들, 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재난/재앙은 의로우신 주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마지막 은혜의 통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재난이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그러나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와 다름이 없다. 사형을 당하면서도 자기들의 행함이 옳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에 하나님은 진노의 대접을 하나 하나 쏟으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요한계시록 15 (1-8)

거룩한 성에서는 구원의 추수에 대한 감사가 성밖에서는 심판의 추수가 진행되었다.

1 (요한의 눈은 마치 하늘에 고정된 듯)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본다. 일곱천사가 일곱재앙을 가지고 나타난다. 요한은 이것을 마지막 재앙, 곧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한다.

2-4 요한은 구원의 추수에 감사하는  거문고에 맞춘 새노래를 듣는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이겨낸 자들이 하늘 성전의 유리 바다 가에 서서 거문고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요한은 이 노래를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라고 독자에게 알려준다. 노래의 내용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고 놀랍다. 만국의 왕이신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다. 세상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자가 어디있느냐? 만민이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오직 주만 거룩하십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니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합니다”라고 알려준다. // 모세의 노래가 홍해를 건너 출애굽에 대한 감사의 노래라면, 어린양의 노래는 성 밖 유리바다를 건너 드디어 거룩한 성에 들어감에 대한 감사의 노래일 것이다.

5-8 요한은 하늘 성전이 열리며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본다. 일곱천사는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읿고 가슴에는 금 띠를 띠고 있었다. (하늘보좌 옆의) 네 생물 중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천사들에게 전달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찬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한다.

// 천상만 보고 있지 말라는 뜻일까? 하나님은 영광과 능력으로 커튼을 치신다. 하늘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이겨내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14:14-20

14 (요한은 집요하게 하늘을 본다. 그의 관심사는 확실히 땅이 아니다. 아니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우리도 하늘을 보게하신다.) 요한은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신 것을 본다.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쓰고 계시며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지셨다. // 구름타고 올라가셨듯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이 아니시면 누구랴.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으신 이를 향하여 큰 소리로 간구한다. (아마도 순교자들, 이미 속량받은 자들을 대표하는 천사가 아닐까?)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의 환상을 종합하면 천이백 육십일, 마흔 두달이 다 찼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정한 기한이 찼다.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둘러 추수를 하셔서 알곡을 거두어 들인다.

17-20 또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에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나온다. 또 불을 다스리는 (심판하는) 천사도 하늘 성전 제단으로부터 나온다. 낫을 가지고 나온 천사는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익은 포도를 거둔다. 낫을 든 천사는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진다. 땅의 익은 포도들은 (거룩한) 성 밖에 있는 큰 포도주 틀에서 밟힌다. 짓밟힌 포도즙은 피를 흘리며 죽임 당함을 의미할 것이다. 성 밖의 피흘림은 천육백 스다디온에 (아마도 모든 땅, 거룩한 도성 밖 전부를 가리킬 것이다) 퍼졌다고 한다. // 땅의 익은 포도송이는 결국 세상의 열매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와 같으신 이, 곧 우리 주님의 낫은 알곡을 (성도들을) 거두어 창고에 (하늘 성전, 곧 거룩한 성에) 들이신다. 한편으로 가라지와 겨와 같은 땅의 익은 포도들, 곧 악인들은 또 다른 천사의 낫으로 구별하여 거두어 포도주 틀에 던져 짓밟혀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요한은 하늘 성전, 곧 거룩한 성과 성전 밖을 구별됨을 본다. 내게 의미 있는 표현은 땅의 익은 포도들이 포도주틀에서 짓밟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예수님은 우리를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하셨지 열매라고 하지 않으셨다.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극상품 포도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여야 한다. 맺은 열매로 우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훈한다. 내가 붙어 있어야 할 나무보다 내가 맺은 열매에 집착하면 땅의 열매를 맺게될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좋은 열매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 산 가지가 되는 것이다. 사역의 성공보다 온전한 임마누엘을 이루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14:1-13

1 (요한은 끊임없이 하늘을 본다.)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요한은 독자들도 하늘에 있는 시온 산을 보길 원한다.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람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새긴 것도 결국은 삼위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쓰고 성령으로 인치신 것을 흉내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은 충만한,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상징할 것이다.

2,3 요한은 하늘에서 또 다시 경배와 찬양의 소리를 듣는다. 천군 천사들의 경배와 찬양이 많은 물소리 같고 큰 우렛소리와 같다면, 십사만 사천의 구원받은 성도들이 배워야 할 경배와 찬양은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한다. 오직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다고 한다. // 다시말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노래일 것이다.

4,5 거문고를 타면서 십사만 사천에게 새노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라고 한다. 음행하지 않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이미 속량함을 받은 자요,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삶에는 흠이 없다고 한다. // 결국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도 순결하고 어린 양의 인도를 따라가는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6,7 (요한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향한다.) 공중을 나는 천사를 본다. 그 천사는 땅에 있는 사람들, 곧 열방에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천사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다고 선포한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한다.

8 또 다른 천사, 둘째 천사가 첫째 천사를 따라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한다. 바벨론이 열방으로 하여금 음행에 빠져 진노의 포도주를 먹게 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 세상이 무너지는 이유중 하나는 분명하다. 음행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은신 대로 정직하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9-11 셋째 천사도 첫째 천사를 따라 선포한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바벨론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겔 될 것이다.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큰 음성으로 경고한다. 불과 유황의 심판은 세세토록, 곧 영원할 것이라고 하신다. 밤낮으로 안식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다. // 짐승의 표와, 성령의 인치심은 이렇듯 다르다. 짐승의 표는 비슷하게 포장해도 안식을 주지 못한다.

12,13 성도들이 인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도들이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한다. 요한은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는 하늘 음성을 기록하라는 명을 받는다. 성령께서도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는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라고 부연하신다.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 곧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대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3:11-18

11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 이어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 요한은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의 모습이 두 뿔 달린 어린양 같다고 묘사한다. 이제는 모양까지 예수님을 흉내낸다. 그러나 용처럼 말을 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 웃는 얼굴이라도 말을 들어보면 진심을 알 수 있다.

12-15 땅에서 나온 짐승도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받은 모든 권세를 행한다. 그리고 땅과 (자연만물과) 땅에 사는 자들을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자처럼) 경배하게 한다.  땅에서 나온 짐승 스스로도 (마치 자신이 선지자 혹은 하늘의 심판자로 온 것 처럼)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큰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 짐승에 미혹되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자로 숭배하게 된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형상으로 만든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게 하였다. // 바울은 환난과 고난중에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가르친다. 죽게만하는 사탄의 권세는 (죽이기도 하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고난을 이겨낼 힘이요 믿음이다.

16 땅에서 나온 짐승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를 가진자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표를 짐승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의 수라고 한다. 요한은 총명한 자는  짐승의 이름의 수를 세어 보면 이 짐승이 누구를 뜻하는 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수는 사람의 수요 (신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 수는 ‘육백육십육’ 이라고 한다.

// 전통적으로 이름의 수가 ‘육백육십육’으로 떨어지는 이름은 로마 네로황제로부터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졌다고 하는 95,6년경에는 제2의 네로라고도 불리운 도미티안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정때다. 따라서 요한의 환상은 환상이라는 명목하에 선대와 당대의 박해를 은밀하게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네로와 도미티안을 은유적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는 불완전 할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육백육십육이다. (‘영생’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이 666이다.) 거짓과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나라가 천상의 나라, 곧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