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8 (1-6)

복이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

  1. 복이 있도다.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길로 행하는 자여.

  2. 시인은 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바로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다. 착취를 당하지도 착취를 하지도 않는 삶이 복되고 형통하다고 노래한다. // 시인은 대박을 복이라고 노래하지 않는다. 물론 궁핍도 복은 아니다. 그렇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잠언 기자는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잠 30:8)”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구하라고 하셨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얻는 삶이 복이다.
  3. 복되고 형통한 삶은 가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내와 자녀들을 결실한 포도나무와 어린 감람나무로 비유한다. 풍성함이다. 물질의 풍성함이 아닌 기쁨과 화평으로 가득하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누리는 복이다.
  5. 시인은 주님께서 완전한 복을 누리게 해주실 시온을 바라보며, 주님이 함께 하시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소망하며 주님의 길을 걸으라고 한다.
  6. 이 믿음의 유산을 자자손손 전하라고 노래한다. 이 믿음을 자자손손 전하는 것이 복이다. 평강이다.

// 이 복이 끊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4절 “주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가 오늘 시편의 주제다.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라고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라고 노래한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걸어가라고 노래한다. 가족만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로 온전한 임마누엘을 소망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당대만 아니라  자자손손 걸어가라고 노래한다. 복을 눈덩이처럼 굴리라고 한다. 내가 점점 크게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시편 127 (1-5)

임마누엘은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어져야 한다.

1~2 주님이 주재자가 아니시면 전도자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집을 짓는 것도 성을 지키는 것도 먹고마시는 일상의 수고도 헛되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길 원하신다. 잠은 쉼이다. 내 것을 내려 놓는 것이다. 참된 안식이다. // 사람의 꾀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은신대로 정직하게 살라고 하신다. 수진제가치국(평천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임마누엘이 곧 쉼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3~5 시인은 갑자기 자식이 많은 자는 복되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자식들을 주님이 주신 선물이요 주님이 주신 상이라고 노래한다. 특별히 많은 자녀들이 복이요, 자녀들로 말미암아 원수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 특별히 믿음의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이 많은 자는 복될 것이다. 이땅에서 원수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을뿐더러, 주님 앞에 섰을 때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받을 것이다.

// 시인이 노래하는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고 일상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지키고 가정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다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특별히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되었다.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지키고,  수고해서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는다면 헛되지 않을까? 따라서 많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많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시편 127편에서 두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은 헛되지 않으며, 이 헛되지 않음은 하나님께 많은 자녀를 받는 복으로 확신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믿음의 복은 후대로 이어져야 한다. 물론 육신의 자녀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자녀들일 것이다. 이땅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의 노래다.

유다서 1:17-25

17 사랑하는 자들아. 주재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과대비되는 신실한 자들이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도들이 가르쳐준 말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18 사도들은 이미 마지막 때에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며, 경건한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19 경건하지 않아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을 분열을 일으키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라고 선언한다. //  이런 자들은 당연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않은 곳에 거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육에 속하며 성령이 없는 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20/21사랑하는 자들에게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다고 당부한다. // 육에 속하며 성령이 없는 자들과 달리 성령과 사랑 안에 있는 자들은 분열을 조장하는 대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연합한다.

22/23 그리고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명한다. // 어떤 의심일까? 어떤 사람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명하며, 또 어떤 사람들의 죄된 행실은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명한다. // 어제 천사장이라도 함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보았다(9절). 하물며 우리랴.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다. 우리역시 주님의 용서가 필요한 자들이다. 그러면 당연히 죄는 미워하되 죄인에 대해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겨야 한다. 예수님은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 받을 것이요 라고 가르치신다.

24/25 시작 문안인사에서와 같이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분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히 있기를 축복하며 편지를 마친다. //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있는 나라, 곧 하나님나라다.

유다서 1:1-16

  1. 발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수신자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 유다는 그리스도 예수와는 주종관계를, 형 야보고와는 형제관계라고 밝힌다. 주님은 제자들을 친구로/가족으로 대해주시지만 제자들 입장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는 역시 주종관계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도 이것을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호하시는 (지켜주시는) 사랑이다.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는 문안인사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들은 형제들간에 화평(평강)을 나눠야 하고 이웃들을 사랑해야 한다.
  3. 유다는 사랑하는 수신자들에게 (이미 받은) 구원에 관하여 편지를 쓰려고 했었지만 믿음의 도, 곧 (앞으로 받을) 구원을 위해 힘써 싸우라는 권면의 편지를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고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힌다.
  4. 왜냐하면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이들은 심판이 정해진,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은 이미 심판을 받기로 기록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로 방탕한 생황을 하는 자들이다. 유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홀로 하나이신 ‘주재’라고 수식어를 단다. 주재는 다스리는 분, 주인 곧 왕을 뜻한다.
  5. 이 모든 것은 이미 주어진 가르침이다. 유다가 편지를 하는 것은 (이미 받은) 구원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들중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기 때문이다. // 출애굽해 내신 백성들을 멸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백성들을 멸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수 있을까?
  6.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겨야 할 천사들 중에서도 자기 처소, 자기 직분을 떠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까지 흑암에 영원히 결박하셨다고 한다.
  7. 소돔과 고모라를 음란하다가 영원한 불의 형별을 받은 예로 든다. 그러니 이런 사건들을 거울(교훈) 삼으라고 편지한다.
  8.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도 5-7절에 예를 든 경우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한다.
  9. 천사장 미가엘도 심판자의 자리 앉지 않고 주님을 심판자의 자리에 모시는데
  10. 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은 주님의 자리에 앉는다. 높아지고자 하는 본성, 곧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멸망당할 사람들이다.
  11. 유다는 이들에게 화있을 것이라고 저주한다. 이들이 가인과 발람의 길을 따르고 고라처럼 행하다가 멸망을 받았다고 분명히 한다.
  12. 문제는 이들이 교회안에 들어와 함께 애찬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저들의 신은 배다. 자신들의 몸만 챙긴다.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존재들이다. 예수님이 저주하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같이 뿌리채 말라버릴 나무같은 존재들이다.
  13. 저들은 두 마음을 품어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이요, 흑암가운데 영벌을 받을 존재들이다.
  14. 유다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언급한다. 주님께서 거룩한 자들과 함께 심판하러 임하신다.
  15. 주님은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경건하지 않는 모든 일에 대하여 경건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 유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 주님께서 거룩한 자들과 함께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신다. 결국 거룩은 경건이다.
  16. 경건하지 않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이다. 주재이신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다. 이들은 자기의 정욕을 따른다. 자기 자랑을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다.

// 오늘 본문은 주석 없이 읽어내가가 쉽기 않다. 특별히 천사장과 에녹이야기는 1세기 교회 성도들에게는 친숙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여간 성도들에게는 경건치 않은, 주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과의 싸움을 이겨야 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들에게 암과 같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요한삼서 1:9-15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

  1. 장로는 가이오에게 나그네된 형제를 홀대한 (나그네된 형제를 대접하라는 장로의 가르침을, 곧 장로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칭 으뜸인 자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을 언급한다. // 디오드레베를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라고 언급함에 주목하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시지 않으셨던가? 디오드레베는 결국 이방인들의 집권자처럼, 곧 세상 가치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장로는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을 잊지 않겠다고 적는다. 영접하지 않았고 악한 말로 장로와 형제들을 비방하고 오히려 나그네된 형제들을 맞아 들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다고 알린다. // 가이오와 대비되는 디오드레베
  3. (그래서) 가이오에게 악한 것, 곧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고, 선한 것, 곧 하나님의 가르침을 본받으라고 당부한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고 적는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예수님은 산위에서 가르치셨다. 결국 악을 행하는 자라는 것은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가 어찌 하나님을 뵐 것인가?
  4. ‘데메드리오’는 또 누구? 하여간 데메드리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리로부터 증거를 받았다고 편지한다. 요한도 함께 있는 형제들과 데메드리오를 (선을 행하는 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본받으라고 권면하는 듯. // 데메드리오는 가이오처럼 나그네된 형제들을 영접하고 돌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한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셨다.

13,14. 장로 요한은 쓸 것이 많지만 역시 대면하여 가르치고 배우기를 원한다.

  1.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요한은 많은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한다고 편지하며, 가이오에게도 친구들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고 부탁한다. // 평강. 하나님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