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1-7

열왕기하 4:1-7 (공동번역)

예언자 수련생의 부인 하나가 엘리사에게 호소하였다. “선생님의 제자인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이는 야훼를 경외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이에게 빚을 주었던 사람이 제 두 아들을 종으로 끌어가겠다고 합니다.”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울 수 있겠소? 집안에 남아 있는게 무엇이오? 말하시오.” 여인이 대답하였다.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이웃으로 다니면서 그릇을 빌려오시오. 빈 그릇을 되도록 많이 빌려다가 두 아들만 데리고 집에 들어가서 문으 잠그고, 기름을 그 모든 그릇에 차례차례로 가득히 따라 부으시오.”
여인은 엘리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서 두 아들만 데리고 집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두 아들이 가져다 주는 그릇에 가득가득 부었다. 그릇마다 기름을 다 채우고 나서 여인은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아들이 “그릇이 더 없습니다.” 하자, 기름이 나오기를 멈추었다. 여인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서 이 일을 보고하자 그는, “가서 기름을 팔아 그 돈으로 빚을 갚아서 두 아들이 종으로 끌려가지 않게 하시오. 남은 것을 가지고 모자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왕하 4:1-7
//왕들의 역사책에 왕과 관련 없는 엘리사의 이야기가 또 포함 된다. 선지자 생도의 남은 가족을 돌보는 엘리사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사람은 국가적 민족적 선지자의 역할만 감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귀퉁이에서 개인적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간다. //빚도 갚고 과부와 두 아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기름이 있어야 할까? 굉장히 많은 기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많은 그릇(용기나 항라리)을 어디서 빌려올 수 있었을까? 하여간 이웃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릇을 빌려주었다니 다행이다. 빚쟁이도 있지만 선한 이웃도 있다. //그러나 선지자 생도 과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그 사회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권면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실천은 뒤로 미룬 채, 세속에 물들지 않고자 각종 교회 프로그램만 양산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빈그릇을 빌려주는데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남는 그릇에 뭐라도 담아 거져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동네에 임대주택이 들어와도 환영하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와도 기뻐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성도라면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한다.

열왕기하 3:13-27

열왕기하 3:13-27 (공동번역)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예언자들에게나 가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그에게, “아니오. 야훼께서 우리 세 왕을 불러내시어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소.”하고 말하였다.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내가 모시는 만군의 야훼께서 살아 계시오. 어찌 내가 당신을 거들떠보기라도 하겠습니까마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서 청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수금 뜯는 사람을 불러주십시오.” 그래서 수금 뜯는 사람이 와서 수금을 뜯는 동안, 엘리사는 야훼의 힘에 사로잡혀 말씀을 전하였다. “야훼게서 말씀하십니다. ‘이 골짜기 군데 군데에 웅덩이를 파라.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람 불고 비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차서 너희와 너희 군인들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쯤은 야훼로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훼께서는 당신들의 손에 모압을 넘겨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요새화된 성읍, 주요 도시를 모두 쳐서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수목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샘구멍을 남김없이 틀어막고 옥토를 모조리 돌밭으로 만드십시오.”
다음날, 아침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자 에돔 쪽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그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한편 여러 나라의 왕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모압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징집 연령이 지난 사람은 모두 소집되어 국경에 배치되었다. 모압 군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햇살이 물 위에 퍼져 있어 물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피바다로구나!” 하고 모압 군은 소리쳤다. “왕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쳐죽인 게 틀림없다. 모압 장벼을아, 나가서 털자!”
그러나 이스라엘 진지에 이르자 이스라엘 군이 일어나서 반격하였다. 그들은 도망치는 모압 군을 뒤쫓아가며 쳐부수었다. 도시들을 짓부수고 군인들이 모두 달려들어 좋다는 밭마다 돌을 던져 돌밭을 만들고, 샘이라는 샘은 모두 틀어막고 훌륭한 나무를 모조리 찍어 넘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키르하레셋만 남기고 모든 곳이 돌무더기가 되었는데 그 곳마저 투석병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모압 왕은 이미 전세가 기운 것을 깨닫고는 군인 칠백 명을 이끌고 칼을 빼들고 포위망을 뚫어 아람 왕에게로 탈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일도 실패하였다. 모압 왕은 세자인 맏아들을 죽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 그러자 무서운 신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에 내려, 이스라엘 군은 진을 거두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왕하3:13-27
//엘리사는 모압원정은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시작한 전쟁이라고 반응한다. 이스라엘 왕이 물이 없어 모압군대의 밥이 되어버릴 상황이라고 읍소하자, 엘리사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대응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왕이 시작한 전쟁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는) 유다 왕 덕분에 하나님 앞에 다시 올려졌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손(힘)에 사로잡혀, 곧 성령에 붙들려 이스라엘 유다 에돔 연합군이 비가 오지 않아도 물을 해결할 수 있고, 또 전쟁에서도 모압 성읍들을 차지하고 수목을 쓰러뜨리고 샘구멍을 틀어막고 옥토를 돌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전쟁의 양상은 신탁대로 흘러갔다. 도시들을 짓부수고 밭을 돌밭으로 만들고 샘을 틀어막고 수목을 찍어 넘겼다. 신탁대로 성취되었다. 모압 왕은 길하레셋 성읍으로 피신했다가,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아람왕에게 도움을 구하려 탈출하려고 했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런데 이상한 반전이 일어났다. 궁지에 몰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리자 무서운 신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에 내렸다. 여기서 무선운 신은 누구인가? 모압의 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인신제사를 받는 그모스 신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모스 신에 의해 싸움을 그치고 돌아갔나? 열왕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패배라고 적지는 않았다. 다만 전쟁을 그치고 돌아간 것으로 기록한다. 무서운 신의 진노를 하나님의 진노로 이해하려는 해석들도 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시작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작해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할 때도 지나치면 과유불급이다. 좋은 게 최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열왕기하 3:1-12

열왕기하 3:1-12 (공동번역)

유다 왕 여호사밧 제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십이 년을 다스렸다. 그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지만 그의 부모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부왕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철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질렀던 것과 같은 죄에 매여 그것을 떨쳐버리지는 못하였다.
모압 왕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쳐왔었다. 그러다가 아합 왕이 죽자 모압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호람 왕은 즉각 사마리아를 떠나 이스라엘 군을 총동원하여 출정하는 한편,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전갈을 보냈다. “모압 왕이 나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모압을 치러 갈 터인데 당신도 함께 가서 싸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유다 왕이 대답하였다.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가 내 것 네 것 찾을 사이입니까? 내 군대 네 군대, 내 군마 네 군마 따질 사이입니까? 어느 길로 쳐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에돔 광야를 통과합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 유다 왕, 에동 왕이 함께 출정하였다. 돌아가는 길로 칠일 동안 행군하였는데 그만 군인들과 데리고 하는 짐승들이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스라엘 왕이 걱정을 하였다. “큰일 났다. 야훼께서 우리 세 왕을 끌어내셔서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구나.”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이렇게 물었다. “여기 야훼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야훼의 뜻을 알아보게 말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마침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에게서라면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하고 여호사밧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더불어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왕하3:1-12
//아합 왕이 죽자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모압이 반기를 들었다.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과 동맹하고 길을 내준 에돔 왕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러 원정을 떠났다. 세 왕의 연합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으로 남기 위한 처사였다. //이들의 원정은 물부족의 어려움을 만났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 원망했고 유다 왕은 그제서야 모압원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고자 했다. 에돔 왕은 /정/명(모압)/가/도/를 요구하는 이스라엘 왕에게 길을 내 준 것 뿐이었지 실제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엘리사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선지자라는 말에 유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두 왕과 더불어 엘리사를 찾아 내려갔다. 여전히 엘리야의 그늘에 있는 엘리사!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약육강식으로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는 전쟁이 약육강식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강대국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서로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쟁이라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술이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의 방해군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전쟁이 아니라 화평을 원하신다. 다만 전쟁을 통해 불순종의 백성들과 이방들을 벌하신다.

열왕기하 2:15-25

열왕기하 2:15-25 (공동번역)

예리고에서 온 예언자 수련생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엘리야의 영검이 엘리사에게 내렸구나.” 그러면서 엘리사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려 절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굳세고 용감한 장정이 오십명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스승 엘리야를 찾아보게 합시다. 어쩌면 야훼의 기운이 그를 들어다가 산 위에나 계곡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엘리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계속 졸라대는 바람에 얼굴을 붉히며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오십명을 보내어 사흘 동안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이 예리고에 머물러 있는 엘리사에게 돌아오자 그가 나무랐다. “내가 뭐라고 하였나? 갈 필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스승께서도 보시다시피 저희 성읍은 매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고장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사느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는 샘터에 가서 그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아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정하게 하리라, 이제 다시는 사람들이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물을 엘리사가 말한 대로 정하여져서 오늘에 이르렀다.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베델로 올라갔다. 그가 베델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대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사십이 명을 찢어 죽였다. 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가르멜 산으로 올라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왕하 2:15-25
//엘리야를 붙좇았던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을 보았다면 멀찍이 바라보던 선지자 수련생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보지 못했다. 엘리사는 보아서 소원대로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만 다른이들은 엘리사 혼자서 엘리야처럼 겉옷으로 물을 쳐서 마른길로 요단을 건너 오는 것만 보았지 엘리야의 승천을 보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은 엘리야의 시체를 찾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들은 말로만 엘리사의 승천을 인정했을 뿐, 마음으로는 승천 같은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여리고의 나쁜 물을 내는 우물을 정화한 엘리사.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소금 자체에 물을 정화시킬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을 정화시켰다. 물이 나빴던 것은 소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여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베델에서 나온 어린이가 아닌 청년들. 어린이들이 무리지어 엘리사를 모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이들로 번역된 단어에는 청년도 포함된다. 따라서 선지자 수련생과 같은 또래의 청년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베델의 우상을 섬기는 수련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엘리야처럼 승천하라고 놀렸던 모양이다. 대머리라고 불렀던 것도 아마도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 아닐까? 하여간 그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엘리야의 승천도 믿지 않았다. 엘리야에게 함부러 대했던 오십인부대원들이 죽었던 것처럼 엘리사에게 대적했던 그들은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하나님이 보내신 곰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엘리사는 갈멜산에 들렀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갈멜산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신) 여호와가 참 하나님(신)이심을 드러낸 장소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마리아에서 사역하기 위해서 엘리사의 갈멜산 방문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갈멜산 방문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 갑절을 받아 챙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열왕기하 2:1-14

열왕기하 2:1-14 (공동번역)

야훼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태워 하늘로 데려가실 때가 되어 엘리야가 길갈을 떠나는데, 엘리사가 따라 나섰다. 그러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네는 여기 남아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겠네.”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베델로 내려갔다. 베델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이 마중나왔다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모시는 스승은을 오늘 야훼께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좀 잠잠하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여기에 머물러 있게. 나는 야훼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예리고로 가야겠네.” 그러나 엘리사는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고 함께 예리고로 내려갔다. 예리고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모시는 스승을 오늘 야훼께서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좀 잠잠하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여기에 머물러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를 따라 요르단으로 가야겠네.” 그러나 그가 대답하였다. “결코 안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같이 길을 가는데, 예언자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야훼께서 이제 나를 데려가실 터인데,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말해 보게.” 엘리사가 청하였다.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엘리야가 말하였다. “자네는 아주 어려운 청을 하는군. 내가 떠나는 것을 자네가 본다면 소원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한다면 그렇게 안 될 것일세.”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길을 가는데, 나데없이 불말이 불수레를 끌고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는 떨어지면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자,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서서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아 강을 건너는데

왕하2:1-14
//엘리야의 승천. 엘리야의 승천에 대한 예고는 선지자 수련생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승천에 대한 믿음은 엘리사와 다른 선지자 수련생들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남아 있으라는 권고에도 승천할 엘리야를 붙좇았고 다른 선지자들은 그럴리가 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였지만 사마리아 왕에게 끊임없이 쫓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엘리사는 붙쫓았고, 나머지는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동행한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해주고 떠나면 좋겠냐고 물었고, 엘리사는 엘리야가 남길 영검 (영적유산)의 두 몫을 남겨달라고 말했다. 두 몫은 장자의 몫이다. 다시 말해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한 것이다. 엘리사는 사마리아 왕의 박해 가운데서도 선지자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갑절의 영감을 원했던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답을 했다. 만약 엘리사가 엘리야가 떠나는 것을 본다면 일종의 선지자의 장자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다. //이제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권세를 이어받았는지가 궁금하다.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찍어버리고 엘리야가 남기고 간 겉옷을 들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 요단강의 물을 쳤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엘리야의 겉옷에 무슨 효능이 있을리 만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찾았다. 그제서야 요단 강물이 갈라졌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권세는 이렇게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도 계승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명예직이나 세상 권위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리다.) 능력은 하나님을 찾을 때 드러난다. 선지자의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위기 때, 엘리사는 떠난 엘라야를 찾지 않았다. 엘리야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다. 영적 지도자 선배들은 언젠가 우리를 떠난다. 그래도 그들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다. 예수께서 떠나 가셨지만,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