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25-29

로마서 2:25-29 (공동번역)

25 세례는 성서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고 성서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이다. 26 그러므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성서의 말씀이 명하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오 세례받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보아주실 것이다. 27 실제로 세례를 받지 않고도 성서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세례를 받고 성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성서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을 심판할 것이다.  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겉모양만 갖추었다 해서 참 그리스도 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29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속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세례도 형식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받는 세례가 참 세례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칭찬을 받는다.

//공동번역 로마서 2장 25-29절의 할례를 세례로 율법을 성서의 말씀(가르침)으로 바꿔 읽어보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외적 세례를 받고 성서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의 세례를 받고 성서의 말씀(가르침)에 순종해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이며,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셨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안에서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라고 하신다. 말씀을 읽기만 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6:22-40

요한복음 6:22-40 (공동번역)

군중들은 제자들만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예수께서는 남은 것을 알고 있었다. 티베리아로부터 작은 배 몇척이 와서 예수를 찾았으나 예수와 제자들이 없자 배를 타고 예수를 찾아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를 건너 예수를 찾아내고 언제 오셨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기적의 뜻은 모르고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자신을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께 새로운 기적, 새로운 일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예수께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그들을 먹이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너희를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예수께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요6:22-40
//사람들은 양식 때문에 예수를 찾았다.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적 새로운 일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먹고 마시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교우들에게 편지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예수께서는 썪어 없어질 양식 대신 영원한 생명의 양식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신다. 영원한 양식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시다. 우리는 이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영원히 산다. 그러면 어떻게 이 양식을 먹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께서 제자들 안에 거하는 것을, 우리가 예수의 말씀에 거하고 (요8:31) 예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요15:7)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요,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실천해야) 피와 살이 된다. //영원한 생명이란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다. 세상의 금은 보화와 상관이 없다. 임마누엘이면 족하다. 그래야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무죄선고를 받는다. 임마누엘이 아니면 유죄다. 영벌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면 이땅에서도 이미 하나님나라의 백성,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산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말씀 안에 살고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사는 것이 믿음이다.

요한복음 6:41-59

요한복음 6:41-59 (공동번역)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하신 말씀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 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0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운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운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요6:41-59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 물리적으로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수 없다. 거듭남이 생식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듯,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도 생물학적 식음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밝히신다. 임마누엘이다. – 임마누엘이란 앞에서 반복해서 요8:31과 15:7을 통해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는 다는 것은 양식인 말씀을 행하는 (손종하는) 것이라고 적용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말씀을 붙들기만 했다. 먹지 (순종하지) 않았다. 양식이 풍부해도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하늘에서 내려 준 만나를 먹어도 육의 양식이기에 천수를 다하면 죽는다. 영의 양식도 먹어야 한다. 영의 양식을 섭취하는 방법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금씩 먹다보면, 곧 작은 일부터 순종하다보면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성장한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힘으로 사셨듯이 우리도 예수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나의 힘으로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16-21

요한복음 6:16-21 (공동번역)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예수께서는 혼자서 산으로 피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 가파르나움으로 배를 타고 가라고 먼저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밤늦도록 제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 십여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예수께서 ‘나다 두려워 할 것 없다’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배는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요6:16-21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오시는 기적을 기록한다. 요한은 제자들이 겁에 질린 이유를 거센 풍랑 때문이라고 기록하지는 않는다. 대신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겁에 질렸다고 기록한다. 특이하게 요한은 예수께서 거센 풍랑을 잠잠케 하셨다는 기록을 더하지 않는다. 외부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평안이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주님 없이 거센 풍랑 가운데 노저어 가는 배와 같다. 그런데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니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 20세기 마지막에 한국교회와 동행하셨던 주님이, 지금은 혼자 기도하러 가신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우리 앞에 드러내신다. 그 때 우리의 반응이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심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 인생 길이, 한국 교회의 운명이 주님이 태워 보내주신 배이니 그 길에 거센 풍랑이 있다고 해도 크게 겁먹을 일은 아닌게 맞다. 그러나 제자들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놀랐다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듯, 망해가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주님의 책망을 외면하고 겁에 질리기만 한다면 이 또한 우리가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가는 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에 우리가 놀랄서는 안 된다.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시는 기적은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요한복음 6:1-15

요한복음 6:1-15 (공동번역)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예수께서 필립보에게 군중들을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사올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실 일을 이미 마음속에 작정하셨지만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하셨다. 필립보는 군중들을 모두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다고 대답했다. 제자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개와 작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고 예수께 반문했다.
예수께서 군중을 앉히라고 분부하셨다. 그곳에는 남자만 약 오천명이나 되었다.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후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같이 하여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들이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보리빵 다섯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모두 열두 광주리에 가득찼다.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요6:1-15
//오병이어! 광야 사십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나님께는 오병이어는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 기적이다. 따라서 이것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추론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병이어를 왜 행하셨는지가 중요하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래서 보는 이로하여금 믿게 하도록 이적을 기록해 왔다. //이 관점에서 오병이어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제자들이 믿게 되었다. 가버나움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기적에서는 고관과 고관의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군중들이 예수를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라고 저마다 수군거렸지만 그들이 믿게 되었다는 표현이 없다. 군중들은 다만 예수를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들도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한다. 왜보다 어떻게 행하셨는지에 집착하면 믿음을 저버리기 쉽다. //그래도 오병이어 교훈을 살펴본다면…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나 거두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한 광주리씩 남겼다는 것이다. 엘리야를 공양한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병이 마르지 않은 것과 같이 제자들이 음식을 담아 나눠준 광주리가 비지 않고 오히려 채워졌다. 오병이어는 내 욕심을 위해, 혹은 내일을 위해 내 광주리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아무리 작아(적어)도 내 광주리를 타인을 위해 내놓고 비울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콩 반(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속담이 그리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