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0:1-11

이사야 50:1-11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야훼께서는 주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주의 백성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야훼께서 주의 백성을 판 일이 없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어미를 쫓아내는 잘못을 주께도 했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주를 버리는 잘못을 했다.) 주께서 찾아 오셔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 백성, 주께서 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백성이라 당장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호령 한마디로 바다와 강을 마르게 하실 수 있으시다. 창조주시다.
이런 주님께서 주의 종에게 주의 말씀을 익혀주신다. 고달픈 자를격려하는 다정할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주의 종의 귀에 말씀하시고 주의 종은 배우는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듣는다. 주 야훼께서 귀를 열어주시니 주의 종은 거역하지 않고 꽁무니 빼지도 않는다. 주께서 주의 종을 도와주시니 주의 종이 부끄러울 것이 없다. 주의 종은 수치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의 종의 죄 없음을 알아 주시고 옆에 계셔 주시니, 아무도 주의 종에게 시비를 걸 수 없다. 주님이 도와 주시니 주의 종이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떨어져 나간다.
야훼를 두려워한다면 주의 종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한 가닥 빛도 없는 암흑 속에 헤매는 자들은 야훼의 이름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야훼를 자기의 하느님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 대신 다른 신에게 향을 올리면, 향불처럼 스스로를 태워 소멸 될 것이다. 야훼의 형벌이다.

이사야 50:4-9
//주께서 주의 종에게 주의 말씀을 익혀주신다. ‘익혀주다’의 사전적 의미를 적용하면 ‘주께서 주의 종에게 주의 말씀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쌓도록 도와주거나 가르쳐 주신다’ 가 된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주의 말씀을 익혀주기 위해 우선 고달픈 자들에게 격려하는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주의 종이 만나는 대상이 주로 고달픈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의 말씀을 듣는 주의 종 자신이 고달픈 자일 수도 있다.) 한 번만 가르쳐 주시지 않고 아침마다, 곧 매일 가르쳐주신다. 익힐 때까지 주께서는 종의 귀에 친히 말씀해 주신다. 종이 듣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청종하게 하신다. //한편 주의 종은 배우는 자세로 주의 말씀을 듣는다. 청종한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꽁무니 빼지도 않는다. 곧 실천한다. 주께서 실천할 능력(도움)까지 주시는 것을 알기에 실패의 수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께서는 이런 주의 종을 옆에서 도우신다. 아무도 주의 종에게 시비를 걸 수 없다. ////이제 주의 종에 나를 넣어 적용하자. 내가 주의 말씀을 익히는 것은 평생의 과제다. 주께서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주의 말씀을 익혀주시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다. 주의 말씀을 고달픈 자들에게 격려하는 다정한 말로 가르쳐 주심도 굉장히 도전적이다. 고달픈 사람들 (나 자신을 포함하여), 특별히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님의 도우심의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꾸 해야 한다. 수치당할까봐 미뤄서는 안 된다. 주께서 내 입에 해야할 말을 넣어주심을 알아야 한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나를 그르다 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주님이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다. 개인적으로 선교지 자녀들은 차치하고라도 나의 육신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익혀주는 아비의 도리를 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옆에 있는 친구(이웃)에게 더 다정하게, 나 자신에게 더 상냥하게” 지난 주일 설교말씀에서

이사야 49:14-26

이사야 49:14-26

주의 종이라도 야훼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가 젖먹이 아이를 잊을 수 있을까? 만의 하나 엄마가 젖먹이를 잊는다 해도 주님께서는 주의 종을 잊지 않으신다.  주님는 주의 종을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보신다. 주께서 주의 종을 일으킬 자들을 모으시니 픽밥하던 자들은 달아난다. 주께서 불러 모으시는 자들은 주의 종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패물과 같다고 맹세로 말씀하신다. 폐허가 되었던 땅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박해하던 자들은 물러간다.  주의 종으로 모인 자들이 살기에 좁다고 자리를 넓혀달라고 떼쓰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누가 이렇게 하실까? 주 야훼께서 만국을 부르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만국이 모인다. 열방의 왕들이 주의 종(이스라엘)의 양아버지가 되고 열방의 공부들이 유모가 될 것이다. 그러면 야훼가 누구신 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에 대한 소망이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적장과 폭군에게서 구해 주실 분은 야훼뿐이시다. 박해하던 자들을 벌하시고 원수를 갚아 주시는, 주의 종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야훼 뿐이시다.

이사야 49:14-26

//본문의 화자는 주님인지 주의 종인지 확실하지 않다. 주의 종도 주의 백성과 혼용된다.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든 주의 종의 말이든 주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읽는다. 주님은 주의 종에게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베푸신다. //주께서는 만국에서 주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신다. 주의 종의 사명이기도 하다. 한편 주를 대적하는 자들(주의 자녀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물러나고 떠나가고 달아난다. 이 땅에서 주의 나라는 주의 자녀들(백성)만이 살기에도 비좁을 정도다. 그러니 주를 대적하는 자들은 주의 나라에 거할 곳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집(천국)에는 거할 곳이 많다. //주의 나라에는 만국 백성이 모인다. 혈통으로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다. 주님은 만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을 불러모으신다. 주의 종이 받은 사명이다. 구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 주의 나라, 곧 주님의 다스림과 대비되는 표현이 적장과 폭군이다. 하나님나라는 적장과 폭군으로부터 구원받은 나라다. 다시 말해 전쟁과 박해와 착취가 없는 나라다.

이사야 49:1-13

이사야 49:1-13

나(?)는 바닷가와 먼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야훼께서 자신을 이미 태중에서 부르시고 이름도 지어주셨다고 말한다. 자신의 입에 칼날 같은 말을 넣어주시고 그늘에 숨겨주시고 주님의 화살로 삼아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야훼께서 나를 ‘나의 종’이라 부르시고 나에게 야훼의 영광이 빛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공연히 힘만 빼는 헛수고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야훼께서는 나를 바로 알아주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품삯을 셈해주신다. 야훼께서는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힘이 되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고 이스라엘을 하느님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중에서 종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의 사명은 야곱/이스라엘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고 모으는데 그치지 않는다. 만국의 빛으로 세우신다. 땅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이 이르게 하라고 사명을 주신다. 야훼께서는 불가촉천민들, 지배자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종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느님이 그들을 택해 세워주셔서, 왕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예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야훼께서 이렇게 그들을 (주의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고 계약을 맺어 잃었던 유산을 되찾아 나라를 재건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어둠속에 갇힌 자들에게는 광명을 주신다. 풍성히 먹고 마시게 해주시며, 더위가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며, 샘으로 인도하신다. 첩첩산중 굽이 길을 큰 길로 만들어 주셔서 백성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하신다. 주의 백성이 사방 먼곳으로부터 올 것이다. (그러면)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워하며 야훼께서 고난받은 주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신다.

이사야 49:1-13
//주님께서 나의 종이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는 자가 누굴까? 일단 본문을 읽을 때는 저자(이사야)라고 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의 종으로 읽힐 수도 있고, 사도들 특별히 바울이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구원받은 성도 모두라고 적용할 수도 있겠다. 하여간 주님의 종은 긍휼히 여김을 받고, 받은 긍휼을 베푸는 자다. 주님의 종이 부름을 받은 이유도 뭇 백성을 긍휼히 여기기 위함이다. 이것이 땅 끝까지 전해야할 구원, 곧 복음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나라가 하나님나라다. (불가촉 천민이 어디 있을 수 있으며, 상전과 종으로 어찌 나뉘랴.) 높은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메워지듯 모두가 자유롭게 다니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나라다. //그러나 주의 종이라도 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을 돌아봐도 벌써 육학년인데 뭐 하나 이룬게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주의 종을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힘을 주시듯) 나에게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해 주시길 기대하며 산다. 그래서 남은 삶도 작은 자 한 명에게라도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주님께서 /이/미/ 만들어 주신 평탄한 길, 평화와 정의의 길을 따라 걷는다. 이 땅에서는 고난의 길이라도 주님의 위로와 사랑이 넘치는 길이다. 임마누엘을 누리는 길이다.

이사야 48:12-28

이사야 48:12-28

시작이요 마감이신 주님은 한결 같으신 분이시다. 이 땅의 기초를 놓으신 창조주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모두 나와서 들어야 한다. 이 주님이 이스라엘을 야곱이라 부르시며, 바빌론(갈대아)를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일을 미리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밖에 없으시다. 주님은 새로운 친구를 세우셔서 바빌론을 멸하실 것이다. 주님은 수군거리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현장에서 이 말씀을 듣고 야훼의 영에 감동되어 말씀을 전한다. 본문의 청자는 확실하지 않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야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나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네가 잘되도록 가르치는 스승이요 네가 걸어햐 할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다. 네가 만일 나의 명령을 마음에 두었으면, 너의 평화는 강물처럼 넘쳐 흐르고, 너의 정의는 바다 물결처럼 넘실 거렸으리라. 너의 자손은 모래 벌판과 같고 너의 자녀들은 모래알만큼 많아졌으리라. 네 이름이 내 앞에서 꺼지지도 없어지지도 아니하였으리라. 바빌론에서 빠져 나오너라 갈대아 사람들을 뿌리치로 도망쳐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선포하여라 세상 끝까지 퍼뜨려랴. 야훼께서 당신의 종 야곱을 구원하신다. 사람들은 그들 따라 사막을 지나가면서도 목마르지 않았다. 그가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셨다.]
야훼께서 불의한 자에게 ‘잘되려니 생각마라’ 하고 이르신다.

이사야 48:12-22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빌론을 심판할 도구로 사용하실(신) 고레스 왕을 친구라고 부르신다.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스승과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 친구, 스승, 인도자 모두 함께 하는 인격적 관계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평화와 정의가 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평화와 정의가 넘친다니 기쁜 소식이요, 복음이다. //주님은 한결 같으시다. 순종하는 (최소한 순종하려는) 자에게 평화와 정의를 베푸시고, 불순종 하는 (불의한) 자를 망하게 하신다. 주님이 베푸시는 복이 평화와 정의라는 것에 주목하자. 주님이 베푸시는 복은 결코 개인의 풍요가 아니다. 평화와 정의라는 복은 모두 관계적이며 공동체가 누리는 복이다. 누가 더 잘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사막을 지나면서도 공동체 모두가 목마르지 않는 것이 복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잘되려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형통하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들어야 한다. 불순종하면서 형통하려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주의 영에 감동되어 말씀을 깨닫고 순종해야 한다. ///주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이사야 48:1-11

이사야 48:1-11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유다의 혈통을 이어받고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야훼를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 부르지만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고 생활은 비뚤어져 있다고 책망하신다. 이스라엘 스스로는 거룩한 도시의 시민으로 자처하고 말로만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의지하면,역사를 주관하시고 말씀을 이루시는 하느님 앞에 여전히 고집불통으로 목이 곧고 청동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우상에게 돌리는 엉뚱한 소리를 못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일을 이루셨다. 이스라엘은 이 일의 증인이어야 했다.
이제 주님은 새로운 일을 이스라엘에게 들려주신다. ‘진작부터 이럴 줄 알았다’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비밀을 들려주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은 배신자인 이스라엘이지만, 주님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노여움을 참으셨고 분노를 억제하셨고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은처럼 불 속에서 녹여내고 고생의 도가니 속에서 단련시켰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것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변절자’ 라는 욕이 주님께 돌아오게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의 영광을 스스로 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사야 48:1-11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하고 생활은 비뚤어진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자손에게 새로운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성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고난과 시험으로도 연단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한 새 일은 무엇일까? (바벨론은 자비 없는 자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못해서 교만으로 망했다.) 주님의 새 일이란 불성실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을 가족으로, 자녀로 부르셔서 (구원하셔서) 공의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신다. 자비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새 일이요, 성도가 참여해야 할 새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