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에 올린 글
https://quietwaters.blog/2017/05/14/
성전이 성전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영원히…
5년전에 올린 글
https://quietwaters.blog/2017/05/14/
성전이 성전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영원히…
열왕기상 5:1-18
https://quietwaters.blog/2017/05/13/
5년전 글로 대신…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두로왕 히람의 사절단이 촉발하였다. 히람은 왜 평생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건설업자와 건축주의 관계였을까? (히람은 다윗성도 지었다. 삼하 5:11)
솔로몬은 히람왕에게 성전 건축을 (나중에 솔로몬궁까지) 의뢰한다. 그러니 히람 왕은 당대 그 지역 최고의 부자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건축물에 필요한 자재납품과 관리를 맡으려고 다윗와의 관계를 내세우며 사절단을 파견한 것이고 솔로몬은 그 미끼에 입질했다.
다윗성을 지어준 댓가로 두로왕 히람은 평화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이제 솔로몬으로부터는 물질적 보상도 받는다. 건축이 20년정도 이어졌으니 (성전 7년, 궁전 13년) 그 혜택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건설업자의 갑질에 놀아나진 않았겠지) 솔로몬이 히람 궁정에 약속한 년간 밀 이만 고르는 솔로몬의 하루 고운 밀가루 30고르와 굵은 밀가루 60 고르 (년간 32,850 고르)에는 못미치지만 2/3정도는 되니, 다윗왕국의 일종의 속국 두로왕에게는 엄청난 규모의 댓가였을 것이다. 적어도 20년간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솔로몬은 건축을 위해 역군 3만, 짐꾼 7만, 석공 8만, 그리고 관리자 3천3백명을 모았다. 강제노역에 동원한 것이다. 아도니람이 노동감독관이었는데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솔로몬 사후에 돌에 맞아 죽는다. (아도람 [12:18]과 동일인)
12절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솔로몬이 두로왕 히람과 “짝짜쿵”했다라고 사관은 기록하는데 나에게는 왜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음에도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과 죽이 맞았다.’ 로 읽히는지. 나의 솔로몬에 대한 밉상을 떨치기 쉽지 않다.
솔로몬는 자국 백성을 ‘종’ 이라고 생각하였고 노역의 삯도 히람 왕의 종들에게는 준다고 한다. 여기에 히람왕도 백성/위/에 (군림하는) 왕을 주셨다고 여호와를 찬양한다. (6,7절) 과연 입바른 찬양일까? (십중팔구 건축주에 대한 입에 발린 소리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의 시작에서 인간적인 냄새만 잔뜩 맡고 말았다. 내가 순수하지 않아서다. ㅠㅠ
열왕기상 4:20-34
솔로몬 왕국은 백성이 많아졌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이 잘 지냈다. 주변 국가들에게도 조공을 받았다. 사관은 솔로몬이 쓰는 하루 먹거리의 규모가 엄청났음을 기록한다. 주변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고 기록한다. 태평천하에 솔로몬은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이 사만칸이고 군마 만 이천필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군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는데 전차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솔로몬의 밥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군마들이 먹을 것도 풍족히 조달했다. 그리고 사관은 솔로몬의 지혜와 총명을 자랑한다. 솔로몬의 소문을 들은 모든 백성과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몰려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 솔로몬 왕국은 태평천하를 누린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에도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솔로몬의 풍요만 보인다. 29절에서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한 없는 지혜를 주셨다고 기록하지만, 30절부터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이름은 감춰지고 다시 솔로몬의 지혜를 찬양한다. 3장 28절에서 백성들이 솔로몬이 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솔로몬을 두려워했다고,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사관마저 솔로몬의 영화(국뽕)에 취한 것일까?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솔로몬 시대에 강제노역에 동원된 백성들, 솔로몬 왕국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자기 백성들을 쥐어짜야 했을 주변국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는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였는데, 백성을 기쁘게 하는 지혜였는데. 과유불급이랄까, 솔로몬은 어느새 세상의 모든 왕보다도 높아져 버렸다. 그렇다면 더 겸손해야 하는데 솔로몬은 날개를 달았다.
열왕기상 4:1-19
//솔로몬 치하의 지도자들의 명단이 열거 된다. 사관은 솔로몬이 귀양을 보낸 아비아달을 제사장 명단에 올렸다. 나단의 아들들이 행정장관과 개인 자문관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과 강제노역 책임자라는 직책이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누구누구의 아들들이라고 칭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음도 강조한다. 또 솔로몬은 열두 지파 각 지방에도 장관을 파견해 중앙집권을 확립했다. 장관들 중 솔로몬의 사위들이 보이고, 열두 지방에서 왕과 왕실의 먹거리를 책임졌다는 대목은 강제노역 책임자라는 직책과 함께 솔로몬의 다스림이 그렇게 의롭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잠언 29:2,7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펴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짓는다””착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돌보지만 나쁜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솔로몬 왕은 의인인가? 아니면 악인인가? 솔로몬 정도라 해도 불완전하기는 제국의 여느 왕들과 다르지 않다. 세상 누구에게 기대하겠는가? 우리에게 새로운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다.
//백성들은 솔로몬이 재판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왕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세상이다. 이유는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은 대표적인 이유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법위에 ‘돈’이다. 그러나 법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이다. 자꾸 ‘하나님의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구절을 ‘하나님 앞에서 공정하게 판단’한다로 읽힌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는자에게 주어진다. – 주인의 뜻에 순종 하는 종에게서 주인의 지혜를 보듯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지혜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