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3:1-15

열왕기상 3:1-15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내우를 해결한 솔로몬은 이제 외환을 대비한다. 그 첫번째로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내우외환을 해소?한 솔로몬은 왕궁과 성전과 성벽공사에 박차를 가한다. 특별히 성전 건축의 시급성에 대해 사관은 솔로몬이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동안 솔로몬이 드린 번제물만 천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천번의 번제를 채워서일까, 주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자신은 아직까지 나가고 들어오고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운을 뗀 뒤,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솔로몬이 구하는 것이 마음에 드셨다. 솔로몬이 장수(건강)이나, 재물이나, 원수갚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말을 듣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구했기 때문이다. 개인적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고 공익을 구한 솔로몬에게 주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부귀와 영화를 덤으로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주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장수의 복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솔로몬은 이 모든 꿈에서 깨어났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모든 신하에게 잔치도 베풀어 주었다.

//솔로몬이 천 번 이상의 번제를 드리고 나서야,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 속에 현현하셨다는 것은 평소 솔로몬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님의 말씀이)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제사는 내가 종이 되기 보다 내가 주인이 되서 드리는 예식이기 쉽상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핵심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백성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을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백성을 아는 것에 대한 바른 처신을 하지 못한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솔로몬에게서 본다. ㅠㅠ

https://quietwaters.blog/2017/05/09/

열왕기상 2:36-46

시므이를 죽임으로 숙청이 끝난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만 살고, 만약 예루살렘을 한발짝만 떠나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시므이는 세 해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잘? 지냈다. 그런데 시므이 종들 중 두 사람이 가드로 도망쳤다. 시므이는 가드에 있는 아기스로 가서 두 종을 찾아왔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할 것이라고 축복한다. 시므이를 죽임으로 솔로몬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사관은 마무리 한다.

//시므이가 가택연금/주거제한을 깬 것은 발이 달린 재산 때문이었다. 재산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가택연금/주거제한을 어기면 사형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돈이 일만 악의 근원이다. 생명과 돈을 맞바꾸는 사람은 없지만, 돈이라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종종있다. 맘몬이 사람을 홀리는 방법이다. //하나님나라에 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도 눈이 돌아갈 때가 있다. 그런데 눈만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발걸음을 뗀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의 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관은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다윗의 나라가 견고해졌다라고 평가하지 않고 그냥 솔로몬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평가한다. 솔로몬이 주님의 약속, 곧 주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지켜주신다는 약속의 결말을 의지하는 듯 보이지만,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으면 형통함은 복이 아니라 저주다. 임마누엘보다 더 형통함은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권력장악을 좋게만 볼 일이 아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8/

열왕기상 2:26-35

열왕기상 2:26-35

숙청! 그것도 피의 숙청이다. 솔로몬 집권 초기를 대표하는 단어다.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나돗으로 귀양 보내진 것을 제외하고는 요압도 피의숙청을 당한다. 물론 숙청은 꼼꼼하게 청소하다는 의미도 갖는다. 바르게 한다는 의미를 담기위해 숙정이라고도 한다. 숙청(肅淸)이든 숙정(肅正)이든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아야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솔로몬의 바람처럼 주님으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비와 긍휼이 그립다.
//솔로몬은 군부의 수장도 임명하고 제사장도 새로 임명했다. 명실상부 군부와 종교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세상으로 따지면 제왕의 지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자리가 솔로몬에게는 결국 독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7/

열왕기상 2:13-25

샬롬! 샬롬!
주님의 뜻이 있어서 다윗의 왕위가 솔로몬에게 계승되었다는 것을 아도니야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왜 주님의 뜻을 바꿀 계략을 꾸몄을까? 밧세바는 무슨 생각으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려고 했을까? 밧세바는 아도니아의 마음을 사는 것이 주님의 뜻(마음)을 사는 것보다 아들 솔로몬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을까?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솔로몬이 보좌에 앉아 첫번째 내린 명령이 제단 뿔을 잡은 아도니야를 살려주는 일이었는데, 얼나마 지났다고 솔로몬 왕은 형제 아도니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해야 했다. (세상 왕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뭐. 내가 성경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니. 솔로몬에게 질투하냐고. ㅎㅎ 질투할게 있어야지.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사건 후로 밧세바도 성경에서 자취를 감춘다.
사람들은 서로 샬롬을 말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샬롬에 가려진 악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악은 항상 사소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샬롬은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온다. 순종없는 샬롬은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6

열왕기상 2:1-12

열왕기상 2:1-12

모든 사람이 가는 길. 그러나 그 끝은 다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서는 다르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한다. 심판대 앞에서 자비와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길을 유언으로 남긴다. 굳세고 장부다운 길(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함)을 유언으로 남긴다. 그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께서 지시하는 길을 걷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는 안 된다.) 그래야 그 길의 끝이 형통하다. 다윗은 특별히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께 성실(신실)하면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 오를 사람이 솔로몬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유언으로 전한다.
다윗은 요압과 시므이가 백발이 성성하게 살다가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고 유언한다. 요압과 시므이는 자기 욕심을 위해 산 사람들의 전형이다. 반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다윗을 영접한 길르앗 사람 바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식구가 되게 하라고 유언한다. 바실래는 자비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누리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좋은 예다. 권선징악!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자비롭게 살아야 한다.)
다윗은 죽어 조상과 함께 다윗 성에 묻혔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사십년간 다스렸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를, 예루살렘에서 서른 세 해를 다스렸다. (예루살렘에서의 서른 세 해가 헤브론에서의 일곱 해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재위기간 40년이 목동시절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평생이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게 복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