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8-32

로마서 1:18-32

복음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복음의 반대 개념을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 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이라고 풀어낸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 생명이다’ 라는 진리를 선포하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이고, 삼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성도들 간의 연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연합을 깬다. 그것도 고의적으로 깬다. 하나님을 몰라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한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자.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면 진리와 경건함과 의로 반응하는 것이 마땅한데, 스스로 지혜있다며 하나님을 우상과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을 창조주로 경배하고 섬기것이 마땅한데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니,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성도가 연합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사형감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스스로를 옳다고 생각한다.
//복음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이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이요, 하나님과의 연합이 생명이며 영생이라는 진리다. 반대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다면 죽음(사망)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게한다. 복음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이 믿음이요 곧 생명(영생)이라는 선언이다. 말이 아니라,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임마누엘이 삶을 살아내는 것이 믿음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9/02/

로마서 1:1-17

로마서 1:1-17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15 새번역)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한다. 로마에 있는 불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16 새번역) //바울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담대히 말한다. 그리고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복음을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17 공동번역) 하고 풀어낸다. //복음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라’ 라는 구호처럼 단순하지 않다. 복음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올바를 관계를 가지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이야 말로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복음은 불신자에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간에도 서로서로 끊임없이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하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를 적었다. 생면부지의 그리스도인들과의 연합을 꿈꾸자!

https://quietwaters.blog/2018/09/01/

민수기 36

민수기 36

슬로보핫의 다섯 딸의 이름이 또 다시 언급된다. 슬로보핫이 딸들이 받은 땅은 결혼과 함께 남편에게 귀속되어 희년이 되어도 남편 지파의 유산에 포함 된다. 그러니 슬로보핫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경우 그 만큼의 땅을 손해?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므낫세 지파의 말이 옳다고 하셨다. 그래서 슬로보핫의 딸들에게 자기 조상의 지파 남자들에게만 시집갈 것을 명하셨다. 슬로보핫의 딸들은 순종하여 사촌들과 결혼했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살면 삶은 여자를 따라가게 되고, 땅은 남자를 따라가게 되는 모양이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방 여인들의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을 경계함이다.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자기 지파의 땅을 잃기 때문이다.
//슬로보핫의 딸들의 지혜와 순종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공동체를 위해 제한할 줄도 알았다. 성도는 기도할 특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아들이 불신 여자를 며느리 감으로 데려오면 어찌해야 할까? 딸이 불신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믿음 안에서 꾸리는 가정의 행복을 아무리 강조해 왔어도 막상 닥치면 우짤꼬. 지금까지의 가정교육이 헛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민수기 35:22-34

민수기 35:22-34

//도피성은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피해자의 친족이 함부로 보복살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살인으로 더럽혀진 땅은 살인자의 피 값으로만 깨끗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보복이라도 살인은 약속의 땅을 더럽히는 일이다.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고, 거룩한 땅인 이유는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러 계시기 때문인데(34절), 살인은, 땅에 피를 흘리는 일이요, 땅을 더럽히는 일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러운 곳에 머무시지 않는다. 따라서 주께서 도피성을 지정하신 것은 피흘림을 (불필요한 살인을) 가능한한 줄이기 위해 제정된 규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성도는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도피성인 셈이다. 도피성에 피했으면 (죄사함을 받았으면)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예수다. 예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 그리스도 예수 밖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08/24/

민수기 35:1-21

민수기 35:1-21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약속의 땅에서 땅을 분배 받지 못한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산으로 받은 땅에서 살 성읍과 주변의 목초지를 분배받게 하라고 하셨다. 곧 레위 자손은 이스라엘 각 지파 여러 성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총 마흔 여덟 성읍을 주라고 하셨다. 레위 자손이 분배 받은 성읍을 중심으로 성 밖 동서남북 이천자까지의 목초지도 레위 사람들에게 딸린 목초지라고 하셨다. 레위 자손이 배정 받은 성읍 중 여섯곳을 도피성으로 지정하라고 하셨다. 각 지파는 규모에 비례해서 레위 자손에게 성읍을 주어야 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여섯 도피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피할 성이다. 살인자가 재판을 받기 전에 사사로운 복수로 죽는 일이 없도록 도피성을 지정하셨다. 여섯 도피성을 요단 동쪽에 셋, 요단 서쪽 가나안 지역에 셋을 지정하셨다. 외국인이나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사는 본토인들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고의로 살인한 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친족이 보복살인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지고 있는 땅을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에게 줄 때에는, 각 지파들이 받은 몫의 비율대로 떼어 내도록 하여라. 많이 가진 지파에서는 많은 성읍을 떼어 내고, 적게 가진 지파에서는 적게 떼어 내어라. [민 35:8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을 기업에서 레위인들에게 거주할 성읍과 성읍 주변의 초장을 주라고 하셨다. 많이 받은 지파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지파는 적게 떼어서 주라는 공동체적 나눔을 명하셨다.  떼어 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ㅠㅠ 다. 받은 것을 비교해도 ㅠㅠ 제곱이다. 내 떡이 작아지고 남의 떡이 커보인다. 그런데 촛점을 ‘주는 것’에 맞추면 풍성해 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바울은 전한다. 주님이 언제 어디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말해주지는 않지만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 레위인들이 받은 주변 초장의 용도는 단순히 가축을 보관하는 장소라기보다는 레위인들도 기본적인 생업을 해야 함을 뜻하지 않을까? 회막을 나르며 제사일을 돕던 레위인들의 직무는 가나안에 정착하면 많이 줄어들 것이다. 회막을 운반하는 일에서 찬양대의 일로 바뀌기도 하고…

//도피성은 요단 동쪽에도 세곳이 지정된다. – 요단 동쪽이나 가나안 땅이나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일정비율의 레위 자손도 요단 동쪽 성읍들을 배정받았을 것이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본토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 도피성은 주님의 백성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다.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는 보복살인을 할 수 있다. – 악을 악으로 갚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에 두게 한다. 그리고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사람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님만 아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