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7:1-13

민수기 17:1-13

아론의 제사장 권위는 여전히 불안했었나보다.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불만을 없애주시겠다고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하셨다. 모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지파별로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지파별로 지도자의 이름을 지팡이에 적게 하셨다. 레위지파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고 직접 지명하셨다. 그리고 지팡이들을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다. 주님이 택한 바로 그 한사람의 지팡이에서만 움이 돋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이튿날 모세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레위 지파 아론의 이름이 적힌 지팡이에는 움이 돋았을 뿐 아니라 꽃이 피고 감복수아 열매까지 맺어있었다.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가져나왔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저마다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주님은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 놓아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도록 잘 간직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가문의 일로 주님을 원망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또다시 이 일로 원망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죽을 죄를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성의 뜻이 아닌듯 하다. 자신들이 성막에 가까이 가면 죽을 것인데, 이렇게 끝장이 나야 하는지 모세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론의 지팡이에 대한 이스라엘 자손의 반응은 생뚱맞다. 제사장 없이 주님의 성막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모두 죽을 터이니 자신들은 결국 망하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다시말해 제사장 없이 성막에 자기들 마음대로 가까이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망했다는 말이다. 성막에 나갈 수 있도록 아론 가문을 제사장으로 세워주셨건만,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성막에 나가겠다니, 이런 교만이 또 있을까? – 우리에게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로 증명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성도에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는데, 성도들이 ‘우리가 죽게 되었다. 망하게 되었다’ 하고 말하는 꼴이 된다. 예수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욕심은 결코 큰 믿음이 아니다. 교만이다. 정말로 망하는 길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아론이 지팡이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다. 십자가 위에 핀 부활이라는 꽃과 열매를 본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로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민수기 16:36-50

민수기 16:36-50

36-40 주님은 250명이 가져온 향로의 불을 쏟아버리고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을 씌우게 하셨다. 제사장 엘르아살이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대로 순종했다. 이로써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로 주 앞에 가까이 가서 분향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하도록 하신 것이다.
41-50 회중이 달아났다가 이튿날 다시 모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당신들이 주님의 백성을 죽였소” 하며 항거했다. 이번에도 회막에 주님의 영광이 구름이 덮이듯 나타났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으로 나아가자, 주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을 순식간에 없애 버리겠다고 선언하셨다. 둘은 다시 땅에 엎드렸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에게 이미 주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이 시작되었으니 향을 피워 회중에게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의 예식을 베풀라고 말했다. 아론은 모세의 말에 따랐다. 과연 백성 중에는 염병이 번지고 있었다. 아론이 백성에게 속죄의 예식을 베풀자 재앙이 그쳤다. 이 염병으로 만사천칠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 재앙이 그치자 아론은 모세에게 돌아왔다.

//순식간에와 더디 사이 – 출애굽기 34:6에서 주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민수기 14:18에서 모세는 이 약속을 근거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회중을 닥박(순식간에)에 죽이시려는 주님께 중보했었다. 오늘 본문에서 회중은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항거했다. 이번에도 주님은 21절에 이어 45절에서 순식간에 이들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순식간은 찰라를 뜻하기도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기도 하다. 곧 잠시 버려두신다는 뜻이다. 정말로 순식간에 벌하신다면, 주님 앞에 살아남을 자가 어디 있으랴. 주님은 잠시/잠깐 벌하신다. 잠시 잠깐의 사이에 생사가 구분된다. 죽음의 염병은 이미 퍼지지 시작했다. 아마 불순종을 주도한 곳(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생사의 사이에 모세가 아론을 중보자로 세웠다. 아론의 중보는 잠깐 늦었다. 그래서 만오천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사람 중보자의 한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온전한 중보자 예수가 계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이라는 (하나님나라의) 시공에 계시니, 이 땅에서의 찰라의 사이에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수 있다.
//모세는 제사장이 해야 하는 중보의 역할을 아론에게서 가로채지 않았다. 정치적? 지도자였던 모세는 종교적? 지도자로 세워진 아론을 도왔다. 250개의 놋향로를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을 씌운 엘르아살과 속죄의 향을 피워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린 아론을 통해, 주님께서 세운 제사장직이 아론 가문에 든든히 자리잡을 것이다. – 나는 아무리 낮아져도 괜찮다. 주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순종하면 된다. 분명하지 않다면 낮아지는 쪽으로 일하리라. 주 안의 형제가 흥하는 것이 주님이 흥하는 것이요, 나는 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민수기 16:16-35

민수기 16:16-35

날이 밝았다. 고라와 일당 250명과 아론은 각자의 향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와, 거기에 불을 피우고, 향을 넣고 회막 앞에 섰다. 고라는 온 회중을 회막 앞으로모아 대결을 지켜보게 하였다. 온 회중에게 영광으로 나타나신 주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회중을 순식간에 없애 버리겠으니 그 둘은 회중과 떨어지라고 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땅에 엎드려서 주님께 죄는 한 사람만 지었는데 어찌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냐고 여쭈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가까이에서 떠나라고 말해주라고 하셨다. 모세의 경고로 회중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주변에서 물러섰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주변에는 가족만 남았다. 모세는 이들이 보통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죽는다면 주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 그들이 주님을 업신여겨서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의 말이 마치자,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켰다. 그들과 합세한 모든 사람도 삼켰다. (주님은) 이렇게 그들을 회중 가운데서 사라지게 하셨다. 회중은 땅이 자신들도 삼킬까봐 달아났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이백오십 명을 불살라 버렸다.

//고라 일당은 온 회중의 응원을 얻어내려고 했다. 온 회중으로 주님께 대적하도록 선동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은 온 회중을 잠잠케 했다. 주님의 영광을 봤으니 온 회중은 죽은 목숨이었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또다시 땅에 엎드려 회중을 위해 중보했다. 주님은 중보를 받아들여, 주동자들만 벌하셨다. 주동자들 편에 선 자들을 함께 벌하셨다. 물론 하나님께 대적한 자들에게 내려진 벌은 죽음이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모세는 땅에 엎드렸다. 물론 주님 앞에 엎드린 것이지만, 사람 앞에도 자신을 낮춘 것이다. 맞서지 않았다. 오직 주께서 말씀을 전달하실 때만 회중 앞에 당당했다. 어제 루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백성에게 왕으로 군림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을 때, 모세는 온유함을 버리고 열 받아 발끈해서, 저들의 제물을 받지 말아 달라고 주님께 간구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온 회중의 흥망 문제에 직면하자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하기 위해 낮아졌다. 낮아져야 중보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다.

////낮아지기. 나는 잘 못했다. 우리 아이들 한테도 밀리면 큰 소리부터 냈었으니…ㅠㅠ 땅에 엎드리는 것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주님 앞에 엎드리듯이…

민수기 16:1-15

민수기 16:1-15

레위지파,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가 모세를 거역하여 반기를 들었다.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 르우벤의 손자 벨렛의 아들 온도 고라의 반역에 합세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이백오십 명의 남자들이 반역에 동참했다. 이백오십명은 회중의 대표로 총회에서 뽑힌 유명인사들이 었다. 곧 온 이스라엘이 반역에 가담했다.
반역자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데, 모세와 아론이이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졌다.
모세는 반역자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주님께서 누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며, 누가 거룩하며,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실 것이라고 온 회중에게 대답했다. 내일 아침에 주님께서 친히 택하신 그 사람만을 주님께 가까이 나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는 고라가 이끄는 이스라엘 대표들에게 향로를 가지고 나아와, 향로에 불을 담고 향을 피우면, 내일 아침 주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로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칭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하는 레위 자손을 향해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책망했다.
모세는 고라를 불러,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구별하셔서 주님께 가까이 나와 성막일을 하게 하셨고, 온 회중을 돌보게 하셨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제사장직까지 넘보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떼를 지어 제사장직을 요구하는 것은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이 세우신 대제사장 아론에게 불평하는 것은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는 엘리압의 아들 나단과 아비람을 불렀으나 그들은 모세 앞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사람을 모세에게 보내)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이 광야에 죽이려고 하느냐고 따졌다. 모세에게 당신이 군주라도 되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모세야말로 이스라엘 자손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한 실패한 지도자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모세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모세는 몹시 화가 났다. 주님께 저들의 제물을 받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은 백성에게 군림하지 않았다고 (주님께 드리기 위해 백성에게서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않았다고), 따라서 백성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반의 핵심세력은 늘 가까이 있다. 12장에서 모세의 권위에 미리암과 아론이 도전할 줄 누가 알았으랴. 이제는 모세와 아론 권위에 같은 레위 자손인 고라가 도전한다. 성막 일을 하면서도 제사장이 될 수 없는 고라는 육신의 장자 지위를 빼앗긴 르우벤의 후손을 먼저 귀합하고, 온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들을 전원 합세시켰다. 다시 말해 온 이스라엘 회중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자기들도 주님과 대화하는 존재라고 말하며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면, 고라 일당은 자신들 가운데도 주님이 거하신다며, 자신들도 거룩한 존재들이라고 말하며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주님께서는 낮은 자와 함께 하시고 작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심을.
//모세는 또 납작 엎드렸다. 또 낮아졌다. 회중 앞에,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 기도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자,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내일이면 주님께서 확인시켜 주실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모세는 고라 자손의 욕심을 꼬집는다.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제사장직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냐고. 모세는 고라 일당에게 성막 일로 주님께 가까이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제사장직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주님께 대적하는 것이라고 일깨웠다.
//모세는 르우벤 지파 엘리압의 두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불렀다. 그들은 오지 않고 사람을 보내,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백성을 이끌지 못한 실패한 지도자요, 왕처럼 군다고 비아냥 거렸다. 이에 세상에서 온유하다던 모세도 뿔이 났다. 온 백성을 위해 중보했던 그가, 이번에는 주님께 그들의 제사를 받지 말아달라고 간구한다. 한마디로 주님께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음. 모세는 중보자로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백성에게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아는 온전한 중보자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훨 씬 크신 온전하신 중보자 예수가 있다.

////거룩함은 높아지거나 큰 자가 되는 조건이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낮아지고 섬기는 자의 증거다.

민수기 15:22-41

민수기 15:22-41

(22-31) //실수냐 고의냐 – ‘죄’라는 단어는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빗나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양궁에서 화살을 과녁 가운데를 맞히면 10점이다. 가운데서 벗어날 수록 점수는 차감된다. 과녁을 벗어나지 않는 한 점수가 주어진다. 올림픽 양궁에서 사선에 선 선수는 과녁 중앙을 노린다. 그러나 모든 화살이 10점은 아니다. 9점도 8점도 있고 더러는 6점도 심지어 과녁에서 빗나가 0점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관중의 입장에서 선수가 일부러 0점을 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의 영향이든 관중의 소음이든, 선수가 극도로 긴장을 해서든 실력이 아니라 안타까운 실수라고 생각한다. 부지중에 저지른 죄는 이런 실수다. 과녁의 정중앙을 노렸지만 맞히지 못한 경우다. 이런 죄는 속죄를 통해 용서받는다. 그러나 고의로 지은 죄는 다르다. 성도가 지은 죄는 용서받고, 불신자가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녁을 놓친 죄는 용서받고, 잘못된 과녁을 향해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하나님나라의 원리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데는 10점도 있고 심지어 빵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스리면 10점을 맞혀도 다른 사람의 과녁을 맞추었기 때문에 빵점처리된다. (올림픽 사격 결승에서도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2004년 아테네에서도 2020년 도쿄에서도. 물론 그들은 고의로 다른 사람의 과녁을 맞춘 것은 아닐 것이다.)
(32-36)//안식일에 일을 한 사람에 대한 판례다. 안식일 준수는 십계명에 포함된 명령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안식일에 나무를 한 사람에 대해 즉결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모세도 이 사건의 결정을 주님께 묻고 판결했다. 실수일까 고의일까를 따졌던 것일까? 그만큼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판결은 신중해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실수로 죄를 지었는지, 고의로 죄를 범했는지 알 수 없다. 죄를 지은 당사자와 주님만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죄)를 판단할 때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라도 주님께 묻고 결정했다. 우리 중에 죄 없는 자가 누구랴. 우리는 자비와 긍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자비와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7-41) //옷에 술을 다는 것은 주의 말씀(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주의 명령을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하거나, 우리 눈에 좋은 대로 따라하게 된다. 방탕하게 된다. 성경을 들고 다닌들 뭘하랴! 주의 말씀은 부적과 다르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실천을 해야 주님 앞에 거룩하게 된다고 분명히 선언한다(40절). 우리의 하나님, 곧 주님의 말씀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30/
////히브리어 단어는 참 재미있다. 고의라는 히브리 단어는 19, 20, 21 에서 세번 반복된 제사 방법, ‘거제’와 연관되어 있다.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20] 에서 ‘들어 드리다’와 ‘고의’는 같은 단어라고 한다. ‘고의범죄’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드는 (팔뚝질 하는 욕) 비방이 되니 ‘거제’ 즉 ‘하늘을 향해 헌물을 드리는 제사’의 반대행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