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7:14-20

https://quietwaters.blog/2018/06/02

신명기 17:14-20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새워라.

네 형제 중에서 세워라.

병마를 많이 두지 말아라.

아내를 많이 두지 말아라.

은금을 많이 쌓지 말아라.

율법 필사본을 만들어 평생 읽어,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율법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왕은 교만하지 않고 주 하나님의 명령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왕위가 장구할 것이다.

왕 제도를 (이렇게나마)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방 왕은 근본적으로 교만한 지위다. 군림하는 왕이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택하신 (위에 기름부으실 더 큰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를 세워야 하고 타국인이 아닌 형제 중에서 (그래야 사람 위에 교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세우라고 한다. 군림하는 왕은 군사력(병마)과 외교력(많은 아내)과 경제력(은금)으로 평가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솔로몬은 이 기준에 따르면 실패의 대명사다.)

육적 이스라엘은 이 명령에 실패했다.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이 명령을 만족시키셨다. 예수님을 한 분 왕으로 모셔야 할 이유다.

우리에 대한 주 하나님의 기준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신다. 형제 위에 교만/군림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겸손한 자는 주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한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길이다.

신명기 16:18-17:13

신명기 16:18-17:13

18-20 모든 성읍에 재판관과 지도자를 두어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 외모를 보고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재판관은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 뇌물을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오직 정의를 따라 재판해야 한다. 그래야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

21-22 하나님의 제단 옆에, 어떤 신상을 만들어 세워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17:1 흠이 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서는 안 된다. 주 하나님이 역겨워 하신다.

2-7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눈에 거술리는 악한 일을 하여 주님과 언약을 깨뜨리는 사람들, 다른 신들을 찾아가서 섬기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잘 조사햇, 이런 역겨운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런 사람들은 성문 바깥으로 끌어내어 돌로쳐서 죽여야 한다. 사형을 언도할 때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할 수 없으며 두 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 돌로쳐서 죽일 때 증이이 먼저쳐야하고 그 다음에 모든 백성이 뒤따라서 쳐야 한다. 그런 악한 일은 주의 백성 가운데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8-13 공동체 가운데 다툼이 생겼을때 판결이 어려우면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그 사건을 가지로 올라가서 제사장과 재판관에게 재판을 요청하면, 그들이 판결을 내려 줄 것이다. 주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재판관이 내려 준 판결에 복종해야 한다. 재판관의 판결을 지켜 죄로나 우로나 벗어나서는 안 된다. 주님을 섬기는 재판관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도 죽여야 한다. 그렇게 악한 일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 주의 백성은 주님을 섬기는 재판관의 결과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정의롭게 재판하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정의롭게 재판을 해야 한다. 사람을 외모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뇌물을 받아서 거짓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정의롭지 않으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없다. 곧 정의가 무너진 곳은 더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정의롭지 않은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섬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우상뿐만 아니라 재물도 하나님 옆에 둘 수 없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부숴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다. 정의롭지 않던 때를 기억하고, 정의로울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수 밖에 없다. //흠있는 제물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역겨워하신다.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신들을 찾아 섬기는 것이다. 이렇게 언약을 깨뜨리면 사형이다. 물론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다. //주님이 정하신 재판관의 판결을 따르지 않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시 사형에 해당된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 있는 악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악을 제거하는 일은 각자의 소견에 따라서는 안 된다. 증인이든 재판관이든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01

신명기 16:1-17

신명기 16:1-17

1- 8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주님이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고 하신다. 유월절에 이어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출애굽을 평생토록 기억하라고 하신다. 무교절의 마지막 날을 유월절 안식일로 지키라고 하신다.

9-12  칠칠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이레에 주님이 주신 복을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로 칠칠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칠칠절도 주님이 택하신  곳에서 지켜야 한다. 칠칠절에는 온 가족과 종들과 성 안에 같이 사는 레위 사람들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13-15 추수 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초막절도 온 가족과 종들과 레위 사람들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주님이 택하신 곳에서 지켜야 한다. 초막절은 주님이 주신 복으로 즐거워 하는 날이다.

16-17 모든 남자는 한해에 세번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주님이 택하신 곳에서 주님을 뵈어야 한다. 빈손으로 가지 말고 받은 복에 따라서 그 힘대로 예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무교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켜라. 출애굽의 하나님을 평생 기억하고,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서다. 특별히 약속의 땅은 각자도생이 아닌 공동체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공동체다. 그래서 3대 절기는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지켜야 한다. 온 가족과, 종들과, 레위 사람들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는 절기가 되어야 한다. 신앙은 각자도생이 아니다. 각자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게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15장의 면제 규정에 이어서 약속의 땅에서의 삶은 ‘언약 공동체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 구원의 부르심을 받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단독자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삶이다. 예수 안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 계급장을 떼고 모이는 잔치다. 먼저된 자가 (큰 자) 나중되고, 나중된  (작은) 자가 먼저되는 잔치다. 다시말해 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즐거워 하는 잔치에는 누가 높고 누가 낮음이 없는 잔치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한다면 당연하다. //신명기에서 이어지는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하는 규례와 명령은 (지독하리 만큼) 가난한 자들을  (고아와 과부와 노비와 객) 포함시킨다. 그들을 보호하고 잔치자리에  초청한다. 그리고 함께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한다. 성도가 계급화 되어가는 교회, 지역에서 고립되는 교회가 묵상하고 배워야 할 명령이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형식에 갇혀서 정작 모든 사람과 함께 온전히 즐거워 하라는 사랑의 실천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면 좋겠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31

신명기 15:1-23

신명기 15:1-23

1-3 매 칠년 끝에는 빚을 면제해 주어라.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해 주어라.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동족에게 꾸어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한다. 

4-6 공동체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서 주의 백성이 복을 받는 길이다. 이것이 주님의 명한 명령이기 때문에 이 모든 명령을 잘 지키면 약속하신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다른 민족에게 돈을 꾸어 주기는 하지만 꾸지는 않겠되는, 다른 민족을 다스리지만 다스림을 받지는 않을 복이다.

7-11 가난한 동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인색하지 말아라. 오히려 손을 펴서 가난한 동족이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빚을 면제해 주는 일곱째 해가 가깝나고 인색한 마음으로 가난한 동족을 냉대하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 주님께 호소하면 냉대한 사람은 죄인이 될 것이다. 꾸어줄 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주님이 여러분과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을 도와 주어라. 돕고 또 도와도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12-15 일곱째 해에는 종으로 팔려 온 동족 히브리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라. 자유를 줄 때 빈손으로 내보내지 말아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대로 넉넉하게 주어서 내보내야 한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이 구속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라. 주님의 명령이다.

16-18 종이 떠나가지를 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종으로 삼아도 된다. 그러나 종에게 자유를 주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라. 일곱째 해에 내보내야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19-23 소나 양의 처음 난 수컷을 구별하여 주님께 바쳐야 한다. 주님께 드려진 소나 양은 가족들과 함께 주님이 택하신 곳에서 먹어야 한다. 첫태생 소나 양에 흠이 있으면 주님께 바치지 못한다. 대신 노루나 사슴을 잡아 먹을 수 있다. 다만 피는 먹지 말아야 한다.

//삼년마다 공공 십일조에 이어 칠년마다 빚을 면제해 주고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라는 명령도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법이다. 주의 백성이 공동체 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곳에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신다. //주목해야 할 표현은 주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도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 백성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목적이 가난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면 그만 두어야 할 명령이 아니라 영원히 순종해야 할 명령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위에 돌봐야 할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워진 짐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요 감사의 제목이다. //예수께서도 향유 옥합 사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가 작은 자, 낮은 자에게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다스림을 상기시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는 사람에게도 복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복

https://quietwaters.blog/2018/05/30

신명기 14:22-29

신명기 14:22-29

해마다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십일조도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드려야 하고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다. 만약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 너무 멀고 어려워서 가지고 갈 수 없으면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주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라고 하신다.십일조를 드리고 십일조를 주님 앞에서 먹을 때, 성 안에 사는 레위 사람들을 (레위 사람들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삼년마다 소출의 십일조를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와 과부들이 배불리 먹게 해야 한다. 그러면 주 하나님이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십일조는 결국 경건한 삶의 표징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는 삶의 증거가 십일조다. 내가 속한 교회와 이웃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건강한 성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한다. 이것이 경건이다. –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르쳤다. 세속은 자기 보신을 위해 먹고 마시지만, 성도들은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먹고 마셔야 한다. 교회가 십일조를 교회 권속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 하는데 사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끼리끼리가 아니라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삼년에 한번씩 – 자주) 십일조를 사용하는 지도 반성해야 한다. 십일조는 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의 통로다. 무슨 복! 교회가 번성하고, 성도가 교회 (하나님나라)에서 끊어지지 않고 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자손손 이어져 가는 임마누엘이다. 이외 다른 복은 임마누엘의 부산물이 거나 가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29/

#십일조 #경건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