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1-17

신명기 11:1-17

1-7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이 맡기신 일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켜라. 주님의 위엄과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주님이 하신 일을 친히 목도한 부모세대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열표징을 일으키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고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키신 하나님, 광야에서 하신 일들, 이스라엘 자손들이 친히 목도한 일들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8-17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힘을 얻고 주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실제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약속의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약속의 땅은 이집트와는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 발로 물을 댔다면, 약속의 땅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댄다. 곧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일년내내 돌보시는 땅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착실히 듣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명령한다. 주님을 온전히 섬기면 주님이 철을 따라 비를 내려주셔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 들에는 가축들이 먹을 풀이 자라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배불리 먹고 살 것이다.  유혹을 받아 마음이 변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그 신들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다른 신들을 섬기면 주님은 진노하시고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밭에서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순식간에 망할 것이다.

//모세는 주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는 명령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권면과 동일시 한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없으며, 하나님 사랑하는데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없다. //믿음과 행위도 마찬가지다. 행위가 없는데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의 행위가 불완전 할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행위가 필요없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믿음이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신 대부분의 경우, 이때 믿음은 ‘믿는다’라는 고백이 아니라, 믿는 바에 대한 행위, 믿음을 따르는 행위, 곧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였다. ‘이신득의’의 믿음은 단회성이 아님이 분명하다. 상태다. //도처에 유혹이 넘치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착실히 듣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하신다. 예수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수 밖에 없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해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23

신명기 10:1-22

신명기 10:1-22

주님은 모세에게 돌판 둘을 다듬어서 산으로 가지고 올라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무궤를 만들어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보관하라고 하셨다. 모세는 아카시아나무로 궤를 만들고 놓고,두 돌판을 만들어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주님은 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고, 모세는 산을 내려와 돌판을 궤 안에 보관했다. 그 돌판은 지금도 궤 안에 들어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라에 이르렀을 때 아론이 죽어 그곳에 장사했다. 아론을 이어서 엘르아살이 제사장이 되었다. 주님은 레위 지파에게 주님의 언약궤를 메는 임무를 주시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레위사람들이 땅의 유산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유산이 되어주셨다.)

모세는 사십주야 산에 머물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호소했고 주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로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라고 명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주님을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며, 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조상에게만 마음을 쏟아 사랑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을 택하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교훈한다. 세상에 신(하나님)들이 많지만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시라고 선포한다. 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마땅히 경외해야 하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먹이고 입히시는 분이시라고 가르친다. 이스라엘 자손도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음을 상기시킨다. 반복해서 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주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하라고 말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라고, 하나님만 경외하라고 가르친다. 야곱이 일흔명의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오 내려갔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러니 거듭 언약을 지키라고 하신다.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지키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22

신명기 9:13-29

신명기 9:13-29

주님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스라엘 자손은 정말 고집 센 백성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이라도 멸하려고 하셨다. 대신 모세를 통하여 많은 민족을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두 손에 언약판을 들고 급히 산을 내려왔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모세는 두 돌판을 내 던져 깨뜨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사십주야를 금식하며 주님께 이스라엘 자손을 멸하지 말라고 중보했다. 주님은 모세의 애원을 들어주셨다. 주님은 아론에게 책임을 지우시고 죽이려고 하셨지만 모세는 아론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을 불에 넣어 녹여서 산산이 부수고 먼지 같은 가루로 만들어 개울물에 띄워 보내야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거역한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핫다아와에서도 주님을 노엽게 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낼때도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거역하기만 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모세는 사십주야를 주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자손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고집과 약과 죄를 보지 말아달라고 간구했다. 모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주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소유라는 언약에 근거해서 중보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21

//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급히 두 돌판을 깨뜨렸다. (쉽게 말하면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 전에 계약서를 찢어버린 행동이다.) 그리고 모세는 위약금을 물지 않게 해달라고 주 하나님께 계약 무효를 간청해야 했다. 사십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계약을 철회해 달라고 졸랐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언약을) 어겼으니 죄값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죄값은, 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들어주셨다. 주 하나님은 적어도 아론 한 명에게는 책임을 물으려고 하셨지만 이마저도 모세의 중보로 철회하셨다. (백성들이 아직 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모세를 대리자로 세웠기에 봐주셨을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모세는 불순종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워버렸다. 티끌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도, 계약일자를 바꿨는데도)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이어졌다. 이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항상 주 하나님을 거역해 왔다’고 지적한다. 모세는 가네스 바네아에서의 거역도 거론한다. 물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판결)도 죽음(진멸) 이었으나 모세의 사십주야 식음전폐의 중보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에 신실하신 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상속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 주님은 의인 한명이라도 있으면 공동체도 용서하신다. 광야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가 있었다면, 새 이스라엘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시고 여전히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 이 새 언약의 계약서는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다. 오직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만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여전히 연약하다.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언약의 백성,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한다.  

신명기 9:1-12

신명기 9:1-12

1-3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모세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곧 요단 강을 건너가서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민족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큰 성읍들을 차지할 것이다. 감히 맞설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낙 자손처럼 힘이 세고 키가 큰 민족을 쫓아낼 것이다. 주님이 앞서 건너가셔서 그들을 멸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이 청소하시면 쓰레기통만 비우면 된다. 성도도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다.)
4-5 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착하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그 땅에 있는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마음이 착하고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땅의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의 말씀을 이루셨다.
6-12 삼세번.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착해서가 아니라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고집이 센 백성이라고 하신다. 이집트에서 나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주님을 거역하여 주님을 노엽게 하던 백성이었다. 모세가 호렙 산에 올라 사십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았을 때,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타락하여 주님이 명한 길에서 이미 떠났으며, 우상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때 주님은 그들을 멸하려고 하셨다.

//삼세번이면 더이상 따질 수 없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착하지 않다고 탕탕탕 선언하셨다. 그것도 세번 연이어서. //그런데도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땅의 악한 사람들을 내쫓으시기 위해서며, 무엇보다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의 성취라고 분명히 밝히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착하지 않음을, 고집센 백성이라는 것을 광야 내내 주님을 거역하고 노엽게 한 사건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십계명을 받기 전부터 호렙/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기 전이니,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법/십계명 이전에 언약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전이다.) 그러니 법은 언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언약이 율법보다 먼저다. 타락과 불순종은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주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거룩하게 살아야할 이유다. 성도라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착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다.

신명기 8:11-20

신명기 8:11-20

모세는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과 주 하나님을 잊는 일을 동일시 한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잠언에서 지적한 대로 배불리 먹고 좋은 집에 살고 부유해져서, 혹시라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경고한다. 주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주셨다. 광야에서 먹이시고 마시우고 입히셨다. 주님은 광야에서, 주의 백성이 주님을 기억하도록 단련시키셨다. 그런데도 부유하게 된 것이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모세는 말한다. 광야를 지나오면서도 재산을 모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을 상기시킨다. 그런데도 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 신들을 섬기며 절한다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의 백성 앞에서 멸망시킨 다른 민족들과 똑같이 망하게 하실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배불리먹고 좋은 집에 살고 부유해지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교만은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한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잠언 마지막, 가난하게도 부하지도 않게 해달라는 아굴의 기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하나님을 모르거나 차별이 없다. 하나님 없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길은 멸망으로 끝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을 피할 수 없다. //구원이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삶이다. 구원의 복은 먹고 마시고 입는데만 있지 않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건강하고 큰 집 사고 재물이 풍부해 지는 것은 세상이 구하는 복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은 의와 희락과 화평이 풍부해지는 복을 누리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