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2-28 읽기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주님 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를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알라고 부탁한다. 가르치는 자들을 사랑으로 극진히 존경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권면한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권고한다.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라고 명령한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권면한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하십시오.
바울 일행은 평화의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를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데살로니가 성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없이 완전하게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 성도를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니 바울 일행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바울 일행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문안해 달라고 부탁한다. 바울은 주님을 힘입어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이 편지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십시오”(25)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을 위해 구구절절 당부하고 권면하고 부탁하고 명령하고 기도한 바울 일행은 정작 자신들의 기도 제목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냥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고 한 마디 적고 만다. 기도제목이 따로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를 향한 당부/권면/명령/기도가 자신들의 기도제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 성도를 위한 기도 어디에도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간구는 없다. 사역의 성공을 바라는 내용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교제,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 교제, 성도가 이웃과 심지어 모든 사람과의 (원수도 포함된다) 교제를 위해 기도한다. 성도가 구해야 하는 좋은 것, 좋은 일이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주의 말씀과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7/07/

데살로니가전서 4:13-5:11 읽기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죽음의 문제에 대해 교훈한다. 성도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 성도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성도는 죽어도 예수 안에서 잠드는 것이며,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다.
주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약속)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보다, 이미 예수 안에 잠든 사람들이 먼저 부활한다. 주님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성도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 이렇게 성도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부활의 소망으로 서로 위로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까? 바울 일행은 재림의 시기를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고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는 것은 성도라면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때, 해산의 진통이 갑자기 오는 것 같이, 멸망이 불신자에게 닥칠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도는 어둠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날이 도둑과 같이 덮치지 않을 것이다. 성도는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다. 성도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취한 사람들도 밤에 취한다. 성도는 낮에 속한 사람들이다.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써야 한다. 성도는 진노함에 이르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본받아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워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7/06/

//성도는 깨어 있든지 자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이미 죽은 성도도, 아직 살아 있는 성도도 주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임마누엘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죽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고, 살아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천국이다. 성도의 죽음이 슬픔이 아닌 이유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그날을 소망하며, 성도는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워야 한다. 나 혼자만의 천국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4:1-12 읽기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주 예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지 부탁하며 권면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가 자신들에게서 배운 대로 잘 하고 있으니 계속 그렇 하라고 당부한다. 바울 일행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내린 지시들을 알고 있는 대로 행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성결하게 되는 것이니 음행을 멀리하라고 명령한다.
성도는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색욕에 빠져 탈선을 하거나 교우를 해치면 안 된다. 바울 일행이 이미 가르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벌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더러움에 빠져 살아도 된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다행히 데살로니가 성도는 교우도 사랑하고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도 사랑을 실행하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바울 일행이 명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명한다. 바깥 사람에 대하여는 품위를 지키고,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복음에 합당하게 처신하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결하며 음행을 멀리하라고 강조한다. //성도는 교우와 믿음의 가족들을 사랑해야 한다.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성도는 바깥 사람, 곧 불신 세상에 대하여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한다.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라. 잠잠하라고 하신다. 오늘 한국교회는 음행을 멀리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불신 세상에 대하여 품위있게 지내지 못한다. 십자가를 버려두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말과 혀로만 떠든다. 마치 이것이 행함과 진실함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품위를 보지 못한다. 세상에 대하여 교회의 복을 빼앗아 가는 원수 대하듯 하면 안 된다. 주 예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지 데살로니가 성도를 향한 바울 일행의 당부와 권면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우리도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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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17-3:13 읽기

바울 일행은 지금 데살로니가를 떠나 있다. 그러나 얼굴(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아니다. 얼굴을 마주하며 교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를 찾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바울 일행의 희망/기쁨/면류관은 바로 데살로니가 성도이다. 데살로니가 성도야말로 바울 일행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 모두다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하고 아테네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디모데를 대표로 보냈다.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를 굳건하게 하고 믿음을 격려하여 아무도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했다. 바울 일행도 환난을 당했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자신들이 당한 환난을 데살로니가 성도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한 대로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성도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바울 일행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디모데를 보냈었다.

이제 디모데가 바울 일행에게 돌아와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역시 바울 일행을 간절히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도 가지고 왔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의 믿음의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모든 곤경과 환난 가운데 위로를 받았다. 데살로니가 성도가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그것이 곧 바울 일행이 생명력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의 소식으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바울 일행의 길을 친히 열어주셔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가기를 바란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가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데살로니가 성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넘치는 사랑으로)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의 마음을 굳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티없이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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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의 신앙성장은 곧 나의 신앙성장이기도 하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말씀을 배우는 자가 함께 성장한다. //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라고 편지한다. 완전한 성전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의 한 부분이 굳게 서지 못하면 다른 지체도 굳게 서지 못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를 바라는 바울 일행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모든 궁핍과 환난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으로 위로 받은 바울 일행. 가르치는 자들은 가르침을 받는 자의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가르치는 자들에게도 궁핍과 환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각양각색의) 궁핍과 환난 가운데 처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을 우리도 누리게 하소서. //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 일행의 기도를 요약한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를 굳건히 하고 사랑의 수고를 넘치게 하고 소망의 인내를 끝까지 경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교제하기를 기도한다. 한 마음이 한 몸, 곧 하나님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다.

데살로니가전서 2:1-16 읽기

1-12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를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이 알고 있다고 입을 연다. 바울 일행은 빌리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전했다. 바울 일행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권면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 검정받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전했다. 사람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대신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복음을 전했다.

바울 일행은 항상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증인이라고 담대히 말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물론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서 유순하게 처신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주었고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 줄 생각이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자신들의 수고와 고생을 상기시킨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바울 일행은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도록 처신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도 하나님께서도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바울 일행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데살로니가 성도 하나하나를 대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13-16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이유를, 데살로니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인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사람이다. 유대에 있는 성도가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데살로니가 성도도 데살로니가 사람에게서 똑같은 고난을 받았다.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성도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대자가 되었다. 유대 사람은 바울 일행이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한다.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7/02/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도이나 사도의 권위를 주장하는 대신 온유한 어머니가 자녀을 양육하듯 일했다고 강조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해서 단순히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한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신들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듯이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한 수고와 애씀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편지한다.

////바울은 자신들의 사역을 첫번재로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었다’라고 평가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증거, 그 증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도 증인이 되신다고, 하나님도 알고계신다고 편지한다. 바울은 두번째로 자신들의 사역을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는 권면과 위로와 경계’ 였다고 평가한다.  바울은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과 위로와 경계로 가르쳤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친히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게) 행하게 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요약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일행의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계로 세워졌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일행이 떠난 후에도) 그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계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