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3-4:11

마태복음 3:13-4:11

예수께서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러 나오셨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선생이신 예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그냥 자기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요한은 허락하고 예수께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자기 위에 내리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는 소리가 났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일 동안 금식하셨다. 시장하신 예수께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보라고 유혹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고 대답하였다.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 성으로 데리고 갔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라고 유혹했다. 악마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 상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유혹했다. 예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 말아라” 하는 성경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다. 악마는 이번에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예수를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자신에게 문안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뱃 속의 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노래했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요한이 마리아의 복중에 있던 예수와 영적으로 조우한 증거다. 이후 예루살렘 근처 산골에서 자란 요한과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가 어린 시절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태중에서 예수를 알아 보았던 요한이 성장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은 낮다. 이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요한에게 예수는 ‘주’요 ‘선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세례를 베풀 자격이 없다고 했다. 예수께서 이런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요한의 세례가 사람의 권위에서 나온 세례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세례라는 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권위로 요한이 주는 세례를 받는 것이 성자로 이땅에 오신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옳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요한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해서 예수께 세례를 베푸셨다. //세례 받으시고 성령충만하신 예수께서 하신 첫번째 일이 금식이었다. 성령충만하고 금식하신 예수께도 악마의 유혹은 있었다. 성령충만하다고 유혹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성경말씀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다. 악마는 성령으로 충만한 (말씀으로 충만한) 예수를 유혹할 수 없자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성도에게도 성령충만이 곧 평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혹을 당한다. 따라서 성령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둘 때, 악마는 떠나가고 보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19/

마태복음 3:1-12

마태복음 3:1-12

세례자 요한이 등장한다. 세례자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했다. 마태는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하여라.'” 라는 예언자 이사야 말한 ‘소리’라고 적용한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와 천국을 선포하자 온 유대와 요단강 부근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며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다.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칠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나?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수 있다.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았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에서 키질을 하여 알곡을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하고 말했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18/

//세례자 요한. 마태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던 말리기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로 적용한다.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시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마태가 세례자 요한을 이사야 선지가 말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적용한 것은, 그가 구약에 대해 탁월한 이해가 있음을 보여준다.성경의 이야기를 아는 것과 그것을 적용하는 것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 말씀을 펴면 성령의 도움심을 구해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요한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에 대한 독설에서 회개(세례)가 곧 하나님나라(구원)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회개의 열매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의 열매다. 세례는 진노를 피하기 위한 면벌부도, 세례만 받으면 더이상 죄없다 하시는 면죄부도 아니다. 천국비자를 받고서도 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 비자가 무슨 소용인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곧 유대사회의 기득권자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다. [피조물(만들어진 것)은 창조주의 속성을 이어받지 않는다. 창조주가 낳아야 창조주의 속성을 이어받는다.] 사도 요한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메시아가 알곡과 쭉쩡이를 구분할 날이 온다.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알곡이다.

마태복음 2:13-23

마태복음 2:13-23

박사들이 돌아갔다.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가서 천사가 다시 말해 줄 때까지 피신하라고 알렸다. 요셉은 즉시 순종했다.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렀다. (마태는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토를 달았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화가나서, 박사들이 말한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살 아래의 사내 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마태는 이것도 예레미야의 말씀의 성취라고 기록한다.)
헤롯이 죽은 뒤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알렸다. 요셉은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에 요셉은 돌아오기를 주저했으나, 꿈에 천사의 지시를 받고 갈리리 지방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마태는 이것도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적는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 이집트로의 피난, 헤롯이 아이들을 죽인 사건, 나사렛에 정착, 이 모든 것이 말씀의 성취라고 주석한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은 예수를 꼭 꼬집어 예언하신 말씀이 아니었는데도, 마태가 이렇게 주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말씀의 성취라고 토를 안 달아도 복음이 훼손될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마태의 복음을 듣는 유대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극적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오늘 새롭게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 요셉. 요셉의 의로움은 천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순종보다 의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고자 하여도 두려움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주저하게 하는 문제들도 해결해 주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순종하려는 의지다. 시인의 노래처럼 사방을 둘러봐도, 산들을 봐도 어디에 우리의 도움이 있겠는가? 우리의 도움은 오직 주 하나님에게 있다. //주의 말씀이 희귀한 때라 주님은 주의 사자의 현몽을 통해 의로운 사람 요셉과 교제하신다. 꿈 꿈 꿈! 의로운 사람 요셉과 마리아 가정은 순종한다.꿈으로 지시함을 받았다고 순종하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헤롯과 달리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부부였다. 주님은 이런 의로운 부부와 꿈으로 교제 하셨다. 이들에게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과의 교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주님은 우리와 말씀으로 교제하신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는 하루 하루를 살게하소서.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17/

마태복음 2:1-12

마태복음 2:1-12

예수께서 헤롯 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 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있느냐고 찾았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경배하러 왔다고 말했다. 헤롯 왕도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헤롯은 대제사장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에 태어나실지 물었다. 그들은 왕에게 예언자들의 기록을 보면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다.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묻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자신에게 알려주면 자기도 그에게 가서 경배하겠다고 말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서 아이가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박사들은 별이 인도에 무척 기뻐하며 그집에 들어갔다. 그들은 아기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했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하나님은 꿈에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했고, 박사들은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16/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전우주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지 않고 땅만 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건이다. 동방박사들처럼 전문적으로 하늘의 별을 연구하거나, 베들레헴 성 밖에서 양떼를 지키며 밤새 하늘의 별을 세던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 소식이 전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지 말씀을 보고 금방 알아냈던 종교지도자들도 하늘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하여 달도 없는 밤 같이 깜깜했었다. 오늘날에는 일식과 월식도, 밤하늘의 신비한 현상을 뉴스에서 미리 예고해 주지만, 실제로 밤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은 적다. 이렇듯 땅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없다. 하늘을 봐야 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펴고 예수라는 별을 바라보자. 우리도 별을 따라가자.

마태복음 1:18-25

마태복음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약혼자인 마리아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예수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이 예언서 말씀의 성취라고 적는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마리아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났고, 요셉은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의로움이란 무엇인가? 위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옆으로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접한 요셉이 처한 두려움은, 천사를 통해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받은 두려움보다 더 컸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에게도 천사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요셉도 태몽을 꾼 것이다. 이렇게 파경을 맞을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는 구원받게 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결국 구원의 열매는 임마누엘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임마누엘을 누린 사람들이다. ////주님의 놀라운 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물론 결혼후에도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나누며 사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의롭다는 것은 말씀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평생 의로우셨다. 임마누엘이 그 원천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