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6:8-23 읽기

8-9a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에게 전해야 할 내용이다.

9b-13 번제를 드리는 규례에 (제사장이 해야 할 일과 복장에) 대해 말씀하신다. 반복해서 제단 위의 불을 계속 타고 있어야 하며 꺼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번제물 위에다 화목제물의 기름기를 불살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14-18 제사장들이 곡식제물을 드리는 규례에 대해 말씀하신다. 소제는 일부만 화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의 몫이다. 단 누룩 없이 구워야 하고 거룩한 곳 (회막을 친 뜰 안) 에서 먹어야 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를(음식을) 거룩한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제사장 가문의 남자들도 제물에서 남은 것을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의 소유인 제물을 만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1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0-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기름부어 세워진다.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을 때, 주께 각자 제물을 바쳐야 한다. 소제를 아침과 저녁에 반씩 나눠 바친다. 아론의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이 규례를 따라 주께 제사들 드려야 한다. 일반 소제와 달리, 제사장 임직에 바치는 곡식제물은 모두 불태워야 한다. 모두 불태워 남겨 먹을 것이 없어야 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제사장의 역할과 복장에 대해 말씀하신다. 제사장은 제단 위의 불을 꺼뜨려서는 안 된다. 제단 위의 불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올리는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번제든 소제든 화목제든 화제로 올려드린다. 계시록에서 향연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 제사장이 제단 위 불을 꺼뜨려서는 안 되듯, 성도도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소제의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서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성도도 하나님의 밥상에 참여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밥상은 누룩, 곧 세상적 복이 없는 순전히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뜻한다. 대표적인 것이 말씀묵상과 기도다. 이보다 더 큰 복, 특권은 없다.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을 때 각자 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때 드리는 소제는 한 줌으로 전체를 대표하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반반씩 남김 없이 모두 다 드려야 한다. 성도는 남은 평생 삶의 (하루의) 전부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 새벽기도와 저녁묵상이 신앙생활을 대표할 수 없다. 일상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어야 하고 일상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레위기 5:14-6:7 읽기

1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5-16 주께 거룩한 제물을 바치는데, 거룩한 제물을 소홀히 다룰 경우 보상해야 한다. 속건제물은 거룩한 제물을 소홀히 다룬데 대한 보상(벌금)으로 드리는 제물이다. 제사장이 속건제물을 받고, 속죄제사를 드려야 제물을 드린 사람이 용서를 받는다. 속건제물을 돈으로  받을 때 내는 벌금은 모세가 정하도록 하셨다.

17-19 주님의 명령 가운데 (하나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허물이 있다. 따라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속건제물로 숫양 한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하는데, 벌금으로 낼 경우 모세가 정하도록 하셨다. 잘못한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속건제사이다. 

6: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7 주께 성실하지 못한 것을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담보물을 속인 것, 도둑질, 강도질, 습득한 물건을 감춘 것, 거짓증언, 기타 사람이 하면 죄가 되는 일이라고 정의하신다. 곧 이웃에 대해 잘못한 것이 곧 주께 성실하지 못한 죄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일로 유죄를 받으면 잘못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 배상은 모자람이 없이 다 갚아야 하고, 배상은 물어 내는 물건값에 물건값의 1/5을 더해야 한다. 배상은 속건제물을 바치는 날에 해야 한다. 속건제물은 흠없는 숫양 한마리이나 벌금으로 낼 경우 그 값을 모세가 정하게 하셨다. 제사장이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

//속죄는 잘못 자체 대한 벌금이라면 속건은 잘못의 결과에 댓가를 치르는 것이다. 잘못이 피해를 준 경우 용서는 속죄제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에 대해 책임도 져야한다. 그런데 순서가 속건이 먼저고 속죄가 나중이다. 다시 말해 잘못을 했으면,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먼저 치른 후에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선 주님께 드리는 제물을 소홀히 다룬 경우에 속건제물을 드려야 했다. 속건제물을 제사장 몫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보아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에 대한 일종의 인건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제사장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속건제는 주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도 바쳐야 하고, 주님께 불성실 했을 때도 드려야 한다. 그런데 주께 성실하지 못한 일들을 읽어보면 이웃에게 잘못한 것들이다. 주님은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곧 주님께 불성실한 것이라고 지적하신다. 하나님 사랑이 곧 이웃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다. 구분할 수 없고, 구분해서도 안된다.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잘못을 하면 댓가를 치르고 용서받아야 한다. 죄를 깨달았을 때, 무슨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제사장이 알아서 준비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도는 제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속건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우선은 피해 당사자에게 합당한 (플러스 알파) 보상을 해야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 이미 용서받은 자로 살아가야 한다.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레위기 5:1-13 읽기

1 (속죄해야 할 죄란 무엇인가?) 자기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사실대로 증언하지 않으면 죄다.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3 부정한 것에 (짐승의 주검이든, 자기 몸에 있는 부정한 것이든)  닿았을 경우, 모르고 닿았다 해도 죄다. 깨닫는 대로 속죄해야 한다.

4 생각없이 맹세한 경우 죄다. 뒤늦게 알고 죄를 깨달으면 속죄해야 한다.

5-6 위의 잘못을 한 사람은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고백하고, 죄에 대한 보상으로 주께 속건제물을 바쳐야 한다. 암양 혹은 암염소 한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쳐서, 제사장이 그의 죄를 속하여 주면 (속죄제사를 드려주면) 그는 용서받는다.

7-10 속죄제물을 양 한 마리도 바칠 형편이 못될 때는 산비둘기 두마리, 혹은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를 주께 제물로 바쳐야 한다.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속죄제사를 먼저 드리고 번제를 드려 제사장이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용서 받는다.

11-13 속죄제물을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조차 바칠 형편이 못될 때는 속죄제물로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바친다. 속죄제물에는 기름을 섞거나 향을 얹지 않는다. 제사장은 제물에서 한 줌을 덜어 화제로 바쳐 그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용서를 받는다. 제물의 나머지는 제사자의 몫이 된다.

//속죄해야 할 죄에 대해 알려주신다. 주님은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뻔한 죄 대신에 1)거짓증언, 2)부정함, 3)행하지 않은 맹세 를 속죄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이 세가지는 어쩌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죄다. 물론 발각되면 댓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발각되기 전에 스스로 죄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한마디로 주의 백성은 남이 보든 안 보든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속죄제물은 형편에 따라 드리면 된다. 가난해서 암양이나 암염소를 드릴 형편이 못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그럴 형편도 못되면 고운 밀가루를 드리면 된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죄를 깨달으면 죄를 고백하고 속죄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죄의 자백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는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어둠에 행해서는 안된다.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귐이 없다는 증거다. 하나님과 사귐이 없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다. 성도의 속죄는 제물로 속죄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죄를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백하고 (요일1) 우리 몸을 (일상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롬12) 드려야 한다. 이것이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다.

레위기 4:22-35 읽기

22-26 최고 통치자가 실수로 주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겨, 그 허물로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속죄제물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알려주신다. 제물은 흠없는 숫염소 한마리다. 제사장이 속죄제를 통해 통치자가 (족장이) 지은 죄를 속하여 주면, 그 통치자는 용서를 받는다.

27-31 일반 평민이 실수로 주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명한 것 가운데 하나라도 어겨서 그 허물로 벌을 받게 되었을 때 바쳐야 할 속죄제물과 정차를 알려주신다. 제물은 흠없는 암염소 한마리다. 제사장이 속죄제를 통해 제물을 가져온 평민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는 용서를 받는다.

32-35 평민이 속죄제물로 암염소 대신 흠없는 암양을 가져와도 된다.

//최고통치자(새번역), 곧 족장(개역개정)이 죄를 범하든, 일반 백성(평민)이 죄를 범하든, 제사장이 속죄제사를 드려야 그 사람은 용서받는다. 지위고하에 차이가 없다. 물론 통치자는 흠없는 숫염소를 드려야 하고, 평민은 암염소나 암양을 드려야 했다. 오늘날 살아있는 암염소가 숫염소보다 비쌀 것 같은데, 그래도 덩치는 (제물적 가치는, 고깃값은) 숫염소가 크지 않을까 한다. //앞선 제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제물에 안수하고 제물을 잡아야 하고 제물을 다듬어야 한다. 다시말해 제물을 바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성도도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 //속죄제사는 지은 죄를 깨닫는 대로 바로 드려야 한다. 미루면 안 된다. 그런데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차이가 있다. 개역개정은 다른 사람이 족장이나 평민의 죄를 깨우쳐주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번역하고, 새번역은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는 대로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번역한다. 곧 스스로든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았든 지은 죄는 깨닫는 대로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공동체적인 죄든 개인적인 죄든 구분이 없다. ////통치자의 덕목 중 하나는 자신의 지은 죄를 지적받았을 때 겸손히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선 이런 덕목을 가진 분이 있는지? 

레위기 4:1-21 읽기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주님께 들은 말씀이라고 적지 않는다. 주어가 ‘주님’이다.) 사람이 실수로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겼을 경우 어떻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3-12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은 경우, 그 벌이 백성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흠없는 수송아지를 어떻게 속죄제물로 바쳐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13-21 이스라엘 회중이 실수로 죄를 지은 경우, 비록 깨닫지 못한 죄를 지었을 경우,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겨서 벌을 받게 된 경우, 죄를 그들 스스로가 깨닫는 대로 수송아지를 속죄제물을 바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속죄의 제사는 회중 (이스라엘 공동체) 뿐만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들도 당연히 드려야 한다. 특별히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백성의 허물이 된다. 그 벌이 백성(회중)에게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제사장이 먼저 용서 받아야 된다. 제사장의 속죄가 먼저 언급된 이유다. 속죄의 제사는 주님의 명령을 하나라도 어겨 벌을 받게 된 경우 뿐만 아니라, 회중이 함께 책임져야 할 잘못을 저지른 경우, 깨닫지 못한 죄를 지었거나 실수로 죄를 지은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곧 모든 잘못은 속죄받아야 한다. //속죄제물은 수송아지다. 그런데 제사장들의 속죄제물은 ‘흠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라고 기록하는데, 회중의 속죄제물에는 ‘흠없는’이 빠졌다. 이것이 의미있는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흠없는 제물이 어디 있으랴? 완전무결한 수송아지 제물은 없다. 그런데 흠없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속죄하기 위해  몸소 제물이 되어주셨다. 즉 성도는 (죄없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드린) 완전무결한 속죄제물로 속죄함을 받았다. //이스라엘 회중은 죄를 깨닫는 대로 속죄제물을 바쳐야 했다. 성도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한마디로 공동체의 죄를 깨닫는 대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성도는 속죄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지하여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곧 죄를 깨닫는 것이다. 회개는 이미 속죄받은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