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3:1-17 읽기

화목제의 제물에 관하여 가르쳐 주신다. 

1-6 화목제물로 소를 드릴 때는 수컷 암컷 구분 없이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 예물의 (제물을 예물이라고 표현한다.)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려야 한다. 화목제 제물의 일부는 화제로 드린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려진다.

7-11 화목제물로 양으로 드릴 경우에도 수컷 암컷 구분 없이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 주로 어린 양을 예물로 드렸나보다. 화목제물로 소를 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화제로 드린다.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이다.

12-16 화목제물로 염소를 드릴 경우에도 양을 드릴 때와 마찬가지다.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다.

17기름과 피를 먹지말라고 하신다. 이 명령을 대대로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화목제물은 예물이라고도 번역한다. 예물은 제물보다 인격적이다. 수직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다는 뜻이리라.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은 화제다. (번제도 제사의 이름이며 번제를 드리는 방법도 화제다. 곧 불에 태워 올려드리는 제사다. 번제와 화목제의 화제가  다른 점은 번제는 제물 전부를 태워 올리고, 화목제는 제물 일부를 태워 올린다.) //화목제의 화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젯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고 명하신다. 곧 화목제물은 제물의 일부를 화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드리는 사람과 제사장들이 함께 먹는다. 하여간 젯밥은 결국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나눠먹는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향기로운 냄새를 받으시고 고기로는 백성의 배를 채워주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밥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편 23편 시인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노래한다. 주의 백성이 주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이 ‘임마누엘’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찬과 말씀(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복을 누린다.   

레위기 2:1-16 읽기

레위기의 주어는 ‘나’ 곧 하나님이시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받으시는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1-3 곡식제물에 대한 말씀이다. 곡식제물을 드리는 방법의 핵심은 ‘정성’이다. 가축제물은 모두 다 불태워 불살라 바치는데, 곡식제물은 한 줌을 불살라 바치고 남은 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린다. 제사장들은 주께 바치는 제물, 곧 주님으로부터 가장 거룩한 것을 받아 누린다.

4-7 곡식제물을 화덕에 구워 제물로 바칠 수도 있었다.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신다. 기름을 바르거나 부으라고 하신다. 곡식제물을 냄비에다 구웠어도 마찬가지다.

8-10 곡식제물을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곡식제물의 일부를 제단 위에 올려 불살라 드린다. 불살라 드리는 이유는 일부지만 모두 바쳤다는 표시다.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곡식제물 가운데서 남은 것은 제사장 몫으로 돌린다.

11-13 곡식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룩과 꿀은 불살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 누룩과 꿀을 제물로 드릴 수는 있어도 불살라 드려셔는 안 된다. 대신 곡식제물에는 소금을 넣으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울 때 넣은 소금을 넣으라고 명령하신다.

14-16 수확후 햇곡식을 제물로 바칠 때는 햇곡식을 볶거나 찧은 것으로 바치라고 하신다. 모든 곡식제물은 기름과 향을 넣어 드리라고 하신다. 곡식제물을 태울 때는 전부가 아니라 모두 바치는 정성의 표시로 일부만 드리라고 하신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를 이렇게 드려야지 하고 쓴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방법이다. 오늘은 곡식제물(소제)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곡식제물은 일부만 불살라 바치는데 한 줌만 불살라도, 나머지 곡식 모두가 바쳐졌다는 표가 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다. 주일예배는 나머지 모든 일상생활도 예배라는 대표성을 지닌다. 일상이 정성을 다한 예배로 드려져야 하나님께서 주일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곡식제물 가운데서 남은 것은 제사장 몫이라고 하신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소유, 가장 거룩한 것을 받아 누린다. (직분자와 소위 평신도 구분없이) 성도는 제사장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남은 것은 결국 성도의 몫이 된다. 일상의 예배는 결국 교회공동체를 유익하게 한다. 성도의 필요를 채우는 삶이다. //누룩과 꿀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도 예배로 받으시지만, 정말 기뻐하시는 예배는 정결한 삶(소금)이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은 아닐까? 소금을 하나님과 언약을 세울 때 넣는 것이라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정결한 삶은 언약에 신실한,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레위기 1:17 읽기

1-2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제물과 제물을 바치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3-9 소를 번제물로 바칠 때는 흠 없는 수컷을 골라 회막 어귀에서 바쳐야 하는데. 주님께서 기꺼이 받게 바쳐야 한다. … 제사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는 제사장들이 함께 드린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제물에 안수하고,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고,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으면,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물의 피를 받아 회막 어귀에 있는 제단 둘레에 뿌리고,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고기 저민 것과 제물의 머리와 기름기를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고,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한다. 번제는 이렇게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10-13 바치는 제물이 양이나 염소인 경우에도 흠 없는 수컷을 골라 바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협업해서 드린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14-17 번제물이 날짐승인 경우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가운데서 골라 바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제사장 협업해서  드린다.

//레위기의 제사와 제사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더군다나 우리는 이런 제사를 더이상 드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제사의 종류와 방법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제사의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예배에 적용할 교훈을 찾아 본다. //제사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고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도록 드려야 한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다. 흠이 없다는 것은 제물의 상태를 뜻하지만,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물을 뜻한다. 세상에 흠이 없이 완벽한 것이 어디 있으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다.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다. 우리 몸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영적예배, 곧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몸을 불살라 태워서라도 (내 뜻을 완전히 태워 버리고) 내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신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제사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사장들의 협업이다. 예배도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삶이다. 예배는 결코 개인적이지도 그렇다고 일률적이지도 않다. 공동체적이지만, 각자의 분수에 맞게 드리면 된다. 

시편 78:56-72 읽기

56-5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아 살게 하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면서, 그들의 조상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빗나가고, 엇나가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 대신 산당에서 우상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다.

59-66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에 노하셔서 그들을 아주 내버리셨다. 주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내버리셨다. 주님의 능력과 영광의 상징인 언약궤를 원수의 손에 내주셨다. 주님의 백성을 원수의 칼에 내주셨다. 주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에 분노를 쏟으신 것이다. 젊은 남자들은 전장에서 죽었고, (약혼한) 처녀들은 혼인하지 못했다. 제사장들은 칼에 맞아 죽었고, 그들의 아내는 과부가 되었어도 곡 한 번 못했다. 마침내 주님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술기운에 달아오른 용사처럼 일어나셨다. 주님은 원수들을 뒤쫓아가서 쳐부수셨다. 원수들은 치욕을 맛보았다.

67-72 주님은 요셉의 자손, 에브라임 지파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유다 지파를 선택하셨다. 주님이 사랑하신 시온 산을 뽑으셨다. 주님은 시온에 주님의 성소를 높에 세우셨다. 시온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다. 주님은 주님의 종 다윗을 선택하셨다. 다윗은 목동이었다. 목동이던 다윗을 데려다가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 이스라엘의 목자로(왕으로) 삼으셨다. 다윗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양같이 기르고, 백성을 슬기로운 손길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법도에서 빗나가고 엇나간 백성은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 그 상징으로 하나님은 성막을 원수의 손에 내주셨다. 주의 백성을 원수의 칼에 내주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주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 원수에게는 영원한 치욕을 안기셨다. //하나님은 장자권을 가진 요셉지파 대신 유다지파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목자로 삼으셨다. 다윗은 한결같은 마음, 곧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을 양같이 기르고, 슬기로운 손길로 인도했다.  ///시온은 주님의 법이 선포되는 곳을 상징한다. 곧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성소, 곧 임마누엘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성도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펴야한다. 하나님의 기억을 (내가 가진 전부를 주고서라도 꼭) 사야한다.

시편 78:34-55 읽기

34-35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실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임을 기억했다.

36-38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께 아첨하고, 혀로는 하나님을 여전히 속일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분명히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는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셨다. 그들을 멸하지 않고 거듭 노하심을 돌이키셔서 참고 또 참으셨다.

39-40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의 육신은 죽으면 되돌아 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주의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반역하며, 얼마나 자주 불평하였는지 기억하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듭하여 시험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않으며, 대적으로부터 구해주신 날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을 말씀으로 남겨 주셨으니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43-51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여러가지 징조를 보이시고 소안 평야에서 기적을 베푸셨다. 강을 핏물로 변하게 하셔서 마실 수 없게 하셨다. 파리와 개구리로 큰 피해를 입게 하셨다. 농작물을 해충에게, 애써 거둔 곡식을 메뚜기에게 내주셨다.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무화과나무를 된서리로 죽게 하셨다. 가축을 우박으로 때리시고 양 떼를 번개로 치셨다. 그들에게 (이집트에) 진노의 불을 쏟으시며, 분노와 의분의 재앙을 내리시며, 재앙의 사자를 보내셨다. 주님은 (이집트에) 분노의 길을 터 놓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지 않으시고 생명을 염병에게 넘겨주셨다. 이집트의 맏아들을 모두 치셨다.

52-55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양 떼처럼 인도하셨다. 가축 떼처럼 광야로 이끄셨다. 그들을 안전하게 이끄셨다. 주의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원수들은 바다가 삼켜버렸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거룩한 산으로 이끄셨다. 주님의 산으로(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여러 민족을 그들 앞에서 몰아내시고, 가나안 땅을 나누어 주셨다. 이스라엘이 분배받은 땅에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진멸하실 때에야, 주의 백성은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했다고 빈다. 그제서야 하나님만이 반석이요 구원자이심을 기억한다. 시인은 이마져도 마지못해 하는 회개라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백성의 이런 마음을 잘 아시면서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주의 백성의 죄를 덮어주셨다. 노하심을 돌이켜서 참고 또 참으셨다. 대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시인에게 (주의 백성에게) 상기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자꾸 지꾸 잊어버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마치 치매걸린) 백성에게 재차 삼차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말씀해 주신다. 시인은 하나님은 선한 목자요, 언약에 (약속에) 신실한 분이라고 노래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성경말씀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이루신 일과 주님이 보여 주신 기적을 상기한다. 말씀이 은혜의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