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1-17 읽기

1-11  유월절 전날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저녁을 먹을 때 악마가 가룟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셨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는 “안 됩니다. 내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12-17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겉옷을 다시 입으시고 식탁에 앉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너희의 선생님이요 주님이다. 주님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1-11 사건은 예수께서 누가복음 12:36-37에서 주인과 종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을 미리 성취한 사건이다. 37절만 적으면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 따라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때 일어날 일을 미리 맛보여 주시는 것이다. 이런 맛을 보고도 깨어 있지 않을 종이 있을까?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12-17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라면, 종이라면 선생과 주인을 본받아 그대로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제자와 종으로 선생과 주인이 한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고 하신다. 선생과 주인이 한 그대로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이미 영생이다. //끝까지는 예수의 사랑에 한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나 마지막 때까지다. 그렇다고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모두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예수를 모르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대로 하지 않으면, 곧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말씀대로 행함이 복이다. 

요한복음 12:44-50 읽기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를 믿은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았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친히 나에게 명령해 주셨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여 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를 보는 사람은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곧 예수께서 하나님이다. 사람들이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이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런데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 “내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 서면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영생이다. 예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당장은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고 밝히 말씀하실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생이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이미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살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요한복음 12:34-43 읽기

34-36a 무리가 예수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인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하고 대답하셨다.

36b-41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서 몸을 숨기셨다.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징을 행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저자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라는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까닭을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나에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주님은 궁극적으로 예수를 가리킨다. 

42-43 지도자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무리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워 알았다. 무리의 말은 맞다. 그래서 이미 높으신 그리스도께서 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인자가 누구냐?” (인자가 그리스도냐?) 하고 물어야 했다. 무리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이다. 자신들이 낮고 낮은 어둠 가운데 행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높고 높으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신 것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야 되라고 하신다. //그러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빛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셨는데, 세상이 빛을 알지도 못하였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은 것을 저자 요한은 주님의 영광을 미리 본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씀의 성취라고 설명한다. //지도자 가운데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자신들의 믿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낮아져야 한다. 나를 높이면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감춰진다. 내가 높아져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결과다.  

요한복음 12:20-33 읽기

20-26 유월절 명절에 그리스에서도 사람이 예배하러 왔다.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 가서 빌립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수를 뵙고 싶다고 말했다. 빌립은 안드레와 상의한 후 둘은 예수께 그리스 사람들의 말을 전했다. 예수께서 빌립과 안드레에게 (혹은 그리스 사람들도 포함해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기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주실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와 함께 하려면 예수를 섬겨야 한다. 예수를 섬긴다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를 본받는 것이다. 에수처럼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신다. 예수 안에 거하게 된다. 유대인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차별이 없다.

27-33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롭다. 무슨 말로 기도해야 할 까? 아버지께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때에 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하고 예수께서 기도하셨다. 그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너를) 영화롭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화롭게 하겠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서서 듣고 있는 무리들 가운데, 더러는 천둥이 울렸다고 말했고, 더러는 천사가 예수께 말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소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다.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지가 쫓겨날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맞을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암시하려고 이 말씀을 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는데 예수는 오히려 괴로워 하신다. 오죽했으면 이 때가 오지 않기를, 이 때를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예수는 기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다짐한다. 죽기까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기도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가 이미 영광을 받았고 앞으로도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응답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행위다. 기도로 우리는 가장 좋은 것, 보혜사 성령과 교제하게 된다. 순종할 힘을 얻는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요한복음 12:12-19 읽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신다는 소식에 유월절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갔다. 그들은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오셨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네 임금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라는 성경 말씀과 같았다. 제자들은 당시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 이 성경말씀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이 말씀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은 무리가 예수를 맞으러 나왔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서로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하고 말했다.

//왕을 맞이 하려는 사람들과 겸손한 모습으로 입성하시는 예수가 비교 된다. 스가랴 선지자는 시온의 딸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부르라고 명령하는데, 저자 요한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적용한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십자가의 길은 기뻐하거나 즐거운 길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예수를 왕으로 환영한 인파 못지 않게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를 보기 위한 인파도 적지 않았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에게 현상금까지 걸었으나, 이랬든 저랬든 예수를 환영하는 무리에 놀라 낙심하고 말았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빛을 (예수를) 미워하여 빛으로 (예수께로) 나오지 않는다.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들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어둠을 더 사랑한다. 교만이다. //그러나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은 겸손하시다. 겸손하신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성도는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더 낮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