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29-48 읽기

29-36a 세쨋날, 이스라엘은 매복전략을 짰다.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에게 전과 같이 밀리는 척했다. 서른 명 가량 죽었다.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에게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큰 길까지 추격했다. 이스라엘 주력부대는 바알다말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기브아 주변에 매복했던 이스라엘 부대가 쏟아져 나왔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주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셨다. 베냐민 자손은 자기들에게 재앙이 미친 것을 알지 못했다. 베냐민 군사 이만 오천백 명 모두 쳐죽였다. 베냐민은 패전했다.

36b-46 이스라엘 주력부대는 매복부대를 믿고 베냐민 앞에서 지는 척하면서 바알다말로 물러났었다. 베냐민 군대가 이스라엘 주력부태를 추격하느라 성읍에서 멀리 떨어지자 매복부대는 기브아로 돌격하여 기브아 성읍 주님을 다 쳐죽였다. 기브아 성읍에서는 연기가 구름기둥처럼 치솟았다. 뒤돌아 본 베냐민 사람들은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다. 이스라엘 주력부대는 연기 구름기둥을 신호로 베냐민에게 반격을 시작했다. 겁에 질린 베냐민은 후퇴를 했으나, 이스라엘 주력부대와  성읍을 치고 나온 매복부대 사이에 끼여 협살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을 포위하고 기브아 맞은쪽까지 추격해 베냐민 사람 만 팔천 명의 용사를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쪽 림몬 바위로 도망친 패잔병들을 추격해 큰 길에서 오천 명의 군사를, 기돔까지 쫓아가서 이천 명의 군사를 죽였다. 베냐민은 이만 오천명의 용사를 잃었다.

47-48 육백명은 광야 쪽 림몬 바위에 넉달간 숨어서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베냐민 자손들에게 돌아와서 사람이나 가축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모두 칼로 쳐서 죽이고 성읍들을 불살랐다.

//사관은 두번에 걸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응징한 사건을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쳐죽인 베냐민 자손 군인의 수가 이만 오천백 명과 이만 오천 명으로 백명 차이가 난다. 15절에서 베냐민 군인은 총 이만 육천 칠백 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림몬 바위로 숨어버린 600명을 전멸당한 베냐민 군인과 합하면 이만 오천 육백, 혹은 이만 오천 칠백 명이어야 하니, 약 천명 정도 차이가 난다. 사실 숫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싸움을 택한 베냐민의 군대는 육백 명을 제외하고 다 진멸당했다. 수치스러운 일을 한 기브아 불량배들을 감싼 댓가는 이처럼 참혹했다. 악을 감싸는 것만큼 교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악을 감싸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육백명을 숨겨주심으로 베냐민 지파의 명맥을 이어가신다. 이들 육백명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아 베냐민 지파를 계승한다. 이런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나왔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숫자의 크고 작음은 하나님의 일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들에게 돌아와 (아마도 기브아 성읍으로 돌아와) 사람이나 가축 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다. 이것도 과연 하나님의 뜻인지 의문이다. 지나친 폭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외침들이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이유역시 심판의 도구 이상으로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심판은 선이지만 폭력은 악이다.)

사사기 20:8-28 읽기

8-11 레위 남자의 고발을 들은 온 회중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되고 제비를 뽑아 기브아를 쳐야한다고 외쳤다. 모든 지파는 십분의 일을 군인들이 먹을 양식으로 부담하고, 군인들은 기브아로 가서, 기브아 사람이 이스라엘 안에서 저지른 수치스러운 일을 벌하자고 결정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같이 기브아 성읍을 치려고 모였다.

12-17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사람을 보내어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일어난 악한 일로 기브아에 있는 불량배를 치려고 하니 그들을 넘겨달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기브아 불량배들을 죽여 이스라엘에서 이런 악한 일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고 기브아로 모여들었다. 베냐민 자손은 기브아 주민 가운데서 뽑은 칠백명 외에 이만 육천 명의 군사를 모았다. 기브아에서 뽑은 칠백 명은 모두 왼손잡이들로 무릿매로 돌을 던져 백발백중 시키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총회에 모인 사십만 명의 용사가 있었다.

18 웬일로 이스라엘 자손이 베델로 올라가 하나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 물었다. 주님은 유다지파가 먼저 올라가라고 답하셨다.

19-23 첫번째 이스라엘 자손과 베냐민 자손의 싸움에 베냐민 자손이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쓰러뜨렸다. 패한 이스라엘 자손은 베델로 올라가 주님께 울면서 다시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 물었다. 주님은 다시 싸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24-28 이튿날 다시 이스라엘과 베냐민 자손이 맞붙었다. 이번에도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이스라엘 군인 만 팔천 명을 쓰러뜨렸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베델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울며 금식하고 주님께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주님께 또다시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냐고 물었다. 주님께서는 ‘올라가라. 내일은 틀림없이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때 하나님의 언약궤가 베델에 있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었다.)

//총회로 모였는데 하나님의 생각과 대책을 듣기도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기브아를 쳐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나님께 벌을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힘을 모아 기브아를 치기로 했다. 용서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악을 악으로 갚고자 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내전을 피하기 위해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에게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불량배들을 넘겨주는 대신 이스라엘 전체와 싸우기로 했다.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 배냐민 자손은 소명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의 결정에 그냥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발백중의 무릿매를 다를 줄 아는 기브아 출신의 칠백용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들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군사를 모았지만 맞서 싸울 자신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처음부터 ‘싸울까요? 말까요?’ 하고 물어봐야 하는데, 스스로 싸우기로 하고서야 주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베냐민과 싸울지 물었다. 주님이 유다지파를 지목하셨고, 첫째 날과 둘째 날, 분명 주님이 올라가라고 하셨는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두 번 모두 베냐민 지파에 패했다. 내전이라고 하여도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에게 패했다면 그것도 주님의 뜻이다. 물론 그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다. 베냐민을 또 다시 치러 올라가는 것을 묻기 전에, 패전의 이유를 물어야 했다. 아이성 전투를 기억해야 했다. 그래도 삼세번이라고 세번째 주님 앞에서는 ‘싸울까요? 말까요?’로 질문이 바뀐다. //사관은 드디어 베델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제사장 비느하스를 언급한다. 이스라엘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께 바르게 제사 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사사기 20:1-7 읽기

1-2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한꺼번에 미스바에서 주님 앞에 모였다. 당연히 이스라엘 온 지파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참석했다. 칼을 찬 군인들도 사십만 명이나 모였다. 베냐민 자손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3-7 총회에서 그 레위 남자를 불러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레위 남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첩을 데리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로 가서 하룻밤을 묵을 셈이었다. 그날 밤, 기브아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해치려고, 내가 묵고 있던 집을 둘러쌓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나 대신 내 첩을 폭행하여 내 첩이 죽었다. 내가 나의 첩의 주검을 토막내어 이스라엘이 유산으로 받은 모든 지역으로 보냈다. 나는 베냐민 땅 기브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음란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는 것을 고발한다.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자손이라면, 여러분의 생각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스바 총회. 사관은 ‘주님 앞에 모였다.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 라고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주권자, 곧 왕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지 않겠다는 시도다. 총회로 모였다고 과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가? //이스라엘은 ‘이런 수치스러운 일’로 총회를 개최했다.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란 무엇일까? 기브아 불량배들이 레위 남자의 첩을 윤간해서 죽인 사건일까? 아니면 레위 남자가 자기 첩의 주검을 열두조각 내서 이스라엘 온 지역에 보낸 것일까? //총회는 고발자 레위 남자의 진술만 들었지, 가해자들은 부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레위 남자의 고발을 확인할 노인을 증인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하여간 레위 남자는 자기가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은 숨긴채, 불량배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거짓말을 덧붙여 베냐민 땅 기브아 사람들을 고발했다. //주님 앞에 모였다면 주님의 생각과 대책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 남자의 진술을 듣기에만 급급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면 사람의 생각과 대책을 내기보다 주님의 뜻과 대책을 들어야 한다. 

사사기 19:22-30 읽기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환대해 먹고 마시며 쉬고 있을 때, 동네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쌌다. 그들은 문을 두들기며 노인에게 레위남자를 자기들에게 내어 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불량배들에게 이같은 악행을 저지를 말라고 말했다. 자기 손님들에게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대신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으니, 레위남자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말했다. 불량배들의 막무가내에 레위남자는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불량배들은 밤새도록 그 여자를 윤간하고 새벽에야 놓아주었다. 동틀 때야, 그 여인은 노인의 집 문에 이르렀지만 결국 쓰러졌다. 아침에야 그 여인을 발견한 레위 남자는 여인의 시체를 거두어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서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 후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었고, 보지도 못했다며,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자고 했다.

//레위 남자가 머문 기브아는 성적으로 문란한 성읍이었던 모양이다. 불량배들이 굳이 레위 남자를 불러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레위인들이 에브라임 산당에서 제사드릴 때, 혼음과 같은 성적인 문란이 이미 만연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불량배들은 굳이 제물을 가지고 산당까지 가지 않아도 제사장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비겁한 레위 남자는 결국 첩을 자기 대신 내어주었다. 그렇다면 첩이 화가 나서 베들레헴 친정집으로 돌아간 이유도 어쩌면 레위 남자가 자기를 산당에서 성관계 대상으로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었을까 의심하게 된다. 사사기 사관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기록하지만 롯의 때에 소돔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여간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불량배들이 저지른 단순한 음란사건으로 일단락 되지 않고, 온 이스라엘에 공론화되도록 레위 남자의 개인적인 분노를 이용하신다. (레위 남자는 개인적으로 져야 할 책임을 사회악으로 돌려버렸다.)

사사기 19:11-21 읽기

레위 남자는 베들레헴에서 첩을 데리고 종과 함께 에브라임 산지로 향해 출발했다. 그들이 여부스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려고 했다. 종은 여부스 성읍에서 자고 가지고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이방 성읍에 들어가지 말고 기브아까지 가서 유숙하자고 말했다. 그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해가 졌다. 그들이 기브아 성읍 번화가로 들어가 앉아 있었지만, 그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침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지만 기브아에 살고 있었다. 노인은 길에 앉아 있는 나그네를 보고 누군지 물었다. 레위 남자는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도중인데 아무도 자기를 영접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레위 남자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것을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자.) 레위 남자는 자신들은 부족함이 없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노인은 레위 남자를 안심시키며, 자신이 그들의 필요를 담당하겠으니 거리에서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노인은 그들의 나귀도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기고 함께 먹고 마셨다.

//레위 남자와 에브라임 출신 노인. 이들은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타향에 거류하는 사람들이다. 농경과 목축을 하던 이들이 고향과 가족공동체를 떠나 타향살이를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레위인들이 성막 일 대신 산당을 운영해야 밥벌이를 할 수 있었고, 노인과 같이 타향에 나와 저녁 늦게까지 밭일을 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만남이랄까. //나그네를 대접하는 율법의 가르침은 무너져 내렸다. 기브아에 도착한 레위인 일행은 저녁이라 인적이 끊어질 성문 어귀가 아니라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까지 들어갔지만 타향살이를 하고 있던 노인이 오기까지 누구에게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타향살이를 하던 노인에게만 길을 떠난 레위인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사랑이 식은 사회가 되었다.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여호와의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성막 일 대신 산당 일을 하면서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둘러댔던 것이다. (아니 스스로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니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사회적으로 사랑이 식어버렸다. //레위인은 노인에게 도움이 필요없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노인은 강권하여 집에 대려가 대접한다. 나그네가 나그네를 대접하는모습은 어쨌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