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1-24 읽기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가운데 헤벨이라고 하는 겐 사람이 (동족을) 떠나 게데스 부근에 있는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살았다. 

12-16 시스라가 바락이 다볼 산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구백대의 철 병거와 온 군대를 거느리고 기손 강 가에 진을 쳤다. 바락은  드보라가 주님께서 시스라를 바락 장군의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는 말을 듣고 다볼 산에서 기손 강으로 쳐내려갔다. 주님께서 시스라와 모든 철병거와 온 군대를 바락 앞에서 패하게 하시니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망쳤다. 바락은 시스라의 온 군대를 진멸시켰다.

17-20 그러나 시스라는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도망쳤다.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 가문은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야엘이 시스라을 맞아들인 후, 그를 안심시키고 이불을 덮어 쉬게 해주었다. 시스라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야엘이 우유를 마시게 하고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시스라는 누가 자기를 찾거든 없다고 대답해 달라고 야엘에게 부탁했다.

21-22 시스라가 지쳐서 깊이 잠이 들자, 헤벨의 아내 야엘은 장막 말뚝을 가져와 그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망치로 박아 죽였다. 그때 바락이 시스라를 뒤쫓아 왔다. 야엘이 바락을 맞이해서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혀 죽은 시스라를 내주었다.

23-24 이렇게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가나안 왕 야빈을 굴복시키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강성해져서 가나안 왕 야빈을 억압하고 멸망시켰다.

//겐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 사사기 1장 16절에서 모세의 장인 겐 사람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헤벨이라는 겐 사람은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하지 않고 게데스 부근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그가 동족을 떠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데 일조하게 된다. 남편 헤벨은 하솔 왕 야빈과 가깝게 지냈지만 아내 야엘은 하나님과 가깝게 지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헤벨은 세상 임금과 가깝게 지내면서 개인적인 부와 영광을 취하려고 했을 수 있으나, 아내 야엘은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면서 (영원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사사기 4:1-10 읽기

1-3 에훗이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당연히 하루 아침에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에훗이 죽자 대놓고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번에는 하솔 왕 야빈에게 이스라엘을 내주셨다. 시스라를 군대장관으로 거느리고 철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던 야빈은 이스라엘을 이십년동안 심하게 억압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 울부짖었다.

4-10 주님께서는 이번에는 랍비돗의 아내인 예언자이자 재판관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다. 드보라는 납달리의 게데스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사람을 보내, 주님께서 납달리 지파와 스블론 지파에서 만 명을 이끌로 다볼 산으로 가서 야빈의 군지휘관 시스라와 그의 철병거를 무찌르라고 명하셨다고 전했다. 바락은 드보라가 동행하면 싸우러 가겠지만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드보라는 바락과 동행하겠지만 주님께서 시스라를 한 여자의 손에 내주실 것이고, 바락은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다. 바락이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드보라와 함께 다볼 산으로 떠났다.

//사사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옷니엘-에훗-삼갈로 이어진 사사는 여선지자 드보라로 이어진다. 사사는 남녀구별이 없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여선지자 드보라에게 바락을 사사로 세우라고 명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바락은 주님의 명령에 드보라의 동행이라는 조건을 걸고 말았다. 드보라는 주님의 명령에 감히 조건을 건 바락은 적장을 처단하는 영광을 얻지 못하고, 그 영광은 한 여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바락이 드보라에게 동행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지자를 부적처럼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백성들에게 자신이 재판관보다 높음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어찌됐든 바락은 주님의 영광대신 자신의 영광을 구했던 사람이었다. 이런 바락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까? 

사사기 3:12-31 읽기

12-14 사사 옷니엘 사십년 동안 태평성대였다. 그러나 태평성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주님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셔서, 암몬과 아말렉 자손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여리고를 점령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겼다.

15-25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자, 주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구원자)로 세우셨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로 가서, 조공을 바친 후, 조공을 메고 온 사람을 돌려보낸 후, 에글론 왕에게 독대를 요청했고 에글론은 에훗의 요청을 받아들여 부하들을 내보냈다. 다락방에서 에훗은 에글론 왕에게 다가가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에글론 왕의 배를 찔렀다. 에훗은 다락방 문을 잠근 후 몸을 피했다. 에글론 왕의 부하들이 다락방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 보니 왕이 죽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26-30 에훗은 몸을 피해 스이라로 도망쳤고, 에브라임 산간지방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소집하여 모압을 치러갔다. 에훗은 주님께서 원수 모압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셨다고 외쳤다. 에훗과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땅으로 도망치는 만 명이나 되는 모합 군인을 요단 강 나루에서 쳐죽였다. 모압은 이스라엘에 굴복하고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 뒤로 팔십년 동안 전쟁이 없이 평온했다.

31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가 되었다. 삼갈은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했다.

//태평성대가 무섭다. 하나님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잠언 30장에 야게의 아들 아굴이 말한 잠언이 나온다. 아굴은 주님께 두가지 간청한다. 한가지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필요한 양식만을 달라는 기도다. 아굴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태평성대는 대적이 없어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게 한다. //사십년이든 팔십년이든 전쟁이 없이 평온하다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내우가 있기 마련이다. 내우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은) 따로 설명이 없지만 지도자들의 타락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팔십년의 평온은 사십년의 평온보다 더 불행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ㅠㅠ //옷니엘-에훗-삼갈. 사사는 혈통이나, 육정, 사람의 뜻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사사기 3:1-11 읽기

1-6 가나안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일이 없는 주님을 알지도, 주님께서 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새대는 주님께서 그 땅에 남겨 두신 민족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주님께서 이 새로운 새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려고 그 땅의 다른 민족들을 남겨 두셨다고 사관은 토를 달았다. 가나안 땅에 남겨 두신 다른 민족은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 가나안 사람 모두, 시돈 사람, 히위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과연 모세의 율법을 순종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을 남겨 놓았다고 사관은 반복해서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과 함께 섞여 살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여러 민족과 통혼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7-11 이스라엘 자손은 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분노하신 주님은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산리사다임을 팔년동안 섬겨야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자 주님께서 그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이스라엘 자손가운데 한 구원자를 세웠는데 그가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이넬이다. 주님의 영이 옷니엘에게 내려,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주님께서 구산리사다임을 옷니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옷니엘은 구산리사다임을 쳐서 이길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을 때까지 사십년 동안 전쟁 없이 평온하였다.

//사사 옷니엘은 새로운 세대인가? 가나안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주님을 알지도 주님께서 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다. 유다 자손이 가나안 전쟁을 할 때, 드빌을 쳐서 갈렙의 딸과 악사와 결혼한 인물이다. 주님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맛 본 인물 옷니엘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리셔서 사사로 세우셨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맛보았던 옷니엘도 주님의 영이 지속적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주님과의 사귐이 끊어지면 세속에 물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새로운 세대란 결국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진 세대요, 하나님의 영이 없는 세대다. 바울은 성도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고 갈라디아 성도에게 편지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악한 일은 단순히 다른 민족과 섞여 산 것이 아니라, 그들과 통혼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긴 것이다. 세상과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악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이 아니다. 말씀없이, 하나님의 영이 없이,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악한 일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로 살지 말고, 성령 충만한 새로운 피조물로 살라고 하신다. 

사사기 2:11-23 읽기

11-15 새로운 세대. 주님을 알지도, 주님이 하신 일도 모르는 세대.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 신들을 섬기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했다. 이집트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조상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백성들이 섬기는 다른 신을 따르며 경배하여 주님을 진노하게 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렇게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분노한 주님은 이스라엘을 약탈자의 손에 넘겨 주셨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 넘기셨다. 이스라엘은 원수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들과 싸우러 나갈 때마다, 주님께서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쳐서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무척 괴로웠다.

16-23 그 뒤에 주님께서는 사사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탈자의 손에서 구해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들의 말도 듣지 않고, 오히려 음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기며 경배했다. 조상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빠르게 떠나갔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조상처럼 (주님을 두려워 하며)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려고 사사를 세우시고, 사사와 함께 계셔서,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해 주셨다. 주님께서 원수들에게 억눌려 괴로움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백성은 다시 돌아서서 그들의 조상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며 경배했다. 그들은 악한 행위와 완악한 행실을 버리지 않았다. 주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노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서의 조상과 세운 언약을 어기고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 있는 민족들을 더 이상 몰아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이 가르쳐 준 길을 그들의 조상처럼 충실하게 걸아가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겠다고 하신다. 이것이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다른 민족을 넘겨 주지 않은 이유라고 하신다.

//주님을 알지도, 주님께서 하신 일도 모르는 세대는 결국 세상의 조류를 따라가고 만다. 주님과의 관계는 잊어버리고 세상 신을 따르며 일희일비하고 만다. 주님은 이런 새로운 세대를 원수에 손에 넘기신다. 주님의 백성이 원수를 이길 수 없게 하신다. 세상 싸움에서 성도가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주께서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싸움에서 이기셨기 때문이다. 세상 싸움에서 이기려고 세상 방법을 따르고 세상 신들을 찾는다면 이미 진 싸움이다. 주님은 성도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지 아닌지 시험하시려고 환난을 당하게 하신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하신다. 선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다. 주님을 아는 사람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아는 성도가 가야 할 길이다. 성도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공간적으로 옮겨진 사람들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 속에 있지만 생명이신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교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세대가 아닌 새로운 피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