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5-30 읽기

15-17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심지어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18-27 어떤 지도자가 예수께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네가 알고 있는 계명을 행하여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게는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서 몹시 근심하였다. 그는 큰 부자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을 보시고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귀를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28-30 베드로는 예수께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버리고서,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이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하고 선언하셨다.

// 어린 아이와 부자가 대비된다. 이 땅에서 소유권이라는 것이 없는 어린 아이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소유권을 가진다. 반대로 부자는 (이 땅에서 소유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참으로 어렵다. 부자는 재물을 섬기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 어떤 지도자 (관원)은 물질과 권력 모두를 가진 자였다. 그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께 물었다. (그는 종교적으로도 뭔가 소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얻을 수 있는 최상위가 영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부자 지도자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사랑=용서’ 였다. 그는 간음하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셨다. 당연히 살인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다. 나머지 계명들도 예수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어제 기도하던 바리새파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율법을 지켰지만 예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예수는 부자 지도자가 자랑하는 부와 권력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부자 지도자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대신, 세상 근심 (염려)에 빠지고 말았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이다.

//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나의 공로, 나의 부와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무익한 종이라도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 보화란 무엇인가? 영생 자체다. 부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들이다. 이 영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제자의 삶이다.

누가복음 18:1-14 읽기

1-8 하나님의 나라, 인자의 날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음의 비유로 가르치셨다.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 한 사람이 있었다. 그 과부는 그 재판관을 찾아가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그 과부의 소송을 들어주지 않았다. 얼마 뒤 그 재판관은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하셨다.

9-14 예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다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한 바리새파 사람과 한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바리새파 사람은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은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 기도의 대상 –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도는 백성의 권리라고 하신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기도의 대상이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1장에서 강청하는 기도를 가르치실 때와 사뭇 다르다. 누가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기도를 들으시는 분인지 가르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의로우신, 얼른 권리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 기도의 내용 – 기도는 스스로 의롭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권세를 구하는 것이다.

// 기도의 응답 –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권리를 얼른 찾아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 세리는 주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

// 기도는 내가 구하고 내가 찾고 내가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의 권리다. 부와 건강과 권력과 자기 의를 구하는 적대적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권리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께 의롭다고 인정 받아야 한다.

// 그러나, 아쉽게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 인자가 다시 오시는 날,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믿음을 가진 자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 바랄 뿐이다. 나의 선한 행실로는 여전히 무익한 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누가복음 17:20-37 읽기

20-21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라고 대답하셨다.

22-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게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인자가 저기 계신다’ 또는’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 다니지도 말아라. 마치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29 그러나 인자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노아의 시대에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이 인자의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롯 시대에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에서 떠나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37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날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말아라. 들에 있는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보존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데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버림받을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주님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물었고, 예수께선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답하셨다.

//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는데,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에 하나님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다. ‘너희’가 누구인가? 질문을 던진 바리새파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곧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서 있는 ‘예수’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곧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고,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도 가시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표현 대신 ‘인자가 나타나는 날’ 에 대하여 말씀 하시는데, 인자의 날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일 것이다. 곧 예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 그러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인자인 예수께서 먼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은 후, 인자가 다시 나타나는 날에 완성된다.

// 인자가 다시 나타나시는 날. 곧 재림의 날이다. 이날을 도적같이 임하겠지만 반드시 임한다. 노아 때 홍수가 약속한 120년 후 일어났듯이, 롯 때에 소돔이 그날 밤 멸망 당했듯이, 정확한 때와 시간은 알 수 없어도, 노아 때처럼 더디든, 소돔처럼 급작스럽든 인자의 재림은 정해진 일이다. 인자의 날에는 구원을 받을 자와 버림을 받을 자가 분명하게 구분된다.

//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물었는데, 제자들은 어디에 임하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는데 죽음과 생명으로 구분되는 심판의 자리를 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곳이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요, 불순종하는 곳이 영벌의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신다.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는 타작마당이다. 다시 말해 장소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큰 의미가 없다. 전 우주적이라고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시편 62 읽기

시인은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시인의 반석, 시인의 구원, 시인의 요새다. 시인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시인은 기울어 가는 담장, 무너지는 돌담과 같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고발한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 거짓말만 즐겨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저주를 하는 표리부동한 사람들이 있다고 까발린다. 1-4

시인은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린다.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둔다. 하나님만이 시인의 반석, 시인의 구원, 시인의 요새다. 시인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시인은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이 시인의 견고한 바위시요 피난처라고 노래한다. 아니 하나님만이 우리 성도의 피난처라고 확장시킨다. 그러니 성도(백성)에게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 놓으라고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5-8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은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라고 노래한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저울에 올려놓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함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라고,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가르친다. 시인은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에 대해 말한다.1)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다.’ 2)  ‘한결같은 사랑도 하나님의 것이다.’ 시인은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라고 노래를 맺는다. 9-12

// 권세도 사랑도 주님의 것이다. 시인은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다. 그런데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라고 결론 맺는다. 사람을 죽이려고 공격하는 자, 교만한 자, 표리부동한 자, 권력을 의지하는 자, 남의 것에 소망을 두는 자,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주께 무엇을 받을까 기대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두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나님께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라고 교훈 한다.

// 시인이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다는 것은, 시인이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지, 사람이 권력/남의 것/재물을 의재해도, 혹은 악행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사랑하고 선행을 격려해도 (하나님께 순종해도) 무익한 종이기 때문에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라고 노래한다.

시편 61 읽기

시인은 마음이 약해질 때, 땅끝에서 주님을 부른다. 시인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주님께 인도해 달라고 간구한다. 마음이 약해질 때는 낙심 될 때다. 심장이 멎을 듯 다급할 때다. 땅끝은 주님과 멀어질 때로 멀어진 상황일 것이다. 그런 때, 그런 곳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기도한다. 자신의 사정을 주님께 아뢴다. 주님만이 시인의 피난처요, 시인을 원수들로부터 지켜 주는 견고한 망대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영원토록 주님의 집에 머무르며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겠다고 노래한다. 땅끝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꿈을 꾼다. 1-4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주님께서 시인의 서원을 들어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유업을 시인에게 주셨다는 것이 그 증거다. 시편 61편도 다윗의 시라고 한다. 6,7절은 삼하 7장에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나단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윗이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셔서, 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직접 그렇게 약속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라며 화답한 장면과 오버랩 된다. 5-7

시인은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로 노래하며, 시인이 서원한 바를 날마다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8 // “그때에” 라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시인의 노래는 현재형처럼 들린다. 날마다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지 않는가?

낙심 될 때, 절망적인 곳에서도 기도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다. 나는 어찌할 수 없지만, 주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선한 목자가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집은, 주님의 날개 아래는 안전하기 때문이다. 땅끝이라고 생각되는 곳이라도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임마누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