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1-21 읽기

1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하며 성전의 기초를 다시 쌓고 안식일에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어 주의 백성으로 영화롭게 살 것을 주님이 약속하셨는데 주의 백성의 실상으로 그렇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주의 손이 짧아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못하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주의 백성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주의 백성이 원망했나 보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다’ 하고 답하신다. 2 오직 그들의 죄악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3 주님은 그들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고.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거짓말을 하고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신다. 4 공의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진실되게 재판 하는 사람도 없고,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말하며, 해로운 생각을 품고서 죄를 짓는다고 지적하신다. 5 (어려운 사람에게) 독사의 알을 주며, 거미줄로 짠 옷감을 준다. 독사의 알과 거미줄로 짠 옷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죄악과 폭행을 저지른다. 7 나쁜 일을 하기 위해 찾아다니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신속하고, 그들의 생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신다. 그들이 다시 황폐와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신다. 8 그들이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평이 안전한 길이라고 하신다. 공평을 굽게 만드는 자들에게는 안전이 없다고 하신다. 9 이렇게 공평과 거리가 먼 삶을 사니 공의가 행해지지 않는다. 빛을 바라나 (공의를 바라나) 어둠뿐이라고, 공평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10 공평을 행하지 않는 것을 몸이 건강해도 대낮에도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 비유하신다. 이런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하신다. 11 공평은 바라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하는 것이며, 구원도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라기만 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멀다.

12-14 주님께 우리 죄를 고발해야 한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죄를 짓고 주님을 부정한 것을,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포악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한 것을, 거짓말을 마음에 품었고, 또 거짓말 한 것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죄악으로 공평이 뒤로 물러나고 공의가 멀어졌고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15 성실이 없으면 악에서 떠나도 오히려 약탈을 당한다. 악에서 떠나도 오히려 약탈을 당하는 것을 공평이 없는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 가운데) 공평이 없는 것을 슬퍼하신다. 16 압박받는 사람을 돕지 않고, 중재하지 않는 것에 주님은 놀라신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억압받는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공의를 이루시려고 주님의 능력을 발휘하실 것이다.

17 주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시다. 구원이란 주께서 주의 열심으로 공의를 베푸시는 것이다. 심판도 구원의 일부다. 18 주님은 행한대로 갚으신다. 적과 원수들에게 진노로 보복하신다. 세상 나라들에게도 행한대로 보복하신다. 19 세상은 재판자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 주님의 영이 원수들을 물리치실 것이다. 20 주님이 시온에 구원자로 오시고, 주의 백성 가운데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오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1 주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신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은 이러하다. 너의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너의 입에 담긴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과 너의 자손의 입과 또 그 자손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임마누엘!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의 영으로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  

이사야 58:1-14 읽기

1 주님은 임마누엘의 복을 누려야 할 (그러나 그러지 못한) 주의 백성에게 (선지자, 곧 주의 종을 세워) 그들의 허물과 죄를 주저하지 말고 소리 높여 크게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2 주의 백성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길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며, 하나님께 공의가 무엇인지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말하지만, 3 실상은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무엇 때문에 금식하며, 주님께서 알아 주지도 않는데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자들이다. 주님은 주의 백성이 금식하는 날에도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한 일을 시킨다고 지적한다. 4 금식하면서도 서로 싸운다고 책망하신다. 주님은 금식하는 티를 내면서 하는 금식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5 주님은 이런 금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금식은 통회하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남들 보기에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는다고 금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런 금식을 하는 사람을 기쁘게 반기시지 않으신다.

6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하신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돌이를 환대하는 것,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 것, 골육(친척)의 필요를 모른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다. 8 그래야 주의 백성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주의 백성의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주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신다. 9 그럴 때, 주님은 주의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주시기 위해, 주의 백성이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게 하신다. 주의 백성이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울 때, 주의 빛이 백성들 가운데 나타나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11 주님께서 주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주의 백성의 영혼을 채우시고, 강건하게 하시는 방법이다.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그 곳이, 물 댄 동산이요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이 된다. 곧 주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12 주의 백성이 오래도록 폐허로 남아있던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하며, (성전/성벽)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은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13 유다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다. 안식일에 여행이나 쾌락을 일삼지 말라고 하신다. 안식일을 즐거운 날, 존귀한 날이라고 부른다면, 자신의 쾌락을 찾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 14 대신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이 백성을 영화롭게 하시고,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곳이 하나님나라라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 나라가 아니라 주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말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공의를 묻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삶이다. 자기 욕심에 따라 서로 싸우는 (남보다 나를 위한) 금식과 기도를 주님은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57:14-21 읽기

14 주님께서 “나의 백성이 걷는 길에 거치는 것이 없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누구에게? 주의 종에게. 15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영훤히 살아 계신 분,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분이시다. 이런 주님께서 겸손한 사람과,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 함께 계신다. 겸손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시고, 회개하는 사람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 주신다. 16 주님께서는 사람들과 다투고, 사람들에게 한없이 분을 품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피조물과 끝없이 다투고 한없이 분을 품었다면 사람이 어찌 견뎠겠냐고 반문한다. 17 주님이 사람의 탐욕스러운 죄에 대해 노하셔서 벌을 내리셨고, 주님의 얼굴을 가리셨는데도, 그들은 끝내 주님을 거역하고 각자 자기 마음에 내키는 길로 갔다고 하신다. 18 주님은 사람의 소행이 어떤지 다 아신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을 고쳐주겠다고 하신다. 그들을 인도하고 도와주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19 주님께서 “원근각지의 사람에게 평화, 평화가 있어라” 하고 말로 평화를 선포하신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고쳐주마” 하고 약속하신다. 20 그러나 악인들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 잠잠하지 않고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아 올린다. 21 주님께서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하고 말씀하신다.

//임마누엘은 겸손한 사람과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누린다. 그런데 사람들 스스로는 겸손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그들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심으로 약속을 성취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선포하시는 평화, 평화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악인이요,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고 선언하신다. (평화는 샬롬이고, 샬롬 중의 샬롬은 임마누엘이다. 시인은 샬롬을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겠습니다” 라고 노래한다.- 시23:6 새번역)

이사야 56:9-57:13 읽기

9 주님은 들짐승들에게 와서 주님의 백성을 잡아 먹으라고 명하신다. (왜냐하면) 10 주의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지도자들이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파수꾼의 역할을 못할 뿐더러, 기껏 한다는 것이 허탄한 것을 꿈꾸고 게으르게 잠만잔다고 책망하신다. 11 심지어 지도자들이 굶주린 개처럼 자신들의 배만 채우지, 백성들을 돌보는 분별력이 없다고 하신다. 자기소견에 좋을 대로만 한다고 지적하신다.12 그들을 술에 취한 도적이라고 부르신다.

57:1 (술에 쩌든 도적과 같은 지도자들은) 의인이 망해도 , 경건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신다. 의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실상은 재앙을 피하여 가는 것이라고 하신다. 2 의인과 경건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 평화로운 곳으로 들어간다.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죽어서 평화로운 곳에 편히 누울 것이다. 3 주님은 술에 쩌든 도적과 같은 지도자들을, 점쟁이 자식이요, 음행하는 자와 창녀의  자녀들이라고 지칭하시며 심판의 자리에 불러내신다. 4 그들을 조롱하는 자요, 거역하는 자의 자식이요, 거짓말쟁이의 자녀라고 조목조목 고발하신다. 5 그들이 정욕에 불타 바람을 피우며, 자식들을 죽여 제물로 바쳤다고 죄상을 낱낱이 밝히신다. 6 그들이 돌들로 우상을 세우고, 우상에게 술을 부어 바치고 제물을 바치는 꼴을 주님이 어찌 기뻐하겠느냐고 반문하신다. 7 그런데도 그들은 산 위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8 (심지어) 집에까지 우상을 세워 놓았다. 주님은 그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나서 우상과 음행을 저질렀다고, 정욕을 불태웠다고 고발하신다. 9 ‘몰렉’이라는 신을 섬기고, 또 다른 신들을 찾느라고 먼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지옥까지 내려갔다고 하신다. 10 신들을 찾느라 헛수고를 하였으면서도, 마치 우상들이 너에게 새 힘을 주어서 지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하신다. 11 주님을 속이고 주님을 잊게 할만큼 주의 백성들을 두렵게 하는 신들이 누구냐고 반문하신다. 주님께서 우상에게 매달리는 주의 백성에게 오랫동안 침묵하신다고 주의 백성이 주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냐고 반문하신다. 12 주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주님은 이렇게 낱낱이 폭로하신다. 우상들은 그들을 도울 수 없다. 13 주님은 주의 백성들에게 우상들에게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 보라고 비웃으신다. 우상이 돕기는커녕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존재라고 하신다. 아니 입김에도 쓸어 버려질 존재라고 하신다. 오직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만 땅을 차지하여 거기서 살고,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주님을 예배할 것이라고 하신다.

//의인이라도 망하고, 경건한 사람이라도 죽는다. 그러나 의인과 경건한 사람은 평화로운 곳에 편히 눕는다. 의인과 경건한 사람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산다. 대신 악인은 심판의 자리에 불려나간다.

이사야 56:1-8 읽기

1 주님께서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2 공평을 지키고 공의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공평과 공의가 구원이요 주님의 ‘의’다.) 안식을 지켜서 더럽히지 않는 사람, 어떤 악행에도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3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하는 사람을 주님은 출신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신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간에 차별이 없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고 적용한다. 고자라도 마른 장작에 지나지 않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 4-5 주님은 이방사람들에게, 고자라도 안식일을 지키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주님과 맺은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이방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의 지체로 영원히 기억된다고 하신다. 성전의 지체로 참여하는 것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자자손손 가문의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낫다고 하신다. 6-7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방사람과 유대사람 간에 차이가 없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주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사람들을 주님은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주님의 집, 곧 성전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주님은 이방사람들이 드리는 제물을 기꺼이 받으실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집, 곧 성전을 기도하는 집,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신다. 8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을 다시 모으시는 주하나님께서, 이미 주님께로 모아 들인 사람들 외에 또 더 모아 들이겠다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할 때 가까이 온다.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할 때 주님의 의가 나타난다. 그래서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삶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악행에도 손을 대지 않는 정결은 삶 전반에서 행해져야 한다. 본문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반복하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 자손이라도 주님과 맺은 언약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고자와 같은 이방 사람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집, 곧 성전에서 기쁨을 누리는 지체가 될 수 없다. 오직 주님과 맺은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만이 누리는 복이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철저히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다시 주님의 말씀 앞에 나오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