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0:4-51:8 읽기

4 주님께서 나를 (누구?)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셨다. 학자처럼 말한다는 것을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는 것이라고 토를 단다.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는 능력은 주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시기 때문이다. 학자처럼 말한다는 것은 주님이 할 말을 미리 가르쳐주셨다는 뜻일 것이다. 5 주님은 나의 귀를 열어주셔서  주님께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게 하셨다. 6 대신 사람들에게는 등짝을 맞았고, 수염을 잡히고 뺨을 맞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침을 뱉고 모욕해도 나는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내가 모욕을 당해도 마음 상하지 않도록 도우셨고, 나도 주님 뜻대로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뎠다. 나는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8 나를 의롭다 하신 주님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데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아무도 나를 고소하지 못한다. 고발한다 해도 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10 독자들에게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종에게 순종하라고 반문한다. 어둠속을 걷고, 빛을 모른다하여도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며, 주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권면(명령)한다. 11 독자들이 스스로 횃불을 들고 불을 피운다하여도, 오히려 그불에 자신들이 소멸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스스로를 밣히기 위해 피운 불을 주님은 그들을 벌하는데 사용하실 것이다.

51:1 구원을 받고자 한다며 주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도 나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주님은 돌멩이 같은 너희를 구덩이에서 구해내셨다.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진 것은 주님이 은혜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3 주님이 시온을 위로하신다. 황폐한 곳을 위로하신다. 황폐한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신다. 사막을 동산처럼 만드신다. 그곳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며, 감사와 찬송의 노랫소리가 깃든다. 4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부르신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라고 부르신다. 법은 주님으로부터 나오고 주님의 의가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주님은 의를 속히 베푸실 것이고, 의인을 구원하실 것이고,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다.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들은 주님의 처분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6 창조가 있듯이 종말도 있다. 사람들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졌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주님의 의는 꺾이지 않는다. 7 의를 아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이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아는 것,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을 비방하는 자들이야말로 서서히 죽어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의 의는 영원하다. 주님의 구원은 영원히 이어진다.

//성도라면 누구나 주의 종이다. 성도라면 누구나 주 예수의 제자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침마다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삶을 통해 들은 말씀을 행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의를 베푸시는 이유다. 의인과 악인의 구분은 주님의 법을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시편1편의 시인은 노래한다.

이사야 49:14-50:3 읽기

14-18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곳이다. 곧 하나님나라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이 자신을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로 주님의 백성을 잊지 않았다고 대답하신다. 부모처럼, 아니 부모보다 더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지켜 보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시온과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사람, 곧 하나님나라를 황폐하게 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주님의 백성 모두가 시온과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여들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맹세로 약속하신다. 신부가 패물을 자랑하듯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자랑할 것이다.

19-22 주님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벌하셨다. 그럼에도 주님의 백성을 남겨 두셨다. 심지어 백성이 너무 많아 시온과 예루살렘이 비좁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활개치던 자들을 떠나보낼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백성이 시온과 예루살렘이 너무 비좁다고 , 넓혀 달라고 주님께 간청할 것이다. 주님의 백성은 자신들이 뿔뿔히 흩어져 포로로 잡혀갔던 것을 기억하고 어떻게 시온과 예루살렘이 좁을 정도로 백성이 많아졌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뭇민족을 주님의 백성으로, 뭇 백성을 주님의 자녀로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부르셨다고 대답하신다. 

23-26 주님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이 주님의 다스림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주님만이 적군에게서 전리품을, 폭군에게서 포로를 내올 수 있는 분이시다. 주님만이 구원자다. 주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살육하던 자들로부터 주님이 구원하신다.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뭇 민족과 뭇 백성 가운데서 행하신다.

50:1-3 주님은 다시 한번 시온과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법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주님의 백성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포로가 된 것을 죄때문이라고 하신다. 왜 주님께 용서를 빌러 나오지 않았느냐고, 심지어 주님께서 구원의 손을 내미실 때에 왜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호통하신다.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신가? 시온과 예루살렘이라도 죄를 지으면, 아니 주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으면 살아남 수 없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긍휼에 응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이사야 49:1-13 읽기

1 주님은 세상 모든 나라/민족들에게 말씀하신다. 그것도 경청하라고 명령하신다.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는 주님께서 자신을 모태에서부터 아시고 기억하셨다고 입을 뗀다. 2,3 주님이 이사야의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이사야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신 후 감추고 계시다가 이제 이스라엘을 주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 4 이사야는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전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괜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주님께서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해 주시고, 그 일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고 말한다. 5 이사야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주님께서 이사야를 택하셨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사야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다. 주님은 이사야의 힘이 되셨다. 이런 주님이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은 이사야에게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살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땅 끝까지 구원이 미치게 하는 것이다. 뭇 민족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내가 너를 뭇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하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멸시받는 사람, 미움을 받는 사람, 종살이를 하는 사람들도 구원하시길 원하신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은 멸시받고 미움받고 종살이 하는 사람들도 세상 왕들과 지도자들에게 존중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8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유를,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를, 살려주고 도와주시는 이유를,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뭇 백성과 언약을 맺는 중계자로 삼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뭇 백성과 언약을 맺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9 감옥에 갇힌 자들을 자유인으로, 어움에 갇힌 자들에게는 밝은 곳으로 나오게 하신다. 굶주린 자들을 배부르게 하신다. 10 더이상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게 하신다. 무더위도 그들을 해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긍휼하신 주님이 그들을 샘이 솟는 곳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11 주님은 큰 길을 만들어 주님의 백성이 자유스럽게 여행하도록 하신다. 12 사방에서 주님의 백성이 주님의 나라로 들어오도록 큰 길을 닦아주신다. 13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워 하는 이유, 피조물들이 찬양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의 종이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자가 누굴까? 일단 본문을 읽을 때는 이사야 선지자라고 넣어서 읽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의 종으로 읽힐 수도 있고, 사도들 특별히 바울이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구원받은 성도로 적용할 수도 있겠다. 하여간 주님의 종은 긍휼히 여김을 받고 긍휼을 베푸는 자다. 주님의 종이 부름을 받은 이유도 뭇 백성을 긍휼히 여기기 위함이다. 이것이 땅 끝까지  전해야할 구원, 곧 복음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나라가 하나님나라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나라다.   

이사야 48:12-22 읽기

12 주님이 불러낸 이스라엘. 주님은 이스라엘을 불러내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불러낸 분이 주님이라고 선포하신다. 주님이 시작이요 마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13 주님은 다시 한번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모든 피조물이 주님 앞에 굴복한다고 말씀하신다. 

14 생명 없는 우상들은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이번에는 고레스 왕을 세우셔서 바빌론을 공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 15 주님께서 고레스를 불러내서, 고레스로 하여금 바빌론과의 싸움을 이기게 (형통하게) 하신다. 

16 이사야는 이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다. 이사야 자신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며, 주님의 영도 함께 한다고 전한다. 17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곧 이스라엘의 ‘주’다. 이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치며, 이스라엘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로 인도하신다. 18 이스라엘이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였으면 이스라엘에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이스라엘에 공의가 바다의 파도같이 넘쳤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9 이스라엘 자손이 모래처럼 번성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신다. 

20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바빌론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바빌론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라고 명하신다. 출바빌론이 주님께서 주님의 종 이스라엘을 속량(구원)하시는 방법이다. 이스라엘은 출바빌론을 즐겁게 소리를 높여서 땅끝까지 전해야 한다. 21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지만 전혀 목마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님이 물을 내셔서 이스라엘로 마시게 하셨기 때문이다. 22 주님께서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주님은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고레스 왕을 세우시고, 고레스를 주님이 사랑하는 자, 주님의 기뻐하는 뜻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고레스의 형통은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불러주시고 주님이 인도하신 결과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순종에 실패했다. 주님은 다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도가 누릴 평화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면 성도는 공의를 베풀게 된다. 제국의 한복판에서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말고 탈출하라고 하신다. 돈 명예 탐욕의 갈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주님의 영이 함께하실 때 누릴 수 있다.

이사야 48:1-11 읽기

1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잘 아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진실이나 공의라고는 전혀 없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신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정의와 공의의 삶을 상실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을 거룩한 성읍 백성, 곧 선민이라고 자처한다. 말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자랑한다. 이런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3 주님은 오래전에 장차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성취해 오셨다. 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완고했다. 5 주님이 예언의 말씀을 들려주신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대신 ‘우상’이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6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의 말씀을 들었고 그 일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주님은 우상이 아니라 참 하나님(신)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주님은 곧 일어날 새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직까지 알려주지 않은 은밀한 일이라고 하신다. 7  곧 일어날 새 일을 ‘창조’라고 하신다. 옛적에 일어난 일과 다르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일이라고 하신다. 8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선택할 때부터 반역자라고 불러 마땅한 자로 태어났다고 하신다. 반역자 이스라엘 백성이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9 주님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반역자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참고, 주님의 영예(영광) 때문에 자제하여 이스라엘을 파멸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10 파멸 대신, 고난과 시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단련시켰다고 하신다. 11 주님은 주님 자신의 이름과 주님의 자신의 영예를 위하여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에 따라 파멸 대신, 고난과 시험으로 단련시켰다. 주님의 영광이 남에게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려고.

//정의와 공의를 상실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공의를 베푸는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것을 새로운 창조라고 하신다. 성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고난과 시험으로도 연단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한 새 일은 무엇일까? 바벨론은 자비 없는 자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못해서 교만으로 망했다. 주님의 새 일이란 불성실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을 가족으로, 자녀로 부르셔서 (구원하셔서) 공의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신다. 자비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새 일이요, 성도가 본받아야 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