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39-49 읽기

39-42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가르치셨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자기의 스승과 같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친구의 눈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래야 네가 똑독히 보게 되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43-45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또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 속의 선한 것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속에 있는 악한 것을 낸다.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49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그는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니,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고, 그 집의 무너짐이 엄청났다.”]

//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한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원수를 용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치셨다.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와 마찬가지로 눈먼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둘 모두 구덩이에 빠진다. 그만큼 하나님의 잣대를 가지고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예수께서는 청출어람을 기대하시지 않으셨다. 스승과 같이 되기만을 바라신다. 본보기가 되신다. 바울도 에베소 성도들에게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라고 편지한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선 영원히 청출어람은 있을 수 없다. 청출어람을 들먹이면 이단이다. 성도의 머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시다.

//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먼저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야 한다. 내가 가진 잣대를 버리고 하나님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 둘째로 포도나무이신 예수께 가지로 붙어서 열매 맺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많은 열매란 주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듣고 행하는 것 자체가 곧 열매다. 순종의 결과로 열매가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는 실패라 해도, 순종 자체가 좋은 열매다.

누가복음 6:27-38 읽기

27-31 예수께서는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대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라.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3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칭찬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정도는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38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정죄하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정죄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두실 것이다.

// (27-31)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32-36)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길이다. (37-38)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을 (원수를) 용서해야 한다.

// 그러나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나? 그래서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셨다. 죄인된 (하나님께 원수된) 우리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곧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원수를 선대하고 축복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 사랑은 용서다. 용서는 가장 큰 사랑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핵심이다.

누가복음 6:12-26 읽기

12-16 그 무렵에 예수께서 산으로 떠나가셔서 기도하셨다. 밤새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날이 밝았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둘을 사도로 뽑으셨다. 열둘은 다음과 같다. 시몬 베드로,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배반자가 된 가룟유다.
17-1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다. 사도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로 큰 무리를 이뤘다.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도 많은 백성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고자 몰려 들었다. 귀신 들려 고통 당하던 사람들도 고침을 받았다. 온 무리가 예수께 손이라도 대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께로부터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20-2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배부른 너희에게는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웃는 너희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같이 행하였다.


// 그 무렵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을 어떻게 할까 논의하기 시작하던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협 속에서 예수께서는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 예수께 기도란 무엇이었을까?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밤새 하나님과 함께 한 예수께서 날이 밝았을 때 하신 일이 곧 기도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가 열두 명의 사도를 뽑는 일이었고, 둘째가 변함없이 예수께 나아오는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고, 셋째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 사도를 뽑으셨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갈 자들을 뽑으셨다는 뜻이다. 곧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아니셨다. 사람과 똑같이 제한을 받으셨다. 예수로부터 나오는 치유와 축귀의 능력도 예수와의 물리적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슬피우는 사람, 예수께 나아오는 사람이 (제자들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 나라가 제자들의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반면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곧 지도자들은 부요함에 취해있고, 배부름에 만족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비웃으며 예수께 나오기는 커녕, 예수를 어떻게 할까 의논하니 하나님 나라에서 떠난 자들이라고 가르치신다.

//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나라다. 가난함과 굶주림과 슬픔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핍박이 변하여,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배부르고 웃고 기뻐하고 뛰노는 나라다. 영생, 곧 임마누엘의 나라다. 예수께 나온 자들은 예수와 함께 함으로 임마누엘을 맛보기 시작한다. 한편,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삶의 목적이 나의 위안, 나의 부요, 나의 배부름, 나의 기쁨이라면, 이런 것은 오히려 화와(재앙과) 굶주림과 슬픔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영벌이다. 망하는 나라다.

누가복음 6:1-11 읽기

1-5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라고 따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윗과 일행이 주렸을 때,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제단 빵을 먹고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선언하셨다.

6-11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다.  그 회당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신 후, 그가 일어나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질문하셨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주변 사람들은 잠잠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시고 “네 손을 내밀어라” 라고 명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 손이 회복되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화가 잔뜩나서,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촛점을 맞추시고 가르치셨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적용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하지 말라’는 교훈은 한 때 쓰다가 없어지는 것이요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것들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어서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적용한다. 예수와 안식일 논쟁을 하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랐던 전형적인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성도들은 사람의 규정과 교훈이 아니라, 온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는 공동체다.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착한 일, 옳은 일, 의로운 일을 해야 한다.  

누가복음 5:27-39 읽기

27-32 예수께서 걸음을 옮기셨다. 세리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레위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께 큰 잔치를 베풀었다. 많은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한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예수께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고 대답하셨다.

33-39 사람들이 예수께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 군요.” 라고 비꼬았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에게, 신랑과 함게 있는 동안 금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하시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날에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도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서, 낡은 옷에 깁는 사람은 없다. 새옷도 찢어져서 못쓰게 되고, 새옷에서 떼어낸 조각도 낡은 옷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는 사람은 없다. 새 포도주가 낡은 부대를 터뜨릴 것이며,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쓰게 될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

// 세리 레위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레위가 요한의 가르침대로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다. 다시말해 예수께서 레위를 부르신 것은, 레위가 세례받고 죄를 회개하였고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왔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하나님나라를 보여 줌으로써,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려는 것이다. 그동안 써먹었던 ‘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라는 바울의 선언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 (사회적 약자들),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함께 잘 사는 나라다.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그곳에 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다. 개인의 ‘의’에만 집착하던, 스스로는 의롭다고 생각하던 바래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도무지 적용할 수 없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것이 의와 평화와 기쁨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로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보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더 의롭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다고 생각했더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이런 종교적 사고를 ‘온고지신’을 모르는 ‘구관명관’이라고 지적하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많은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선한 뜻, 곧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라고 미가 선지자는 선포했다.

// 새 포도주라고 성분이 다른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도 변함이 없으시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전통과 관습이라는 낡은 부대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새 부대로 읽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