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1 (1-18)

예루살렘이 패망한 해에 주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애굽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애굽의 바로 왕과 애굽 백성들의 큰 위엄을 앗수르 사람들에게 비교한다.

앗수르는 애굽못지 않은 (애굽보다 더 큰) 강대국이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동산에 있던 백향목과 그 어떤 나무도 앗수르의 레바논 백향목의 아름다운 모양과 같이 못하였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앗수르의 레바논 백향목을 다 시기했다고까지 말씀하신다. 이런 앗수르가 마음이 교만하였다고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교만한 앗수르의 결국도 패망이다. 주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함부로 대우할 수 있는 더 강한 나라를 여럿 세워 앗수르를 패망시키실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교만을 ‘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앗수르는 더 강한 여러나라에 의해 찍힘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 모든 백성이 더 이상 앗수르의 레바논 백향목을 의지하지 않고, 대신 레바논 백향목을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갈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앗수르의 레바논 백향목 비유의 교훈을 설명하신다. 키가 큰 나무라고 교만하지 말아라. 자고하지 말라고 하신다. 교만한 자, 스스로 높아진 자도 모두 죽는다. 심판의 날에 면류관이 아니라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백향목 그늘에 살던 나무들, 곧 앗수르에 의지하던 나라들은 앗수르도 패망하는 것을 보고 화려하고 아름다와도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운명도 앗수르의 레바논 백향목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신다. 바로와 애굽 군대의 운명이라고 하신다.

// 크고 강하고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그 영화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교만하고 자고하면 패망이요 죽음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 주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의지할 것은 레바논 백향목 같았던 앗수르도,  신흥 강국 바벨론도, 오래된 강국 애굽도 아니라 주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라고 하신다.

에스겔 30 (1-26)

애굽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이어진다. 애굽이 통곡하며 애가를 부를 날이 가깝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이다. 애굽과 한편이 된 여러나라들도 함께 심판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이 전쟁에서 패망할 때, 구스와 붓과 룻과 굽 등 애굽과 동맹한 나라의 백성들도 함께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을 도와주는 나라들도 함께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의 교만을 낮추실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과 함께 한 나라들은 황폐해질 것이라고 하신다. 사막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과 동맹국들이 패망할 때 그들이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구스사람들은 괜히 애굽과 동맹했다는 이유만으로 애굽의 재앙의 날에 함께 근심하게 될 날이 오게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사용하셔서 애굽과 동맹국들을 패망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이 의지하던 나일 강을 마르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애굽이 더이상 나일 강의 주인이 아님을 뜻한다. 나일 하구의 비옥한 삼각주들도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주하나님이 참 신(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우상들을 없애기 위해서다. 우상의 신상들을 부수기 위해서다.

바드로스, 소안, 노나라, 신나라, 놉나라, 아웬, 비베셋, 드합느헤스… 애굽과 애굽의 동맹국들은 주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심판의 주 되심을 알게될 것이라고 하신다.

다시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재 날, 애굽에 대한 심판이 성취됨을 말씀하신다. 남유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대신 애굽을 의지하려고 했지만 주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을 통해 애굽부터 패망하게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팔을 들어주시고 바로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라고 하신다. 애굽 사람들도 나라들 가운데로 흩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주하나님이 참 신(하나님)이신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열방들은 저들의 교만으로 주하나님의 백성들은 열방들을 의지한 불순종으로 심판을 받는다. 반복되는 메세지는 주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심판의 목적은 단하나다. 정의와 공의와 사랑의 주하나님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주하나님을 모르고 교만한 나라의 결국은 풀무에 던져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불순종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소용이 없다. (마8:12) 주의 종이라도 소용없다. (마24:51, 25:30)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순종하라고 하신다.

에스겔 29 (1-21)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 아직 예루살렘은 함락되기 전이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반기를 들고 대신 애굽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던 시기다. 이때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애굽을 향해서도 예언하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을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바로 왕은 애굽을 가로지르는 나일강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큰 악어라고 (나일 강을 지배하는 큰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나일 강에서 큰 악어와 물고기들을 낚시하시겠다고 하신다. 나일 강의 모든 물고기를 들짐승과 공주의 새의 먹이로 주신다고 하신다. 나일 강과 그 속에 모든 물고기를 다스리시는 분도 주하나님이시다.  그제사 애굽의 모든 주민이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이 의지하던 지팡이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지팡이가 아니라 몸을 맡길 수 없는 갈대로 만든 지팡이라고 하신다. 갈대로 만든 지팡이를 의지한들 지팡이가 부러져 어깨를 다치고 허리를 삘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애굽은 의지할 바가 못된다고 알려주시고 애굽에 대해서는 교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애굽은 주하나님의 말씀대로 칼로 망할 것이다. 애굽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될 것이다. 나일 강과 나일 삼각주의 풍성함으로 자랑하던 애굽을 주하나님께서 쳐서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애굽 땅은 40년동안 황폐해지고 애굽 백성은 열방가운데 흩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40년 후에 주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을 열국으로부터 다시 모아 내시겠지만 애굽은 더이상 강국이 아니라 약국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변 국가를 다스리는 강국의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의지하지 못할 약소국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더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의지할 참 하나님 (신)이심을 알것이라고 하신다.

스물입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 언제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로를 칠 때라고 한다. 그런데 바벨론 왕은 두로 침공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두로까지 간 김에 두로 대신 애굽을 공격해서 승전했다. 주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애굽을 심판하시는 주하나님의 뜻이라고 밝히신다. 그들의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깐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는 애굽이 바벨론에게 지는 날이 임박해서 주어진 예언일 것이다.

그 날에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뿔이 돋아나게 하시고 에스겔을 세워 주하나님 말씀을 입을 열어 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강대국 애굽은 패망하는 때가 곧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더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않는 때가 주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보지 않고 다른 것들을 본다면, 그 다른 것들은 나와 함께 줄줄이 패망당할 것이다. 주님의 자리에 앉은 모든 것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망한다. 그 다른 것들이 다 패망해서 내가 주님 외에 도움을 바라볼 곳이 없을 때에 주님은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결국은 주님 한 분 외에 한눈팔지 말라고 하신다.

에스겔 28 (1-26)

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기 때문인지 여러장에 걸쳐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 왕에게 전할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두로 왕의 잘못은 교만이라고 하신다. 두로 왕은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고 화려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신격화 했다. 해상무역을 주름잡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주하나님은 명확하게 지적하신다. 두로 왕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하나님처럼 지혜롭다고 생각해도) 사람에 불과하다.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

두로 왕은 자신이 지혜롭고 총명해서 두로가 재물을 얻었고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만했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와 같다는 두로 왕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주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두로를 이방 여러나라를 사용하여 치신다. 두로의 아름다움과 영화를 패망시키실 것이다. 해상무역으로 흥한 두로를 배가 깊은 바다에서 침몰함 같이 멸망시키실 것이다. 죽음의 심판을 당하여서야 두로 왕은 자신은 사람이요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음. 주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라 하신다. 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다 해도 여느 이방과 다를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방에게는 회복의 약속이 없다.) 주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두로뿐만 아니라 두로 왕을 위해서도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두로 왕에 대한 애가도 두로에 대한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한다. 두로 왕의 옥새는 해상무역에서 신뢰를 받았다. 한마디로 보증수표였다. 두로왕은 지혜로왔다. 하나님께서 두로를  에덴동산 같이 지켜주시자 두로를 온갖 보석으로 단장하고 (애가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노랫소리가 흘러넘치는 나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는 표현에서 주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두로 왕을세워주시고 지켜주셨다.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국은 두로 왕의 불의로 끝난다. 해상무역으로 부요하게 되자 범죄 (아마도 불공정 거래) 하였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두로를 더이상 지켜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다. 그리고 심판의 불로 멸하신다. 아름다움이 두로 왕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두로 왕의 지혜를 더렵혔다. 결국 두로 왕은 열방의 왕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두로는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 하다고 하신다. 네 모든 성소를 더렵혔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두로 왕은 더이상 자신의 양심을따라 무역을 하지 않고 탐욕을 따라 무역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 결국은 심판의 불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할 것이다. 영벌이다.

주하나님의 심판은 두로의 이웃 시돈으로 향한다. 시돈을 심판하심으로 주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심판의 목적이 바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시돈이 전염병과 전쟁의 칼로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시돈으로 하여금 더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가 삼세번 반복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한고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았던 시돈도 다시는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은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온 이스라엘과 열방의 심판을 통해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듯이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모아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하심으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평안이요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멸시하던 모든 자들에게는 심판이라고 말씀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주하나님을 알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임마누엘) 평안이요, 임마누엘을 멸시하는 것은 심판(멸망)이다. // 오늘도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할 이유다. 내가 정결해야 할 이유다. 주님은 불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

에스겔 27:26-36

두로에 대한 애가 1절은 두로의 온전한 아름다움과 영화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두로를 아름다운 무역선으로 지어졌음을 노래한다.

2절은 두로라는 아름다운 무역선이 바다 한가운데서 파선당함을 노래한다. 깊은 바다를 누비며 당당히 무역을 해왔는데 동풍에 침몰 당한 것이다. 무역하던 자들, 사공과 선장, 배의 틈을 막는 자, 상인들, 안전요원들 등등 두로라는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모든 무리는 배와 함께 침몰할 것이라고 하신다.

선장이 침몰을 막으려고 소리질러 봤자 파도소리에 묻힐 것이다. (이곳 저곳에게 도움을 구해봤자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이다. 도움은 주하나님에게서만 온다.) 파선한 배에서 탈출한 사공과 선장은 침몰한 배, 곧 두로를 보면서 통곡할 것이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침몰한 후에 마음아프게 슬피 통곡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두로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당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라고 애가를 부를 것이다.

두로는 그자체가 재물하나님(신)이었다. 여러나라 여러민족이 두로를 중심으로 무역을 통해 풍족했었다. 그러나 파선해서 깊은 바다속으로 침몰했다. 주하나님 대신 재물을 섬긴 결과다. 무역선의 침몰소식에 백성들도 왕도 놀라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게 될 것이다. 열방은 두로를 비웃을 것이다. 이웃들이 두로의 침몰을 ‘아하 좋다’할 것이다. 주하나님은 두로는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애가를 마무리 하신다.

// 파선과 침몰은 끝이 아니다. 세상 근심에 시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후7:10 새번역) 두로에 대한 애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진 노래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의 패망을 노래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