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9:1-13 읽기

1-4 시인은 하나님께 이방 나라들이 주님의 땅으로 들어와서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었다고 하소연 한다. 이방 나라들이 주님의 종들을 죽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먹이로 내주고, 주님의 성도들을 들짐승의 먹이로 내주었지만, 희생당한 이들을 묻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절규한다. 주님의 백성이 이웃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5-6 시인은 주님께 언제까지 주님의 백성을 노여워하시겠냐고 묻는다. 영원히 노여워하시겠느냐고 묻는다. 주님의 진노하심이 언제까지 불처럼 타오를 것인지 묻는다. 그런면서 주님의 진노를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쏟아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방 나라들 위에 쏟아부어 달라고 기도한다.

7-8 이방나라, 이방인들이야말로 야곱을 집어 삼키고 폐허로 만든 사람이라고 고발한다. 조상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벌하지 마시고,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영접해 달라고 매달린다. 우리의 비천한 처지를 아뢴다.

9-13시인은 하나님을 구원자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하면서 우리를 비웃지 못하도록, 주님의 백성이 흘린 피를 주님이 갚아 주시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알려 달라고 기도한다.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시고 죽게 된 사람들을 주님의 능하신 팔로 살려 달라고 요청한다. 주님을 모독한 이웃 나라들을 일곱배로 갚아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주님의 백성이요 주님이 기르시는 양 떼인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감사드리겠다고, 대대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겠다고 노래한다.

//우리, 주님의 백성은 언약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시인은 언약에 의지해서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이방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는 길이라고 기도한다. 물리적인 성전은 무너졌어도, 우리에게 언약에 따라 긍휼을 베푸셔서 , 이방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계심을 드러내시길 간구한다. 주님의 양 떼인 우리가 (영적인 성전이 되어) 드리는 영원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 홀로 받으시길 노래한다. ///시인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긍휼하시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님을, 곧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언약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 나라는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어떤 형편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나훔 3:1-19 읽기

1-4 너(니느웨)는 망한다! 피의 도성!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이 그치지 않는 도성! (하나님이 보내신) 기병대의 습격으로 떼죽음을 당한다. 왜햐하면 니느웨(앗수르)가 음행을 일삼고, 사람들과 뭇나라를 홀리고 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5-7 주님께서 니느웨를 치신다. 니느웨를 벌거벗기셔서 수치스럽게 하실 것이다. 오물을 뒤집어 쓰게 하시고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니느웨를 보면서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8-17 나일 강 옆에 자리 잡았던 큰 성읍 테베도,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와 붓과 리비아가 도와주었던 테베의 거주민들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죽은 것과 같이, 니느웨 또한 술에 취해서 갈팔질팡하고 원수를 피하여 숨을 곳을 찾아 허둥지중하게 될 것이다. 니느웨는 침략자의 먹이가 될 것이다. 싸울줄 모르는 여자와 같은 병사들로는 니느웨를 지킬 수 없다. 요새를 탄탄하게 해 두어도 느치가 풀을 먹어치우듯 황폐하게 될 것이다. 니느웨를 지키는 수비대가 느치처럼 수가 많다해도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니느웨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18-19 앗시라아 왕아, 네 목자들, 네 귀족들이 모두 죽고, 네 백성이 흩어졌으나 다시 모을 사람이 없다. 네 상처는 고칠 길이 없다. 네 부상은 치명적이다. 네가 망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기뻐서 손뼉을 친다. 너의 계속되는 학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니느웨가 망한 이유는 음행이다. 나아가 음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알고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꾀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런 니느웨를 치셨다. 한 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들의 포악함은 지나쳤다. 오죽했으면 니느웨가 망한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을까? //음행은 우상숭배요,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다. 최악의 음행, 우상숭배는 약자들에 대한 물리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라고 생각한다. 사랑 없이 의를 빙자한 정죄다. 교만이다.   

나훔 2:1-13 읽기

1 침략군이 너(니느웨)를 치러 올라왔다. 성을 지켜보고 길을 지켜보고 허리를 질끈 동이고 힘을 다하여 막아보라고 하신다. 2 (침락자들이 야곱과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포도나무 가지를 없애 버렸지만 주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3 적군들은 일사불란하게 공격해 온다. 4 병거들은 질풍처럼, 횃불처럼, 번개같이 거리를 휩쓴다. 5 정예부대를 앞세워 돌격해서 성벽부수는 장치를 설치한다. 6 마침내 강의 수문이 터지고 왕궁이 휩쓸려서 떠내려간다. 7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고 시녀들이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며 가슴을 티게 될 것이다. 8 생길 때부터 주민으로 가득했던 니느웨, 그러나 이제는 모두 허겁지겁 달아난다. 멈추라고 외쳐도 뒤돌아보는 사람이 없다. 9 금 은 보화가 털린다. 10 털리고 털려서 빈털터리가 되어 가슴도 떨리고 무릎도 후들거리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11 니느웨의 용맹은 어디로 갔느냐? 12 니느웨는 포악으로 자기 배와 창고를 채웠다. 13 이제 만군의 주님께서 니느웨를 치신다. 주님께서 니느웨의 병거를 불살라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실 것이다. 니느웨는 대가 끊길 것이다. 세상에서 진멸당할  것이다. 니느웨의 이름이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 니느웨의 종말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침략군은 아마도 바벨론(메대와 갈대아 연합군)일 것이다. 니느웨는 침략군을 힘을 다하여 막아보겠지만 무너질 것이다. 한 때, 니느웨(앗수르)가 야곱과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포도나무 가지를 없애 버렸듯이, 이번에는 니느웨가 진멸당할 것이다. 그래도 주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의 영광은 회복시키실 것이나, 니느웨는 회복할 수 없도록 멸망시키실 것이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도구로) 포도나무 가지를 없애 버렸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이요,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 가지로 회복하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참포도나무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가지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참포도나무이신 예수께 접붙어 열매를 맺어야 한다. 참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마른가지는 니느웨처럼 불살라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유다나 니느웨나 차별이 없을 것이다. 그냥 포도나무(육적 이스라엘)가 아니라 참포도나무(예수)에 붙어 있어야 한다. ///내 안에 말씀이 거하시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나훔 1:1-15 읽기

1 엘고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이다. 2 주님은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3 주님은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죄는 반드시 벌하신다. 주님은 구름을 타시고 회오리바람과 폭풍처럼 다니신다. 4 주님은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 모든 강도 말리신다. 바산과 갈멜의 숲이 시들며 레바논의 꽃도 시들게 하신다. 5 주님 앞에서 지진도 일어난다. 6 주님께서 진노하시면 아무도 버틸 수 없다. 누구도 견딜 수 없다. 큰 바위라도 주님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그러나) 7 주님은 선하시다. 환난을 당할 때 피할 피난처가 되신다. 주님께 피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보살피신다. 8 (그러나) 주님께서 니느웨는 범람하는 홍수를 쓸어버리시고, 원수들을 흑암 속으로 던지신다. 9 그들은 주님을 거역하여 음모를 꾸밀 수 없다. 주님께서 그들을 단번에 없애실 것이다. 두번까지 수고하실 이유가 없다. 10 그들은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지고 술고래처럼 곯아떨어져서 마른 검불처럼 다 타버릴 것이다. 11 주님을 거역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 흉악한 일을 부추기는 자가 바로 너 니느웨에서 나온다.

12 나 주가 말한다. 그들의 힘이 막강하고 수가 많을지라도, 잘려서 없어지고 말 것이다. 비록 내가 너(유다)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13 내가 이제 너에게서 그들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너를 묶은 사슬을 끊겠다. 14 너(니느웨)에게서 네 이름을 이을 자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네 산당과 신상과 우상을 다 부술 것이다. 너는 쓸모없게 되었다. 내가 너를 무덤에 장사하겠다. (12-14절은 공동번역을 읽으면 이해가 쉽다.)

15 보아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 평화를 알리는 사람이 산을 넘어서 달려 온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아라. 악한 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는 너를 치러 오지 못한다.

//요나의 선포로 니느웨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켰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가 뉘우치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가 옳았던 것일까? 니느웨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버리고 말았던 모양이다. 요나가 그토록 바랐던 일이 100년 정도 지나, 나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었다. //하나님은 은혜를 저버린 니느웨를 질투하시고 원수로 대하신다.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시라도 죄는 반드시 벌하신다. 나훔은 하나님은 한 번 진노하시면 아무도 버틸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선하신 하나님께 피하는 길 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니느웨는 요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주님께 피하는 길에서 돌이키고 말았다. 자기들의 힘을 믿고 유다 괴롭혔다. 힘이 있다고 폭력을 휘둘렀다. 흉악을 부추겼다. 이런 니느웨에게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신다.(14절) //나훔은 15절에서 좋은 소식, 평화의 소식 곧 복음이 하나님의 언약(약속)에 신실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선포한다.  

요나 4:1-11 읽기

1-3 요나는 이 일, 곧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니느웨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것에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 화가 잔뜩 난 요나가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서둘러 스페인으로 달아났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라도 내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주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책망하셨다.

5-8요나는 그 성읍에서 빠져나와 그 성읍 동쪽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다. 요나는 니느웨가 어찌 되는가를 보고자 했다. 주 하나님이 박넝쿨을 마련하셨다. 주님께서는 박넝쿨이 자라올라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여, 요나를 편안하게 해주셨다. 박넝쿨 그늘 아래서 요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다음날 동틀무렵, 하나님이 벌레 한마리를 마련하셨다. 그 벌레가 박넝쿨을 쏠아 시들게 하였다. 해가 뜨자 하나님이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을 마련하셨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8-11 하나님이 요나에게 “박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시자, 요나는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주께서 요나에게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요나는 정말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창조주이심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시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협했다. 요나는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이방인들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으면서도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 종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요나에게 주님은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느냐고 책망하셨다. //그런데도 요나는 깨닫지 못하고 니느웨가 얼마나 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지  지켜보고자 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마련(예비)한 박넝쿨로 하나님께서 마련(예비)한 뜨거운 햇살과 동풍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벌레 한 마리도 마련(예비)하셔서 뜨거운 햇살과 동풍을 막아주던 박넝쿨을 시들어 죽게 하셨다. 요나는 이번에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런 요나에게 주님은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느냐고 또 반문하셨다. 요나는 옳다뿐이냐며, 박넝쿨이 아까워서 죽겠다고 대답했다. 요나는 철두철미하게 자기를 위했다.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면 가장 좋을 듯 싶다. 반면 요나는 정말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나님께서 요나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아니다. 니느웨 사람들처럼 좌우를 가릴 줄 모른다고, 곧 하나님을 모른다고 자비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아끼신다. 요나가 고백했듯이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에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 없는 분이시다.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아니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은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것을 마련(예비)하시는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