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7:1-22 읽기

1-3 시인은 하나님께 소리 높여 기도하니 귀를 기울여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고난 당할 때 주님을 찾았다. 밤새도록 두 손을 치켜들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구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한숨밖에 안나온다. 주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4-9 주님께서는 시인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신다. 시인이 지쳐서 말할 힘이 없도록. 시인은 지난 날들을 회상한다 밤에 부르던 노래(기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응답받지 못한 기도로) 시인의 영혼에게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도 이제는 끊기는 것일까? 그분의 약속도 이제는 영원히 끝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잊으신 것일까? 그의 긍휼을 거두어들이신 것일까?” 하고 묻는다. 

10-15 (그러나 이내) 시인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던 때를 사모한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회상한다.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한다. 주님께서 해 주신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깊이 되새긴다. (그 결과) 시인은 하나님의 길이 거룩하고,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기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주님의 팔로 구하셔서, 주님의 능력을 만방에 알리신 하나님을 노래한다.

16-20 시인은 물들이 주님을 만났다고 노래한다. 물들이 주님을 뵙고 두려워했다고 노래한다. 비가 오는 것도,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도, 천둥소리와 회오리 바람이, 물들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피조 세계가 (땅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증거들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길을 바다와 큰 바다에도 있지만 사람들은 주님의 발자취를 헤아릴 수 없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양 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부재를 느낀다면, 주님의 놀라우신 일들을 복기해야 한다. 그것도 나에게 행하신 일들만이 아니라, 믿음의 선조들에게 행하신 일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성도라면 십자가까지, 아니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까지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발자취를 헤아릴 수 없다해도, 주님께서 여전히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계심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 주님이 나도 인도하신다. ///시인은 주님의 부재를 생각하면서 무너졌던 마음을 주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면서 다시 세운다.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 된다. 주님이 하신 일들을 성경으로 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 말씀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다.

시편 75:1-10 읽기

1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한다. 나아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파한다.

2-3 하나님께서 “내가 정하여 놓은 그 때가 되면, 나는 공정하게 판결하겠다. 땅이 진동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흔들거리고 비틀거릴 때, 땅의 기둥을 견고하게 붙드는 자는 바로 나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시인이 1절에서 감사 또 감사하고, 주님의 일을 전파하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기 전이다. 그만큼 시인은 확신에 차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7 오만한 자들아 오만하지 말아라. 악한 자들아 오만한 뿔을 들지 말고, 목을 곧게 세우고 거만하게 말하지 말아라. 높이 세우는 일은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낮추기도  높이시기도 하신다.

8-10 주님은 사약을 들고 계신다. 하나님이 이 잔에서 따라주시면, 이 땅의 악인은 모두 마시고, 그 찌끼까지 핥아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주님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인은 악인의 오만한 뿔을 모두 꺾어 부수신 주님을, 의인의 자랑스러운 뿔을 높이 들어 올리신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인은 악인의 오만한 뿔을 모두 꺾어 부술 주님도 미리 보고, 의인의 자랑스러운 뿔을 높이 들어 올리시는 주님을 소망하기에 감사 또 감사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의인들과 함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주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전파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은 그 때가 아직 오지 않았어도 시인은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노래한다. 성도의 간증과 찬송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을 감사 또 감사해야 하고, 이 놀라운 일을 전파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다. //‘오만하지 말아라’ ‘거만하게 말하지 말아라’는 내가 외쳐야 할 선포만이 아니라, 나도 들어야 할 명령이다. 성도라고 오만과 거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겸손 또 겸손해야 은혜에 거한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

시편 74:12-23 읽기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 노래한다.)

하나님은 옛적부터 시인의 왕이시며, 이 땅의 구원자이시다. 주님께서는 바다 괴물들의 머리를 부수셔서 사막에 사는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샘을 터뜨려 물을 내시기도 하시며, 흐르는 강을 메마르게도 하신다. 낮도 밤도 주님의 것이다. 주님께서 달과 해를 운행하신다. 땅의 모든 경계도 주님의 정하신다. 계절도 주님이 만드셨다. (그런데)

원수들이 주님을 비난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주님의 이름을 모욕했다. 시인은 주님께 원수들과 어리석은 백성이 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한다. 대신 멧비둘기 같은 주님의 백성을 들짐승과 같은 원수들과 어리석은 백성에게 내주지 마시고, 가련한 백성의 생명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라고 간구한다.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의 폭력 앞에서, 시인은 주님의 언약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억눌린 자가 수치를 받지 않도록, 가련하고 가난한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시인은 하나님을 깨운다. 주님께 날마다 주님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간청한다. 주님께 항거하는 자들의 소리가 끊임없이 높아지자, 그들이 주님을 대적하는 소리를 잊지 않고 심판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을 고백한 시인은, 하나님을 개인적인 왕이라고 고백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땅의 구원자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 우주를 운행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원수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판을 친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 억눌리고 가련하고 가난하다.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수치를 받지 않는, 가련하고 가난한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언약의 하나님을 깨운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고, 주님을 모욕하고 주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망하는 심판의 날이 속히 오도록 노래한다.   

시편 74:1-11 읽기

버림받은? 시인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랫동안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의 백성에게서 진노를 거두지 않으십니까? 먼 엣날, 주님께서 친히 값주고 사신 주님의 백성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속량하시고 주님의 소유로 삼으신 이 백성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거처로 삼으신 시온산을 기억해 주십시오.

원수들이 주님의 성소를 이렇게 훼손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주님의 발걸음을 옮겨 주십시오. 주님의 대적들이 주님의 성소 한가운데서 승전가를 부르며 승리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밀림의 벌목꾼들처럼 주의 백성을 마구 찍어버렸고, 성소의 모든 장식품도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주님의 성소에 불을 질렀고 주님의 이름을 모시는 곳을 더럽혔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 뵙는모든 장소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징표도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예언자도 없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를 모욕하는 저 대적자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두시렵니까?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저 원수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두시렵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주님의 손을 거두십니까? 주님, 주님의 손을 품에서 빼시고, 그들을 멸하십시오.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오랫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인, 주님의 성소마저 원수들의 차지가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 뵙는 모든 장소를 잃고 말았다. 시인은 더 이상의 기적도, 더 이상의 예언도 없다고 한탄한다. 지금까지 기적과 예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다. 하나님께서 표징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수족으로 사용하하셨다. 마비된 시인은, 할 수 없이 주님께, 주님의 손으로 원수들을 멸해 주시길 바랄뿐이다. 과연 시인은 버림받았을까? 그러나 시인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다. 시인이 주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73:17-28 읽기

(시인은 악인의 형통에 대한 숙제를 안고 살았다.) 그러나 마침내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악인의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는 악인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신다. 악인은 넘어져서 멸망에 이른다. 그들은 갑자기 놀아운 일을 당해, 공포에 떨다 마침내 끝장을 맞이한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에(악몽을 꾸듯) 온종일 괴로웠고, 아침마다 주의 말씀으로 벌을 받아야 했는데,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악인을 망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시인은 악인의 형통이 가슴이 쓰리고 마음이 아파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주님 앞에 있었지만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한 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면 (주의 말씀을 따라 마음과 행동을 삼가면) 주님께서 시인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의 교훈으로 인도하셔서 마침내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신다는 것을 믿었다. 시인은 주님과 함께 함이 복이라고 노래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시인은 주님만 바라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도 하나님을 반석삼아 살겠다고, 하나님이 시인이 받을 몫의 전부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한다고 노래한다.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은 망한다고 노래한다. 대신,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복이라고 노래한다. 주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을 전파하겠다고 다짐한다. 

//악인의 형통에 관한 숙제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곧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풀린다. 임마누엘이 세상의 형통보다 더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풀린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절벽을 향해 달리는 브레이크가 파열된지도 모르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절벽에 다다르면 그때야 놀라 브레이크를 밟겠지만 공포에 떨며 떨어지고 만다. 이 결과를 아는 순간, 내가 더딘 것이, 시대를 뒤서 가는 것이 주님께서 나의 오른 손을 붙잡아 주신 결과라는 깨닫게 된다. //복음의 핵심도 임마누엘이 복이요, 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까이해야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신다.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