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17 읽기

1-2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제물과 제물을 바치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3-9 소를 번제물로 바칠 때는 흠 없는 수컷을 골라 회막 어귀에서 바쳐야 하는데. 주님께서 기꺼이 받게 바쳐야 한다. … 제사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는 제사장들이 함께 드린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제물에 안수하고,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고,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으면,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물의 피를 받아 회막 어귀에 있는 제단 둘레에 뿌리고,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고기 저민 것과 제물의 머리와 기름기를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고,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한다. 번제는 이렇게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10-13 바치는 제물이 양이나 염소인 경우에도 흠 없는 수컷을 골라 바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협업해서 드린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14-17 번제물이 날짐승인 경우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가운데서 골라 바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제사장 협업해서  드린다.

//레위기의 제사와 제사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더군다나 우리는 이런 제사를 더이상 드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제사의 종류와 방법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제사의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예배에 적용할 교훈을 찾아 본다. //제사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고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도록 드려야 한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다. 흠이 없다는 것은 제물의 상태를 뜻하지만,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물을 뜻한다. 세상에 흠이 없이 완벽한 것이 어디 있으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다.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다.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다. 우리 몸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영적예배, 곧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몸을 불살라 태워서라도 (내 뜻을 완전히 태워 버리고) 내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신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제사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사장들의 협업이다. 예배도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삶이다. 예배는 결코 개인적이지도 그렇다고 일률적이지도 않다. 공동체적이지만, 각자의 분수에 맞게 드리면 된다. 

시편 78:56-72 읽기

56-5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아 살게 하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면서, 그들의 조상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빗나가고, 엇나가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 대신 산당에서 우상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다.

59-66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에 노하셔서 그들을 아주 내버리셨다. 주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내버리셨다. 주님의 능력과 영광의 상징인 언약궤를 원수의 손에 내주셨다. 주님의 백성을 원수의 칼에 내주셨다. 주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에 분노를 쏟으신 것이다. 젊은 남자들은 전장에서 죽었고, (약혼한) 처녀들은 혼인하지 못했다. 제사장들은 칼에 맞아 죽었고, 그들의 아내는 과부가 되었어도 곡 한 번 못했다. 마침내 주님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술기운에 달아오른 용사처럼 일어나셨다. 주님은 원수들을 뒤쫓아가서 쳐부수셨다. 원수들은 치욕을 맛보았다.

67-72 주님은 요셉의 자손, 에브라임 지파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유다 지파를 선택하셨다. 주님이 사랑하신 시온 산을 뽑으셨다. 주님은 시온에 주님의 성소를 높에 세우셨다. 시온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다. 주님은 주님의 종 다윗을 선택하셨다. 다윗은 목동이었다. 목동이던 다윗을 데려다가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 이스라엘의 목자로(왕으로) 삼으셨다. 다윗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양같이 기르고, 백성을 슬기로운 손길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법도에서 빗나가고 엇나간 백성은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 그 상징으로 하나님은 성막을 원수의 손에 내주셨다. 주의 백성을 원수의 칼에 내주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주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 원수에게는 영원한 치욕을 안기셨다. //하나님은 장자권을 가진 요셉지파 대신 유다지파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목자로 삼으셨다. 다윗은 한결같은 마음, 곧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을 양같이 기르고, 슬기로운 손길로 인도했다.  ///시온은 주님의 법이 선포되는 곳을 상징한다. 곧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성소, 곧 임마누엘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성도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펴야한다. 하나님의 기억을 (내가 가진 전부를 주고서라도 꼭) 사야한다.

시편 78:34-55 읽기

34-35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실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임을 기억했다.

36-38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께 아첨하고, 혀로는 하나님을 여전히 속일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분명히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는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셨다. 그들을 멸하지 않고 거듭 노하심을 돌이키셔서 참고 또 참으셨다.

39-40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의 육신은 죽으면 되돌아 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주의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반역하며, 얼마나 자주 불평하였는지 기억하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듭하여 시험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않으며, 대적으로부터 구해주신 날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을 말씀으로 남겨 주셨으니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43-51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여러가지 징조를 보이시고 소안 평야에서 기적을 베푸셨다. 강을 핏물로 변하게 하셔서 마실 수 없게 하셨다. 파리와 개구리로 큰 피해를 입게 하셨다. 농작물을 해충에게, 애써 거둔 곡식을 메뚜기에게 내주셨다.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무화과나무를 된서리로 죽게 하셨다. 가축을 우박으로 때리시고 양 떼를 번개로 치셨다. 그들에게 (이집트에) 진노의 불을 쏟으시며, 분노와 의분의 재앙을 내리시며, 재앙의 사자를 보내셨다. 주님은 (이집트에) 분노의 길을 터 놓으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지 않으시고 생명을 염병에게 넘겨주셨다. 이집트의 맏아들을 모두 치셨다.

52-55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양 떼처럼 인도하셨다. 가축 떼처럼 광야로 이끄셨다. 그들을 안전하게 이끄셨다. 주의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원수들은 바다가 삼켜버렸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거룩한 산으로 이끄셨다. 주님의 산으로(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여러 민족을 그들 앞에서 몰아내시고, 가나안 땅을 나누어 주셨다. 이스라엘이 분배받은 땅에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진멸하실 때에야, 주의 백성은 하나님께 돌아와 잘못했다고 빈다. 그제서야 하나님만이 반석이요 구원자이심을 기억한다. 시인은 이마져도 마지못해 하는 회개라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백성의 이런 마음을 잘 아시면서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주의 백성의 죄를 덮어주셨다. 노하심을 돌이켜서 참고 또 참으셨다. 대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시인에게 (주의 백성에게) 상기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자꾸 지꾸 잊어버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마치 치매걸린) 백성에게 재차 삼차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말씀해 주신다. 시인은 하나님은 선한 목자요, 언약에 (약속에) 신실한 분이라고 노래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성경말씀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이루신 일과 주님이 보여 주신 기적을 상기한다. 말씀이 은혜의 통로다.    

시편 78:12-33 읽기

시인은 (에브라임이 잊어버린, 결국 이스라엘 자손이 잊어버린)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 무엇인지 먼저 노래한다.

12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의 눈앞에서 기적을 일으키셨다. 13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게 하셨다. 14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다. 15 광야 바위에서 물을 내서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다. 16 반석에서 시내가 흘러 강처럼 물이 흘러내리게 하셨다.

1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광야에서 거역했다. 18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입맛대로 먹을 것을 요구했다. 19 그들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다. 20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서 강물처럼 흐르게 하신 하나님이지만, 자기 백성에게 밥과 고기를 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21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시험하자, 주님은 노하셨다. 22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24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처럼 내려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다. 25 사람이 천사의 음식을 먹게 하셨다. 그것도 풍족하게 내려주셨다. 26-29 주님은 하늘에서 능력으로 동품과 남풍을 일으키고 모아서 고기를 먼지처럼 내려주셨다.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처럼 쏟아 주셨다. 새들은 진 한가운데로, 백성이 사는 곳에 두루 떨어졌고, 백성은 마음껏 배부르게 먹었다. 하나님은 원하는 대로 넉넉하게 주셨다.

30-33 주의 백성은 먹을 것이 아직도 입 속에 있는데도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살진 사람들을 죽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을 거꾸러뜨리셨다. 이 모든 일을 보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죄를 지으며,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생애는 헛되이 끝났다. 그들은 남은 날을 두려움 속에서 보냈다.

//시인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 무엇인지 노래한 후, 주의 백성이 이것을 잊고 하나님께 죄를 짓고 거역한 이유를,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차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더 먹으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하나님께서 백성이 원하는 대로 넉넉하고 풍족하게 주셨지만 백성은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ㅠㅠ. //더 먹으려는 욕망.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목마름을 해갈받자, 밥과 고기를 달라고 한다. 어련히 알아서 주실 주님을 몰랐다. 그래도 주님은 넉넉하고 풍족하게 주셨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도, 주의 백성은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한국교회의 실상이다. 목사들은 멀 더 먹으려고 선거판의 무당이 되려고 하는지. 예레미야는 이 땅의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평안을 외치는 종교지도자들 사이에서 예언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한국교회가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선한 왕도 악한 왕도 세우신다. 교회의 책임은 선한 지도자가 세워지든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든 교회의 생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의 책임을 왜 무능력한 우리가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교회 안팎의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살진 사람들과 젊은이. ‘살찐’까지 가지 않았지만, ‘살진’ 사람들을 죽게 하셨다. 젊은이도 잘나고 욕망이 넘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생각된다. 주님은 이들을 거꾸러뜨리셨다. 한국교회의 살진자들 젊은이들도 이 모든 일을 말씀을 통해 읽고서도 여전히 죄를 지을 것인가?ㅠㅠ //나는 도덕적으로 선하든 악하든, 교회를 핍박하든 말든,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 편에 가까운 사람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근데 누구지? 

시편 78:1-11 읽기

1-2 “내 백성아, 내 교훈을 들으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시인은 마치 주님의 말씀을 낭송하는 듯 말한다. 

3-4 이 교훈/비유/비밀은 우리가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 교훈/비유/비밀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해 줄 것이다.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이 교훈/비유/비밀은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주님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이다.

5-6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실 때, 곧 법과 규칙을 세우실 때, 자손에게 잘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 미래에 태어 날 자손에게도 자자손손 전하라고 하셨다. 

7-8 자손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조상처럼 반역하며 고집부리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마음이 견고하지 못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9-11 에브라임 자손은 무장을 하고 활을 들고 전장에 나섰지만 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으며, 하니님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과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들을 잊어버렸다. 

//주님의 교훈/비유/비밀을 경청하는 것보다 더 큰 소망은 없다. 언약의 핵심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약이 생명력을 가지고 자자손손 전달된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성도는 결국 말씀을 읽어야 하고, 읽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승전(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 에브라임 자손처럼 무기로 무장을 한다고 세상과 싸워 이길 순 없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야 한다고 노래한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