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13 읽기

1-9 (그 뒤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시셨다. 왜냐하면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유대 지방으로 돌아 다니시지 않으셨다. 유대 사람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와지니,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형님은 유대로 가셔서, 그곳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의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려면 숨어서 일해서는 안됩니다. 형님이 하시는 일은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의 형제들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 예수께서 형제들에게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 없지만,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의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라. 나는 아직 내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 

10-13 예수의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뒤에, 예수께서도 아무도 모르게 올라가셨다. 명절에 유대 사람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왔는지 서로 물으며, 예수를 찾았다. 무리들은 예수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미혹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예수에 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께서 유대 지방으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를 두루 다니신 이유를,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고 밝히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다. 시간을 초월하시고 시간을 주관하시는 예수께서 육신이 되신 후에는 하나님의 시간에 순종하신다. 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예수의 형제들은 자기들 맘대로 행하지만, 사실 흐르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세상은 자기들 맘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모두 죽음을 향해 달리는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의 때에 순종하는 예수를 미워한다. 예수께서 자기들 맘대로 행하는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맘대로 하니,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악을 행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뜻(말)에 따라 움직이시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하셨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다. 곧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형제들의 뜻(요청)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방법)을 따르셨다. //예수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를 찾았다. 병고침을 받고, 배고픔을 면했던 사람들은 예수를 좋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생명의 양식에 대한 말씀을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성도는 예수를 그저 좋은(잘해주는) 사람이나 종교 사기꾼이 아닌, 좋은(선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아는 사람들이다.

요한복음 6:60-71 읽기

60-65 예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도 어려웠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수군거렸다. 예수께서 수근거리는 제자들에게 “내 말이 너희의 마음에 걸리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고 물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자기를 넘겨줄 사람이 누군지,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게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자신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셨다.

66-71 이 때문에 제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떠나갔다. 그들은 더이상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까지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다.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 하나는 악마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것은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를 넘겨줄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자신이 생명의 빵이요,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원히 산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어려웠다. 결국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 더이상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제자는 예수의 말씀이 어려워도 끝까지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데도 소용이 없다.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도 어려웠던 이유다.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에 관한 것임에도, 많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육신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었기 때문에 예수를 떠났다. 반면 열둘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다고 고백하고 예수와 동행을 이어간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끝까지 예수와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탈락할 자가 있다.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믿고 알았어도 영과 함께 육도 마음에 품으면, 곧 두 마음을 품으면 결국 예수를 떠나게 된다. //육은 아무소용이 없다. 무익하다. 그렇다고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영에 복종시켜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고 편지했다. 육체가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했으나 영인 경건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인생은 금생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은 예수와의 동행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임마누엘!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증거다.

요한복음 6:41-59 읽기

41-51 예수께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하고 말씀하자, 무리가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 요셉을 우리가 알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가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수군거리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내게 오는 그들을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예언서에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하였는데, 아버지 하나님께 듣고 배운 사람은 다 내게로 온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 외에 아버지를 본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만이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하고 말씀하셨다.

52-59 유대 사람들은 예수가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서로 논쟁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 양식이다. 내 피는 참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먹고서도죽는 만나와 같은 그런 것과 같지 않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예수가 생명의 양식이다.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재차 가르치신다. 사람들은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을 따라 판단한다. 그러나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셨다. (저자 요한은 1장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난다고 선언했다.) //예수께 나오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요 영생을 가진 사람이다. 영생은 생명의 양식인 예수를 먹고 마시는 삶이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고, 예수를 내 안에 모시는 삶이다. 예수를 내 안에 모신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시편 119편 기자는 11절에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않기 위해 주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 주는 교훈이다. //배고픔을 면하려고 자꾸 먹고 마시려고 하지 말라고 하신다. 영생을 누리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시라고 하신다. 다시말해 예수의 죽으심에 (살과 피에, 곧 십자가에 -제자들을 비롯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참여하라고 하신다. 예수(삼위 하나님)때문에 살라고 하신다. 그래야 예수와 함께 부활의 삶을 산다.

요한복음 6:30-40 읽기

30-33 (표징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무리를 향해, 예수께서는 그들이 표징보다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나왔다고 정곡을 찌르셨다.) 사람들은 예수께 표징을 구했다. 무슨 표징으로 자신들을 믿게 하시겠느냐고 물었다.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모세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하는 표징을 보였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하지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신이는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빵만이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34-40 그들은 예수께 “주님, 그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뜻을 행하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주신 빵, 곧 생명의 빵이다. 예수를 입으로 먹을 순 없다. 예수를 먹는 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을 때 결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말씀)에 순종했듯이, 우리도 예수의 뜻에 (넓게는 삼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를 믿는 (예수를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는)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 죽음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 곧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오직 예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가, 곧 임마누엘이 내가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사는 증거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는다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려온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다.” 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느냐가 (성경을 읽는 것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표징이 아니라, 의와 희락과 평강을 누리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표징이다.

요한복음 6:16-29 읽기

16-21 날이 저물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산에서) 바다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웠지만 예수께서는 산에 혼자 머무셨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사나워졌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 십여 리쯤 더 갔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기꺼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셨다. 배는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22-29 (그 다음날), 여전히 가버나움 건너편에 (아마도 벳새다) 있던 무리는 제자들과 함께 떠나지 않은 예수를 찾았다. 디베랴에서 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예수를 찾아왔으나 예수도 제자들도 안보이자,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선생님, 언제 여기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 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께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아.”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가성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양식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는데, ‘믿는다’는 것은 보이는 현상이 아니니,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드러난다고 적용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하인들이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가버나움 관원(왕의 신하)가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가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들판(풀밭)에서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오병이어로 오천 세대를 먹였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는 풍랑이는 갈리리 바다도 예수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순종으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없다. //배는 발보다 빠르다. 갈릴리 건너편의 오병이어 기적?에 관한 소식은 밤새 갈릴리를 건넌 사람들에 의해 디베랴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부랴부랴 디베랴에서부터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물위를 그냥 걸으신 것이 아니라, 무협지의 축지법 같이 걸으셨을 것이다. 이것도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에 포함된다. 제자들만이 보았던 표징이지만, 우리는 전해진 말씀을 통해 믿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의지하는가 (믿는가)의 문제라고 하신다. 같은 일이라도 내 힘으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