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1:1-12

민 31:1-1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미디안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25장에서 “미디안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25:17] 이미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과 미디안의 여인들과 음행한 벌로 이만사천명이나 죽은 사건 직후에 하신 명령이었다.

그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계수하고 규례를 정비하면서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명하신다. 이 일이 모세의 마지막 임무라고 하셨다.[2]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원수, 여호와의 원수를 갚으라고 하셨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싸워주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각 지파별로 천명씩 만 이천명이 무장했다. (염병으로 죽은 이만사천의 절반이다.) 그리고 제자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전장에 함께 나갔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겼다. 미디안 남자들을 다 죽였다. 특별히 미디안 다섯왕과 함께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다고 확실하게 기록한다.

// 모세가 미디안 치기를 주저한 것은 미디안이 처가였기 때문이었을까?

// 제사장 비느하스가 전장에 나가 싸운 것은 미디안의 제사장 발람을 염두에 둔 영적전쟁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민수기 29:1-11

민 29:1-11

일곱째 달 초하루는 나팔을 부는 절기다. 이날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일년 열두달에서 일곱째 달 초하루는 절반이 지난 후 맞이하는 첫번째 날이 된다. 후반전 휘슬을 부는 절기다. 후반전이 시작된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일곱 째 달 열흘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번에는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너희 심령을 괴롭게 하라’고 하신다. 이날은 속죄절(일)이다. 후반전을 시작하자마자 해야 할 일은 전반전의 잘못을 돌이키는 것이다. 너희 심령을 괴롭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신약시대에 적용 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7:10)가 될 것이다.

일곱째 달이 유월절이 첫째 달로 지정되기 전에는 그해 첫째달에 해당한다. 결국 일곱째 달은 종교력으로는 후반전의 시작이지만 일반력으로는 한해의 시작, 즉 전반전의 시작이라고 적용해도 된다. 시작 휘슬이 불리면 그냥 뛰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속죄부터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해를 거룩하게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고후 7:10]

민 28:1-15

민 28:1-15

제사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나는 제사부분이 싫다. 오늘날과 맞지 않기도 하지만 제사 용어가 너무 어렵다. 화제, 번제 뭐가 다른가. 불로 드리는 제사와 태워 드리는 제사. 제사의 종류인지 제사의 방법인지 그냥 읽어서는 도무지 구분할 수 없다. 상번제는 ‘항상 드리는 번제’인 것 같은데 국한문 혼용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단어를 이해하기를 쉽지 않다. 매일 드리는 번제니 차라리 ‘매번제’가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 다음세대를 위한 성경 번역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소제는 제사의 종류고 전제는 제사의 방법이다. 그런데 소제도 주로 곡식으로 드려지는 제사이니 제사의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자발적으로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니 제사의 한 종류다. 전제는 술을 따르는 제사 방법이다. 한국 전통 제사에서 술을 올리고 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전제는 관제라고 한다. 뭔가 통일 되어야 할 제사 이름이기도 하다. 하여간 제사는 이름이 너무 어렵다.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이름만으로도 그 제사의 종류와 방법이 뚜렸했을 것인데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사는 나에게는 무척 어렵다.

하여간 제사는 매일 드려야 하고 일주일 씩 구별하여 드려야 하고 한달에 한번씩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아침 저녁으로 드려야 한다. 다시말해 하루 종일의 삶이 예배여야 한다. 그러니 주일만이 아닌 일주일 7일 모두가 예배여야 하고 매달 첫날 뿐만아니라 하루 하루가 예배여야 한다.

 

민 27:12-23

민 27:12-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12,13]

모세의 입장에서는 허망한 말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세에게도 소망의 메세지다. 한세대를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는 세대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삶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을 위한 것 뿐이라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가나안을 바라본다는 것. 그 땅이 이미 이스라엘 땅이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시지 않은가? 좀 더 살면서 가나안에서 직접 살아보면 뭐가 다를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로 가데스에서 반석을 두번친 사건을 언급하신다.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서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14)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달리 가나안에서의 삶을 미리 보여준다. 가나안 땅이라고 하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세마져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룩함을 상실하는 땅일 것이다. 다시말해 진정한 가나안은 그 땅이 아니라 순종하고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조상에게 돌아가는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벗어나 순종과 거룩함에 들어가는 것이고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반역과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모세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께 한사람을 세워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종을 들었던 장군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안에 영이 머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민 27:1-11

민 27:1-11

민수기 두번째 인구조사의 목적은 전쟁보다는 땅분배를 위한 것이었다. 이십세 이상의 남자 수를 세는 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 다섯명이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 온 회중 앞에서 문제를 제기 했다.

슬로브핫은 1세대로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슬로브핫이 죽은 이유는 반역에 가담해서 벌로 죽은 것이아니라 자연사였다. 그런 그가 아들이 없다고 땅을 분배받지 못한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다는 주장이었다.

모세는 이 사연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그리고 아들 없이 죽은 가문의 기업에 대한 부가적인 규례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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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이들 다섯명의 이름을 누가 기억할까? 어쩌면 여성 참정권의 효시가 아닐까?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셨고 이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

약자들의 문제를 들어 준 모세와 엘르아살과 지휘관. 이렇게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권력구조는 열린정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뢴다. 약자들이 제기한 문제라고 강자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게 묻는다. 뭔가 아이디얼하지 않은가!

7절.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에서 ‘옳으니’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라는 의미다.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아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