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1-20

민수기 22:1-20

//발람 –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방 점쟁이 발람. 주(여호와)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신)이 아니라는 증거다. (출애굽 사건으로 주님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졌을 것이다.) 한편으로 주님을 하나님으로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런점에서 발람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다. 이런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받을 게 전혀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발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가졌다. 하나님 또한 발람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다. 발람은 하나님과 대화한 후 발락이 보낸 사신들을 그냥 돌려보냈다. 발람은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불렀고, 그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락이 재차 사신을 보내자, 발람은 한 번 더 하나님께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발락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하신 말씀만 전하라고 하셨다.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가 어리석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는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왜 발람에게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을까? 다만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하신 말씀만 전하라고 하신데서 그 이유을 찾을 수 있다. 발람이 발락에게 가도, 발람은 발락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가라고 하셨지만 발람은 하나님의 뜻이 달라지지 않음을 깨달아야 했다. (가도 소용없음을 깨달았다면 스스로 가지 않는다고 응답해야 정상인데, 자신이 듣고자 하는 답이 나오자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꾼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민수기 21:21-35

민수기 21:21-35

에돔을 우회한 이스라엘은 아모리 땅을 지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에돔 왕과 마찬가지로 시혼도 허락하지 않았다. 시혼은 그의 백성을 소집해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오히려 칼날로 아모리 사람을 쳐서 무찌르고 그리고 암몬지역까지 나아갔다. 이스라엘은 아모리의 모든 성읍을 차지하고 아모리 왕 시혼의 도성 헤스본까지 빼앗았다. 이스라엘은 헤스본에서부터 시혼이 빼앗았던 그모스 신을 섬기는 모압의 아르, 아르논까지 차지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주했다. 모세는 사람을 보내 야셀을 정탐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곳에 있던 아모리 사람을 몰아 내었다. 그들이 바산 왕 옥에게로 피하자, 옥이 자기 백성을 거느리고 싸우러 나왔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바산 왕 옥에게도 행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바산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그 땅을 점령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형제 에돔은 우회하게 하셨지만, 아모리와 바산은 정면돌파하게 하셨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선제공격을 해오자, 주님은 아모리 왕과 시혼 왕의 포악성을 벌하셨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역사는 후대 이스라엘이 반복해서 자랑하는 사건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긴 싸움이라고 해도 전쟁은 두려운 것이고, 환난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주님은 이것을 피할 길만을 내시는 것만이 아니라 돌파하게 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7/28/

민수기 21:1-20

민수기 21:1-20

약속의 땅을 향한 우회로라고 쉬운 길은 아니다. 아랏왕이 이스라엘과 맞서 싸웠다. 이스라엘 얼마는 포로로잡히기까지 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네겝지방 가나안 사람을 자신들의 손에 붙이시면 그들의 성읍을 전멸시키겠다고 서약했고, 주님은 이스라엘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이스라엘은 네겝지방 성읍들을 전멸시켰다.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불렀다.
에돔땅을 돌아 호르산에서 홍해길을 따라 약속의 땅을 향해 행군하던 백성들은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다며 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만나는 이제 진저리가 난다고 불평했다.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뱁을 보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이 많이 죽었다. 백성은 모세에게 주님께 죄를 지었으니 뱀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님께 중보해주기를 요청했다. 모세가 주님께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기둥위에 달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뱀에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기둥 위에 달아 놓은 불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했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곳을 떠나 오봇-이예아바림-세렛-아르논 강변-브엘-맛다나-나할리엘-바못-비스가 산 꼭대기(모압 고원지대의 한골짜기)에 이르렀다.

//광야길과 일용할 양식이 지겹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다 주님이 보내신 불뱀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모세를 통해 해결책을 주셨다. 기둥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죽다가도 살아났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하시다. 원망과 불평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셔서 놋뱀을 보게 하셨다. 단 놋뱀을 쳐다 본 사람들만 살아났다. –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곧 원망과 불평을 하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이 구리뱀을 보면 살려주셨듯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면 살아나도록 사랑하셨다. 단 예수를 구세주로 쳐다 본 사람들만 살아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7/27/

#요3:16

민수기 20:14-29

민수기 20:14-29

광야 사십 년이 흘렀다. 모세는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형제애를 내세워 이스라엘이 에돔을 가로질러 가나안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에돔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이스라엘이 에돔 땅에 들어온다면 칼을 들고 싸우겠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한 번 더 에돔 왕에게 통행료를 지불하겠다고 했으나 에돔 왕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장하고 이스라엘을 맞으러 나왔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우회해서 가나안으로 가야했다.
이스라엘 회중이 가데스를 출발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다. 주님은 아론이 므리바 샘에서의 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으로 올라가, 아론의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라고 하셨다.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했다. 아론은 호르산 꼭대기에서 죽었고, 모세와 엘르아살은 산에서 내려왔다. 아론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삼십일 동안 아론을 애도하였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대로는 없다. 에돔이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애서와 야곱)라는 형제애에 호소하고, 급기야 비용까지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에돔은 오히려 싸우겠다고 나왔다. 주님은 약속의 대로를 막아선 에돔을 치시는 대신 우회의 길로 인도하신다. – 지름길은 내 뜻인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회로를 제시하신다. 내 고집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주님은 내 뜻을 위해 싸워주시지 않는다. 내가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대신 싸워주신다. //가데스에서 호르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주님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옷을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셨다. 옷을 벗은 (아마도 대제사장 옷) 아론은 죽었다. 어떻게 죽었을까? 모세와 엘르아살은 부정했다가 정결해지는 예식을 행했을까? 주님께서 그 영혼을 받으셨을 것이다. 아론의 대제사장 옷을 아들 엘르아살이 입었다. 자연스럽게 제사장직이 ‘세습’되었다. – 옷. 성도는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찰을 단 교회라는 학교의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다. 입은 옷에 합당한 행실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교회가 욕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벌을 받는다. 한편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옷입어 그 옷에 합당하게 산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7/26/

민수기 20:1-13

민수기 20:1-13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미리암이 죽어 그곳에 묻혔다. 회중에게는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모였다. 그들은 모세에게 자신들도 동족이 죽었을 때 함께 죽었으면 좋을 뻔 했다고 말하며, 왜 이 광야로 자신들을 끌고 와서 죽게하는지 따졌다. 왜 고약한 광야, 농사질 수도, 마실 물도 없는 광야로 데리고 왔는지 항의했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떠나 회막 입구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나타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 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잡았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불러 모았다. 모세는 회중을 향해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하고 말하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 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바위에서 물을 내신 므리바 샘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과 다투었지만,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셨다.

//므리바에서 모세는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주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모세에 대한 주님의 냉정한 평가다.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모세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다. 바위에게 말로 명령하면 될 것을 지팡이로 두번 내리쳤다. 아이들을 말로 타이르면 될 것을 꼭 회초리를 들어 때린 꼴이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답이 있다. 주님은 불평하는 (주님과 다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하지 않으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어 먹이셨다. 그런데 모세는 주님 대신 화를 냈다. 마치 주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화는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다. 화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생기기 때문이다. 모세는 주님께서 친히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하고 하신 이 말씀을 의지하고 불평과 원망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말씀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 성도는 주님 대신 화를 내면 안 된다. 의분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지도자라면 더욱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비가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https://quietwaters.blog/201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