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1-13

민수기 3:1-13

주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던 때에, 아론(과 모세)에게 아들들이 있었다. 아론이 맏아들은 나답, 둘째는 아비후, 세째는 엘르아살, 네째는 이다말이다. 주님은 아론의 아들들을 제사장의 임무를 맡도록 기름부어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주님께 금지된 불을 드리다가 주님 앞에서 죽고 말았다. 엘르아살과 이다말만 아론 앞에서 제사장을 맡아 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레위사람들을 불러 제사장 아론의 지도하여 제사장 직무를 돕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레위 사람을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으로 제사를 드릴 때, 제사 일을 돌보는 사람으로 세우셨다. 회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돌봐야 한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제사의 직무와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돌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성소에 가까이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레위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를 대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은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난 것은 모두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스라엘에서 처음 난 것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님의 것으로 삼으셨다고 주님이 선언하신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03/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들에게 성막을 맡기고 제사의 직무를 돕게 하신 이유가, 마치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이 레위 사람이었기 때문인듯한 인상을 풍긴다.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야하나. 저자는 굳이 아론의 자손들을 아론과 모세의 아들(자손)들이라고 적는다. 그러나 레위 자손이 성막에서 제사의 직무를 돕고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은, 주님이 처음 난 것을 주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혈통도 육정도 사람의 뜻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래서 혈통적 장자 르우벤 지파가 선택되지도, 영적 장자 에브라임 자손이 선택되지도 않았다. //외인들이 성소에 가까이 하면 죽은다. 외인들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혈통적으로 레위 자손이어도, 심지어 아론의 자손이라 하여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사람들은 죽는다. 아론의 장자 나답과 둘째 아비후가 그랬다. 다른 불로 제사하다가 죽었다. 여기서 ‘다르다’는 외인의 ‘외’와 같은 단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없다. //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거룩하게 구별된 자로 살 수 있다.

민수기 2:1-34

민수기 2:1-34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칠 때 회막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진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진을 칠 때 지파별로 가문의 깃발을 세우고 진을 치라고 하셨다. 이제는 피난민들이 아니라 주님의 군대였다.
동쪽에는 유다를 중심으로 양쪽에 잇사갈과 스블론 지파가 진을 쳤고, 행군할 때 유다 진영이 첫번째로 출발한다. 남쪽에는 르우벤 진영을 중심으로 양쪽에 시므온과 갓 지파가 진을 쳤다. 행군할 때 르우벤 진영이 두번째로 출발한다. 이어서 레위사람들이 회막을 들고 따른다. 서쪽에는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가 진을 쳤고 에브라임 진영이 세번째로 출발한다. 북쪽에는 단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진을 친다. 단 진영이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피난민 대열이 이렇게 주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군대 대열을 갖추었다. 네 진영 각부대에 소속된 군인의 수는 앞에서 계수한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었다. 물론 회막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레위사람들은 군인의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도 치고 행군도 하였다.

//누가 으뜸이 되고, 누가 마지막에 서야 하는지 주님이 말씀해 주셨다. 모든 군대의 가운데에 회막이 서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진영이 회막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일깨워 주신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곧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든 마지막이든 순종에는 차별이 없다. //성도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각각 맡은 역할이 다르다. 모두가 다 머리가 될 수 없다. 지체로서 주어진 역할에 충성해야 한다. 성도(연합)의 중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전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가 모이는) 이 곳에 보혜사 성령이 거하신다. 따라서 성도는 성전을 중심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02/

민수기 1:1-54

민수기 1:1-54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지 (벌써) 이년째가 되었다. 출애굽 이년 둘째달 초하루에 광야의 회막에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각 가문별, 가족별로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스무살이 넘어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남자들을 세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지도자를 세워 모세와 아론을 도와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다.
주님은 르우벤 지파에서는 엘리술, 시므온 지파에서는 슬루미엘, 유다지파에서는 나손, 잇사갈 지파에서는 느다엘, 스블로 지파에서는 엘리압, 요셉의 아들 가운데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엘리사마, 므낫세 지파에서는 가말리엘, 베냐민 지파에서는 아히에셀, 아셀 지파에서는 바기엘, 갓 지파에서는 엘리아삽, 납달리 지파에서는 아히라를 인구조사의 도우미로 세우셨다. 이들은 회중이 추대하여 각 지파의 지도자가 된 사람들로 이스라엘 군대의 지파별 지휘관이 되었다.
모세와 아론은 이들 열두 지파에서 (레위지파 제외) 추대되어 주님이 임명를 받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인구조사를 했다.
르우벤 자손은 사만육천오백명, 시므온 자손은 오만구천삼백 명, 갓 자손은 사만오천육백오십명, 유다 자손은 칠만사천육백 명, 잇사갈 자손은 오만사천사백 명, 스블론 자손은 오만칠천사백 명, 에브라임 자손은 사만오백 명, 므낫세 자손은 삼만이천이백 명, 베냐민 자손은 삼만오천사백 명, 단 자손은 육만이천칠백 명, 아셀 자손은 사만천오백 명, 납달리 자손은 오만삼천사백 명이었다.
모세와 아론과 열두 지도자들이 등록한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스무살이 넘은 모든 남자는 모두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었다. 레위 사람들은 이들과 함께 등록되지 않았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레위지파를 인구조사에서 빼라고 하셨다. 대신 레위 자손은 군인으로 등록하지말고 증거궤가 보관된 성막을 보살피는 관리인으로 등록하라고 하셨다. 레위 사람들에게 성막을 옮길 때마다 거두고 세우는 일을 맡기셨다. 레위 사람이 아닌 다른 지파 사람들이 성막에 다가가면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에서 지파별로 부대깃발을 중심으로 장막을 치는 군사적 집단으로 거듭났다. 레위 사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장막을 쳐서,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레위사람은 증거궤가 보관된 성막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하였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덩치를 확인시켜 주신다. 인구조사로 오합지졸의 피난민 행렬이 육십만 대군의 군사행렬로 바뀐다. 그러나 숫자가 다가 아니다. 육십만 대군과 그들의 가족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성막, 곧 하나님의 임재였다. 2023 새해다. 나의 삶에 변화되는 숫자들. 모두 나이도 한 살 더 먹었고, 자녀들도 나이만큼 컸고, 이래저래 소득도 지출의 규모도 늘었다. 그러나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다.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거룩한 삶,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잘 보살피고 관리하는 것이 레위 사람의 역할이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가족에게 내리지 않도록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하나님의 임재를 자녀들에게 드러내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하나님의 군사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덩치를 키우고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겉사람은 늙어가가도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기 때문에 임마누엘을 누리는 새해를 꿈꾼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01/

요한삼서 1장 읽기

요한삼서 1장 읽기

장로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한다. 요한은 가이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가 영혼이 평안함 같이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요한은 신도들이 와서 가이오가 진실되게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적는다. 요한에게는 믿음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이오는 신도들, 그것도 낯선 신도들까지 충성스럽게 섬겼다. 요한을 방문한 신도들이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했다. 그들은 가이오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낯선 신도들을 잘 보살펴서 보냈다고 증언했다. 낯선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방 사람에게선 아무것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다. 따라서 신도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낯선 신도들을 돌보아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신도들이 서로 돌보는 것은 신도들이 진리에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미 자신의 가름침을 (그) 교회에 써 보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교만한)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한은 교회를 방문해서 디오드레베가 하는 일을 밝히겠다고 편지한다. 디오드레베가 악한 말로 요한 일행을 헐뜯고, 자신이 (낯선) 신도들을 돌보지 않을뿐만 아니라 (낯선) 신도들을 돌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다고 경고한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의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당부한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악한 일을 하는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한다. 한편 요한은 데메드리오는 진실한 삶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소식에, 자신도 데메드리오를 좋게 평가한다고 증언한다. 요한은 가이오도 데메드리오에 대한 평가가 옳다는 것을 안다고 전제한다.

요한은 편지보다 얼굴을 맛대고 보기를 바란다. 평화가 가이오에게 있기를 바란다. 요한과 함께 있는 사람들도 가이오에게 문안한다. 그리고 가이오 친구들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4/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10/25/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하신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으뜸이 되려는 것도 악한 일이지만, 교회적으로 으뜸이 되려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형제사랑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개교회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서로 연합해야 한다. 삼위하나님이 사랑으로 교제하시듯, 삼위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한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성도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성도로 연합해서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예수만 으뜸이 되고 나와 우리 교회는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요한이서 1:7-13 읽기

요한이서 1:7-13 읽기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다. 속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부인한다. 이런 자들이 속이는 자요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이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삼가서 믿음의 수고로 맺은 열매를 잃지 않고 충분히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과유불급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과 인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르침에 머룰러 있지 않는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요한은 믿음의 자매와 그의 자녀들에게 쓸 말이 많지만, 글로 쓰기보다는 만나서 얼굴을 마주보고 말하기를 원한다. 얼굴을 맛대고 교제하는 기쁨을 넘치게 하고 싶다고 편지를 마무리한다.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자매의 자녀들의 문안도 전한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하여 그리스도의 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요한은 이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과 깨닫게 하심에 철두철미하게 피동적이 되어야 한다. 순종에 내 뜻이 들어가면 과유불급이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가르침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 가르침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모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삼위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한다. 삼위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의 형제들과 얼굴을 맛대고 교제하는 것이다. 형제사랑이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과 잇대어 살게 한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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