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6:1-15 읽기

다니엘 6:1-15 읽기

1-5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왕이 되었다. 다리우스는 자기의 뜻대로 나라를 120개의 지방으로 나눠 나라를 다스렸다. 지방 관리 위에 정승 세사람을 세웠는데 다니엘도 셋 중 하나였다. 지방 장관들은 세 정승의 관리하에 다리우스 제국을 다스렸다. 다니엘이 셋 중 가장 뛰어나자 다리우스는 그를 제국의 총리로 임명하고자 했다. 그런데 다른 두 정승은 지방 장관들과 합세하여 다니엘을 질투하여, 다니엘의 잘못이나 허물을 찾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을 문제삼지 않고는 고발할 근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임무에 충실했다.
6-10 두 정승과 지방 장관들은 다리우스를 찾아가 앞으로 삼십일 동안 임금님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굴에 집어 넣기로 한다는 법을 제정하도록 부추겼다. 다리우스 왕은 아무런 생각없이 법에 왕의 도장을 찍었다. 다니엘은 다리우스 왕이 기도금지 법안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늘 하듯이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꿂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11-15 다니엘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다니엘을 다리우스 왕에게 고발했다. 왕은 이 고발을 듣고 몹시 괴로웠다. 다니엘을 구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리우스에게 임금님이 한 번 금령이나 법률을 세우면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주지시켰다.

//다리우스의 메대는 느부갓네살의 바빌론보다 지방 분권적 연방제 제국이었을까? 하여간 여든 가까운노구의 다니엘은 연방정부의 국무장관쯤 되지 않을까? 하여간 다니엘은 다른 두 총리와 지방관리들의 질투를 받는다. 어디든 일등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그러나 일등은 한 명이 아니던가? 일등은 못되어도 임무에 충실하여 아무런 실책이나 허물 없이 사는 일류가 될 수 있는데. ㅠㅠ. 그런데 삼등에 감사하지 못한 이들은 삼류가 되고 만다.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한 총리들과 지방장관들이 이런 삼류가 되어버렸다. ㅠㅠ. //다리우스는 아무 생각없이, 아니 자기가 신격화 된 것에 취해 법안에 도장을 찍었다. 다니엘에 대한 고발이 있어서야 자신이 도장찍은 법안이 다니엘에 대한 음모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번복을 할 수 없었다.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헤롯도 마찬가지였다. 꼭 쓸데 없는 법은 지키려고 한다. 어차피 법은 개정할 수 있지 않은가? //삼십일. 세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다니엘은 단 하루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다니엘은 법령이 무효가 되도록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기도를 했다. 무슨 감사? 다니엘에게 위기는 항상? 기회였으니 감사가 먼저 나왔던 것은 아닐까? 범사에 감사하라! 야고보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교훈한다. 다니엘은 이 말씀의 좋은 본이라고 생각된다.

다니엘 5:17-31 읽기

다니엘 5:17-31 읽기

다니엘이 벨사살에게 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실지라도 벽에 있는 글자플 풀이해 주겠다고 말했다. [벨사살 임금님 들으십시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임금님의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께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와 위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뭇 백성이 그 앞에 떨면서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부친께서 마음이 높아지고 생각이 거만해져서 교만하게 행동하시다가 왕위에서 쫓겨나 명예를 잃으신 일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쫓겨나 그의 마음은 들짐승처럼 되셨고 들나귀와 함께 사시고 소처럼 풀을 뜯으셨고 몸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젖으셨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그 나라를 주시는 줄 깨달으셨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의 아드님이신 벨사살 임금님은 이 모든 일을 아시면서도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스로스로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그릇으로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보거나 듣거나 알지도 못하는 금과 은과 동과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면서도 생명과 모든 길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손을 보내서 이 글자를 쓰셨습니다. 기록된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과 ‘바르신’ 입니다. 해석하면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임금님의 나라의 시대를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바르신은 임금님의 왕국이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벨사살은 다니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도 걸어주고 그를 셋째가는 통치자로 삼았다. 바로 그날 밤에 바빌로니아의 벨사살 왕은 살해되었다. 메대 사람 예순 두살의 다리우스가 그 나라를 차지했다.

//손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쓰자 공포에 떨었던 벨사살은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자 글자를 읽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어의 뜻은 세고 세고 달고 나뉘다. 캘리그라피일 가능성이 크고, 한자의 사자성어처럼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었기에 벨사살은 지혜자들에게 해석을 요구했다. 벨사살! 느부갓네살에게 교만만 배운 그는 하나님이 주신 날을 다 살았다. 세고 또 세었지만 벨사살의 날 수는 이미 끝났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지 달아보았으나 하나님의 기준에 부족했다. 결국 바빌론 제국은 나뉜다. 벨사살은 죽는 순간까지 바빌론의 주관자처럼 굴었다. 오늘 밤, 그 영혼을 도로 찾으시는 주님을 끝까지 몰랐다. 다니엘의 말을 들어보면 벨사살은 다니엘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외면했던 것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의 모든 일을 알면서도 교만했다. 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못하는 우상들을 찬양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죽은 영혼이다.

다니엘 5:1-16 읽기

다니엘 5:1-16 읽기

1-4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베풀고 천명이나 되는 귀한 손님들을 초청했다. 벨사살은 아버지 (?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아멜말둑>>에월므로>>네르갈사레셀>>라바시말둑>>나보니더스 다음이 벨사루슬 곧 벨사살로 알려졌다. 느부갓네살 통치후 12년 후에 왕위에 올랐으니 앞의 왕들과 형제 관계일 듯. )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에 술을 담아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그들은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
5-9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 촛대 앞에 있는 왕궁 석고 벽 위에다 글을 썼다. 벨사살의 얼굴 빛이 창백해지고 공포에 사로잡혀서 넓적다리의 힘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떨었다. 벨사살은 지혜자들을 불러모으고 벽에 쓰여진 글을 알려주는 사람을 셋째가는 통치자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궁의 모든 지혜자가 나왔으나 아무도 그 글자를 읽지도 그 뜻도 몰랐다. 벨사살 왕은 크게 낙심하여 안색 변했다. 손님들도 당황했다.
10-12 소란한 소리에 벨사살의 어머니가 연회장에 왔다. 그리고 그녀는 거룩한 신들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다 말했다. 선왕 느부갓네살이 사람을 지혜자들의 우두머리로 세웠는데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니엘은 탁월한 정신과 지식과 꿈을 해몽하는 총명이 있어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벨드사살이라고 불렀다고 말하면서 다니엘을 부르면 그가 글자를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13-16 다니엘이 왕 앞에 나왔다. 벨사살은 다니엘의 명성을 들었다며 지혜자들이 풀지 못한 글자의 뜻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다시한번 뜻을 풀이해 주면 셋째가는 통치자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세째는 파병나가 있는 나보니더스 (형이든, 아버지든)와 벨사살 다음이라는 뜻일 듯)

//도대체 다니엘은 어디에서 숨어지낸 것일까? 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걸쳐 이인자 삼인자로서의 다니엘의 행적은 드러난 게 없다. 두번에 걸친 느부갓네살의 꿈 해몽과 앞으로 나올 사자굴 이야기가 전부가 아닌가? 다니엘의 바빌론식 이름이 벨드사살로 벨사상 왕과 한끗차이로 다르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벨사살의 이름은 ‘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 라고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벨드사살은? 혹자는 ‘벨 신은 왕을 보호할 수 없다’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오늘 벨사살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이름일 수도 있겠다. 벨사살 왕은 셋째 통치자를 세울 권한은 있지만 자기 왕위도 생명도 보호하지 못한다. 당연히 벨 신도 무용지물 우상에 불과하다. 반면 다니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느부갓네살의 이인자 노릇을 했는지, 벨사살 왕도 그의 이름을 모를정도로 드러난 것이 없지만, 결정적일 때 나와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배석한다. //누가 나를 보호하는가?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면 이땅에서 왕으로 산다고 해도 공포에 사로잡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 당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다. 이땅에서 왕으로 혹은 이인자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나라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나를 보호한다.

다니엘 4:19-37 읽기

다니엘 4:19-37 읽기

19-27 느부갓네살의 말이 끝났다. 벨드사살, 아니 다니엘은 한 동안 놀라 당황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게 꿈과 해몽으로 번민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은 원수들이 꾸고, 해몽도 원수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고 입을 열었다. 다니엘은 우선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나무는 바로 강대해진 느부갓네살 임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본 거룩한 감시자의 말에 대해 해석한다. 거룩한 감시자의 말대로 가장 높으신 분이 내리신 명령에 따라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뜯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을 것이다. 이렇게 일곱 해가 지나간 뒤에 느부갓네살이 비로소 가장 높으신 분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고 명하신 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 다시 느부갓네살의 나라가 굳게 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공의를 행해서 죄를 속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죄를 속하면 느부갓네살의 영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8-33 이 모든 일이 다니엘의 해석대로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다. 1년 후, 느부갓네살이 바빌론 왕궁 옥상을 거닐면서 “내가 세운 이 도성, 이 거대한 바빌론을 보아라!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영화와 위엄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 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 말이 입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느부갓네살의 왕권이 떠났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꿈의 해석대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일곱 때를 지내게 되었다. 일곱 때가 지나야 느부갓네살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하늘의 말이 느부갓네살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34-37 정해진 시간이 지난후,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정신을 되찾았다. 느부갓네살은 가장 높으신 분, 영원하신 분을 찬송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이어진다고 찬양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사람은 없다고 찬송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정신을 차리자 자신의 명예와 위엄과 나라와 영화가 회복되었고, 자신의 고문관들과 신하들이 자신을 다시 찾아왔으며, 이전보다 더 큰 영예를 받으면서 왕위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되며 하나님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며, 하나님은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고 고백했다.

//확실히 느부갓네살은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천번째 꿈에서는 백지 상태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나라는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래도 느부갓네살의 나라가 금나라에 해당한다는 명예를 얻자, 느부갓네살은 나라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새 망각하고 자신만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까지 닿은 큰 나무는 느부갓네살이 꿈꾸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꿈에 딴지를 걸으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에게 영원한 나라를 맡기시지 않고, 비천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신다고 교훈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이 겸손해 지도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시간을 주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왕이 되어 이전보다 더 큰 영예를 받으면서 왕위를 회복한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일곱 때의 기간을 피할 수 있는 길도 알려주었다.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일년만에 공의와 자비의 길을 떠나 다시 교만해졌다. 자신의 권세와 능력과 영화와 위엄에 자만했다. 하나님은 그 즉시 느부갓네살에게 꿈에서 알려주신 대로 행하셨다. 정신을 차리면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게 된다. 공의와 겸손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개인의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인이 되는 꿈은 개꿈이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꿈이 돼지꿈이다. 정신을 차린 사람은 공의 앞에 겸손 진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다니엘 4:1-18 읽기

다니엘 4:1-18 읽기

4장의 화자는 느부갓네살 왕이다. 태평성대를 누리는 느부갓네살은 무서운 꿈을 꿨다. 느부갓네살은 이번 꿈에도 번민했다. 이번에는 첫번째 꿈/환상과 달리 느부갓네살은 바빌론의 박사들을 불러 꿈을 말해주고 해몽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꿈을 해몽하지 못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고 부르는 다니엘에게 꿈을 해몽하라고 명령했다. 다니엘에게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다음과 같이 다니엘에게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굉장히 큰 나무 하나가 세상 복판에 있었다. 그 나무는 우람졌고 키가 하늘까지 닿았고 땅 끝 어디에서나 바라보였다. 그 나무 잎사귀는 싱싱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만큼 열매가 풍성했으며, 들짐승도 그 그늘에서 쉬었고 날짐승은 그 가지에 깃들였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았다. 환상중에 하늘에서 한 천사가 (거룩한 감독이) 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이 나무를 찍어라. 잎사귀를 떨며 그 열매를 흩어버리고 들짐승과 날짐승을 쫓아내어라. 다만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잡아맨채 풀밭에 그냥 두어라. 이 사람이 (누구?) 하늘의 이슬을 맞고 짐승들과 어울려 풀을 뜯으며 살게 두어라. 이 사람이 정신을 잃고 짐승처럼 생각하면서 일곱해를 지내야 한다. 이것은 감독원의 결정이다. 거룩한 이들의 명령이다. 인간 나라를 다스리는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좋게 보시고 그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시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다. 이것이 나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다. 벨드사살아 이제 너는 이 꿈을 해석하여라. 이 나라의 모든 박사들이 해몽하지 못했지만 너에게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으니 이 꿈을 풀어낼 수 있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는 왕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처음 꾼 꿈을 해석하기 앞서, 나라들을 세우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선언했다. 사람들이 세우는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고, 영원한 제국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던 느부갓네살에게 영원한 라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라고 교훈했었다. 두번째 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느부갓네살의 꿈이 좀 더 자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의 청사진을 펼쳐놓고 지혜자들의 도움을 구했다. 느부갓네살의 청사진에 등장하는 천사/거룩한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감히 느부갓네살의 꿈을 거역할 수 없어서 잠잠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왕의 생각을 거역할 능력이 없었기에 해석할 엄두조차 못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결국 다니엘을 부른다. 자신의 번민을 가지고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서기로 했다. 느부갓네살이 위대한 왕이라는 증거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의 제목이다. 느부갓네살에게는 다니엘이 그런 존재다. 나에게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