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16-32 읽기

16-19 세번째 재앙 – 먼지가 이로 변할 것이다. 이번에는 바로의 마술사들이 자기들의 술법으로 먼지가 이로 변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마술사들은 바로에게 이것은 신(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지만, 바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모세와 아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20-32 네번째 재앙 – 들끓는 파리떼! 더 이상 바로의 마술사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따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주하나님은 파리떼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보내지 않아서 주님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을 구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파리가 고센 지역을 제외한 이집트 온 땅에 날아 들었고, 그 땅은 파리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집트 땅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라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서 제사 드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바로는 파리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광야로 가되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모세는 주님께 기도해서 파리 떼라 떠나가도록 하겠다고 말을 하고, 바로에게 더 이상 자신들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주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고집을 부리고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 바로의 신하들이 먼지를 이로 변하게 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신)만 하실 수 있는 이적이라고 말했음에도 바로의 마음은 완악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바로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그로 하여금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 파리 떼 재앙으로 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서 제사 드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로의 제안을 거부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만큼이나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라는 말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는 모세에게 광야로 가되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다. 바로가 끝까지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는 반증이다. 바로는 어쩔 수 없어 허락했지만,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바로는 결국 모세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 네번째 재앙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을 구별하셨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앙으로 칼로 치실까 두렵다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난한고 핍박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라고 인정하셨다. 세 번의 재앙을 통하여 모세의 말을 믿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어느 기준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출애굽기 7:8- 8:15 읽기

어제는 하루 쉬었다. 이유는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빼먹기로 했는데…

7:8-25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의 현인들과 마술사도 지팡이로 뱀이 되는 마술을 부렸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지만,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하나님의 말씀과 같았다. 주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의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주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 이번에도 바로의 요술사들이 물이 피로 변하는 요술을 행했다.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완악했다. 바로는 첫 재앙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물이 피로 변하여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에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8:1- 첫 재앙 후 일주일이 지났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셨다. 마실 물을 주셨다.) 모세와 아론은 다시 바로 앞에 섰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개구리로 이집트 온 땅을 치시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이집트 온 땅에 개구리로 들끓게 하였다. 이집트의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다. 개구리 떼에 시달린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그들이 주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으니 개구리를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세는 언제 개구리를 끊어지게 할 것인지 바로에게 물었고 바로는 내일이라고 대답했다. 모세는 내일이면 바로가 주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신)이 없는 줄 알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개구리가 떠나도록 간구했고 주하나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셨다. 온 애굽 땅은 개구리 시체로 악취가 가득했다. 악취가 어느정도 가시자 바로의 마음은 다시 완악해졌다.  주하나님 말씀대로였다.

// 첫째 재앙은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물은 생명이요 피는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피도 생명을 뜻한다. 피에 생명이 있다. 그러나 물이 피가 되었다는 것은 죽은 피라는 것이다. 바로의 요술사들이 물로 피를 만든 요술은 의미 없다.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한들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동이에 담아 놓았던 물을 빨갛게 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일주일만에 자비를 베푸셨다. 다시 마실 물을 주셨다.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취하시는 분이 주하나님임을 보여주셨다. 바로는 첫재앙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셨다.

// 두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이다. 개구리는 나일 강의 풍요를 상징한다. 그래서 개구리 두상을 한 우상도 있다고 한다. 그런 개구리들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바로의 요술사들이 흉내를 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한대에 하나를 더하는 꼴이다. 개구리를 돌이켜 나일 강으로 떼지어 빠지게 했다면 모를까? 사실 개구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모세와 아론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풍요의 상징인 개구리가 골치거리가 되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기로 약속했다. 모세가 기도하자 그제서야 개구리 떼는 약속한 날에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죽어 나갔다. 골칫덩어리가 된 풍요를 멈추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바로는 주하나님 같은 하나님(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었어야 했는데 골칫거리가 없어지자 다시 완악해졌다.

// 주하나님 같은 하나님(신)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영생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따라서 임마누엘만이 영생을 누리는 길이다.  

출애굽기 6:14-7:7 읽기

14-27 모세와 아론의 조상과 족보를 소개한다. 조상으로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부터 둘째 시므온, 그리고 셋째 레위까지 기록하고, 레위의 아들 중,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자기의 고모 요게벳을 아내로 맞아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아론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엘로아살은 비느하스를 낳았다.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주님의 분부를 받고, 이집트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 달라고 말한 이들도 모세와 아론이라고 적고 있지만 모세가 십보라와 낳은 아들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28-7:7 출애굽기 저자는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에게 “나는 주(여호와)다” 라고 시작하신 말씀을 반복해 기록한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희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너의 형 아론에게 말하여 주고, 아론은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 달라고 하여라. 그러나 나는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그러면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이었고, 아론의 나이는 여든 세 살이었다.

// 구체적인 출애굽의 이야기는 2장에서 레위 남자가 레위 여자와 결혼하여 모세를 낳는 것으로 시작한다. 폭력으로 저주의 예언을 받았던 레위 자손이 장차 제사장 가문이 될 떡밥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6장 말미에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등장한다. 넘버 3 레위. 하나님은 떡잎을 보고 될성부른 나무를 택하시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었던 레위 자손에서 출애굽을 이끌 모세와 제사장 가문이 된 아론이 나왔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차별이 없음을 보여준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순종이다.  

// 나는 주(여호와)다! 하나님(신)께서 모세에게 이것을 되풀이 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주님(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알지 못하는 주(여호와)를 어찌 이집트 백성이 알 수 있으랴! 창조주 하나님은 언약의 주님으로 성도들을 만나 주신다.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 더 가까이 성도와 함께 하신다. 세상 사람들에게 참 하나님(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순종하는 성도들뿐이다.

출애굽기 5:22-6:13 읽기

22-6:1 이스라엘 작업반장의 저주스러운 하소연을 들은 모세는 주님께 돌아와 호소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이 백성에게 이렇게 괴로움을 겪게 하십니까? 정말,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제가 바로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너는,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는 나의 강한 손에 밀려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게 될 것이다. 나의 강한 손에 밀려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땅에서 내쫓다시피 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9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언약을 세웠다. 나는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의 ‘주’인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내고, 이스라엘 자손을 종살이에서 건지고, 이집트에는 큰 심판을 내려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하여 내겠다. 내가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곧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강제노동에서 구해낸,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가나안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나는 ‘주’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와 같이 전했으나 고역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10-13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 왕 바로에게 가서 다시한번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 달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자기의 말을 듣겠냐고 주님께 항변했다.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함께 이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과 이집트 왕 바로에게 전하라고 명하셨다.

// 나는 ‘주’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 라고 거듭 강조하신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을 조상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창조 때부터 나오는 이름이다. 셋이 에노스를 낳고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아브라함도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모세에게 와서야 비로서  <나는 ‘주’다>라고 강조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고,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이름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수 많은 ‘여호와’라는 이름은 창세기의 저자로 알려진 모세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히브리 역사차원에서 당연히 채용된 하나님의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는지 알 수 없다.

// 하여간 멀리 계시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가까이 계시는 지존하신 언약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이 하나님(신)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부르게 하셨다. 하나님(신)께서 ‘아바, 아버지’로 더 가까이 다가오셨다. 그리고 성도 안에 말씀으로 살아 계신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다.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출애굽기 5:1-21 읽기

1-5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말했다. 바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모세와 아론은 다시한번 바로에게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은 일을 해야 하니 물러가서 너희도 일을 하라고 대답했다. 바로는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을 중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6-14 바로는 (오히려) 그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는 노동 감독관과 작업반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혹독하게 일을 시키라고 명령했다. 게으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간다고 조를수록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제사 드리러 가게 해 달라는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바로의 강제노동 감독관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을 때리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더 혹독하게 부려먹었다.

15-21 이스라엘 자손 작업반장들은 바로에게 가서 호소했다. 이전에 공급받던 짚도 공급받지 못한 채로 같은 수의 벽돌을 만들라고 강요받는 것은 잘못됐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서 주님께 제사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며, 벽돌 수를 줄여 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일축해버렸다. 아무런 소득없이, 곤경에 처해 돌아오던 이스라엘 자손 작업반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마주쳤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벌을 내리시면 좋겠다. 당신들이 때문에 바로와 그 신하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당신들은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게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다.” 하고 저주했다.

//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분명 모세와 아론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전부 전했음에도,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장자를 치시기까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것은 쏙빼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 만을 기억한다. 그러면 당연히 형편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자 참지 못하고 호소의 대상을 하나님 대신 바로 왕으로 바꿨다. 그러나 ‘바로’에게 호소해도 소용이 없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저주하기까지 했다.   

//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 과정과 결과가 이미 제시되었음에도 쉽지 않다. 그래서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호소해야 할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세상에 호소해 봤자, 성도는 미운털이 박힌 존재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바로와 다르지 않다. 세상은 성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삶을 바라지 않는다. 복음은 허튼 소리라며 듣지 말라고 한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결국 복음을 들은 성도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내야 한다. 용기를 내자!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