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1-18

예레미야 17:1-18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5)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7)
저주와 복을 아는 사람,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저주와 복’은 무엇을 믿고 의지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여기서도 ‘믿는다’는 신뢰한다는 의미요, 충성이라는 뜻이다. 철두철미하게 믿음은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킨 우리 주 예수 안에 머무는 것이 주님을 믿고 의지 하는 것다. 그래서 예레미야처럼 기도 한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낫습니다. 저를 살려주셔야 제가 삽니다. 주님만이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유다의 죄는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다. (헤스터의 몸에 찍힌 것이 아니라 딤즈데일의 마음에 새겨진).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죄는 다른게 아니다. 사람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저주가 기다린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뿐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도움뿐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20/

예레미야 16:14-21

예레미야 16:14-21

재앙은 주님이 누구신지 알리는 방편이다. 지금껏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북녘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께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주의 백성의 모든 행실, 곧 죄악에 대해 먼저 벌하실 것이다. 백성의 죄악이 감춰질 수는 없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겨 창조주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을 더럽힌 그들의 죄악에 대한 벌/하나님의 보복을 달게 받아야 한다.
예레미야는 환난 날에 주님은 나의 힘과 요새와 피난처가 되신다고 노래한다. 세상 만민이 모든 땅 끝에서 주님을 찾아와 그동안 자신들이 섬기던 것이 거짓되고 헛되며 전혀 쓸모없는 피조된 우상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려주시고, 주님이 주님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 바울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고 고린도 성도에게 썼듯이, 예레미야는 마지막에 만민이 주께 나아와 자신들이 섬기던 것이 거짓되고 헛되며 전혀 쓸모 없는 피조된 우상이라고 고백하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게 되되 주님이 주님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재앙이 주의 백성에게는 단순한 벌이 아니라 환난이다. 환난은 인내를 요구하고 연단되고 소망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다. 그러니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환난 날에 주님은 나의 힘과 요새와 피난처가 되신다고 노래한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9/

예레미야 16:1-13

예레미야 16:1-13

주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재앙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은 ‘너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며, 내 명령을 따라 순종하지 않았다.’ 하고 답하신다. //임마누엘이 구원이라면, 불순종은 재앙이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듯,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불순종은 그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곧 임마누엘이 천국이고, 낮이나 밤이나 다른 하나님(신)들을 섬기며 사는 것이 지옥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8/

인생사에 잔치와 (출생과 결혼) 장례식 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평생에 딱 세번 출생신고 결혼신고 사망신고하러 교회간다는 농담이 생겼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결혼하지 말라. 초상집에 가지 말라. 잔치집에 가지 말라. 한마디로 재앙의 날이다. 재앙이란 무엇인가? 독한 병, 칼과 기근으로 대표되는 심판이 곧 재앙이지만, 핵심은 고통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강과 인자와 사랑을 우리에게서 거두시는 것이다 [렘 16:5]. 본문 마지막절에서는 알지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13] 이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재앙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 그 자체다. 그결과 하나님나라에서 쫓겨 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재앙중의 재앙이다. 이미 지옥이다.

악한 마음 완악함을 버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레미야 15:10-21

예레미야 15:10-21

출생을 저주할 만큼 예레미야는 원통해 한다. 이런 예레미야에게 주님은 강하게 해주고 복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원수들이 궁지에 빠져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청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래도 유다 백성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 북쪽에서 일어난 나라에게 약탈 당할 것이고, 포로로 잡혀갈 정도로 주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잊지말고 돌봐 달라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진노를 참으셔서 죽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예레미야는 주님을 말씀을 받아 먹었고,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평화의 예언이 아니라 재앙의 예언을 해야 하는 예레미야는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어도 이땅에서는 외롭다고 말한다. 이 땅에서 예레미야는 고통속에 있다. 과연 주님은 미쁘신 분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주님은 이런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주께 돌아오면 받아주신다고. 주님을 섬기는자로 삼아 주신다고. 주님의 대변자로 쓰신다고. 외롭고 괴롭다고 예레미야가 불순종하는 그들에게 돌아가서는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예레미야와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임마누엘이 구원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7/

예레미야 15:1-9

예레미야 15:1-9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한다고 해도 주님은 이 불순종의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이 백성을 쫓아내라고 화를 내신다. 이 백성이 어디로 가야 구원을 얻으냐고 묻거든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거나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대답하라고 하신다. 주님이 소위 자기 백성을 칼에 맞아 죽게 하시고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시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시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치우게 하실 것이다. 세상 만국은 주님이 주님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보고 놀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는 더 이상 없다고 하신다. 주님이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주의 백성이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고 하신다. 그래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을 키질하여 흩어버리실 것이다.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려고 하니 망할 것이다. 주님은 침략군을 끌어들여 주의 백성을 치실 것이고 주의 백성가운데는고아와 과부만 남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지치실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쳤다고 하신다. 그러나 주님이 지치신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이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데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끊임없이 멀어져 가는 것은 주님이 아니시라 주의 백성이다. ㅠㅠ 주님과의 간극을 매울 중보자는 없다고 하신다. 모세도 사무엘이 중보해도 소용이 없다. 사실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이미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그러면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하고 반문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기는 커녕 하나님의 자비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분이시다.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