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8:19-30

월경 중의 여자(아내)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면 안 된다. 이웃의 아내와 가통하는 자는 더럽게 된다. 자식을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면 안 된다. 자식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주인이다. 남자와 섹스하면 안 된다. 망측한 짓이다.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 짐승과도 교접하면 안 된다.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성을 문란하게 하면 안 된다.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다. 하나님이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을 하다가 스스로를 더럽혔다.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 악한 땅을 벌해 그 땅의 거주자들을 쫓아내시는 것이다. 

주의 백성은 주님이 세우신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야 한다. 온갖 역겨운 짓들은 어느 하나라도 범하지 않아야 한다. 본토 사람이나 주의 백성과 함께 사는 외국인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역겨운 짓을 하여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 냈다. 그 땅을 더럽히면 주님은 주의 백성이라도 쫓아내실 것이다. 누구든지 앞에서 말한 역겨운 짓 가운에 어느 하나라도 범하면 , 백성은 그런 짓을 한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 

주의 백성은 주님께서 지키라고 한 것을 꼭 지켜야 한다.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이 저지를 역겨운 풍습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하여 스스로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주 너희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더럽히지 말아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주님이 세우신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결해야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더럽히지 않기 위해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한다. 성도에게 주님이 세우신 규례와 법도는 말씀이다. 성서다. //구약에서는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끊어내야 했다. 근묵자흑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거하지 않으면 더럽혀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간구처럼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말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적문란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욱더…

레위기 18:1-18

1-4 여전히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라고 주신 말씀이다.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주인이요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지금까지 살던 이집트의 풍속도, 주님이 이끌고 갈 땅 가나안 풍속도 따르면 안 된다. 주님이 명한 법도, 주님이 세운 규례를 따라 살아야 한다.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이 따라야 할 주인이요 하나님이다.

5 주님이 세운 규례와 주님이 명한 법도를 지키면 어떤 사람이든 산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6-18 주님은 부부관계 외에 그 어떤 다른 관계도 범하면 안 된다고 명하신다. 가까운 살붙이인 어머니, 아버지가 데리고 사는 여자, 누이, 손녀들, 아버지의 누이 (고모), 어머니의 형제 (이모), 숙모, 며느리, 형수, 제수, 딸, 손녀들, 아내의 형제들을 범하는 일은 악한 일이다.

//성도는 세상 풍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 주님이 명한 법도와 주님이 세운 규례를 따라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세운 규례와 주님이 명한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 산다고, 곧 생명을 보존하고 영생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다.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예수 안에 거하는 방법이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이 내 안에 예수를 (예수의 말씀을) 모시는 길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근친상간을 금하는 명령과 규례를 말씀하신다. 성도에게도 근친상간, 혼외성애는 악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한술 더 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하고 가르치셨다. 간음은 배교를 상징하는 단어다. 곧 근친상간과 혼외성애는 주님을 주인으로,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마음/생각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악한 일이다. 

시편 89:38-52 읽기

38-45 그러나 주님은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왕, 다윗에게도 노하셨다. 그를 물리치시고 내버리신다. 언약을 파기하시고 다윗의 왕관을 땅에 내던져 욕되게 하셨다. 주님께서 성벽을 허무시고 요새를 폐허로 만드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약탈당하고 이웃들에게는 수치거리가 되었다. 대신 대적들의 오른손을 치켜 올려서 원수들이 기뻐 날뛰게 하셨다. 주님께서 전쟁터에서 더 이상 그를 돕지 않으셨다. 그의 영광을 끝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바닥에 내던지셨다. 주님은 그의 젊은 날을 줄이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다.

46-48 시인은 언제까지 주님이 숨어 계시며,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를 불태우려고 하시는지 묻는다. 시인은 인생이 짧고 유한하며 허무한 존재로 창조 받았다고 노래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아무도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49-52 시인은 주님의 신실함에 호소한다. 다윗과 더불어 맹세하신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시인은 주의 백성이 뭇 민족으로부터 받은 치욕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원수들이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깔보며 가는 곳마다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모욕한다고 고발한다. 시인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주님을 노래한다. 아멘 아멘.

//시인은 주님과의 사랑도 항상 꽃길이 아니라고 노래한다. 짧고 유한한 인생길이 수치로 가득하자 시인은 주님의 첫사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한편 요한은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편지를 소개한다. 첫사랑, 첫행위를 회복하지 않은 성도라면 주님의 첫사랑을 언급할 수 없다. 짝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신실하심에 호소라려면 우리도 신실해야 한다. 시인이 치욕과 모욕중에도 주님을 영원히 찬양한다고 고백하는 힘은 주님이 변치않고 영원히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신실해야 한다. 

시편 89:19-37 읽기

시인은 환상가운데 주님께서 주님의 성도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시인의 노래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다스릴 용사를 선택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용사가 주의 종 다윗이다. 주님은 주의 종 다윗에게 주님의 거룩한 기름을 부으셨다. 주님이 다윗을 붙드시고 강하게 하신다. 그래서 원수들이 다윗을 이기지 못하고 악한 무리가 다윗을 괴롭히지 못한다. 오히려 주님이 다윗의 대적들을 격파하고 다윗을 미워하는 자들을 쳐부수신다. 주님은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신다. 그래서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 이제 다윗이 바다와 강도 정복한다. 다윗은 주님을 아버지요 하나님이요 구원의 반석이라고 부른다. 주님도 다윗을 맏아들로 삼아 세상 왕들 가운데 가장 높은 왕으로 삼으신다. 주님은 다윗에게 신의를 영원토록 지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신다. 다윗의 자손을 길이길이 이어주신다. 다윗의 왕위를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신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 주님의 법을 버리고 주님의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주님의 율례를 깨뜨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은 다윗의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매질할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 약속한 주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주님의 약속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주님은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으니 다윗을 속이지 않으신다. 다윗의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다윗의 왕위는 태양처럼,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다윗은 그리스도 예수다. 다윗(그) 대신 ‘예수’를 넣고 읽어도 노래는 같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 안에서 다윗의 영광을 누린다. 궁극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누린다. 

시편 89:1-18 읽기

시인은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길 원한다. 자자손손 자신이 노래한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길 원한다. 시인은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신실하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언약이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선택한 사람과 언약을 맺으신다. 다윗과도 언약을 맺으며 다윗과 다윗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세워 다윗의 왕위가 대대로 이어지게 하겠다고 맹세하셨다. 

시인은 하늘과 함께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노래하길 원한다. 거룩한 회중과 함께 주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하길 원한다. 하늘 위에서도, 신들 가운데서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다. 하늘에서도 하나님만 경외받으실 분이시다. 주님을 모시는 모든 자들이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신실하신 대장이시다. 주님은 소용돌이 치는 바다도 다스리신다. 파도도 잠잠케 하신다. 주님은 라합(이집트, 자랑하는 자들)을 격파하시고 죽이시고, 원수들을 흩으셨다. 

하늘도 땅도 모두 주님의 것이다. 우주만물을 주님께서 창조하셨다. 산들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주님의 팔에 능력이 있고 주님의 손에 힘이 있다. 주님은 오른손을 높이 드셨다.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다스리신다.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다스림을 받는 주의 백성은 복이 있다. 주님의 빛나는 얼굴에서 나오는 은총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은 축제의 함성을 외치며 주의 의로우심을 기뻐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의 영광스러운 힘이다. 주님의 사랑 덕분에 주의 백성은 승리의 나팔을 분다. 주님은 성도의 방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왕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 나의 노래가 시인의 노래처럼 자녀들에게 자자손손 전해질 수 있을까? 내가 정의와 공정, 사랑과 신실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주의 언약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다. 나의 노래는 잊혀져도 주님의 언약은 영원하고 변치 않으며 신실하니깐. 나의 노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