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8:1-18 읽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밤낮으로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기도합니다). 내 기도와 울부짖음을 귀를 기울여 들어주소서. 주님 나는 고난에 휩싸여, 내 목숨은 경각에 달했습니다.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 없습니다.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시체들 가운데 버려진 살해되어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나는 주님의 기억에서 사라진 자요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덩이의 밑바닥, 칠흙 같이 어두운 곳에 던져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짓누릅니다. 주님의 파도로 나를 덮쳤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친한 친구들마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나의 친구들이 역겹게 나를 봅니다. 나는 갇혀서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고통으로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주님 나는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으며,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혼백이 일어나서 주님을 찬양하도록, 주님께서는 죽은 나에게 기적을 베푸시겠습니까? 무덤에서 주님의 사랑을, 죽은 자의 세계에서 주님의 성실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흑암 속에서 주님의 기적을, 망각의 땅에서 주님의 정의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주님, 내가 첫새벽부터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고, 나에게 주님의 얼굴을 감추십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형벌이 무서워 내 기력이 다 쇠잔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진노가 나를 삼켰으며, 주님의 무서운 공격이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무서움이 홍수처럼 사방에서 나를 에워쌌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으셨습니다.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밤낮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시인은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하고 노래를 마무리한다. 개역개정은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하고 번역한다. 두 번역 모두 더 이상 나에게는 (도움을 구할)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시인은 밤낮으로 주님만 찾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을, 친구가 없다고 노래한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성도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인과 달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시인이 절망가운데 불렀던 노래를,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소망가운데 부르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허물과 죄로 죽었어도, 어둠에 갇혔어도, 우리에겐 어둠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는 친구가 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거하시는 주님이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임마누엘!

시편 87:1-7 읽기

1-3 그 터전이 거룩한 산 위에 있다. 주님은 시온의 문들을 야곱의 어느 처소보다 더욱 사랑하신다. 너 하나님의 도성아, 너는 영광스럽다. //거룩산 산 위의 터전이 시온이고, 주의 백성이  시온으로 들어가는 문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이다. 성도가 들어가는 곳이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시온의 문이 되어야 한다.

4-6 시온에 속한 사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그래서 시인은 라합(이집트?)과 바빌로니아, 블레셋과 에티오피아에서도 시온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고 노래한다. 가장 높으신 분, 하나님이 세우신 시온에 들어갈 나라와 민족에 차별이 없다. 주님께서 시온에 들어갈 사람을 계수하시며, 친히 등록하실 것이다. 

7 시온에 들어가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은 “나의 모든 근원이 주님 안에 있다” 하고 말한다. //생명의 근원은 주님이다. 시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성도는 나라와 민족의 차별없이 모두 하나님으로 부터 난 사람들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4/29/

//히브리서에서 묵상한 하나님의 나라다. 

히브리서 13:18-25 읽기

18-19 히브리서 저자는 기도요청을 한다. 양심에 꺼리는 것이 한점도 없도록, 모든 일에 바르게 처신할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신속하게 돌아가게 되도록 간곡하게 기도요청을 한다. 

20-21 저자는 독자들을 축복한다.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려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독자들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시길 바란다. 하나님의 뜻이 성도 가운데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이다. 아멘

22-23 저자는 독자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면서 편지에서 짧게 권면한 말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그리고 디모데가 풀려나온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디모데가 오면 함께 독자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다.

24-25 저자는 독자들의 지도자와 성도에게 문안한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문안도 전한다. 독자 모두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6/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는 사람이 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 곧 성령에 어울리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하나님의 뜻이 성도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히브리서 13:1-17 읽기

1-6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독자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하는 당부다. 나그네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도 있다. 곧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천사를 대접하는 기회가 되며. 예수께서는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야려야 한다.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혼인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혼외 성관계는 잠자리를 더럽히는 것이요 음행이요 간음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라. 주님께서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시고 성도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해 내게 손댈 수 있으랴?” 하고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7-9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지도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지도자 중의 지도자는 어제나 오늘이다 영원같이 한결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니 다른 이상한교훈에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음식 규정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져야 한다. 율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한다.

10-16 성도에게는 유대교의 성전에 있는 제단과 다른 제단이 있다. 유대교인들은 우리의 제단에 있는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다. 아마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권한이 없다는 가르침 같다. 그래도 저자는 유대교의 제사의식을 상기시킨다. 유대교는 성막(제단)을 깨끗하게 하려고 제물의 피는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만 고깃덩어리는 진영밖에서 태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피로 백성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깨끗하게 해야 할 유대교의 성막/성전에 해당하는 것이 주의 백성이다.) 주님을 따르는 성도라면 진영 밖으로 나가. 주님이 겪으신 치욕을 짊어져야 한다. 성도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차 올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다. 장차올 도시, 곧 하나님나라를 찾는 (좋은) 방법은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찬미의 제사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찬양과 감사다. 일차적으로 입술의 열매다. 그러나 입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는 실천이 따른다. 선행과 소유를 나누는 것에 소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도의 영적/합리적 예배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복종하라. 영적인 지도자들이야 말로 성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우리를 보고드릴 사람들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성도를 가르칠 수 있도록, 탄식하면서 가르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당부한다. (참 갈6:6)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요, 성령으로 함께 하는 것은 성도가 성령의 교통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곧 성령 안에서의 교제요,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지도자들과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는 구절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5/

히브리서 12:14-29 읽기

14-17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써라.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한다. (화평과 거룩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주의 하라. (역으로 주님을 뵙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 쓴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모든 사람이, 곧 교회 공동체가 화평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이 , 곧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은 아닐까? ) 음행하는 것도,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내가 음행 안하고, 내가 속되지 않는 것만 아니라 공동체에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장자권을 팔아 넘긴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 원했으나 거절 당했다. 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구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나님의 자녀권을 팔아 넘기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18-29 히브리서 독자들은 지금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께서 더 말씀하시기를 거부한 이스라엘 자손들과 달라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땅의 시내산에 닿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흑암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서워 떨어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세마져도 떨어야 했다. 그러나 히브리서 독자들이 이른 곳은 시온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독자들은 수많은 천사들과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예수가 뿌리신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피를 축하하는 행사 자리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스라엘 조상들처럼 두려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거부해서는 안된다.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땅에서 경고하는 하는 사람을 거역해서 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독자들은 하늘로부터 경고를 듣고 있으니 더더욱 피해서는 안 된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땅만 뒤흔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시니,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시키실 것이다. 하늘의 경고를 거부한다면 흔들리는 모든 피조물들을 없애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두려워 떨지 말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흔들리는 것들을 태워 없애는 불이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4/

////화평하라. 하나님의 자녀됨이다. 거룩하라. 하나님을 뵙는 길이다. 성도는 함께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화평중의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