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1-13 읽기

1-3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들의 증인이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마쳐야 한다. 우리가 바라 봐야할 증인 중의 증인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다. 예수께서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이 인내로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다. 죄인들의 반항/배반을 참아내신 예수를 생각하면 우리는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4-11 우리는 죄와 맞서 싸운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예수처럼)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다. 우리들은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주님께 꾸지람을 들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징계를 달게 받는 자녀를 채찍질 하신다. 이 주님의 징계를 참아내는 사람, 주님의 징계를 부모의 징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자녀이다. 부모의 징계륵 받지 않는다면 사생아나 다름없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도 훈육자로 모시고 공경한다. 하물며 영들의 (성령을 불어주신 창조주) 아버지께 복종하고 사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다. 육신의 부모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자기에게 유익이 되도록?) 자녀를 징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신다. 징계는 어떤 것이든 징계를 받을 때는 즐거울 수 없고 괴롭다. 그러나 징계를 달게 받아 훈련된 사람들은 정의와 평화를 열매 맺는다. 

12-13 그러므로 성도는 나른한 손과 힘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어야 한다.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똑바로 걸어야 한다. 정도를 벗어났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3/

//나른한 손과 힘빠진 무릎인 영적인 중풍병에 걸린 것을 뜻한다. 재활훈련이 필요한 상태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불순종의 상태다. 영적으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와상환자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일어나 걸어야 한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롭다. 교회의 물가에서 축복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 답게 책망도 듣고 징계도 받아,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해야 한다. 온갖 좋은? 설교로 머리만 커지고 배만 불러 뒹굴 거리는 게으름에서 탈피하여, 성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는 믿음이다.   

히브리서 11:32-40 읽기

32-38 저자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 이들이 믿음으로 한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다. 어떤 여자들은 믿음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에 맞고 결박 당하고 감옥에 갖히는 시련을 겪었다. 돌로 맞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했다. 궁핍해지고 고난을 겪고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 다녀야 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된다. 그래서 이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녀야 했다.

39-40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약속된 것을 자신들의 때에는 받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셨다. 우리 없이 그들만으로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다.

//믿음의 선배들만으로는 하나님나라가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 우리 후손들도 하나님나라에 참여해야 한다.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꿈꿔 본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2/

히브리서 11:23-31 읽기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으로 석 달 동안 갓난아기 모세를 숨겼다. 그들은 아기가 잘 생긴 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에 바로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믿음으로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했다.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는 길을 택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다. 모세는 장차 받을 상을 소망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다.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 바라보면서 견뎠다.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의식을 행했다. 그래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에서 이스라엘을 구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마른 땅 지나가듯 건넜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홍해에 빠져 죽었다.믿음으로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졌다. 믿음으로 창녀(주모)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않았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세상 명령, 시대의 조류를 거스리는 일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1/

////Obey and hope!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마지막 문장이 ‘wait and hope.’ 이다. 기다림이 (소망에 대한) 소극적 믿음이라면 순종은 적극적 믿음이다. 

히브리서 11:13-22 읽기

13-16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사라, 이삭, 야곱), 이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다. 그래서 자신들이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라고 고백했다. 

이땅에서 길손과 나그네 신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야할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떠나온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했다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다. 바로 하늘의 고향이다. 하나님의 나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동경하고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다.

17-2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도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다. 이삭은 약속으로 받은 외아들이었지만 기꺼이 바치려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고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이다. 이삭도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다. 야곱도 죽을 때에 믿음으로 요셉의 아들들을 하나하나 축복하고나서 마지막으로 서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 요셉은 죽을 때에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언급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했다.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자기 생각 대신) 약속의 조상이 되어야 할 이삭을 바치려 했다. 이삭은 육신의 장자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했으나 자신을 속인 야곱에게 한 축복을 취소하지 않고 인정했다. 야곱도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육신의 장자 에브라임이 아닌 므낫세에게 축복했다. 요셉은 이집트의 위대한 총리로 미이라가 되기 보다 히브리식으로 장사되기를 원했다. 모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내 생각, 내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이유는 하늘의 고향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동경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20/

히브리서 11:1-12 읽기

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받을만 하다.

3 성도는 믿음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이는 것은 (피조 세계는) 유에서 (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4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제물을 드린 아벨을 의인이라고 증언해 주셨다.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증언(인정)하시는 더 나은 제물을 믿음으로 드리자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5 에녹은 믿음으로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기셨다. 이 믿음이 엑녹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거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7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했다. 이 믿음을 통하여 노아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서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다.

8-1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자 순종하여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순종해서 떠난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약속하신 땅에서도 나그네처럼 거류했다. 아브라함은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소망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믿음으로 자신이 나이 많아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임신할 능력을 얻었다. 사라가 약속의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고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9/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들의 확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에 바라시는 것들을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드러났다. 그리고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더 나은 제물을 드리는 삶,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방주를 짓는 삶, 약속을 믿는 삶. 하나님께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에게 각각 바라셨던 것을 믿음의 조상들은 믿음으로 순종했다. 순종의 열매는 죽음이요 죽지 않음이요 구원이요 자손을 얻는 것이다. 인생이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다 담고 있다. 믿음은 인생 길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가는 것이다. 영원한 임마누엘을 소망하는 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