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26-39 읽기

26-31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된 성도라도, 곧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된 성도라도, 짐짓 (자원해서, 고의로) 죄를 짓고 있으면 더이상 속죄의 제사가 남아 있지 않다. (더이상 속죄받을 수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무서운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이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도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가차없이 사형을 받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은 얼마나 더 무서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주님은 친히 원수 갚으시는 분이시다. 주의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32-39 저자는 독자들에게 빛을 받은 직후, 곧 구원의 여정을 시작한 처음 시절에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 낸 것을 되새기라고 권면한다. 성도는 때로 모욕과 환난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이런 처지의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옥에 갇힌 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소유를 빼앗겨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일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 확신을 버리지 말라고, 이 확신에는 큰 상이 따라온다고 강조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이제 아주 조금만 있으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은 성도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성도가 믿음에 뒤쳐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성도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8/

//믿음으로 살아라.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믿음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마라나타!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큰 상이다.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이 된다. ////오래 참음으로 이 소망을 이루어 가야한다.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우리의 연약함이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섬기는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오래 참음으로 약속에 따라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성도의 견인’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근거하지만 성도의 오래참음을 요구한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히브리서 10:19-25 읽기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형제자매들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께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뚫고 성도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였다. 성도에게 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시다. 따라서 성도는 이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자기 몸을 친히 찢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하나님께 나아가지고 권면한다.) 성도는 예수의 피를 마음에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은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이 약속을 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하시다. 따라서 성도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소망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성도는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자고 격려해야 한다. 서로 모이기를 그만 두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르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야 한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7/

//성도 한사람 한사람은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만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라는 공동체로 구원을 완성된다. 

////믿음은 낮은 자의 편에 서는 구체적인 삶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그곳에 삼위 하나님은 계신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영생이다. 영생을 누리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 성소/성전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본다고 보이지 않는다. 자기를 낮추고 서로를 돌아볼 때 보인다. 성도들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사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방법이다. 더욱 그리해야 한다.

히브리서 10:1-18 읽기

1-10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다. 율법은 실체가 아니다. 해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다. 만일 율법이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하여진 뒤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는 매년 드려야 한다. 제사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효력이 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임을 인정하게 한다.) 이렇듯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께서는 하나님께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죄인들이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거듭 반복해서 드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 없으신 분이 자신의 피로 단 한번 완전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할 때,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이다. 주님이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첫번째 것을 (율법을) 폐하시고 두번째 것을 (성령의 법을) 세우시려고 하셨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

11-14 사람 제사장이 날마다 제단에서 드리는 똑같은 제사는 거듭 드려도 (불완전한 제사장들이 불완전한 제물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셔서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오른쪽에서 원수들이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 

15-18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성도를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는 것을 성령께서 증언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의 희생제사를 드리시고 “내가 그들에게 세워 줄 언약은 이것이다.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박아주고 그들의 생각에 새겨주겠다. 또 나는 그들의 죄와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죄와 불법을 용서받았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6/

//성령충만을 받으라! 가장 좋은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소서. 완전하고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께서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히브리서 9:23-28 읽기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은 율법의 여러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율법의 규정보다 더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모형인 이땅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 본체에 들어가셨다. 우리(성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

사람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소 성소에 들어가야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여러번 바치실 필요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여러번 바치셔야 했다면 창세 이래로 여러번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애셨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 뒤에는 심판이 따른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다. 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죽은 뒤에 따르는 심판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저자는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에 있는 것들도 깨끗해져야 하다니?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것들도 다 깨끗하지 않다는 것인가? 더 나은 희생제물, 곧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것은 성도다. 그렇다면 깨끗해져야 할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미 잠자고 있던 (먼저 죽은) 성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땅에 사는 성도도 이미 하늘에 속한 존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으며,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성도요, 성도는 이땅에서는 죽으나 뒤 따르는 심판에서는 구원받는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5/

히브리서 9:11-22 읽기

11-14 저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이미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이 땅의 장막(성전)이 아니라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성소)를 통과하여 단 한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첫번째 언약에서 말한 염소나 송아지의 피 대신,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제물의 피는 사람의 육체를 깨끗하게 해서, 한시적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만,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의 (육체만이 아니라)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성도로 하여금 죽은 행실을 떠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거룩은 곧 죽은 행실을 떠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15-22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두번째 언약)의 중재자다. 그리스도는 첫번째 언약에 범죄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려 죽으셨다. 따라서 이 부름을 (두번째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상속받게 되었다. 유언은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유언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이 두번째 언약을 효력있게 한다.) 첫번째 언약도 제물의 피로 세웠다. 모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선포한 후,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 피와 염소 피로 언약책과 온 백성에 뿌렸다. 모세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말했다. 모세는 같은 방식으로 장막과 제사 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구에도 뿌렸다.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 진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14/

//정결한 마음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나의 양심까지 정결케 하시는 예수의 피 밖에 없다. 나를 정케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것이 더 크고 더 완전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길이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