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1-9 읽기

1-4 천사들이 전해 준 복음의 퍼즐 조각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맞춰졌으니, 우리는 들은 복음을 더욱 굳게 간직하여 잘못된 길(죄)로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 곧 율법이라고 생각된다. 율법을 범한 모든 범행과 불순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공정하게 갚아졌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큰) 구원이다. 우리가 갚을 수 없기에  예수께서 대신 갚아 주셨다. 이 구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구원은 주님께서 처음 말씀하셨고,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우리에게 확실하게 전해졌다. 하나님께서 표징과 이적으로, 무엇보다도 성령을 선물로 나눠주셔서 우리가 받은 구원을 확증해 주셨다.

5-9 하나님께서는 장차 올 세상, 곧 구원받은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시지 않았다. 다시말해 율법준수로 구원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올 세상, 곧 구원받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 아래 두셨다. 은혜의 법아래 두신 것이다. 만물을 예수 그리스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아직 모든 만물이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셔야 했다는 것을 그 예로 든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 잠시잠깐 버림을 받으심이 성도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성도가 구원을 가볍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세상에서 직면하는 환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 고난은 잠시 잠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담대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무관심해서도 태만해서도 안 된다. 잠시 잠깐의 고난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02/

히브리서 1:1-14 읽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여러 퍼즐들을 정확하게 맞춰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원본을 본적이 없었으니, 복음이라는 그림을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이라는 그림의 마지막 조각이자, 복음을 본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누구든지 복음이라는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원본을 보기만 하신 분이 아니라 복음을 직접 그리신 분, 복음 자체라고 설명한다. 곧 창조주라고 소개한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상속자이시니,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다스리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시다.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모든 천사들이 섬기는 존재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분이시다.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러 오셨지만,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적인 존재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로 천사보다 귀한 존재다. 하나님, 저에게도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주셔서, 정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6/01

시편 86:1-17 읽기

가난하고 궁핍한 시인이 주님께 기도한다. 시인은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신실하다. 시인은 신실함을 이유로 생명을 지켜 달라고 주님께 간구한다. 시인의 신실함은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 인식에서 나온다. 

시인은 온종일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에게 은혜란 주님을 우러러 보고, 주님께서 시인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이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하고 애원한다. 주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고난을 당할 때마다 기도한다.

시인은 주님과 같은 신(하나님)이 없다고 노래한다. 주님이 하신 일을 어느 신(하나님)이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대신 세상 모든 나라가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린다고 노래한다. 주님만이 위대하시며 놀라운 일을 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게싸고 다짐한다. 시인의 마음을 다해 주님께 감사드리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님께서 베푸신 크신 사랑, 곧 지옥 깊은 곳에서 자신을 건져내셨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오만한 자들, 난폭한 무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고발한다. 

시인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 없으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얼굴을 돌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힘을 구한다.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은총을 베풀어 주실 징표를 구한다. 시인을 미워하는 자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징표를 보고 부끄러워 할 것이다. 시인은 ‘주님께서 친히 나를 돕고 위로하셨습니다’ 하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가난과 궁핍함은 기도할 충분 조건이 아니었다. 시인은 신실함이 기도의 필수조건인줄 알았다. 시인의 신실함은 주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 인식의 결과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도 알고 있었다.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알고있었다. 시인이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이렇게 기도는 기도응답에 순종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내가 할 말만 하고 주님의 응답에 귀를 닫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내 뜻대로 되는 형통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응답에 순종하는 나의 삶에서 세상은 주님을 보게 될 것이다. 성도는 기도응답에 순종할 힘을 주께 구해야 하고, 주님께서 순종하는  성도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온종일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께서는 성도의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채워 주신다. 임마누엘!

시편 85:1-13 읽기

주님은 주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셔서 포로가 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오게 하셨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하셨다. 그 모든 죄를 덮어 주셨다. 주님의 노여움을 말끔히 거두어 주셨다. 주님의 맹렬한 진노를 거두어 주셨다. 이렇게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해 주셨다.

그런데도 시인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서 품으신 진노를 풀어달라고 간구한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다시 죄를 짓고 있다는 증거다.) 주님께 영원히 노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서 주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 살려주셨음을 상기시킨다. (구원 받은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시인은 주님께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달라고, 주님의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구원은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청종하겠다고 약속한다.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를(안식을)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 말로 성도들이 망령된 길로 가지 않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광이 깃든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셔야 우리는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사랑 = 진리(진실). 정의 = 평화(안식).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진실이 정의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을 내려주셔서 진리가 열매맺게 하신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뜻이, 곧 정의가 앞장선다. 우리는 주님께서 닦아 놓으신 그 길을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