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4:1-12 읽기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최고로 사랑스러운 곳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온 맘과 온 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입니다. 동물들도 주님의 제단 곁에 집을 짓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복됩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 마실 샘물이 솟아나고,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덛고 더 얻어, 시온, 곧 주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야곱의 하나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주님의 우리의 방패입니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살기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거시 더 좋습니다.

주님은 태양도 되시고 방패도 됩니다.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복되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되다. 시인은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 복이라고 노래한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시인은 아직 주님의 집에 도악하지 않았어도,  주님의 집을 향해 순례길에 오르기만 해도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은 곧 주님께서 힘을 주셨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시인처럼 사망의 음친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들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께서 공급하시는 샘물로 힘을 얻는다. 주께서 순례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위험을 막아주신다. 아니 은혜와 영예을 얻게 하신다. 시온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의 영을) 아낌없이 내려 주신다. 이런 주님을 신뢰하여 시온을 향해 출발하는 사람들이 복되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과 길을 가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가 복되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세상 호사를 누리는 것보다 더 좋다. 믿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다.

시편 83:1-18 읽기

시인은 하나님께 묵묵히 계시지 말라고 간구한다. 주님의 원수들이 큰 소리치고,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치켜들고 활개치기 때문이다. 주님의 원수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주님이 아끼시는 주님의 백성을 치려고 음모를 꾸민다. 주님의 나라를 훼방한다. 주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주님의 원수들은 심지어 주님과 맞서려고 동맹을 맺는다. (에돔, 이스마엘, 모압, 하갈, 그발,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앗시리아, 그리고 롯의 자손 (모암과 암몬?)까지) 그러나

시인은 주님께서 미디안에게 행하신 대로 주님의 원수들의 동맹도 멸망시키시기를 간구한다. 원수들의 동맹의 장수들과 원수들의 동맹국들의 왕들을 미디안 장수 오렙과 스엡과 같이,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와 같이 무찔러 주시기를 노래한다. 하나님의 목장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던 자들을, 바람에 굴러가는 엉겅퀴와 쭉정이와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산림을 태우는 불길처럼, 주님의 회오리 바람으로 원수들을 쫓아내 달라고, 원수들이 주님의 폭풍으로 두려움에 떨게 해 달라고 노래한다. 그들이 주님을 찾도록 그들을 수치로 씌워달라고 노래한다. 수치와 공포로 멸망하게 해 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주’이시며 온 세상에서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은 분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시인이 열거하는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동맹국들을 세는데 열손가락이 부족한데도 왜 침묵하시는가?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던 미디안과 다를 바 없는데 왜 묵묵히 계시는가? 하나님의 원수들이야 말로 수치와 공포가운데 멸망해야 할 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주님의 원수들과 달랐던가? 주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이 ‘주’이시며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으신 분이심을 알았던가? 하나님의 원수들이 동맹을 맺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을 지워버릴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백성들도 원수들과 다름없이 살아갈 때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주’라고 바로 알고 있다면 온 세상이 주님만이 홀로 가장 높은 분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시인은 세상을 빗대어 세상 가치관에 물들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탄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 주님은 침묵하신다.

시편 82:1-8 읽기

1-7 하나님(엘로힘, 가장 높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신(엘, 하나님)들을 재판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이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한다고 나무라셨다. 신들이 악인의 편을 든다고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에게 가난한 사람, 고아를 변호해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사람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라고,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신들은 하나님의 판결을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만 있었다. 그래서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하나님께서 신들(엘로힘)이라고 부르신 이들은 가장 높으신 분(지존자)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왕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존재다. 

8 시인은 하나님께 이 세상을 재판해 달라고 탄원한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판결해 달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 고아들, 가련한 사람, 궁핍한 사람들 편에 섰는지 아닌지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지존자)께서 하나님(신)들에게 가난한 사람, 고아를 변호해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사람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라고,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세상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소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주님의 법정 명령을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재판, 악인의 편을 드는 재판이 어둠 속에서 헤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 분노하신다. 하늘 회의를 (재판을) 소집하신 이유다. ////성도는 가장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선다. 어둠 속에서 헤매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다. 어둠 속에서 헤매지 말라고. 빛 가운데 행하라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서라고 하신다.  

사무엘상 31:1-13 읽기

1-5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시작됐다. 블레셋이 우세했다. 이스라엘은 도망쳤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를 먼저 죽였다. 전세는 완전히 블레셋에게 기울었다. 사울은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사울은 자신의 무기담당 병사에게 자신을 먼저 찔러, 블레셋 사람이 자신을 죽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명령했으나 무기 담당 병사는 주저했다. 사울은 자기 칼을 뽑아 그 위에 엎어져 자결했다. 사울이 죽자 무기 담당 병사도 자기의 칼을 봅아 그 위에 엎어져 사울과 함께 죽었다.

6-7 사울도, 사울의 세 아들도, 사울의 부하들도 그 날 다 함께 죽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던 성읍을 버리고 도망쳤고 블레셋 사람들이 빈 성읍으로 들어와서 살았다.

8-10 블레셋 사람들은 전리품을 취하다가 사울과 사울의 세아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들은 사울의 목을 자르고, 갑옷을 벗기고 블레셋이 섬기는 우상들의 신전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승전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하고 사울의 시체는 벳산 성벽에 매달아 두었다. 11-13 길르앗 야베스 주민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한 일을 전해들었다. 길르앗 야베스 용사들이 밤새 걸어서 벳산까지 가서 사울의 주검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성벽에서 내려서 야베스로 가져와 화장을 했다. 화장 후 뼈를 거두어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 묻고 이레동안 금식했다.

//사울이 전사했다. 사울의 세 아들들이 먼저 전사했다. 눈여겨 볼 것은 다윗과 마음이 하나였던 요나단이 끝까지 아버지 사울을 보좌했다는 것이다. 주님이 영이 떠나 악령에 시달리고, 탐욕과 교만으로 가득한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요나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도 ‘부자유친’의 정신을 잃지 않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순종했다. //사울 왕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오직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만이 자신들을 암몬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사울을 잊지 않았다. 야베스 사람들은 밤새 단걸음에 벳산으로 달려가 사울과 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와 화장하고 뼈를 거둬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했다. 그리고 이레동안 금식하며 추모했다. 야베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안식을 준 사울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비록 주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지만, 사울이 죽은 후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렸다고 생각된다. 굳이 저자가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세 아들들의 유골을 에셀(생명?)나무 아래 묻었다고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함부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우선이다. 

사무엘상 30:21-31 읽기

21-25 다윗이 이백 명이 낙오한 브솔 개울에 이르러 다시 만나 문안하였다. 다윗과 함께 출전하였던 무리 중에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낙오병들에게는 되찾은 물건을 하나도 돌려주지 말고 아내와 자식들만 데리고 가게 하자고 우겼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을 달랬다. 잃었다가 모두 되찾은 것을 주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주님의 선물을 악하고 야비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출전했던 사람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윗이 이때 정한 것이 율례와 규례가 되어 지켜지고 있다.)

26-31 시글락에 돌아온 다윗은 전리품의 일부를 유다의 장로들에게도 보냈다. 주님의 원수들에게서 약탈한 전리품의 일부를 선물로 보냈다. 다윗이 선물을 보낸 유다 성읍들은 베델, 라못네겝, 얏딜, 아로엘, 십못, 에스드모아, 라갈, 여라므엘, 겐, 호르마, 고라산, 아닥, 헤브론 등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드나들던 모든 지방이 포함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나의 욕심에 따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의 욕심에 따르는 것을 악하고 야비하다고 표현한다. 개역개정은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라고 번역한다. 이들은 하나님나라에 해가 되는 사람들이다. 아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다. 다윗은 전리품, 곧 하나님의 선물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율례/규례로 만들었다. //다윗은 심지어 전쟁과 상관이 없었던 장로들에게도 전리품을 나눠주었다. 유다지파의 왕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의 원수들에게서 약탈한 전리품을 주님의 백성과 나눈 것이다. 지도자는 남보다 더 갖는 위치가 아니라, 더 나누어야 하는 자리다. ////성도는 물질에 대해 악하고 야비해서는 안 된다. 바울처럼 “주는 것이 받은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언행일치의 삶을 발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