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8:19-33 읽기

사무엘하 18:19-33 읽기

19-23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달려가서 승전의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겠다고 말하자 요압이 말렸다.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오늘은 임금님의 아들이 죽은 날이라고 말렸다. 요압은 대신 이디오피아 사람에게 다윗에게 본대로 아뢰라고 명령했다. 에티오피아 사람은 요압의 명을 받고 달려갔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간청했다. 요압이 거듭말렸으나 아히마아스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요압은 더이상 말리지 않았다. 아히마아스는 지름길로 달려서 에티오피아 사람을 앞질렀다.
24-27 다윗은 성문 안문과 바깥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어떤 사람이 혼자 달려 온다고 말하자 다윗은 혼자 오는 사람이면 좋은 소식이라고 대답했다. 파숫꾼이 그 뒤에 한 명이 더 달려온다고 하자 다윗은 그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파수꾼은 앞서서 오는 사람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 같다고 말하자, 다윗은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28-30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인사하고 반역자들을 없애 버리시고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다윗의 주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안부를 물었다. 아히마아스는 소동이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아히마아스에게 물러나서 곁에 있으라고 말했다.
31-33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서 승전 소식을 전했다. 다윗은 그에게도 압살롬이 평안한지 물었다. 에티오피아 사람은 다윗의 원수들과 다윗에게 반역한 자들이 모조리 압살롬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것 울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다윗은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었다.

//다윗에게 좋은 소식은 승전보다 아들의 평안이었다. 아비의 마음이다. 다윗은 전령이 왔을 때, 전령에게 압살롬이 평안한지 물었다.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소식은 모른다고 발을 빼자, 뒤따라 온 에티오피아 전령에게도 압살롬이 평안한 지 물었다. 에티오피아 전령이 압살롬은 반역자의 운명이었다고 대답한다. 압살롬은 다윗에게는 아들이었지만, 다윗 왕조에는 반역자였다. 그럼에도 다윗에게는 승전의 기쁨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훨씬 더 컸다. 그냥 인지상정이라고 다윗을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까? 이 모든 비극이 공평과 정의로 자신도 가족도 나라도 다스리지 못한 다윗의 죄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부모 공경도 마땅한 도리요, 자녀 사랑도 당연한 것이지만, 공평과 정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다윗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마을 어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전령이 아니라 아들을 기다렸을 것이나 끝내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

사무엘하 18:1-18 읽기

사무엘하 18:1-18 읽기

1-5 다윗은 싸움 준비를 했다. 백성을 점검해서 천부장 백부장을 세웠다. 백성을 세 부대로 나눠, 요압, 아비새, 잇대에게 맡겼다. 다윗은 직접 싸우러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다윗을 따르는 백성들이 말렸다. 다윗에게 성 안에 있으면서 후방에서 돕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다윗은 백성들의 의견을 따라 성문 곁에서 백성들의 출정을 격려했다.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는 다윗의 부탁을 온 백성이 들었다.
6-8 다윗의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러 들녘으로 나갔다가 에브라임 숲속으로 유인해서 싸웠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했다. 이만 명이나 전장에서 죽었다. 숲속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이 칼에 찔려 죽은 군인보다 더 많았다.
9-13 압살롬은 전장에서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는데, 상수리나무 가지 밑으로 달려가다가 압살롬의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노새는 빠져나가고 압살롬은 공중에 매달렸다. 요압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요압은 보고한 사람에게 왜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은 천개를 준다고 해도 임금님의 아들을 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님이 압살롬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들었는데, 임금님을 속일 수 없다고 말했다. 압살롬을 해쳤으면 요압 장군도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14-15 요압은 서둘러 가서 상수리나무에 산 채로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었다. 요압을 따르는 젊은이 열명도 압살롬을 쳐서 죽였다.
16-17 압살롬을 죽인 요압은 나팔을 불어 종전을 선언했다. 요압의 부하들은 압살롬을 숲속의 깊은 구덩이에 던지고 그 위에다가 아주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18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후대에 남길 아들이 없다고 생각해서, 살아 있을 때에 자기 비석을 이미 준비해 뒀다. 사람들은 압살롬의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세웠다.

//다윗은 부대를 잘 정비했다. 요압, 아비새, 잇대. 이름 값만으로도 압살롬의 아마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더군다나 피난길에서 숨을 돌린 다윗은 천부장 백부장을 세웠다. 소수정예 군대였다. 이에 비하면 압살롬의 군대는 오합지중이었다. 다윗의 부대가 진영을 갖춘 이상, 압살롬은 상대가 안 되었다. 다윗의 부대는 들녘에서 싸우지 않고 압살롬의 군인들을 숲속으로 유인해서 싸웠다. 전술적으로도 상대가 안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히도벨의 모략까지도 어리석게 만드시는 주님이 승패를 쥐고 계셨다. 한 판의 장기. 다윗 진영은 왕을 잘 감추었고, 압살롬은 그만 노출되고 말았다. 졸이라도 주님이 사용하시는 장기판의 말이 되기를. ////다윗은 끝까지 아버지였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대해 주신다. 그러나 압살롬처럼 아버지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자기 멋에 산다면 그 결국은 뻔하다. 우리 성도 에게는 돌아갈 아버지가 계시다. //압살롬에게는 세 아들과 딸 다말이 있었는데… 자기 이름을 후대에 남길 아들이 없다고 생각해서 미리 묘비를 준비했다니? 음~ 세 아들 모두 어려서 죽었나? 비석에 이름을 새기기 보다, 하늘에 이름을 새겨야 한다.

사무엘하 17:15-29 읽기

사무엘하 17:15-29 읽기

15-16 후새는 아히도벨의 모략과 자기의 모략을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알려주고, 다윗에게 빨리 사람을 보내, 오늘 밤 나루터에 묵지 말고 빨리 강을 건너라고 전하라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백성 모두 전멸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17-20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과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예루살렘 바깥의 샘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여종이 전해주는 소식을 받아 다윗 왕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그걸 보고 압살롬에게 보고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바후림으로 피난해 어떤 사람의 집 마당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그 집 여인은 우물을 덮어 놓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다. 압살롬의 병사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물었지만 그 여인은 두 사람이 강을 건넜다고 대답했다. 압살롬의 병사들은 뒤쫓아 갔으나 찾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1-22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우물에서 올라와 다윗 왕에게 후새의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다윗에게 일행과 함께 빨리 강을 건너가라고 재촉했다. 다윗은 온 백성을 거느리고 밤새 요단강을 건넜다.
23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나귀를 타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집안 일을 정리한 후 목을 매어서 죽어, 조상의 무덤에 묻혔다.
24-26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압살롬은 이스라엘 온 군대를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넜다. 압살롬은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웠다. 아마사의 어머니는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여동생이다. 압살롬은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27-29 마하나임에 도착한 다윗은 암몬 족속의 도성 랍바에서 온 나하스의 아들 소비, 로데발에서 온 암미엘의 아들 마길, 로글림에서 온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다윗 일행에 필요한 것들, 숙식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와서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아히도벨은 누구인가? 이번 사건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역대상에도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가 되었다는 구절밖에 없다. 같은 곳에 아렉사람 후사는 왕의 벗이 되었는 구절이 나온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다윗의 모사였던 그가 낙향하여 지내다가, 다윗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었는지 궁금하다.아히도벨은 다윗에 대한 보복이 자기 모략대로 진행되지 않자, 다시 낙향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자기 이익을 따르면 관계가 깨지고 만다. 다윗과 압살롬의 부자관계가 깨어졌고, 다윗과 아히도벨의 군신관계도 깨어졌으며, 요압과 아마사의 사촌관계도 깨어졌다. 한 번 깨어진 관계는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주님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면 나의 이익을 따르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내려 놓아야 할 것은 바로 나의 몫이다. //다윗의 피난길에는 역전의 친구들이 다시 뭉쳤다. 소비, 마길, 바르실래와 다윗의 관계에 대해서 사관은 침묵하고 있으나, 다윗이 이들에게 선대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에 딱 맞는 상황이다. 다윗에게 울어주는 친구가 있으니 됐고,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있으니 됐다. 성도에게는 우리 주님이 이런 분이시다.

사무엘하 17:1-14 읽기

사무엘하 17:1-14 읽기

1-4 아히도벨의 계략이 이어진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만 이천명을 뽑아 오늘 밤 당장 다윗을 뒤쫓아가, 다윗이 지쳐서 힘이 없을 때 다윗을 덮치면, 다윗을 따르는 모든 백성이 달아날 것이고, 그 때 자신이 다윗 왕만 쳐서 죽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자신이 온 백성을 압살롬 왕에게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노리는 목숨도 오직 다윗의 목숨이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백성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도 아히도벨의 말을 옳게 여겼다.
5-13 그 러 나, 압살롬은 아렉사람 후새의 말도 들어보자고 했다. 압살롬은 후새에게 아히도벨의 계략 들려주고 의견을 물었다. 후새는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의 모략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은 용사들이고, 그것도 새끼를 빼앗긴 들녘의 곰처럼 무섭게 화가 난 용사요, 다윗은 노련한 군인이어서 밤에는 어차피 백성들과 함께 잠도 자지 않을 것이다. 벌써 굴속 같은 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압살롬의 군인들 몇 사람이라도 다윗 군인들에게 죽기라도 하면 압살롬의 군인들이 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저 당장 낙담할 것이다. 압살롬의 부친도 용사요 그의 부하들도 용사라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 알고 있다.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압살롬)에게 불러모아, 임금님이 친히 많은 군인을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 다윗을 따르는 곳을 덮쳐 다윗과 다윗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윗이 어떤 성읍으로 물러나면, 그 성읍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장로가 후새의 모략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좋다고 찬성하였다. 주님께서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도록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던 것이다.

//아히도벨과 후새의 모략 대결은 후새의 승리로 끝났다. 아히도벨은 자신을 주어로 사용했다.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아히도벨 자신이 병사 만이천명을 택하고, 자신이 다윗의 뒤를 추적하고, 자신이 다윗 왕만 쳐죽이고 온 이스라엘 백성을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아히도벨 자신이 다윗 하나만 잡으면 확전없이 원하는 승리를 얻는다고 말했다. 반면 후새는 압살롬이 이미 이스라엘 왕이라고 추켜 세웠다. 그리고 승자로써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군더더기 없는 아히도벨의 모략이 옳기는 하지만, 후새의 모략이 더 좋다고 찬성한다. 김칫국물부터 마신 꼴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아히도벨의 모략이 어리석은 것이 되도록 해달라는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읽으면 아히도벨은 무슨 일로 다윗과 원수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꼭 개인의 원수를 갚기 위한 모략같다.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선 것은 개인적 원한을 갚기위한 방편이었나보다. 하여간 주님께서는 아히도벨의 옳은 모략에, 아히도벨의 개인적인 감정을 (‘내가’ x 4) 담게 하심으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물리치게 하셨다.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사무엘하 16:1-23 읽기

사무엘하 16:1-23 읽기

1-4 다윗의 피난길에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싣고 다윗을 맞았다. 다윗이 시바에게 무슨 뜻으로 가져왔느냐고 묻자 음식을 싣고 온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을 청년들이 먹게하고 포도주는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고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시바는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있으며, 사울의 나라를 자신에게 돌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대답했다.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것이 다 네것이라고 말했다. 시바가 다윗을 주 왕이라고 부르며 왕 앞에서 은혜를 입었다고 인사했다.
5-14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자 사울의 친족 중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계속 저주했다. 시므이는 다윗과 다윗의 신하들을 향해 돌까지 던졌다. 백성과 용사들이 다윗 좌우에서 막아주었다. 시므이는 다윗에게 “피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사울을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다.” 하면서 저주했다. 스루야의 아를 아비새가 다윗에게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했으나 다윗은 말렸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일 수 있으며, 자기 아들인 압살롬도 자기 생명을 해라려 하는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 시므이에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그냥 저주하게 두라고 말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받지만, 이 저주 때문에 주님께서 선으로 자신에게 갚아주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렸다. 다윗 일행은 피곤하여 한곳에 이르러 쉬었다.
15-19 압살롬과 압살롬을 따르는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아히도벨도 압살롬과 함께 왔다.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을 ‘왕이여 만세’ 하며 맞이했다. 압살롬은 후새에게 어찌하여 친구 다윗을 후대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후새는 자신은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택한 자와 함께 있는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다윗을 섬겼듯이 다윗의 아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면서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20-23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계략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이 남겨 둔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여 다윗의 미움을 더 사게 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압살롬과 압살롬과 함께 있는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해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말을 따라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았다. 다윗도 아히도벨의 계략 신뢰했었고, 압살롬도 이제 그렇게 여겼다.

//환대를 받을 때의 다윗과 저주를 받을 때의 다윗의 자세가 이 처럼 다르다. 다윗은 피난길에 나귀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 온 시바의 이간질을 눈치채지 못하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시바에게 주고 말았다. 시바에게 왕노릇 하는 다윗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편 몰락한 사울의 친척 시므이의 저주에는, 왕으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주님 앞에 선다. 죄인으로 주님 앞에 서서 주님께 자비를 구한다. 주님께서 선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에게 갚아주시길 바란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멀리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며, 자신은 죄인이라고 기도하는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렸갔다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식이 있어야 자기를 낮출 수 있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나 가당한 말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근친상간을 계략이라고 내놓은 아히도벨, 이전까지는 마치 하나님처럼 계략을 내놓았으나 지금부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근친상간이 압살롬 일당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한다고 말했지만, 예수께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고 가르치셨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의 계략이 뜻대로 될 리 없다. 후새를 보라. 아들 벌 압살롬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지 않는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