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6:1-12 읽기

1-5 십 광야 주민이 다시 한번 사울을 찾아와 다윗이 여시몬 맞은 편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다고 밀고했다. 사울은 삼천 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으러 직접 갔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온 것을 알았다. 다윗은 정찰대를 보내 사울이 진 친 곳을 확인한 후, 사울의 진 가까이 갔다. 사울은 진 한 가운데서 자고 있었고, 사울의 둘레를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6-12 다윗은 동행한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중에서 아비새만 데리고 밤에 사울이 자고 있는 곳까지 갔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고 있는 사울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다윗이 타일렀다.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이면 벌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윗은 사울은 주님께서 치시든지, 늙어 죽든지, 아니면 전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재차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렇게 다윗과 아비새는 창과 물병만 들고 사울의 진에서 빠져 나왔다. 주님께서 사울과 함께 한 사람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보는 사람도 눈치채는 사람도 깨는 사람도 없었다.

//헷 사람 아히멜렉. 이름 뜻으로 따지면 왕(다윗)에게 형제와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다. (다윗의 도망을 도왔던 제사장의 이름과 같다.) 아비새는 다윗의 누이 수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이니 조카였다. 조카인 아비새가 외삼촌 다윗을 따라 사울 진영까지 갔다. 아비새 대신 형제같은 아히멜렉이 함께 갔다면 다윗의 만류에도 사울을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울은 다윗과의 언약을 (주님 앞에서 한 약속을) 깨고 다시 한번 다윗을 죽이기 위해 왔지만,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사울)에 대한 다윗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사울 진영의 사람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해서,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긴 다윗을 보호해 주셨다. ///그런데 왜 다윗의 누이 수루야의 아버지는 이새가 아니고 나하스(삼하17)일까? 다윗이 수루야의 아버지 나하스가 죽은 후, 수루야의 어머니와 이새와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새가 아들이 없는 나하스 가문의 기업을 무를 친족의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곧 다윗과 수루야는 이부동복, 곧 어머니는 같으나 아버지가 다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같기 때문에 다윗은 어머니가 다른 이새의 아들들인 형들보다 누이들과 더 가까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조카들을 중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나하스는 이새의 다른 이름이어야 한다. ////혈통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도 함께 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언약의) 피는, 혈통(물)보다 강하다. 성도는 물(혈통)이 아니라 (언약의) 피로 하나된 사이다.  

사무엘상 25:23-44 읽기

23-31 아비가일은 다윗을 왕처럼 마중했다. 그리고 다윗에게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애원했다. 아비가일은 나발은 이름처럼 못되고 하는 일도 어리석으니 마음쓰지 말라고 말했다. 당시 자신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원수 갚는 일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다윗을 장군이라 부르며, 다윗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나발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자신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윗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주시고 평생토록 재앙이 없기를 축복했다. 주님께서 다윗을 생명의 보자기에 싸서 보호하시고, 다윗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님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가일은 주님께서 약속대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실 것이니 살인이나 개인적인 원수 갚는 일로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충언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윗에게 좋은 일을 베푸시는 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했다.

32-35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주님께서 아비가일을 만나게 해 주셨으니 주님께 찬양드린다고 말했다. 아비가일의 말대로 살인이나 스스로 원수 갚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준 아비가일에게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마주나오지 않았다면 나발 집안 사람들은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남자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뻔 했다고 말했다.

36-38 아비가일이 돌아와 보니, 나발은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해있었다.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나발이 술에서 깨었을 때, 아비가일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나발에게 말했다. 그러자 나발은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나발은 열흘쯤 지나 죽었다. 이렇게 주님께서 나발을 치셨다.

39-42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주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고 자신이 직접 악을 행하지 않게 막아주셨다며 주님을 찬양했다. 다윗은 종을 아비가일에게 보내 청혼을 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청혼을 받아들여 다섯 몸종과 함께 다윗에게 가서 아내가 되었다.

43-44 다윗에게는 이미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다윗의 첫 아내는 사울의 딸 미갈이었지만, 사울이 미갈을 갈림사람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기 때문에, 다윗은 두 아내를 두었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 준 이야기가 이미 백성사이에 퍼졌던 모양이다. 아비가일도 알고 있었기에 다윗에게 원수 갚는 일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발은 어리석게도 이 소문을 듣지 못했던지, 아니면 일부러 귀를 닫았던 모양이다.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비가일은 이렇게 아는 것에 대해 순종했다. 총명하다, 곧 지혜롭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만나 개인적인 보복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된 것에 주님께 감사했다. 결국 주님께서 나발을 치심으로 다윗이 직접 악을 행하지 않도록 막아주셨다. 다윗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왔던 (총명했던)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했다. 물론 무릎꿇고 하는 현대식 청혼은 아니더라도 성서에 신랑이 신부에게 청혼하는 장면이 또 있나 싶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자는 같은 마음을 품은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나발의 모든 재산은 아들에게 상속되었을까?) 다윗에게 갔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 다윗을 택했다. 아비가일이 여전히 왕에게 쫓기는 신세요, 부마의 자리에서도 내쳐진 다윗에게 소망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언약 때문일 것이다.        

사무엘상 25:1-22 읽기

1 사무엘이 죽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사무엘의 고향 라마에 장사했다. 다윗은 바란 광야로 거처를 옮겼다.

2-8 마온에 부자 나발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갈멜에 목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가축은 양 떼가 삼천 마리, 염소 떼가 천 마리였다. 그는 갈멜에 와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나발의 아내 이름은 아비가일로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다왔다. 반면 나발은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했다. 그는 갈렙 족속이었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부하들 가운데 열 명을 보내 나발에게 안부를 전하고, 축복한 다음, 나발의 목자들에게 선대한 다윗 무리를 위해 먹거리를 부탁하게 했다.

9-13 다윗이 보낸 열 명의 젊은 부하들은 나발을 찾아 다윗이 시킨대로 말을 전했다. 나발은 이새의 아들 다윗과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는지, 주인에게 반기를 든 세상에서 어찌 근본도 모르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박대했다. 다윗의 부하들은 돌아와 나발이 한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했다. 다윗은 사백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발을 치러 올라갔다.

14-17 나발의 일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비가일에게 다윗의 부하들이 왔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 일꾼은 다윗 무리가 밤낮으로 자신들을 성벽과 같이 잘 보살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비가일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다윗이 나발에게 틀림없이 앙갚음을 할 텐데, 고집불통 나발에게는 말도 붙일 수 없다고 했다.

18-22 아비가일은 서둘러 빵 이백덩이, 포도주 두 가죽부대, 이미 요리된 양 다섯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뭉치 백 개,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나귀 여러마리에 나눠 싣고,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고 다윗을 마중 나갔다.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맞은 편에서 내려와 아비가일과 마주쳤다. 다윗은 선을 악으로 갚은 나발에게 속한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은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다. 

//나발은 다윗을 잘 알고 있었다. 이새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발은 다윗이 사울과의 ‘군신유의’를 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이 주인에게 반기를 드는 세상이요, 다윗을 근본도 모르는 놈이라고 박대했던 것이다. 사관은 나발의 성품을 고집불통이 되어버리고 포악해진 사울의 성품과 동일시 한다. //그러나 사관은 나발을 갈렙 족속이라고 밝힌다. 유다지파의 다윗에게는 나발이야말로 유다 족보에서는 근본이 없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인물인 셈이다. 나발 자신이 근본을 몰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유다 편에 서야 할 나발은 베냐민 지파 사울 편에 설 만큼 ‘나발’스러웠다. 어리석었다. //나발이 이름 그대로 어리석어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발의 아내는 아비가일은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았던 여자였다. 아비가일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다윗을 막아선다. 얼마전 사울의 악을 선으로 갚았던 다윗이었건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주님은 다윗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여인을 보내신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죽음이 다윗의 영성에 악영향을 미쳤을까? 그러나 주님은 나발의 일꾼들과 여인을 사용하셔서 다윗이 악을 악으로 갚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우리 사회에, 한국 교회에 영적 어른의 부재를 탓할 필요가 없다.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아니 돌처럼 생명없어 보이지만, 주의 말씀인 성서가 우리 손에 있다. “악에게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사무엘상 24:1-22 읽기

1-7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온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삼천 병사를 이끌고 다윗을 찾아 나섰다. 사울은 뒤를 보려고 주변에 있는 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굴 안쪽 깊은 곳에 다윗과 부하들이 숨어 있었다.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처치하는 날이 왔다고 말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을 몰래 자르기만 했다.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을 자른 것만으로도 양심에 가책을 받아 부하들에게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을 치는 것은 주님께서 금하셨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하들고 사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타일렀다. 사울은 볼일을 보고 굴을 나갔다.

8-15 다윗도 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울의 뒤에서 “임금님, 임금님” 하고 사울을 불렀다. 사울이 뒤돌아보자 사울에게 절까지 했다. 다윗은 자신은 임금님을 해치려는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조금전 굴 속에서 임금님을 살려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을 해치지 않기위해 임금님을 살려 보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겉옷자락을 증거물로 보여주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은 반역자도 아닌네 왜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냐고 물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주님께서 직접 풀어주시기 바라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임금님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님 앞에서 사울과 약속했다. 다윗은 거듭 주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시고, 주님께서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란다고 사울에게 말했다.

16-22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자신의 괴롭힘에도 자신을 선대한 다윗을 의롭다고 인정했다. 사울은 주님께서 자신을 다윗의 손에 넘겨 주셨지만 자신을 죽이지 않은 다윗의 선행에 주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시기를 바란다며 다윗을 축복했다. 사울은 또 다윗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 다윗의 손에서 굳게 선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 자손을 멸절시키지 않겠다고, 사울의 이름을 지워버리지도 않겠다는 맹세를 요구한다. 다윗이 사울이 요구한 대로 맹세했다. 사울은 자기 왕궁으로 돌아갔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산성으로 올라갔다.

//사울은 다윗이 의롭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윗의 선행에 선으로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다윗을 축복했다. 더군다나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다윗 통치하에 굳게 선다는 것도 알았다. 알면 뭘하냐? 다윗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의롭고), 다윗의 선행에 주님께서 선으로 갚아 주시기를 (아름답게 봐 주시기를) 축복하면서, 정작 사울 자신은 의롭지 않게 행하고 (주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 ////의는 (나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타인에게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다. 

사무엘상 23:15-29 읽기

15a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다윗이 그것을 다 알고서 피할 수 있었다. 15b-18 다윗이 십 광야 호레스에 있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다윗이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했다. 요나단은 다윗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고 자신은 다윗의 참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주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 다윗은 계속 호레스에 머물렀고 요나단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19-23 십 사람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을 찾아가 다윗이 호레스 산성 속에 숨어 있다고, 여시몬 남쪽에 있는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다고 밀고했다. 그들은 사울에게 다윗을 잡으러 당장 내려가기를 권했으나, 사울은 보다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찾아오면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24-28 십 사람들은 사울보다 먼저 십 광야로 갔다. 이때 다윗과 부하들은 여시몬 남쪽 마온 광야에 있었다. 사울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나섰다. 다윗은 이 사실을 보고 받고 마온 광야에 있는 바위로 피했고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을 추격했다. 사울은 산 이쪽에서 추격하고, 다윗은 산 저쪽에서 도망했다. 사울이 포위망을 좁히는데 갑자기 한 전령이 사울에세 와서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 왔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다 말고 블레셋 족속을 맞아 싸우러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시지 않으려고 블레셋을 이용하신 결과다.) 29 다윗은 엔게디 산성으로 올라가 머물렀다. 

//살의를 가진 사울이 찾을 수 없었던 다윗을, 요나단은 어렵지 않게 찾아 격려한다. 다윗을 (왕으로) 추켜 세워주고 자신은 (왕보다 못한 신하로) 낮춘다. 둘은 물리적으로는 동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연합을 이어간다. //다윗이 사울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사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시기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14절에서 이미 밝혔다. 사실 다윗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십 사람들의 밀고로 다윗은 미온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겨 포위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시지 않으시기 위해 블레셋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다. 사울은 블레셋과 맞서기 위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십 광야 호레스에서 엔게디 산성으로 피난처를 옮겼다. 그러나 이 땅에는 진정한 피난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신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한 이유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해 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라고 격려해야 할 친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