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7:3-17 읽기

3-4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시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만을 섬겼다.

5-6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다가 물을 제물로 삼아 주님 앞에 쏟아붓고, 그날 종일 금식했다. 그리고 주님을 거역하며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미스바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던 곳이다.

7-11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에게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했다. 사무엘이 주님께 온전한 번제물을 바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 블레셋이 공격해 왔으나 주님께서 큰 천둥 소리를 일으켜 블레셋 사람을 당황하게 하셨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패했다. 이스라엘 사람이 미스바에서 벳갈까지 블레셋 사람을 뒤쫓으면서 무찔렀다.

12-14 사무엘이 돌 하나를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하고 말하면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시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아주셨다. 블레셋이 빼앗가 갔던 에그론과 가드 사이에 있던 성읍들도 이스라엘에 되돌아 왔다. 이스라엘은 또 아모리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15-17 사무엘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해마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서 거기에서도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다. 사무엘은 라마에 주님의 제단을 쌓았다.

//주님은 언약궤가 아니라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신다. 언약궤만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사무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스라엘 자손간의 분쟁을 중재하던 미스바에서 사무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분쟁?을 중재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안수/정화수를 떠놓고 금식하며,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죄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이 공격을 해왔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블레셋에게 싸움을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번에는 언약궤가 아니라 사무엘을 통해 주님께 도움을 구했다. 주님께서는 사무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물리쳤다. 사무엘은 주님이 도와주셔서 이겼다고 에벤에셀 돌기둥을 세웠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했다.) 사무엘은 사사로 활동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세상은 교회를 공격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나라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세상과 평화롭게 지낸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를 통해 일하신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사용하신다. 

사무엘상 6:1-7:2

1-9 주님의 궤가 블레셋 지역에 일곱달이나 머물러 있었다. 블레세서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궤를 돌려보낼 방법을 강구했다.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은 궤를 그냥 돌려보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궤의 주인인 신에게 속건제물을 바쳐야 병도 낫고 재앙도 거두신다고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신(하나님)께 무슨 속건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블레셋 통치자들과 백성이 같은 재앙을 당했기 때문에,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악성종양 형상으로 금상 다섯개를 만들고, 또 쥐모양의 금상 다섯개를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악성종양 모양과 땅을 해치는 쥐모양의 금상을 만들어 바치고 이스라엘의 신(하나님)께 예를 차리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신이 혹시 블레셋 사람과, 블레셋 신과, 블레셋 땅에 내리치시던 손을 거두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고집을 피우다가 재앙은 재앙대로 다 받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가게 한, 이집트를 따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수레를 새로 만들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마리를 끌어다 그 수레에 메우고, 송아지들은 어미 소에서 떼어서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주님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을 궤 곁에 두고, 어미 소 두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궤가 본래 있던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블레셋에 내린 모든 재앙을 내리신 분이 이스라엘의 신이 맞고,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이스라엘의 신이 블레셋을 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0-12 블레셋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암소들은 수레를 끌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벳세메스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블레셋 통치자들이 벳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갓다. 

13-16 벳세메스 사람들은 밀을 추수하고 있다가 궤를 보고 기뻐했다. 수레는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와서 멈췄다. 그들은 그곳에 있는 큰 바위를 제단 삼고, 나무 수레를 장작으로 삼고, 암소 두마리를 번제물로 삼아 주님께 바쳤다. 레위 사람들이 수레에서 주님의 궤와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큰 바위 제단에 올려 놓았다. 뒤 따라 왔던 블레셋 다섯 통치자들도 이것을 다 보고 나서 그날로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17-18 블레셋 사람이 주님께 속건제물로 바친 금덩이 다섯은 각각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위한 것이었다. 쥐모양 금상도 이들이 다스리던 다섯 성읍을 위한 것이었다. 벳세메스 큰 바위 제단은 아직도 거기에 그대로 있다.

19-7:1 벳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 속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벳세메스 백성가운데서 (오만) 칠십명을 쳐서 죽이셨다. 백성은 슬피 울었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이렇게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느냐며, 주님의 궤를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을 보내 블레셋 사람들이 돌려보내온 궤를 가져 가라고 말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궤를 옮겨, 언덕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주님의 궤를 지키게 했다.

7:2 이렇게 주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약 이십년 동안 있었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의 온 족속은 주님을 사모(슬퍼하며 찾다) 했다.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낼 방법을 강구하느라 일곱달이나 지났다. 결국 블레셋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행하신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제사법도 연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믿음이 없어도, 종교적 열심만으로)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궤를 운반한 수레는 제사에 쓸 땔감으로 사용되었고 수레를 끌고간 암소 두마리는 번제물로, 궤와 함께 온 금덩이들은 속건제물로 드려졌다. //하나님의 궤를 돌려받고 제사를 드렸다고 ‘샬롬’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주님의 궤 속을 (함부로)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벳세메스 백성 칠십 명을 죽이셨다. (작은 마을에서) 오만 칠십명은 과하다. 그래서 (오만) 칠십 명이라고 기록한다. 이스라엘 성읍 벳세메스에서도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결국 하나님의 궤도, 궤가 있는 땅도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한 마음이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 마을로 보내기로 했다. 기럇여아림에서는 사람들이 와서 궤를 가져갔다. 원치 않는 궤를 넘겨 받은 것이 아니라  와서 친히 옮겨갔다. 모셔갔다. 그리고 벳세메스에서의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두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 궤를 지키게 했다. //그러나 20년동안 주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개역개정, 새번역은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온 족속은 주님을 사모했다고 번역하는데, 현대인의 성경과  NIV는 ‘사모’했다를 ‘슬퍼하며 주님을 찾았다’ 라고 번역한다. 결국 짝사랑이었다. 곧 궤를 모셔왔어도, 주의 백성이 주님을 찾았어도 하나님께서 이십년 동안 여전히 침묵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약궤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이방의 목석의 신들을 섬기듯 대해서는 안 된다. ㅠㅠ

사무엘상 5:1-12 읽기

1-5 블레셋은 탈취한 하나님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갔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져가 다곤 신상 곁에 놓았다. 그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 일찍 다곤 신전에 가 보니, 다곤 신상이 주님의 (야웨의) 궤 앞에 엎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들은 다곤 신상은 제자리에 다시 세워놓았다. 그 다음날도 다곤 신상이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곤의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져서 문지방 위에 나 뒹굴었고 다곤은 몸통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다곤의 제사장들과 다곤 신전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은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들어갈 때 문지방 위를 밟지 않고 넘어서 들어간다.

6-12 주님께서 아스돗 사람들을 악성 종양 재앙으로 무섭게 내리치셨다. 아스돗 사람들은 망했다.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의 신 다곤을 무섭게 내리쳤다고 생각해서,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자신들이 있는 곳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겼다. 블레셋이 그 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긴 뒤에는 주님께서 가드 사람들에게 악성 종양이 생기게 하셨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기로 하자, 에그론 사람들은 아스돗 사람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에그론에게 가져와서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울부짖었다. 결국 블레셋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윈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궤가 있는 곳들을 무섭게 내리치셨기 때문에 그 성읍 사람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러 큰 혼란에 빠졌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악성 종양으로 고통스러워 지르는 비명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오늘 사건의 주어는 하나님(신)의 궤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블레셋이 언약궤로 말미암아 재앙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자기들의 신들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의 신전에 가져간 것은 다곤 신에게 바치는 전리품일 수도 있겠으나, 자신들이 이미 섬기는 다곤에, 전쟁의 신으로 두려워 했던 이스라엘의 신을 더하길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신을 모으는 블레셋에 주님은 재앙의 신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블레셋은 언약궤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재앙을 피하려고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블레셋은 언약궤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기로 결정하고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궤가 정해진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주의 백성이 전적으로 주님 앞에 굴복하는 곳이다. 나의 필요를 따라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의 백성이라도 주님의 궤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옮기면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이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신 곳에 있어야 한다. ////주님은 성도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신다.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두 마음을 품으면 주님께서 떠나신다.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주께 아무것도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교훈한다. 그래서 시인은 정결한 마음을 구하고, 정직한 영 새롭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사무엘상 4:12-22 읽기

12-18 베냐민 사람 한 명이 전장에서 살아나와 그날로 실로에 돌아왔다. 그는 (패전으로) 슬픈 나머지 옷을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썼다. 그사람이 왔을 때, 엘리는 길가 의자에 앉아서 길을 내다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의 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패전의 소식을 전하니 온 성읍이 두려워하며 슬피 울부짖었다. (눈이 먼) 엘리가 무슨 소린지 물었다. 그 사람은 엘리에게 달려와 패전의 소식을 전했다. 아흔 여덟의 엘리는 이미 앞을 거의 못보는 노인이었다. 그 사람은 엘리에게 자신은 전장에서 도망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에게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전했고, 전장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고 말했다. 엘리는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에,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늙은 데다 몸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19-22 그 때에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출산이 가까왔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시아버지와 남편도 죽었다는 소식에 갑자기 진통이 일어나 해산을 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낳고 거의 죽게 되었다. 해산을 돕던 여인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자, 산모는 침묵하다가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지었다.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 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궤도 빼앗기고 시아버지도 남편도 죽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고 말했다고 재차 강조한다.

//하나님이 궤. 엘리는 하나님의 궤를 걱정하고 있었다. 엘리는 두 아들이 죽었다는 말보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뒤로 넘어져 죽었다.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조산을 했다. 그녀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곧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 라는 뜻으로 지었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것보다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반복해서 언급한다. //저자가 물고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궤다. 하나님의 궤는 우상신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요, 언약은 사람이 새긴 우상과 달리 하나님께서 새기신 것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했는데….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대신 하나님의 궤만 바랐다. 눈만 완전히 멀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도 닫혔다. 엘리는 만군의 주님께 귀를 기울이는 대신 패잔병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엘리의 며느리도 하나님의 궤 때문에 그동안 배부르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사 시아버지가 죽었어도 하나님의 궤가 있으면 남편이 죽어도 대대로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시집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사 시아버지도 제사장의 대를 이을 남편도 죽은 마당에,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으니 망했다고 생각했다. 엘리도 며느리도 하나님을 몰랐다.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여인들도 하나님을 몰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지 않는 엘리의 세대는 끝났다. 저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무엘의 시대를 기대하게 한다. 한국교회는 어떤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화려한 교회당과 숫적 번영을 통해 쌓아 둔 부만 의지한다면 늙은 데다 몸이 무거운 엘리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도 교회에서 영광이 떠났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는다. 십자가를 자신의 부를 쌓은데 사용해 왔으니 물려줄 재물은 있어도 물려줄 신앙이 있을리 없다.ㅠㅠ 어쩌면 한국교회도 폭삭 망해야 주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어린 세대에 말씀하실 때, 늙고 무거운 몸을 가진 어른 세대가 잘못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지켜주십시오. 

사무엘 4:1-11 읽기

1a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다.

1b-4 그 무렵,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아벡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맞서 싸우려고 에벤에셀에 진을 쳤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졌다.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사천 명 정도 전사했다. 이스라엘 패전병이 돌아오자 장로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지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서로 물었다. 그리고 실로에 가서 주님의 언약궤를 가져오면 원수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로 사람을 보내 그룹사이에 있는 만국의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왔다.

5-11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언약궤가 진으로 들어올 때,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크게 환호성을 올렸다. 환호소리에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진에 주님의 궤가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블레셋 사람은 이스라엘 진에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이 들어갔다는 소식에 자신들에게 화가 미쳤다며 두려워하며 수군거렸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온갖 재앙으로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게 하신 신들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블레셋 사람들을 더욱 분투하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대장부답게 힘을 내었다. 그렇지 않으면 히브리 사람이 자신들이 종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이니 차라리 대장부처럼 나가서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이런 블레셋 사람들을 이스라엘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져서 제각기 자기 장막으로 달아났다. 이스라엘은 보명 삼만 명이 죽을 정도로 크게 졌다.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이 때 전사했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스라엘 장로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무엘을 찾지 않았다. 대신 주님의 언약궤를 찾았다. 사무엘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를 상징한다면, 언약궤는 죽은 말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은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장에 도착했다. 다시말해 주님의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는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로부터 나온 생각이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신들(하나님)의 명성을 알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신)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신)께 의지하지 않고 언약궤를 모셔왔다는 소리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신)도 블레셋이 섬기는 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만든 우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성에 두려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사항전의 마음으로 분투했다. 결국 블레셋이 이겼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도 빼앗아 버렸다. 주님의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려 했던 홉니와 비느하스도 이때 전사했다. 언약궤는 승전을 위한 부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귀하게 여기듯,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했다. 사무엘이 말을 하도록 기다려야 했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이 거하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 오늘도 내 마음속에 간직한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였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성도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