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4:1-7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에워 싼 대적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라고 기록한다. 한마다로 세상 모든 나라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이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불순종 한 백성들의 운명이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나아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유다 시드기야 왕이라고 해서 그 운명이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제 예루살렘 주위에는 라기스와 아세가 두 성읍만 남고 다 바벨론에 함락되었다.

// 세상 모든 나라와 세상 모든 사람이 불순종한 교회를 애워싸고 있다. 순종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쩌면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겠다고 여전히 불순종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이다. 두 성읍이라도 남아있을 때가 순종을 의미있게 한다.

예레미야 33:14-2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대하여 계시하신 선한 말 (복음)을 성취할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말은 복음이다. 복음이 성취되는 날은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다윗의 자손 예수로 나셔서 이 땅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날이다.

주님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시는 날이 구원의 날이다. 샬롬의 날이며 의의 날이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나라에서 예배하는 사람들도, 성도들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복음의 견고성을 시간의 흐름으로 반문하신다. 낮과 밤이 뒤바뀔 수 있다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도 끊어질 수 있고 하나님나라에서 예배하는 성도들고 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낮과 밤이 뒤바뀔 수 없음을 안다. 그러니 주님의 약속은 견고한 복음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하고 성도들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번성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복음이 되어 예레미야에게 끊임없이 주어진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더 이상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다. 낮과 밤을 정하시고 천지의 법칙을 주님께서 만드셨듯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의 영원함도 주님의 법칙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신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 복음은 주님이 말씀하신 선한 말의 성취다. 이 복음은 낮과 밤이 바뀔 수 없듯이 견고하다. 복음은 결국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예레미야 33:1-13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은 여전히 바벨론에 포위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일을 행하시는 주님이요, 그 일을 성취하시는 주님이라고 알려주신다. 즉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시작하고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신)이시다. 이런 신에게 부르짖으라고 명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유다의 운명을 되풀이해서 말씀하신다. 두번째 말씀은 첫번째 말씀과 다르지 않다. 유다가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우려해도 주님이 주님의 노여움과 진노로 유다 백성을 죽이고 그 시체로 예루살렘을 채우겠다고 하신다. 이유도 똑같다. 유다의 모든 악행때문이다. 주님은 악을 행하는 백성들에게서 얼굴을 가리시고 돌아보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것이 결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회복도 다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유다의 포로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포로까지도 돌아오게하여 그들을 새롭게 (처음 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한 모든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뉘앙스가 중요하다. 다시 범죄해도 그냥 용서 받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깨끗하게 씻어주시고에 답이 있는 듯하다. 씻기움을 받은자가 용서 받는다. 씻기움=용서. 씻기움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다른 신학적 문제다.)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뻐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세상은 주님의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찬송과 영광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 주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다. 황폐했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다신 평화와 기쁨의 소리가 가득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예배와 찬양이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황폐했던 땅에 다시 목자가 살고, 양떼들은 목자의 돌보심을 받는 것으로 비유하신다. 양떼는 다시 계수될 것이다. (한마리 한마리 돌보심을 받을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슴을 버리노라”(요10:14-15)

우리야 말씀의 성취를 읽고 있지만 예레미야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한편으로는 소망중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신실함을 보인 예레미야의 믿음을 배운다.

예레미야 32:36-4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유다가 국력이 약해져) 바벨론에게 넘어 간다고 말하지만, 너희 국력이 약해져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패망한) 예루살렘 성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하신다.(36)

주님은 울화가 터져, 화가나서 분통을 터뜨려 유다를 쫓아내어 흩어버렸지만, 흩어버린 여러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모으고, 돌아오게 하여 예루살렘 성에서 안전하게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37)

다시 불러모은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신)이 될 것이다. (38) 주님은 그들에게  한 마음, 한 길을 주어 자자손손 주님을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39) 주님은 임마누엘의 복으로 언약을 맺으실 것이고 그들은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실 것이다.(40) 주님은 그들에게 복 주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나라에서 뿌리 박고 살아가도록 하실 것이다.(41)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 백성에게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돌아 온 백성들에게는 약속한 모든 복을 베푸실 것이다. (42) 결론은 또다시 행위심판이다. 주님을 떠나면 큰 재앙이요, 임마누엘의 주님을 떠나지 않으면 행복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이 땅 예루살렘은 곧 바벨론에 망하겠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사람들의 밭을 사라고 하신다.(43)  포로귀환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의 운명을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다.(44)

//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로 말미암아 세상에 넘어 간다고 말하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핑계다. 이런 모든 어려움들은 임마누엘의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길에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들이다.  예수 믿어 이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로마 성도들에게 굳이 이런 편지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회복된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고, 약속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복이 주어진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다.

예레미야 32:26-35

슬프도소이다. 예레미야의 한탄에 가까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의 고백과 다름없다. 주님은 창조주요 전지전능 하시다. “못할 일이 없다.”고 선언하시고 답을 하신다. 예루살렘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겨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음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혔느니라.”(32)

31-32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이 성은 설 때부터 이 날까지 내 가슴에 불을 질어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는 보기도 싫어, 이 성을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이스라엘 문중과 유다 문중이 그 왕들, 고관들, 사제들, 예언자들을 비롯하여 유다의 온 국민, 예루살렘 시민들까지 온갖 못할 짓을 하여 나의 속을 썩여주었는데 어찌 그대로 두겠느냐?”

주님은 그래도 주님의 백성들을 깨우치고 타일르고 가르치셨는데 주님의 백성들은 교훈을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등을 돌려버렸다. 외면했다. 심지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강조하신다. 나는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 나는 나의 백성들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으신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원리는 간단명료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행한대로 갚으신다. 끊임없이 가르쳐 주시는데 그 교훈을 듣지 않고 받지 않으면, 나아가 악을 행하면 주님이 어찌 우리를 그대로 두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