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1-12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1)

이스라엘의 강성함도 아합의 죽음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미 기울어진 신앙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아합을 이은 8번째 아하시야 왕 이야기는 추락하고 병든 이스라엘을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다락에서 떨어져 병든 아하시야 왕은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어보려고 에그론의 신(하나님) 바알세붑에게 사신을 보냈다. 주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신들에게 보내 이스라엘에 하나님(신) 이 없어서 에그론에 있는 신(하나님) 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반문하시며 아하시야 왕의 죽음을 예언하게 하셨다.

사신들이 도중에 아하시야 왕에게 돌아가 엘리야의 예언을 전하자 왕은 예언한 사람이 엘리야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다시 말하면 당시 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던 것이 아니라 듣는 귀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하시야 왕은 그 즉시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보내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엘리야에게 왕의 명령을 전했다. 엘리야는 자신이 주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불사르라고 명했고 엘리야의 말대로 이뤄졌다. 아하시야는 다시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엘리야에게 보냈고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용없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세상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 듣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다. 듣기위해서다. 나의 탐욕을 채우기위해 끌어 내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편 113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 한다.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해돋는 곳부터 해지는 곳까지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주님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다. 주님보다 높은 것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사 천지를, 피조물을 살피신다.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일으켜 세워주신다. 지도자와 고관대작과 나란히 세워주신다. 불임의 여인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집에서 (공동체에서)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미되어 (돌봄을 받으며) 살게 하신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건강도 부귀도 명예도 학식도 아니다. 시인은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에서 세우시는 높고 높고 높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의 종들에게도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주님의 높으심만 보지 말고, 스스로 낮추사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한다. 우리 입술의 찬양이 삶이 되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시편 111/112

시편 111

1 할렐루야! 복있는 사람의 찬양과 감사다. 복있는 사람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간다.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에 참여한다.

2 주님 하시는 일은 크다. 그래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주님의 그 크신 일을 즐거워해야 하고 기대해야 한다.

3 주님이 행하시는 일은 영원히 존귀하며 엄위하며 공의롭다.

4 주님의 크신 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적이다. 주님의 은혜와 자비로 그 크신 일을 기억할 수 있다.

5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주님은 언약하신대로 영원히 먹여 살리신다. 주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는 그의 은혜와 자비를 기억한다 (기억해야 한다).

6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뭇나라를 주신다. 뭇나라도 주님의 크신 일을 알아야 하고 크신 일의 능력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뭇나라도 주님의 백성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다.

7 주님이 하시는 일은 진실과 정의다. 그의 법도 진실하시다. 법과 집행이 일치된다.

8 진실과 정의는 영원토록 변함없는 주님의 성품이다.

9 거룩하고 지존하신 주님은 주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10 주를 경외하라. 이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께 지음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다. 당연히 영원히 주님을 찬양한다.

// 정직하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뜻대로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꾀를 내어 복잡하게 복잡하게 만든다. (전7:29) 따라서 정직한 자들의 모임에 든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시편 112

No Internet No QT는 사절

1 할렐루야. 주를 경외하며 계명을 즐거이 순종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시편 111편과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2 정직한 자들.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받은대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

3 부와 재물로는 영원히 공의를 베풀고
4 흑암중에도 정직하게 행한다. (빛 자비 긍휼 의가 정직한 자들의 성품이다.)
5 은혜를 베풀고 기쁘게 꾸어주고 정의롭게 행한다.
6 믿음에 굳게 서서 의인의 이름책에 영원히 등록된다.
7 다른 복음에 현혹되지 않고 주님만 의뢰학며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8 두 마음을 품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대적들이 심판받는 것을 보개 될 것이다.
9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다. 이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다. 영원한 의다. 의로운 자가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아는 자) 영광중에 통치할 것이다.

10 악인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은 것을 (불의했던 것을) 한탄 하여 이를 갈면서 결국 소멸될 것이다.

시편 110

다윗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를 노래한다. 다윗이 어떻게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를 노래할 수 있었을까?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설교한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이를 베드로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말씀도 바로 깨달을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이 아침에도 구한다.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은 우편에 앉아 다스리신다. 성부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다스리신다. 주님이 다스리는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한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 (우뢰도 아니고 해가 떠오르면 사라질 새벽이슬 같다고 하신다.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해도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주께 나가야 할 이유다.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선언이다. 성자하나님은 대제사장으로 세상 임금들을 무찌르실 것이다. 세상나라를 심판하여 진멸하실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은 의인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성자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은 같은 시냇물을 마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신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에 다윗은 시냇가에 심은 나누가 되어 참여한다. 다윗의 노래다. 나도 부르고 싶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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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동번역을 읽었다.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1야훼께서 내 주께 선언하셨다.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 2야훼가 시온에서 너에게 권능의 왕장을 내려주리니,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3네가 나던 날, 모태에서부터 네 젊음의 새벽녘에 너는 이미 거룩한 산에서 왕권을 받았다.” 4야훼께서 한번 맹세하셨으니 취소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은 영원한 사제이다.” 5당신의 오른편에 주님 계시니 그 진노의 날에 뭇 왕들을 무찌르리라. 6뭇 나라를 재판하여 시체를 쌓고 넓고 먼 저 땅에서 머리들을 부수리라. 7그는 길가에서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쳐들리라. (공동번역)

3절의 번역이 많이? 다르다. 공동번역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에 집중한다. 주의 백성, 주의 청년이 없다. 시적인 번역으로는 공동번역이 더 자연스럽다.

 

디모데후서 4:9-22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은 디모데를 부른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이둘은 바울을 버리고 갔는지 일이 있어 갔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지금 바울과 함께 있지 않다.) 그래서 바울과 함께 남아 있는 사람은 누가가 뿐이다.

 바울은 마가도 함께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마가가 바울의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필요한지는 밝히지 않는다.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다는 것을 보아서 바울에게 남아 함께 있던 사람이 누가 혼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각자의 사명에 따라, 혹은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잠시 떠났다고 볼 수 있다. 에베소에 보낸 두기고가 외투와 책을 가지고 다시 올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것은 개인적이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주님이 그의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알렉산더를 조심하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바울의 말(복음)에 반대하던 자였다. 공적으로 복음전도를 방해한 알렉산더에 대한 일종의 저주기도다.
대신 처음 재판정에 섰을 때 개인적으로 자신을 변호해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자비의 기도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허물로 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주님이 함께 계셔서 자신에게 힘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힘으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전도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자의 입과 같은 고난속에서도 자신을 구해주셨고, 구원을 이루셔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 집에 문안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린도에 머물고 있는 에라스도, 병으로 밀레도에 머물고 있는 드로비모도 언급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겨울이 되기전 서둘러 자신에게 와달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다. 으불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디모데에게 문안하며 편지를 맺는다. 주께서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축복하며. 주께서 심령에 함께 계시도록 은혜가 디모데와 디모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떻게? 믿음의 친구들을 통해,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친구들을 통해. 주님은 믿음의 친구들과도 함께 계신다.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나를 통해.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다른 친구들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