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8:1-10

마태복음18:1-10 (공동번역)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런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곧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를 짓게하는 사람은 차라리 연자맺돌을 자기 목에 메달고 깊읕 바다에 빠져 죽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사람을 죄짓게 하는 하는 이 세상은 참으로 불행하다고 하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이 참으로 불행하다고 하셨다. 신체의 일부가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던져버리라 하셨다. 성한 몸으로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차라리 불구의 몸으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없신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보잘 것없는 사람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을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하셨다.

//하늘나라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하늘나라에는 어린아이들 같은 사람들만 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도 어린아이와 같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1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고 선언한다. 곧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다.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다른 사람들을 죄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아이들은 그냥 나이가 어린 자들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이다. 소외된 자들이다. 이들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죄짓는 것이다. 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죄짓게 하는 것이요, 죄다.
//사회적 약자들, 소외된 자들을 없신 여기지 않아야 한다. 하늘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이들을 위한 천사들도 있다고 하신다. 하늘나라는 멀지 않다. 천국의 복을 누리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시시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07/

마태복음 17:14-27

마태복음 17:14-27 (공동번역)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끓고 간질병에 걸린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덧붙여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데려왔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한탄하시며 아이를 데려오게 하시고 마귀에게 호령하시자 아이는 바로 나았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 제자들이 예수께 왜 자신들은 마귀를 쫓아내기 못했는지 물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약한 탓이라고 답하셨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셨다. 믿음이 있으면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갈릴래아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머지 않아 사람들에게 잡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슬펐다. 

가파르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받으로 다니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당신네 선생 예수는 성전세를 바치는지 물었다. 베드로는 바친다고 대답하고 집으로 갔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상 임금들이 자녀에게서 남에게서 누구에게서 세금을 받는지 물었다. 베드로는 남에게서 받는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렇다면 자녀들은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시며, 세리들의 비위를 상하지 않기 위해 은전 하나로 자신과 베드로 몫으로 성전세를 내라고 하셨다.

//병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받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왔던 경험이 있는 제자들이었으나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변화산에 가 계신 동안 간질병을 걸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권능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일 것일까? 그들에게 주워졌던 권능은 한시적이었던 것일까? //예수께서는 믿음이 약해서라고 하셨지만,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먼저 한탄하신 것으로 보아 결국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그렇다면 믿음이 약하(없)다는 것은 (거의)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믿고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 된다. //그렇다면 믿음과 기도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아무런 권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요, 따라서 주님께서 해주시기를 바라는 요청이 기도다.  주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내 뜻을 구하는 것은 기도일 수는 있으나 믿음이 아니다. 욕심이다. 내 욕심을 구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기도를 마칠 수 있을까? 제자들이 고난과 부활의 가르침을 받을 때 슬펐던 이유가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기도는 철저하게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는 과정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세를 내신다. 성전 자체이시고 성전의 주인이시지만 성전세를 내신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위선자들이라고 등을 돌리시고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셨지만, 세리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시지 않으셨다. 괜히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불리신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주셨다.  //오늘 본문은 종교세 논란도 잠잠케 한다.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종교세를 내야한다. 마지 못해서라도 내야 한다. 핵심은 면제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어도 내야한다는 것이다.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모든 사람들의 의무에 동참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항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다고 하셨다. 하물며 우리들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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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1-13

마태복음 17:1-13 (공동번역)

제자도를 가르치신 예수께서 엿새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의 모습이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을 빛과 같이 눈부셨다. 그리고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 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다고, 여기에 예수와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구름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모두 땅에 엎드렸다. 예수께서 그들을 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고 말하셨다.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예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산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제자들이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와야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냐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고 답하셨다. 다만 사람들이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으며,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받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깨달았다.

//내가 좋다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도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좋다 하시는 것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하늘에서 ‘너희는 그(예수)의 말을 들어라’ 라는 음성이 들렸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이 되어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된다. //주님과 함께 함이 좋은 것은 주님께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먼저 와서 메시야를 준비할 엘리야가 세례자 요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 길이 인생이 보기에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율법학자들 조차도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로 왔다는 것을 몰랐다. 메시야의 길도 탄탄대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 삯꾼 목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아니 들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성령을 의지하며 말씀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좋은 길이요, 내 안에 주님이, 또 내가 주 안에 거하는 유일한 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05/

마태복음 16:21-28

마태복음 16:21-28 (공동번역)

그 때부터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알려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잡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의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자기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하시며,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꿀지 물으셨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베드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일을 말했을 때는 예수께서 그를 인정하시지만,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말했을 때는 예수께서 가차없이 책망하신다. 사람의 일을 사탄이라고까지 격하게 표현하신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를 설명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를 버리는 일이다.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도 버리는 일이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생이다. 사람의 일은 주님을 버려서라도 자기 생명을 살리려는 일이다. 이런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할 수 없으니 이미 죽은 것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보응받을 것이라고. 성도는 죽기 전에도 하늘나라의 임금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이 땅에서도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늘나라에 가까이 있을지라도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04/

마태복음 16:13-20

마태복음 16:13-20(공동번역)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셨다.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 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는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의지나 나의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고 복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낮아지고(온유하고) 주리고 자비를 베풀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이유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늘나라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요, 곧 하늘나라다. 복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하늘에 있든 땅에 있든 차이가 없다. 어디서나 하늘나라다. 베드로에게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이 누리는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