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9 :1-8

교만을 꺾으신다

주님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언에 이어 세상나라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신다. 세상나라들, 지명과 나라 이름들은 건너뛰고 읽으면

세상나라는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처럼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 (2)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한다. (3) 요새를 쌓으며, 은과 금도 쌓아 둔다. 그러나 세상나라는

(4) 주님에 의해 오히려 정복 당한다. (5) 주님을 두려워하고 패전에 아파하고 소망을 상실한다. 왕위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없어진다. (6) 대신 혼혈인(외국인)들이 살게되며, 주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꺾을 것이다. (7) 주님은 인신제사를 막으시고 우상제물을 먹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 할 것이다. (8) 주님은 압제자로부터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다.

세상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교만이다. 주님은 그들의 교만을 꺾으실 것이다. 나로 자랑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경건의 모양으로 드러난다고 하여도 교만이다. 기도, 금식, 구제, 주일성수, 성경읽기… 이런 것들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질 수 있다. 어제는 국제인권의 날이었다. 오늘 대체휴일로 쉰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중 대표적인 것이 인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인권도 불의하게 적용된다. 이 땅 캄보디아의 ‘평안과 조용함’은 인권유린의 산물인데 인권의 날을 공휴일로 지키니 아이러니다. 주님께서 이 땅의 교만도 꺾어주실 날을 소망한다.

스가랴 8:14-23

하나님나라

(14,15) 주님은 불순종한 유다 조상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하신 것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벌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은혜 베풀기로 뜻하신 것도 취소되지 않을 것이다. 두려울 이유가 없다.

(16)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해야 할 것은 진리를 말하며, 진실되고 공정한 재판을 해야하며, (17) 마음 속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고, 거짓맹세 등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19) 금식 절기는 변하여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 (진실한 행함) 으로 해야한다.

(20) 이런 하나님나라에 전입자(이민자)가 느는 것은 당근이다. (21,22)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마을 단위로, 나아가 국가와 민족적으로 하나님나라에 편입되고자 주님을 찾고 주님의 은혜를 구할 것이다. (23) 유다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방인들이 유다사람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불신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전출자, 역이민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삶이 없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나라의 법은 참 단순하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 1:27)

세속에 물들어 사니 하나님나라가 드러나지 않는다. 내일 주일. 우리끼리만의 예배가 주일성수일까?

토요일 밤이다.

스가랴 8:1-13

하나님나라

주님은 시온이 (장소적 의미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인화 되어 사용됩니다.) 주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자 질투하십니다. 그러데 시온이 세상에서 포로취급을 받자 분노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시온을 찾아 오십니다. 시온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십니다. 시온은 죄의 포로에서 진리로 자유로와 집니다. 시온은 주님나라에서 다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예루살렘에는 남녀노소가 가득할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의와 평안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나라가 됩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 (오랫동안 포로 생활만을 경험한) 주님의 백성에게는 기이한 체험이지만, 주님에게 당연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결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해 뜨는 데 부터 해 지는 데까지, 즉 온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을 자유케 하십니다. 자유케 된 자들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진리와 공의로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듣고 행하는”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어제 말씀을 기억합니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포로생활을 상기 시킵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노예취급을 당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리로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돌아 온 사람들을 다시 옛날처럼 포로로 내주지 않게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어진 통치아래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진리로 자유케 (구원) 하셨고,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손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주님만 붙잡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견고히 하라. 토요일에도 화이팅입니다.

스가랴 7

금식할까요?

2년만에 하나님이 스가랴를 통해 다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벧엘 사람의 질문 “여러해 동안 해오던 오월 금식을 계속 해야하나요?”에 대한 답으로 주셨다. 유다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5월을 기일로 하여 금식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포로에서 돌아왔고 성전 건축이 진행중인 상황이니 포로기간중에 하던 금식의 필요성을 묻는 것이었다.

주님은 지난 칠십년동안 5월 금식 (7월 금식 포함)이 주님을 위해 한것이냐고 반문하셨다.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처럼, 금식도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책망하셨다.  그러시면서 평안의 때에 옛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 말씀을 스가랴를 통해 다시 들려주신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그런데 조상들은 주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했다. 아예 귀를 틀어 막았다. 마음을 돌같이 굳게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나왔다. 그들이 귀를 막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백성들이 불러도 듣지 않으셨다. 그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리셨다. 너희들의 불순종이 이 아름다왔던 땅을 황폐하게 하였다.

울며 근신하리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16)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었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일은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에 답이 있다. 은연중에 주님도 흥하고 나도 흥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흥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가 정답이다. 주님이 흥하시면 주님의 몸된 교회도 흥한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리 없다. (우리의 기도생활도 황폐해 질 것이다.)

 

스가랴 6

스가랴 6장

환상에 환상이 이어진다. 두 구리 산에서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어롱지고 건장한 말들이 끄는 네 병거가 나오는 환상이다. 천사의 설명이 네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하였으니 사방으로 부는 성령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이 네 바람이 온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간다고 하였으니 두 구리 산은 온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 하나님 임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태산이 아니고 구리산이라고 하였으니 ‘우공이산’ 할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다.

검은 말이 끄는 병거는 북쪽으로, 흰 말은 검은 말을 따르고, 얼룩(어롱진) 말은 남쪽으로 나갔다. 갑자기 건장한 말이 어롱진 말과 분리되어 땅에 두루 다녔다고 하고, 붉은 말은 언급이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방향이 중요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이 온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역사하심을 뜻할 것이다.  천사는 북쪽으로 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다고 외친다. 북쪽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일까?

주님이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 (환상과 말씀이 어우러진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헬대, 도비야, 여디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머무니 그집에 가서 그들에게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워주고,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나와서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라고 하셨다. 이 ‘싹’이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제사장도 자기 자리에 있어 이 둘 사이에 평화와 의논이 있으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씌웠던) 그 면류관을 성전 안에 두라 하셨다.

헬대, 도비야, 여디야는 자신의 전부를 팔아 값 비싼 진주를 산 진주장사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북쪽과 바벨론을 동일시 한다면 그 땅에서는 하나님나라를 산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요,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워주는 것도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가 필요함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대제사상 여호수아는 반쪽 역할 밖에 못하는 불완전한 제사장이라, 오실 ‘싹’, 주님을 예언한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도 주님이 왕이요 오직 한분 중보자가 되신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씌워졌던 면류관은 벗겨져 성전 안에 보관한다.

이런 일은 북쪽에서만 일어날 일이 아니다. 먼 데 사람, 동서남북 사방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방인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것이다. 우리가 이미 들은 바요, 아는 바다. 환상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천사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같이 되리라고 한다. 당시에는 예언의 말씀이었지만 /순/종/하/는/ 우리에게는 이루어진 일이며  진행형이다.

주님의 말씀은 들어야 한다. 귀에만 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담아야 한다. 예수님은 듣기만 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라고 하셨다. 환상도 어렵과 말씀도 어렵다. 그래도 이해 되는 부분은 조금씩 늘어간다. 이 부분에 대한 순종을 시작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