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5

정결

이어지는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미가 아니라) 두루마리 환상이다. 두루마리는 9미터 x 4.5미터 정도의 크기다. 두루마리에는 도둑질 하는 자,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가 땅위에서 사라진다는 저주가 양쪽으로 각각 쓰여져 있다. 주님의 저주다. (새번역으로 읽고 있다.) 도죽질 하는 자, 거짓맹세 하는 자에 대한 저주다. 그리고 뒤주 (에바)가 가까이 다가온다. 천사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많은 지 곡식을 넣는 뒤주가 가득하듯이 온땅에 가득하다고 말씀하신다. 뒤주는 납으로 된 뚜껑으로 덮여 있었는데 뚜껑을 여니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똑바로 보라고 한다. 여인은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뜻한다. 천사는 이 여인이 죄악의 상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학과 같이 날개 달린 두 여인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나 뒤주를 들고 공중으로 높이 날라갔다. 천사는 그 뒤주가 바벨론 땅에 지어질 신전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도둑질, 거짓맹세 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다. 도둑질, 거짓맹세는 (장발쟝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서는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나 거짓말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있는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 법정에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를 만드는 불의를 뜻한다. 뒤주( 에바, 곡식을 담아 두는 궤)에 여인을 가둔 것도 뒤주가 부정한 저울, 거짓 추를 (곡식을 재는 것이니 부정한 ‘말’이나 ‘되’라고 이해하자) 사용한 것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주님은 한결같이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이 않은 되를 미워하신다.(잠20:10) 재건 될 (스룹바벨) 성전, 재건 될 예루살렘이 공의와 정의로 정결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악과 죄는 하나님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나라) 바벨론이 추구하는 가치다. 아름다운 여인처럼 유혹한다. 비록 세상나라가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둔다고 해도 하나님나라에서는 무거운 납두껑으로 꽉 덮어버려야 할 것이다. 아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타다 꺼낸 나무조각같은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태산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스룹바벨 손에 다림줄(측량줄)을 쥐어 주신 주님은 성전을,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청소하실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정결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오늘도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하신다.

스가랴 4

다림줄을 잡은 손

밤이 점점 더 깊어갔다. 스가랴도 졸았던 모양이다. 천사가 깨워서 새로운 환상을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환상이 쉬운 듯  어려우니 더 졸립다. 새번역이 쬐끔 더 쉽다.)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있는데  위에 있는 기름을 담는 그릇에서 일곱 대롱을 통하여 일곱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게 되어있다. 등잔대 좌우에는 올리브나무가 한그루씩 서있고 두 금대롱을 통하여 기름그릇에 기름을 공급한다.(1-5, 11-13)

스가랴는 환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천사는 환상을 설명하면서 느닷없이 스룹바벨을 언급한다. (6) 스룹바벨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 재건 중이었다. 천사는 성전재건은 세상 임금의 명령이나 사람의 노동력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천명했다. (7) 태산같은 어려움이 있다 해도 성전이 완공될 것이고 사람들은 성전을 아름답다 할것이다. (9) 스룹바벨이 기초를 놓았으니 그가 완공할 것이다. (10) 아직은 기초단계지만 스룹바벨이 공사현장을 다시 지휘하면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일곱눈을 주님의 눈이라고 보충 설명했다.(그러니 어제 일곱 눈을 가진 돌은 주님을 상징한다.)

천사는 환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스룹바벨 성전의 완공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금등잔대에 기름을 끊이지 않게 공급할 두 올리브나무를 주님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기름부어 거룩하게 구별한 두사람 이라고만 알려주었다. 당시 성전건축을 주도했던 총독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였을까? 다른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가랴는 분명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어제는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더니 (제사장직을 회복시키시더니) 오늘은 스룹바벨에게 성전건축의 전권을 (다림줄을) 맡기신다. 당시 성전건축이 중단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위로와 격려가 되는 환상이었을 것이다.

성전재건은 (고레스 칙령도 16년후 다리오왕 조서도 아닌) 성령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밝혀준다. 한편으로는 주님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기름부어 거룩하게 구별한 두사람을 통하여 성전이 재기능을 발휘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 주님을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고 하신다. . (종합해보면 스룹바벨 성전은 일곱눈을 가진 주님이 성전되심의 예표요, 이 성전은 완공될 것이고, 기름이 영원히 끊이지 않는 등잔대를 통해 이 성전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오늘도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시고 하나님나라의 일을 위해 다림줄(사명)을 주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스가랴 3

타다 꺼낸 나무토막

스가랴는 계속해서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하는 환상을 보았다. 피고 여호수아가 누군지 죄명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판자 주님은 사단의 고소가 잘못되었다고 사단을 책망, 거듭책망하셨다. (환상은 당시 독자들에게는  선명한 메세지를 주었겠지만 우리는 연구해야 알 수 있다. 그냥 읽히는 대로 따라간다.)

주님은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에 비유하셨다. 고통과 핍박에서 구원받은 존재다. 주위의 천사는 여호수아의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준다. (스가랴의 요청으로?) 머리에는 관도 씌워주었다. 눅15장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연상된다. 그러고보니 사단의 고소를 기각하며 책망하실 때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했다”고 주님은 설명하셨다. 그렇다. 사랑이다. (주님의 천사가) 함께하셨다.

(용서는 사랑의 시작이지만 끝이 아니다.) 관을 쓰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여호수아에게 경고가 주어졌다.  ‘네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여기에서 섬기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그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과 다를게 없다. 그렇다. 순종이다.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은 개인적이지만 교회적으로도 적용해야 한다.) 주님은 여호수아와 동료들에게 함께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라고 하시면서, ‘새싹’이라는 ‘주님의 종’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이어서 일곱 눈을 가진 돌을 놓으셨다. 이 돌에 이 땅의 죄를 하루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겼다. 그날이 오면 태평성대, (어진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셨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어 불가운데 타고 있는 우리를 꺼내주셨다.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주셨다. 관까지 씌워주셨다. 그리고 순종하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 공동체적으로. ( 스가랴 당시에는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었으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완전한 순종의 본이 되셨다. 우리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본다. 그날을 기다린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사 61:3)

어제 본 우주적 예루살렘은 하나님나라요,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타다 꺼낸 나무토막같은 우리들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거룩한 예복,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셨다.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다.

 

스가랴 2

스가랴 2 우주적 예루살렘

세번째 환상이다. 예루살렘을 측량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더 이상 측량줄로 너비와 길이를 계산 할 수 있는 작은 성이 아니다. 거주민이 늘어나서 성벽이 두를 수 없을만큼 크게 확장될 것이다. 주님의 불로 보호하고 주님이 임재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있는 곳이면 예루살렘이다. (1-5)

(우주적으로 커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에 이어 포로로 바벨론 도성에 사는 하나님(시온) 백성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으면 지리적 으로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뜻보다 주님의 다스리심 앞에 나오라고 하신다. (세상 가치가 우리를 종삼아 노략하지 않도록, 오히려 세월을 아끼라 하신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그곳이 시온이 된다. 주님이 거하시며 사는 곳이다. (6-10)

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에스더서에서 많은 이방인이 유다인이 된 것 처럼, 내가 주의 백성이 된것처럼) 주님께서 그들의 임금이 되시는 그곳이 예루살렘이며, 주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된다고) 유다인들이  위축될 이유는 없다. 거룩한 다스림을 받는 유다인을 여전히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하나님나라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주님께서 친히 일어나셔서 선포하신 말씀이다. (11-13)

주일이다. 첫째가 세례받는 날이다. 태어났을 때 어찌어찌하여 유아세례 대신 유아헌신예배를 드렸는데, 드뎌 자기 마음과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내년에 대입으로 집떠나기전에 신앙적으로 독립했으니 또 감사.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형제다. (난 아들을 형제로 대할 것이나 아들아 넌 날 계속 아비로 대해라)

주말내내 아프다. 두통에 입안은 헐고 콧물까지 흐른다. 발을 헛디뎌 에스더묵상에서 스가랴까지 온 듯. 소인배의 (묵상이 아닌) 단상을 읽어 주심에는 감사하나 (깊이 없는 글이라) 도움은 안될 듯하다. 페이지를 개설하신 분의 의도상 질문도 아니고 답도 아니고…

스가랴 1:7-21

스가랴 1:7-21

첫 예언후 두달정도 지나 하나님께서 다시 스가랴에게 환상으로 말씀하셨다.

첫번째 환상은 현실상황 (11-15)과 예루살렘 재건(16)과 번영(17)에 관한 내용이다.  말을 탄 사람들이 세상을 두루다녀보니 세상나라들은 제멋에 잘살고 있는데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여전히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다. 천사는 주님께서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불순종의 유다를 벌하셨는데 이방나라들이 유다백성을 너무 심하게 대하고 있고, 포로기간이 이미 7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나나님께서는  다시 자비를 베풀어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번성하게 되도록 축복하시며 그 가운데 다시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두번째는 ‘네 뿔과 네 대장장이 환상’이다. 네 뿔은 유다를 짓밟고 유다 백성을 흩어버린 이방나라들이며 네명의 대장장이는 네 뿔 이방나라를 무찌를 사람들이다. 다시말해 이방나라를 벌하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뜻한다.

제멋에 잘 사는 (평안하고 조용한) 나라에도 짓밟히고 고통받고 흩어진 (유다) 백성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환상중에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대화 하신다. (하나님과 대화하시면서 환상을 설명하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있는 그 사람은 아마도 그리스도 주님이실 것이다.) 화석류나무는 히브리어로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 ‘하닷사’와 발음이 비슷하단다. 머틀나무라고 하는데 ‘의’로움을 뜻한다고 한다. ‘의의 나무’들 사이에 계시는 삼위 하나님께서는 제멋에 잘사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이 구분되는 나라를 싫어하신다.

네개의 뿔, 뿔은 권세와 영광과 힘과 교만을 상징한다. 세상나라의 특징이다. 화려해 보여도 내면을 보면 불쌍한 사람이 핍박받고 있다. 이렇게 평안하다 조용하다 하는 나라들을 대장장이를 통해 벌하실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넘치도록 풍부한 나라요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나라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택하신) 나라다.(17)

내가 사는 프놈펜. 평안하고 조용하다. 훈센의 32년 통치가 낳은 산물이다. 지난달 야당을 해산시켰는데도 잠잠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평안함과 조용함에 안주하며 산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신음하는데 잔치소리만 들린다. 풍부함만 추구하지 하나님의 위로와 통치를 (택하심을) 기대하는 사람은 안보인다.

오 주님! 이 땅 캄보디아에도 주님의 환상을 보는 자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제멋에 잘사는 대평성대(大平盛代)가 아니라 주님께서 다스리는 나라 태평성대 (太平聖代)가 오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