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20-28 읽기

20-24 이 땅의 예루살렘은 마지막 날에 파멸된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면 파멸이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 파멸이 가까이 온 줄 알면, 산으로 도망하고, 성에서 빠져나오고, 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 진다. 임산부와 젖먹이가 딸린 출산부들에게는 도망하기조차 힘겨운 큰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무서운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방의 칼날에 죽든지, 아니면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은 이방사람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이방사람들이 최후 심판을 받을 때까지 성도들이 환난을 당한다는 뜻일 것이다.)

25-28 마지막 날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해와 달과 별에서도 징조들이 나타난다. 온 세상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는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마지막 심판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세상을 파멸시킨다는 뜻?) 그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 먼저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날이요,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을 향하지 말라고 하신다.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라고 하신다. 유대인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예루살렘과 성전. 바벨론 때의 교훈이 있었건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했다. 여전히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꿈꾼다. 아니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도 물리적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예루살렘은 이방사람들의 때가 차기까지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이방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예루살렘은 어느 곳에 서 있든지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회복된다. 그곳이 평화의 마을이 된다. 성도에게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 곧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를 듣는 세상 나라는 마지막 때에 어쩔 줄 몰라서 괴로워하겠지만, 하늘의 소리를 듣는 성도는 머리를 들고 구원을 노래할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성도는 소망을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두는 사람들이다.

누가복음 21:5-19 읽기

5-7 예수께서는 성전은 무너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 언제 성전이 무너지며, 성전이 무너질 때의 무슨 징조가 있는지 물었다.

8-19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해라.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지만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전쟁과 난리가 먼저 일어나겠지만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민족이 일어나 민족을 치고 나라가 일어나 나라를 칠 것이다. 큰 지진과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이 너희를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끌려갈 것이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다. 그렇다고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희 대적들이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명령이다. 종말을 사는 성도는 참고 견뎌야 한다. 증언대에 섰을 때 변호할 말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도,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참고 견디는 가운데 생명을 얻으라고 명령하신다. 박해와 투옥은 옵션이 아니다. 참고 견뎌야 할 시험이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 환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에 이르는 징검다리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도는 환난을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적용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난-인내-연단-소망의 징검다리 첫 디딤돌이 환난이다. 용기를 내어 참고 견디는 가운데 목숨을 얻어야 한다. 구원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환난을 참고 견디는 가운데 목숨(구원)을 얻으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 구원의 날은 이 땅의 성전이 무너지는 날이다. 성도가 거룩한 성, 곧 성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0:41-21:4 읽기

41-44 부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옳다고 인정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예수께서 어떻게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지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고 지적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반문하신 것이다.

45-47 예수께서는 모든 백성이 듣고 있는 가운데, 자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결국은 율법학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해라. 율법학자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를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율법학자들은 과부들의 재산을 빼앗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1:1-4 예수께서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헌금궤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부자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 마태는 복음서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 3장에 가서야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고 족보를 소개한다. 유대인이라는 혈통에 갖힌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왕위를 잇는 자로, 유대/이스라엘을 회복 시키는 자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 시키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나라, 곧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보다 큰 분이시며, 곧 하나님이시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이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는 것만 아니라, 정의와 공의로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려야 할  지도자로서 바른 본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고 말씀하신다. (많고 많은 악행 중에서 한 가지, 과부의 재산을 빼앗았다고 꼭 찍어 지적하신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에게도 위선적인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시는 것이다.

// 어떤 가난한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다. 예수께서는 천국비유에서 천국을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야할 보화가 감추인 밭이요, 장사꾼이라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야할 값비싼 진주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는 같은 뜻이다. 곧 이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샀다고 말할 수 있다. 천국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같다. 부자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야 하고 가난한 자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야만 살 수 있는 나라다. 이보다 공평한 나라가 없다. (내 권리를 주장할 소유가 남아 있다면,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하나님나라는 빈부귀천을 떠나 누구나 살 수 있다. 돈없이 값없이도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사야하는 나라다.

누가복음 20:19-40 읽기

19-26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앞의 비유를 말씀하신 줄 알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잡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정탐꾼들을 예수께 보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했다. 종교법으로 어떻게 못하자 사법권에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의로운 사람들인 체 행세하면서 예수께 접근한 정탐꾼들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입발린 소리를 먼저 했다. 그리고 예수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의 속셈을 아신 예수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달라고 하신 후, 데나리온에 누구의 얼굴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황제의 얼굴상과 황제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책잡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답변에 놀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27-38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일곱형제 맏이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어, 둘째가 형수를 맞아들였고, 둘째도 자식이 없어 죽어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다. 이렇게 일곱형제가 다 그렇게 하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나중에 이 여자도 죽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이 있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 물으며, 부활이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변호했다. 예수께서는 이세상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만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다고 답하신다.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부활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신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신다. 모세가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입니다.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하고 부르는 것이 증거하고 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 아니시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고 하신다.

39-40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들 몇 사람은 예수께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맞장구쳤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감히 예수께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 마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이분법으로 나뉘는 듯한 뉘앙스다. 그러나 이 아침에는 황제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적용해 본다. 황제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가이사의 형상과 이름이 있는 동전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가이사의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로마서 13:1-7은 어쩌면 이 말씀에 대한 바울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세상 황제보다 크신 분이시다. 가이사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글 (말씀)을 받았다는 이스라엘은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꾸짖으신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 부활!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 이삭의 하나님 이셨고,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것이 아니라, 모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하나님이시고, 스데반을 비롯한 집사들의 하나님이시고, 믿음의 선배들의 하나님이시다. 부활은 신비하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부활에 근거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예수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여전히 삼위 하나님으로 교제하시는 근거다. 부활은 완전한 임마누엘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부활신앙은 결국 온전한 임마누엘을 꿈꾸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안다면 영생이요 하나님을 모른다면 영벌이다.

//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서도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맛볼 수 있다.

누가복음 20:1-18 읽기

1-8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을 전하실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따졌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였다. 그들은 하늘에서 났다고 말하면 요한을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났다고 말하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는 백성들에게 돌을 맞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하고 답하셨다.

9-18 예수께서 백성에게 다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났다. 포도를 거둘 때가 되어서 포도원 주인은 종 하나를 보내 포도원 소출 가운데서 얼마를 소작료로 받아오게 하였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다른 종을 보냈다. 농부들은 그 종도 때리고 모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세번째 종을 보냈더니 농부들은 이 종에게도 상처를 입혀서 내쫓았다. 결국 포도원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하였다. 주인은 농부들이 자신의 아들은 존중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보고 서로 의논했다.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버리면 포도원을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바깥으로 내쫓아서 죽였다. 이제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주인이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라는 기록된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면, 그는 부스러질 것이요, 그 돌이 어느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종교지도자들과 지배층 사람들은 예수께 무슨 권한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지 물었다. 예수는 즉답 대신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났는지 반문했다. 다시 말해 요한이 무슨 권한으로 백성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그들에게 되물은 것이다. 요한의 세례를 하늘에서 난 것이라고 인정하면, 예수의 권한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지도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도 무슨 권한으로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는지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자신이 주인 아들의 권한으로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곧 자신의 권한이 하늘로부터 왔음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나라의 머릿돌이라고 덧붙이신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 그렇다고 성도가 성전을 짓는 건축주는 아니다. 성도는 건축가가 (집을 짓는 사람들이) 될 수는 있어도, 건축주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건축주 하나님은 아들, 곧 성자 예수를 거룩한 성의 (하나님나라의) 머릿돌로 삼으셨다. 성도는 교회의 지체요,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마태는 집을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은 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람의 눈에는 집을 짓는 것은 건축가들이 하는 것 같지만, 집은 건축주의 설계대로 지어진다.

// 종교 지도자들과 지배층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권한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이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성도의 일원이다. 교회의 건축주는 하나님이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교회에 속한 성도는 직분을 떠나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되는 권세가 아니다!